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서 날개를 달아 금강산에서 펴다-2

17년의 잊힌 계절을 다시 찾은 감정을 뒤로 한 채, 11월의 첫날 새벽은 부산한 모습으로 움직여야 했다. 단체여행이라는 것이 시간에 맞춰야 하고,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 참으로 불편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강원도 최전방 민통선을 통과하고 동해의 푸른 바다를 보며 금강산으로 향하는 발길은 긴장감과 설렘이 한꺼번에 혼재해 있다.

동해선도로 남북출입사무소를 조금 지나니 비무장지대다. 사십여 대의 버스는 휴전선을 통과하면서 북한 땅을 지나고 있다. 휴전선, 한국동란의 휴전협정으로 당시 그어 놓은 남북의 경계선으로서, 동서 155마일의 길이에, 50㎝ 높이의 노란색을 칠한 시멘트 말뚝을 200m 간격으로 땅에 박아 놓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다.

일행이 지나면서 본 말뚝은 동서 간 총 1292개 중 1290번째라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다.

 

  
▲ 금강의 단풍 11월의 첫날, 금강의 단풍은 나를 찾아주는 이를 위해 애설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금강산

처음, 두 눈을 통하여 보는 북녘의 땅은 서글픈 모습으로 다가왔다. 산야에는 푸름도 없고, 삭막하다. 눈에 들어오는 야트막한 산은 온통 바위뿐이고, 나무도 없는 민둥산이다. 도로변 중간 중간에 서 있는 북한 초병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지나가는 버스를 응시하고 있다.

천막으로 설치된 북측출입사무소에서 검사를 마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여행 단체별로 검사를 맡았다고 해도 바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객 전체가 한꺼번에 움직이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온정리, 일박이일 머무를 숙소가 있는 곳이다. 금강산은 크게 내금강, 구룡연, 삼일포, 만물상 등 네 개의 여행 코스가 있다.

여장을 풀고 먼저 구룡연으로 향했다. 경쾌하고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와 사시사철 푸른 담(潭)과 소(沼)를 감상할 수 있는 외금강을 대표하는 코스다. 목란관, 수림대, 앙지대, 상록수, 금강문, 옥류동, 연주담, 비봉폭포, 구룡폭포, 상팔담으로 이어지는 약 4.3㎞의 코스에 4시간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는 설명에 조금 긴장되는 느낌이다.

금강산 산행 시에는 주의 사항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산행 시작 전에는 반드시 볼일을 보고 산행을 하라는 점이다. 산행 시 위생실(화장실)을 갈 때 서서 보는 일은 1달러, 앉아서 보는 일은 4달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만물상 산행 시 너무나 급해서 1달러를 내고 볼일을 봐야만 했다.

 

  
▲ 목란관 구룡연 코스 초입에 있는 북한이 운영하는 식당 겸 휴게소다. 멀리 금강의 아름다움을 훔쳐 볼 수 있다
목란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본격 산행이 시작됐다. 1200여 명이 한꺼번에 오르는 탓에 비교적 넓은 길인데도 불구하고 밀려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목란관, 구룡연코스 초입에 있는 북한 측에서 운영하는 식당 겸 휴게소다. 입구 다리에서 올려다본 금강산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약 삼십 분을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걸었다. 햇살을 품은 단풍잎이 하늘거린다. 구룡폭포에 이르기 위해서는 총 8개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화려한 단풍잎과 여행객의 등산복은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 구룡연코스의 두번째 다리 구룡연 코스에는 총 여덟개의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는 두번째 다리로서 자연과 사람의 단풍색으로 물들여 놓고 있다.
금강산

 

금강산은 둥글고 뾰족한 바위와 바위로 둘러싸여 있는 산이다. 천태만상의 바위는 제각각 모습을 달리하고, 사이사이에 난 잡목은 분칠을 하듯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다.

암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은빛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비봉폭포다. 봉황새가 날개를 펴고 꼬리를 휘저으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폭포로, 금강산 4대 명폭 중 하나이며, 139m의 높이다. 오른쪽에 있는 무봉폭포와 짝을 이룬다고 해서 둘을 부부폭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같이 가는 하얀 은빛의 물줄기가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음달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떨어지고, 바람에 흩어져 날리며 물안개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 금강의 암벽 금강산은 암벽으로 둘러쳐진 아름다운 산이다.
금강암벽

 

이곳저곳을 보고 감상하느라 눈이 피곤하다. 금강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다. 카메라에 들어오는 빛의 양에 따라 사진의 선명도가 달라진다. 실물보다 더는 아름답지는 않을지라도, 아름답게 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뒤처진다. 일행은 저 멀리 앞서가고 있다. 한참을 걸었을까, 산골짝 모퉁이를 도는 순간 하늘이 열리듯 앞이 확 트이면서, 눈앞으로 펼쳐지는 자연경관이 장관을 이루고 현기증이 날 정도다.

 

  
▲ 비봉폭포 은실이 휘날리는 듯한 비봉폭포
비봉폭포

 

넓디넓은 바위 폭포를 하고 있는 옥류동 계곡이다. 수정 같은 맑은 물이 누운 폭포를 이루며 구슬처럼 흘러내린다고 하여 붙여진 옥류동은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418호로서, 담소의 넓이는 630㎡, 깊이 6m, 길이 58m의 옥수를 담고 있다. 일필휘지 붓의 돌림일까, 절세미인의 치맛자락일까, 옥을 담아 놓은 보석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은 욕망이 인다.

금강산의 물은 흐르면 비단길이요, 모이면 담소요, 흩어지면 계곡이요, 떨어지면 폭포수요, 마시면 몸에 좋은 약수라 했다고 누가 말했던가? 계곡에 내려 두 손으로 물을 떠서 마셨다. 옥수의 맛은 가슴 속 깊이 짜릿한 여운으로 오래 남는다.

 

  
▲ 옥류동 옥을 풀어 깔아 놓은 듯한 옥류동 계곡. 말로써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자연경관이다.
옥류동

 

구룡폭포(九龍瀑布)까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궁금하다. 힘도 많이 든다. 지나온 다리를 세어보니 여덟 번째 다리를 지난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이정표가 5분 남았음을 표시한다. 은실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일까, 학의 날개가 구름 위로 나르는 모습일까? 한 장의 큰 바위 덩어리에 옥수가 흘러내리는 구룡폭포. 북한의 명승지 제225호. 외금강 구룡동 골짜기에 있으며, 중향폭포(衆香瀑布)라고도 한다. 높이 74m, 너비 4m이다.

설악산의 대승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폭포 중의 하나이며, 십이폭포, 비봉폭포, 옥영폭포 등과 금강산 4대 폭포를 이룬다. 폭포의 벽과 바닥이 하나의 화강암석으로 되어 있으며, 옥녀봉의 아름다운 연봉을 배경으로 화강암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웅장하고 기세가 있다. 폭포 아래로 금강산을 지키던 9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13m 깊이의 구룡연이 있다.

 

  
▲ 구룡폭포 상팔담을 흘러 내린 옥수는 구룡폭포를 만들고 그 아래 아홉마리 용이 살았다는 구룡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구룡폭포

구룡폭포 옆에는 김규진이 썼다는 '미륵불(彌勒佛)'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불(佛)자의 획 길이만도 30m가 된다고 한다.

최치원의 여덟 글자의 시가 구룡폭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일까?

천장백련 만휘진주(天丈白練 萬斛眞珠)
천 길 하얀 비단이 드리운 듯하고, 만 섬의 진주알을 뿌려 놓은 듯하구나!

아니면, 막걸리에 취한 김삿갓이 이 폭포를 보고 부른 노래일까?

수작은간춘절벽 운위옥척도청산(水作銀杆春絶壁 雲爲玉尺度靑山)
월백운백천지백 산심수심객수심(月白雪白天地白 山深水深客愁深)

폭포수는 은으로 만든 절구가 돼 절벽을 내리찧고
구름은 옥으로 만든 자가 돼 청산을 재면서 흘러간다
달도 눈도 희니 온 천지가 모두 희고
산도 물도 깊으니 나그네 수심도 깊구나

구룡폭포가 정면으로 보이는 관폭정(북한의 보존유적 제1691호)에 홀로 앉아 술 한 잔 취하면서, 김삿갓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어설픈 시라도 한 수 읊조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술 한 잔 마시지 못하고, 시 한 수도 노래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구룡연 마지막 다리를 건너 상팔담(上八潭)으로 가는 데는 아주 험난한 길로서, 평탄길이 없고,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는 느낌이다. 실제로 철 계단은 거의 90도에 가까울 정도로 절벽에 붙어 있다.

할머니 한 분이 일행의 부축을 받으며 먼저 내려오고 있다. 부산에서 왔다는 그 할머니는 81세라고 하는데, 정말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코스는 17개의 철 계단에 312개의 계단 수가 말해 주듯, 젊은 사람도 힘든 코스로서, 특히, 직각에 가까운 철 계단을 오르내렸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 상팔담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의 이야기인 상팔담. 상팔담을 흘러 내린 옥수는 구룡폭포에서 흩어져 하늘로 흩어진다.
상팔담
  
▲ 상팔담 햇살을 받은 옥빛의 담소는 그 휘황찬란한 보석빛을 반짝거리고 있다.
상팔담

숨을 몰아치며 힘들게 구룡대에 올랐다. 구룡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바위와 계곡과 물줄기와 담소들은 기이한 장관을 이룬다. 옥을 꿰어 만든 아름다운 여인의 목걸이가 연상되지만, 여인의 목걸이보다 더 아름답다. 옥이 있는 소에 햇살이 비치고 하얀 은빛이 영롱한 모습으로 보석보다 더 반짝거리고 있다.

태고의 신비스러움이 지금도 그대로 있는 이 계곡에는 열 몇 개의 소가 있고 그중에서도 빼어난 여덟 개를 골라 팔담이라 하였으며, 구룡동 위쪽에 있다 하여 상팔담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구룡폭포가 떨어져 만든 구룡연과 상팔담을 합쳐 구담이라 하고, 이 아홉 개의 못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한다.

 

  
▲ 천화대와 세존봉의 암석들 구룡대에서 바라본 천화대와 금강의 암봉들. 금강산의 비경을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이던가?
천화대

 

어릴 적에 들은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은 서로 같이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지만, 북한의 상팔담에 얽힌 전설은 우리의 것과는 정반대이다. 옛날 금강산에 마음씨 착한 총각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살려주었다. 사슴은 은혜를 갚기 위하여 팔담에 목욕하러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날개옷을 감추었다가 그에게 주었다.

팔선녀 중 옷을 잃어버린 선녀는 하늘로 올라갈 수 없게 되고, 총각은 선녀와 인연을 맺었다. 총각은 사슴의 뜻대로 아들딸 3형제를 본 다음에 선녀의 날개옷을 주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선녀는 두 아이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나 선녀는 금강산이 그리워 다시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 후 부부는 아들딸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상팔담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푸른 옥색의 담소에 선녀가 목욕을 하고 있다. 나무꾼이 되어 아름다운 저 선녀와 하늘나라로 가서 영원의 삶을 살고 싶다.

출처 : 아홉 마리 용과 선녀와 나무꾼의 사랑 이야기 - 오마이뉴스(2007. 11. 09)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