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여행] 논개의 시신이 고향 장수에 묻히지 않고 함양에 묻힌 이유는?
/함양여행코스/함양 가볼만한 곳/유몽인 어우야담/게야무라 후미스케/임진왜란, 진주성, 남강/함양군 서상면에 자리한 의암 주논개묘
경남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에 자리한 '의암 주논개묘'.
함양군 서상면을 지나다 도로변에 선 갈색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갈색 간판은 관광진흥법상 문화재나 관광지로 지정된 곳에 갈색바탕의 간판을 세운다.
도로변에 갈색 바탕의 간판이 보인다면 관광지나 유적지가 주변 어디에 있다는 뜻.
가까이 가서 보니 '의암 주논개 묘 1.6km'라 표기돼 있다.
문득 드는 의문점, '논개' 묘가 함양에 있다니.
논개라면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함락 된 후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은 '의기(義妓)' 아니던가.
이런 내용은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이지만, 진주와 논개라면 모를까 함양과 논개, 어떤 숨은 역사가 있는지 궁금했다.
집으로 가던 차를 방향을 틀어 1.6km를 더 달렸다.
황금 빛 나락이 고개 숙인 들녘 뒤로, 야트막한 산 아래 자리한 논개 묘.
넓은 주차장 왼쪽으로는 사당이 있고, 산을 깎아 조성하였는지 언덕 위에는 큰 봉분이 자리하고 있다.
사당은 문이 잠겨 들어갈 수 없고, 계단을 올라 봉분 앞에 섰다.
혼유석(능원이나 묘의 봉분 앞에 놓는 장방형의 돌) 앞면에 이렇게 쓰여 있다.(의암신안주씨지묘 좌자)
子坐 墓之氏朱安新巖義
봉분은 높이 1.2m, 직경 5.4m, 길이 5.3m로 1980년대 후반 함양군에서 논개묘 성역화 사업으로 조성했다.
내리막길로 돌아서는 구석에는 논개 추모비가 서 있다.
그렇다면 논개 묘가 논개의 고향인 장수군에 묻히지 않고 왜 함양에 묻혔을까?
주변에는 논개와 관련한 안내문이 없어 군청에 직접 알아 볼 수밖에 없었다.
논개가 함양에 묻힌 사정은 아래 내용과 같다.
논개의 시신이 함양에 묻힌 이유
논개의 성은 주씨고, 고향은 전북 장수군 주촌마을이다. 논개는 임진왜란이 한창인 1593년(선조 26년) 진주성이 함락된 후 왜장들이 촉석루에서 주연을 벌일 때 기녀로 참석하여 술에 만취한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를 껴안고 강물로 뛰어들어 함께 죽었다.
당시는 운반 수단이 많지 않아 시신을 지게에 지고 운구할 수밖에 없었는데, 진주에서 걸어서 장수로 가던 중, 함양 서상에 이르자 시신이 부패해서 더 갈 수가 없었다. 또한, 함양에서 장수로 넘어가는 육십령 고개는 도적이 출몰하는 등 고개를 넘기 어려워 지금의 자리에 안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논개의 기록은 구전으로 전해오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유몽인이 1621년 <어우야담>에 기록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성균관유도회 안의지부(함양군 안의면)에서는 지난 8월 28일 의암 주논개 순국 424주년을 맞아 추모제향을 올렸다고 한다.
연약한 일개 여자로서 왜장의 목을 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의로운 논개.
나라 사랑의 정신을 후손에게 영원히 물려 줄 소중한 역사가 아닐는지.
함양여행, 함양여행코스에서 꼭 가 봐야 할 곳, 함양 가볼만한 곳으로 '의암 주논개묘'를 가보는 것도 역사공부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함양군 서상면에 자리한 '의암 주논개묘'에 관한 포스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