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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그 마음을 놓아라(1), 법상스님/오늘의 법문에서

 

[나의 부처님] 그 마음을 놓아라(1), 법상스님/오늘의 법문에서

 

2006년 5월 김해 어느 도자기 체험장에서, 죽풍이 직접 만들어 구운 도자기입니다. 왼쪽은 생명을, 오른쪽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생명이 '소유욕'이라면, 죽음은 '내려놓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각기 다른 '둘'이 아닌, '하나'인 것입니다. '인생사공수래공수거(生事空手來空手去)'.

 

[나의 부처님] 그 마음을 놓아라(1), 법상스님/오늘의 법문에서

 

7월 셋째 주 일요일입니다. 시간은 기다리지 않아도 나를 찾아옵니다. 밀어내지 않으려 해도 나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그렇게 인생의 시간은 흘러갑니다. 받지 않으려 한들, 붙잡으려 한들,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 '시간'입니다. 이처럼 시간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제멋대로 입니다. 7월도 하순으로 들어서는 만큼, 시간의 의미를 알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나의 부처님', 오늘의 법문은 법상스님의 '그 마음을 놓아라'입니다. 꼭 새겨야 할 만한 좋은 법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두 손은 주먹을 쥔다고 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무엇이든 소유하려는 본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죽을 때는 두 손바닥을 활짝 펴고 임종을 맞이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간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두고, '인생사공수래공수거(人生空手來空手去)'라고 말합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내려놓음을 알아야 할 지혜입니다. 50 중반을 넘어서는 죽풍도 내려놓은 연습이 필요한 나이라는 생각입니다. <죽풍>

 

그 마음을 놓아라(1), 법상스님

 

처음 우리가 이 세상에 왔을 때,

그리고 마지막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린 빈손으로 왔으며 빈손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린 대부분 태어남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본래 비었던 손을 가득 채우는 데에만 급급해 하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우리네 인생의 목표가 어쩌면 그렇게 한없이 채우는 일일지 모릅니다.

한없이 내 것을 늘려 나가는, 끊임없이 닥치는 대로 붙잡는 일일 터입니다.

돈을 붙잡으려 발버둥치고, 명예를, 지위를, 권력을, 지식을, 이성을...

그렇듯 유형무형의 모든 것들을 무한히 붙잡으며 이 한 세상 아등바등 살아갑니다.

그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입니다.

 

도자기를 굽기 전 찰흙을 빚은 모습입니다.

 

무한히 붙잡는 삶...

붙잡음으로 인해 행복을 얻고자 하는 삶...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가 그렇게 추구하고 갈구하려고 하는 '잡음!'.

그 속에서 우리가 그렇게 버리고자 갈망하는 고(苦), 괴로움이 시작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붙잡고자 하지만 잡히지 않을 때 괴로움은 우리 앞을 큰 힘으로 가로막게 될 것입니다.

이미 잡고 있던 것을 잃어버릴 때, 우린 괴로움과 한바탕 전쟁이라도 버려야 할 듯합니다.

그것이 돈이든, 명예이든, 지식이든...

그 무엇이든 잡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우린 너무도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잡음'으로 인해 행복하고자 한다면 그 행복은 절대 이룰 수 없음이 진리의 모습입니다.

인연 따라 잠시 나에게 온 것뿐이지 그 어디에도 내 것이란 것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인연 따라 잠시 온 것을 '내 것'이라 하여 꽉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합니다.

 

바로 '내 것'이라고 꽉 붙잡으려는 그 속에서, 그 아상 속에서, 괴로움은 시작됩니다.

내 것을 늘림으로 인해서는, 잡음으로 인해서는 결코 행복이며, 자유, 진리를 구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동안 내가 얻고자 했던 붙잡고자 했던 그것을 놓음(방하착, 放下着)으로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소유가 전체를 소유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놓음이 전체를 붙잡는 것입니다.

크게 놓아야 크게 잡을 수 있습니다.

나, 내것이라는 울타리를 놓아버려야 진정 내면의 밝은 '참 나'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 마음을 놓아라(1)/법상스님

 

[나의 부처님] 그 마음을 놓아라(1), 법상스님/오늘의 법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