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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실상을 알기 위한 마음공부(3)/ 고성스님, 오늘의 법문에서

 

[나의 부처님] 실상을 알기 위한 마음공부(3)/ 고성스님, 오늘의 법문에서

 

2014. 7. 19. 경남 창녕군 소재 관룡사 풍경.

 

[나의 부처님] 실상을 알기 위한 마음공부(3)/ 고성스님, 오늘의 법문에서

 

8월 10일, 둘째 주 일요일입니다. 지난 두 주말과 휴일에 두 개의 태풍인, '나크리'와 '할롱'이 우리나라를 지나가거나 비켜가면서, 크고 작은 피해를 남겼습니다. 휴가철을 맞아 피서를 즐기는 여행자들도 일정을 취소하고 귀가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뜨거운 여름이 시작될 것만 같습니다.

 

저도 이번 주 휴가를 떠날 계획입니다. 마음공부도 할 겸 조용한 산사를 찾아 가 볼까 합니다. 휴가 기간에도 포스팅을 해 놓고 갈 계획이라 어제, 오늘 바쁘기만 합니다. 휴가기간, 제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의 블로그에 방문하지 못하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휴가 잘 다녀오겠습니다. <죽풍>

 

실상을 알기 위한 마음 공부(3)/ 고성스님

 

삶이 무상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강물이 영원히 흐르는 것 같지만 그 속의 물은 항상 새롭습니다.

인생이란 전체를 말하자면 그 속의 개개인은 새롭게 변해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분명하면 내 자신이 언제든지 창조의 신이 될 수 있고 자신에게 닥치는 상황이나 경우를 척척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물도 불도 마음의 일부이며 그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이 고요하게 비어 있으면 살아가는 것이 생존경쟁이 아니라 원만한 조화 속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한 청년이 나를 찾아와서,

 

"스님, 저는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참아야 하는 것을 알지만 잘되지 않고 나를 억울하게 만든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분하게 생각하니 마음의 상처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더군요.

 

"그래서 억울함을 참는 것은 대단히 어려우나 억울한 마음을 관하여 마음의 근본이 없는 것을 터득하기는 쉬운 것이다.

그러니 앉아서 깊고 천천히 하는 호흡을 하면서 상처 입은 억울한 마음을 관하여라.

너를 억울하게 한 사람이나 그 동기를 생각하지 말고 단순히 성실하게 관하면 그 상처는 순식간에 없어질 것이다.

몸과 마음과 호흡이 일치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조용하여지며 자연히 그 억울함에 대항할 지혜가 나타난다"

 

라고 일러 준 적이 있습니다.

 

마음의 그릇이 허공처럼 커서 덕을 이루는 것인데 번민하는 마음을 그때그때 관하여 깨끗이 없애는 정진을 하므로 실상인 묘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경쟁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명백하고 정확하지 않으면 속아서 항상 괴로움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속는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속는 것입니다.

마음이 있는 한 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방세계가 마음의 조작으로 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당하는 것입니다.

마치 중천에 떠 있는 밝은 해는 항상 제자리에 있으나, 아침이면  동쪽에서 뜨고 저녁이면 서산에 지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은, 다만 지구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근본마음은 결코 번민하는 것도 아니고 일어나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내 자신이 속기 때문에 가지가지의 마음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있는 마음에 속지 않으면 모든 번뇌는 보리(지혜)로 승화합니다.

그래서 항상 실상묘법과 차별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어떤 경우와 환경이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어려운 환경을 만났을 때 이겨나갈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의 방향이 정해지게 됩니다.

그 능력이 바로 마음 쓰는 방법입니다.

속지 않는 마음은 쉽게 실상을 알아서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마음은 판단력을 잃고 번민에 잠깁니다.

이때는 괴로움이 그림자처럼 생깁니다.(계속)

 

2014. 7. 19. 경남 창녕군 관룡사 뒤쪽에 자리한 용선대에 올라 본 관룡사(오른쪽 아래) 풍경.

 

실상을 알기 위한 마음공부(4)/ 고성스님

 

괴로움을 담고 있는 심정은 무게로 느끼게 되고 무게 있는 마음은 답답하고 때로는 공포 그리고 외로움, 시기, 질투, 절망 등 가지각색의 번민이 일어나서 자신이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의 기능을 상실하고 이것을 거듭하면 윤회라고 하고 여기에 괴로움이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복 받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 제자는 이 삼독심(탐, 진, 치)을 삼학(계, 정, 혜)으로 승화시키는 정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바로 삼보를 믿는 마음에 정성이 어려야 하는데 정성어린 마음은 삼매에 드는 길이고 삼매에 든 마음은 삼독심을 승화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이것은 밝은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사라지는 원리와 같습니다.

 

기도, 참선, 염불, 간경으로 삼매에 드는 마음은 발심과 정진에 따라서 차원이 다르나, 결국 해탈의 문에 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불교를 실천 정진하는 종교라고 하는가 하면, 깨달아 그 마음이 성숙해지는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각자의 마음에 뚜렷한 의지가 서서 밝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어떠한 경우나 환경이 오더라도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영향에서 벗어나 원만한 가치와 능력을 발휘하는 뚜렷한 정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법화경>을 수지독송하는 사람에게는 보살의 경지처럼 광대한 능력을 준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시대에는 실상을 볼 줄 아는 힘이 필요합니다.

실상을 보는 사람에게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실상을 보지 못하면 상대에 따라, 보는 것에 따라, 번뇌가 일고 내가 잘하고 있느냐 못하느냐 하는 마음이 일어나 괴롭게 됩니다.

그러나 실상을 보는 사람은 이러한 모든 마음이 끊어지고 조촐하고 정직한 대화를 하므로 몸과 마음에서 나는 향기가 납니다.

그 마음에서 나는 향기를 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의 향기를 맡지 못하면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속아 넘어갑니다.

 

마음에서 향기를 내는 것이 어렵고 멀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사말이라도 부드럽게 해서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해주면 좋지 않은 마음이 저절로 없어져 향이 나게 됩니다.

부처님 당시 어떤 비구는 다른 사람에게 항상, "당신은 성불할 것입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다녔답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더욱 성불을 향해 가게 되는 것입니다.

 

남들에게 아름다운 말을 해주면 좋은 인과를 받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수행이라는 것은 굉장히 단순한 것입니다.

마음이 단순 할수록 수행은 잘되게 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말, 행동, 생각을 단순하게, 아름답게 하는 것이, 영원히 복을 짓는 지름길입니다.

죽어서 열반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열반해야 올바른 투자입니다.

아름다운 말은 투자입니다.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좋은 말을 하면 바로 그것이 나에게 돌아옵니다.

실상을 아는 사람은 '물질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물질'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마음이 바로 서면 물질이 절로 따르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마음의 향기를 안 내고 아상에 빠져 있으면 그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아상을 버리는 첫 관문으로 아름다운 말, 아름다운 생각, 아름다운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 짓는 것이고, 나를 위하여 투자하는 길입니다.

 

용선대에 올라 본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풍경.

 

경남 창녕군 관룡사 용선대에 올라 본 화왕산성(가운데 볼록한 산 주변에 하얗게 보이는 성).

 

[나의 부처님] 실상을 알기 위한 마음공부(3)/ 고성스님, 오늘의 법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