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4일), 점심을 일찍 먹고 좀처럼 하지 않는 산책길에 나섰다. 비도 오락가락, 날씨도 시원 선선하게 느껴지는, 여름이 저물어 가는 날. 사무실 옆에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46호인 고현성이 있고, 그 중심에는 계룡루가 있다. 스트레스 받거나, 마음이 혼잡할 때, 한번 씩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누각이다. 옛 고증을 살려 몇 년간의 공사 끝에 2005년도 복원을 마무리했다. 도심에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이런 누각이 있으니, 심신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것만 같다.
계룡루
경남 거제시청 옆에 있는 고현성은 시민들이 접근하기에도 아주 편리하다. 주변에는 시민공원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기도 한다. 잘 닦여진 도로와 일부 구간은 잔디길이어서 걷기에도 아주 편리하다. 너럭바위로 쌓은 성에는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듯, 담쟁이넝쿨이 바위를 감싸 안고 있다. 푸른 담쟁이 넝쿨 잎 사이로 붉게 물든 잎사귀 몇 장이 보인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순백의 야생화는 자기를 쳐다보라는 듯 손짓하고 있다.
담쟁이 넝쿨에서 가을을 느끼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살며시 올랐다. '계룡루'라는 현액이 머리 위에서 나그네를 내려다본다. 처마 밑으로는 단청이 아름답게 채색돼 있다. 마루에는 세계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낮잠을 즐기는 한 남자가 있다. 마음 가는 데로 벌어진 두 팔, 두 다리는 자유로움 그 자체다. 차마 사진을 찍지는 못하겠다.
담쟁이넝쿨에서 가을을 느끼다
성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 20~30분을 걸었을까? 잔디로 된 길을 걷다가, 바위로 만든 성곽 길을 걷다가 다시 계룡루로 왔다. 세계에서 제일 편한 그 남자는 아직 천장을 마주하며 곤한 낮잠에 취해있다. 참, 맛이 있는 잠을 자고 있다는 생각이다. 나도 빨리 사무실로 가서 몇 분 만이라도 의자에 기댄 채 낮잠에 빠지고 싶다. 가을을 느끼는 그런 꿈을 꾸면서.
담쟁이넝쿨에서 가을을 느끼다
고현성
이 고현성은 조선의 문종 원년(1451)에 쌓기 시작하여, 단종 원년(1453)에 완성하였다. 아울러 사등성에 있던 거제의 관아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이 성은 현종 4년(1663)에 관아를 거제면 쪽으로 옮기기 전까지 거제의 읍성 역할을 하였다. 성은 거제의 계룡산 동쪽 기슭에서 뻗은 혀처럼 생긴 땅위에 배 모양으로 쌓았다. 동국여지승람에 이 성은 둘레 3038척, 높이 13척이었으며, 남해안의 읍성 가운데 중간 크기 정도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남,북에 세워진 성문에는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낮은 담(성가퀴)을 설치하였다. 입구에는 기역자 모양의 또 다른 옹성을 마련해 외부로부터 완전히 엄폐되어 있다. 또 외부로부터 오는 접근을 막기 위해 방어용 도랑을 설치하는 등, 성의 형태는 조선 시대 전형적인 읍성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현종 때 관아가 거제로 옮겨간 이후 성 내부는 폐허로 변했지만, 1950년 이전까지만 해도 성 자체는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때 유엔군이 이곳에 포로수용소를 설치함으로서 성이 급속도로 파괴되어, 지금은 800미터 정도만 남아있다. 현재 성 안은 농경지와 주택지로 변모되었다.
담쟁이넝쿨에서 가을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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