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왜군이 적이요, 내겐 쓰레기가 적이다


폭염경보가 내린 지난 주. 32도를 넘나드는 땡볕은 가만히 서 있어도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강풍에 고목나무 넘어지듯, 사람을 곧 쓰러트릴 것만 같다. 땀 맺힌 이마를 식혀 줄 바람이라도 좀 불었으면 좋으련만, 먼지하나 일으키지 못하는 무력한 바람이 얄밉다. 두 눈도 지친다. 푸른 바다라도 볼 수 있다면 그래도 낫겠다 싶지만, 적조 때문에 바다도 얄궂다. 앞으로 보이는 시원스레 쭉쭉 뻗은 거가대교만이 위안을 줄 뿐이다.

지난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인 18일. 낙동강에서 흘러 온 쓰레기를 치우려 동료직원들과 거제도 북쪽 해안가 유호리를 찾았다. 곧바로 무더위와 쓰레기가 한 편이 된, 2:1 싸움 한판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차에 내려 해안가에 도착하자마자 눈이 부시고 땀이 나기 시작한다. 얼굴에 선 크림을 진하게 바르고 장갑을 꼈다. 밀짚모자도 흐르지 않도록 목 밑으로 단단히 끈을 묶었다. 긴 소매를 입은 탓에 통기가 되지 않는 것일까, 벌써 온 몸이 찝찝할 정도로 땀이 난다. 쇠갈고리를 들고 자갈밭을 걸었다. 중장비 한 대가 더미 된 쓰레기 무덤을 파헤쳐 한 곳에 모으는 작업이 한창이다. 쓰레기는 대부분 낙동강 하구에 자라는 갈대 토막. 긴 장마와 폭우로 낙동강에서 거제도 해안까지 밀려온 것이다.

갈고리로 쓰레기를 긁어모아 포대에 담는 작업은 쉽지마는 않다. 무더위로 흐른 땀이 눈으로 들어가 수건으로 닦다보니 작업이 더디고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얼굴에 바른 선 크림은 땀과 혼합 돼 눈이 따가움을 넘어 아플 지경이다. 그래도 열심히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고개를 들어 주변을 봐도 동료직원 모두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눈치 봐 가며 땡땡이 칠 수도 없는 터. 치우고 또 치워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바다 쓰레기.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가는데 바다를 보니, 웬걸. 둥둥 떠밀려오는 쓰레기는 파도에 밀리고 쓸리고를 반복하면서 자갈밭에 떡하니 자리를 잡는다. 깨끗하게 청소를 마무리한 방에 쓰레기를 흩어 놓는 격이다. 사람 같으면 딱 한대 쥐어박았으면 성이 풀릴 것만 같다.  

한 시간을 허리 숙여 쓰레기를 주워 담았을까, 잠시 쉬는 시간이다. 모두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돼 버린 상태. 얼굴은 뜨거운 태양에 익어 벌겋다 못해 거무칙칙하다. 그늘을 찾아 잠시 풀숲에 앉아 쉬려는데 눈에 마주치는 무엇이 있다. 옆으로 튀어 나온 불룩한 배, 숨쉬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개구리 한 마리가 눈만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노려보고 있다. 토종 개구리가 이렇게 클까, 의아해 하는데, 동료들은 한 마디씩 보탠다. 토종개구리니, 황소개구리니 하면서. 어찌되었거나, 쉬는 시간은 이 개구리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정답은 얻지 못한 채 작업은 다시 시작 됐다.

힘든 작업은 하다보면 요령이 생기는 법. 자갈밭에 올라온 쓰레기를 주워 담는 것 보다 아예 바다 위에 떠 있는 쓰레기를 건져 포대에 담는 동료가 눈에 띈다.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야 하기에 당연히 신발과 바지는 버릴 것을 각오해야 할 터. 그래도 작업이 수월하다면야 오히려 편할 수도 있는 법. 물속에서 더위도 식히고, 작업 능률도 올리고. 낙동강에서 떠내려 온 철망을 급조하여 뜰채를 만든 동료의 머리가 비상하다.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적인 본능일까. 아무튼, 특별한 이 기구로 바닷물 속 쓰레기를 수거하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


쓰레기 종류도 가지각색. 빈병, 신발, 모자 등 생활용품에서부터 아직도 새것으로 보이는 플라스틱 하수관, 목재 등 건축자재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혼자서 옮기기에 힘든 쓰레기는 동료와 힘을 합하지 않을 수 없다. 힘든 작업이지만 함께 나눌 수 있는 고통이라면 그래도 행복하다.

힘든 일을 마치고 먹는 밥맛이란 그 어느 음식에 비할 수 있을까. 김치와 땡추 하나만 있어도 배를 채우는데 문제가 없는 법. 그래도 주문한 도시락은 넉넉하고 푸짐하다. 시원한 냉국보다 뜨거운 시래깃국이 더위에 지친 목을 풀어준다.


오후 햇살은 더욱 따갑다. 내리는 비가 뼛속까지 스며들까마는, 햇볕은 속살을 파고들고도 남을 정도. 겉옷을 뚫고 들어오는 열기를 느낄 수가 있다. 노출된 목덜미는 어쩔 수 없는 무방비 상태다. 작업은 계속되고, 지쳐만 가는데 저 멀리 시커먼 바다위엔 쓰레기 더미가 전쟁터의 적처럼 밀려오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첫 승첩을 이룬 옥포만 북쪽 끝자락. 이순신은 낙동강 쓰레기가 떠밀려 내려 온 이 바다에서 왜적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전쟁에서만 적이 있는 게 아니다. 바다 위 저 시커먼 쓰레기가 나에겐 적이 돼 버렸다. 낙동강에서 떠밀려 내려온 쓰레기와 무더위가 한 편이 된 한판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2011. 7. 27. 15:45분 현재 메인화면에 걸렸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02524&PAGE_CD=N0000&BLCK_NO=2&CMPT_CD=M0031

사족 : 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라 화질이 깨끗하지 못합니다.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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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성제 2011.07.28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멋진 말씀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왜군이 적이고 우리는 쓰레기가 적이다라는 말씀
    제가 좀 사용하겠습니다

    • 죽풍 2011.07.29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 동네 쓰레기 때문에 골치가 아픈 위원장님의 고민을 읽을 수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