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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고향함양/함양의사찰과문화

세 '용'을 만났으니 복권이라도 사볼까?


 


용추계곡, 용추사, 용우진 아이까지 삼용을 만나다
  
▲ 폭포 용추계곡에 흐르는 폭포
용추폭포

같은 경남지방이라도 거제와 함양은 기온차가 크다. 높은 산이 없다 보니 깊은 계곡도 없는 거제도와는 달리 함양은 산과 계곡으로 골을 이룬다. 깊은 계곡은 볕이 드는 시간도 짧은 모양. 겨울을 이겨낸 빈 들녘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숨 가쁘게 새 생명이 숨 트임을 하고 있다.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들녘과는 달리 계곡으로 들어서자 찬 기운이 몸을 움츠리게 한다. 여름철이었다면, 계곡물 소리에 시원함이 빼어 들겠지만, 아직 철이 이른지라 몸이 차가울 정도다. 용추사가 터를 잡고 있는 함양 용추계곡엔 봄이 오기는 멀었나 보다. 

그 누가 말 했던가? 봄은 여자,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내겐 아닌 모양이다. 흔히들, '찌든 삶'이라고 자신을 비하하듯 하는 게 일상의 모습인지라, 나 역시도 그런 핑계로 용추사를 찾았다. 거제에서 함양까지 가까운 거리도 아니다.  

그냥 자동차 시동을 걸면 무작정 떠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습관이요, 방랑벽이 넘친다고 할까.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용추사 불사 소식을 들었다. 믿음 가득한 불교신자도 아니면서, 언제부터인가 불사 소식을 들으면 한 걸음에 달려가곤 하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 잔겨울 미련이 남은 겨울은 봄에게 자리를 내어 주기 싫은 모양이다.
낙엽

통영에서 35번 고속국도를 따라 가다, 생초 IC를 빠져 나와 최근 개통한 3번 국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왕복 4차선 도로는 한적하기만 하다. 안의까지 쉼 없이 달렸고, 계속하여 용추계곡으로 빨려들었다. 용추사 입구 삼거리에서 방향을 트니 왼쪽으로 황석산이 보이고, 오른쪽 멀리로는 기백산이 눈앞에 있다. 한때, 혼자서 야영하며 올랐던 황석산은 오래 만인지라 반갑기 그지없다. 옛 추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계곡의 아름다움에 눈이 홀려 차를 세웠다. 깊은 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바위를 치며 거품을 낸 하얀색이지만, 이내 작은 소에 담기면서 옥색으로 변한다. 같은 물인데도 어떨 때는 흰색으로 보이고, 어떨 때는 옥색으로 보일까?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이 없는 것일까? 어쭙잖게 불교 공부한다고 들은 것은 있어서 흐르는 물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 옥류 용추계곡에는 이처럼 작은 소를 이루는 옥류가 많다.
용추계곡

차량 네비게이션은 목적지를 제대로 안내하였지만, 판독을 잘못한 탓에 엉뚱한 계곡 길로 접어들었다. 한참을 달렸으나 용추사는 보이지 않는다. 겨우, 차 한 대 지나갈 정도 시멘트 포장길을 지나자, 허름한 간판이 봄바람에 춤을 추고 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다리를 지나면 용추사가 있단다. 보통 절에 갈 때는 일주문을 지나서 들어가게 된다.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으로, 속세에서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길을 잘못 찾은 까닭에 후문을 들어서게 되었다. 왠지 꺼림칙한 마음인지라 입구에서 합장 삼배를 정성스레 올렸다. 

  
▲ 부처님께 가는 길 부처님께 가는 길은 맷돌로 아름답게 단장해 놓았다. 한 걸음, 두 걸음 보시하는 마음으로 발을 디뎌본다.
대웅전

용추사(龍湫寺),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에 있는 절이다. 신라 소지왕 9년(487년)에 각연대사가 창건한 옛 장수사와 4대 부속 암자 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라고 사찰 입구 현판에 적혀있다. 절 마당 한쪽에는 불사가 한창이다.  

기와를 실은 대형 기중기는 지붕위에 멈춰 서서 작업인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다섯 명이 한 조를 이룬 지붕작업은 호흡이 척척 맞게 움직이고 있다. 수키와를 얹기 위해 한 사람은 홍두깨(기와를 이을 때에 수키와가 붙어 있도록 그 밑에 괴는 반죽한 흙)를 던지고, 한 사람이 받아 놓으면, 다음 사람은 수키와를 붙여 놓는다. 그야말로 일사불란하다.  

한동안 진행된 작업은 휴식시간을 가지면서 잠시 숨을 돌리는 모습이다. 인부 중 한 사람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우영고건축기와 대표와공 강병진('문화재등록 3217호' 기능보유자)씨. 대화를 하다 보니 거제 둔덕 사람이란다. 이 곳에서 고향사람을 만나니 반갑다는 생각이다. 36㎡의 요사채 기와작업을 하고 있는데 약 3일이 걸린다고 한다.  

  
▲ 대웅전 여의주를 문 두 마리의 용이 대웅전을 지키고 있다.
대웅전

명부전 앞에서 대웅전으로 가는 길목에는 맷돌로 사용한 원형의 돌을 땅바닥에 박아 놓았다. 그리 오래 사용하지 않은 맷돌로 보이는데 무슨 의미를 두고 놓았을까? 왼발 한걸음, 오른발 한걸음, 열 걸음을 부처님께 보시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디뎌본다.  

길이 끝나는 마당 오른쪽으로 일반형의 삼층석탑이 서 있다. 그 앞으로는 공양을 올리는 동자승이 앉아 있는데, 주위에는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석등을 올려놓았다. 동자승은 백 원과 십 원짜리 동전 몇 개를 손에 쥐고 있다. 나도 슬며시 동전을 몇 개 올려놓으니, 그때까지만 해도 무표정한 동자승은 웃음을 살짝 내게 주고 있다. 

  
▲ 동자승 백 원과 십 원짜리 몇 개를 쥐고 있다. 동전을 넣어주자 동자승은 내게 미소를 지어 주고 있는 모습을 한다.
동자승

대웅전은 굳게 닫혀있다. 화려한 단청과 황금빛의 '대웅전' 현액으로 봐서 불사한지 그리 오래 된 절은 아닌 모양이다. 얼핏 보기엔 무섭고 겁이 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웃음이 나오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은 절을 지키는 수호신일까? 봄바람에 풍경이 운다. 절터 풍경소리, 정말이지 이처럼 맑고 깨끗한 소리가 또 있을까? 바로 언덕 옆 대나무 숲에서는 잎사귀 부딪히는 소리가 맞장구를 쳐 주는 것만 같다. 용추사에 봄이 오는 소리다. 

  
▲ 기와작업 홍두깨를 던지자 숙련된 모습으로 받아 기와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기와

절터 밖으로 나오니 옷 벗은 나뭇가지는 윙윙거리며 울고 있다. 아래로는 제법 높은 낭떠러지가 있고, 옆으로 샛길이 나있다. 샛길을 따라 계곡에 다다르니 물줄기는 바위에 부딪혀 하얀 거품을 쏟아내며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고 있다. 부드럽게 흐르는 물 장면을 잡기 위해 저속으로 촬영을 시도했다. 차 트렁크에 항상 삼각대를 가지고 다니지만, 이런 좋은 장면이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호흡을 멈추고 촬영속도는 최대한 줄여 수십 컷의 사진을 찍었다. 큰 화면으로 보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할 뿐이다. 

  
▲ 아빠와 아이 용추사가 있는 용추계곡에서 용우진(4세) 아이를 만났다. 우연히 삼용을 만난 행운이 올까? 아이와 아빠는 다정스럽게 물장난을 하고 있다.
용추사

대개, 폭포사진은 아래서 위로 찍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여건 상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찍을 수밖에 없었는데, 결과는 예상 밖의 좋은 느낌이다. 오후 늦은 시간, 계곡에는 나 혼자. 사진 찍기에 몰두 할 즈음, 다정한 아이와 아빠가 손을 잡고 계곡으로 내려온다. 참으로 보기 좋다. 그래서 한 컷을 담고 싶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좋단다. 물방울을 튀기는 연출사진이지만, 다정다감한 아빠와 아이 모습이다. 옛 시절 어려웠던 내 어릴 적, 내겐 저런 모습이 없어 아쉽기만 할 뿐이다. 

부천에서 거창에 산다는 언니 집에 왔다가 용추사를 찾은 자매지간의 두 부부, 아이와 함께 모두 일 곱 명. 아이의 이름을 물으니 용우진(4)이고 고향에서 살고 있단다. 순간적으로 "어~ 같은 용자가 들어가네" 말하니, 여행객도 용추계곡을 의식했는지 웃음으로 대신한다.  

용추사가 있는 용추계곡에서 용씨 성을 가진 아이를 만났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행운이라는 생각이다. 그것도 계획하고 만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만났으니. 삼용을 만났으니 복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 복권을 사볼까 생각했지만, 곧바로 이게 허상의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내려놓았다. 

  
▲ 용추폭포 폭포사진은 주로 아래서 위로 찍지만, 여건이 좋지 않아 위에서 아래로 찍었다. 보통의 사진과 다른 느낌을 준다.
용추폭포

늦은 시간이 되니 쌀쌀한 기운이 돈다. 돌아가는 길에 옛 장수사 터를 둘러보았다. 서기 487년에 지어졌다는 장수사는 연연히 맥을 이어오다 6·25 전란 때 계곡에 있던 암자들과 소실되었단다. 쓸쓸한 절 마당과 장수사 조계문은 1500여 년 전 당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사찰의 일주문 치고는 꽤나 웅장하고 화려하다. 단청은 세월이 말해주듯 탈색이 많이 진행되었지만, 아름답기는 변함이 없다.  

현액은 덕유산장수사조계문(德裕山長水寺曺溪門)라 쓰여 있고 필체는 힘이 넘친다. 이 일주문은 지름 1.5m 정도 두 개의 큰 기둥에 팔작지붕의 다포계 건물로서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기와와 지붕을 덮은 목재 무게만도 만만찮을 정도다. 어떻게 이런 큰 무게를 버틸까 궁금했는데, 측면으로 보니 기둥을 받치는 보조재가 힘을 분산시켜 주고 있다. 고건축에 대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물레방아 용추사 입구에는 대형 물레방아가 있고 주변으로 공원이 잘 가꾸어져 있다.
물레방아

무작정 머물러 있을 수 없어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길. 차는 방향을 틀어 나선다. 얼마를 지났을까, 대형 물레방아가 쉼 없이 돌아간다. 이렇게 큰 물레방아를 본 적이 없다. 잠시 차에 내려서 한참이나 물레방아가 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역동적인 사진도 몇 장 찍었다. 날이 어두워오기 시작함을 느꼈을 때, 차는 시동이 켜졌고 경쾌한 음악은 쏟아지고 있었다. 

  
▲ 용추사 용추사가 있는 용추폭포에서 용우진 아이를 만나다. 삼용을 만난 행운이 올까?
용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