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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거제도/거제도마을소개

안개 속에 산은 있었네, 거제 지심도


 

이른 새벽 산책길에서 쓰는 아침 일기 

장마가 끝을 보이지 않고 이어진다. 며칠 전엔 폭우로 산사태가 나고 계곡물이 넘쳐,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다는 소식이다. 집안도 습기로 가득해 모든 게 축축한 느낌. 창문을 열지만 오히려 밖의 습기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형국이다.

12일 이른 아침. 오랜만에 햇살이 얼굴을 내민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선지가 얼마만일까? 평소 아침운동을 거의 하지 않지만, 오늘은 일찍 일어 난 탓에 카메라를 챙겨 집을 나섰다. 지루한 아침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공기는 싱그러웠고, 비온 뒤 우중충한 건물이 빗물에 씻겨 깨끗해서 좋았다. 산책하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활기찼고 표정도 밝다. 예전, 그 어느 날과는 확연한 다른 느낌의 아침이다.

반시간을 걸었을까. 거제도 동쪽 망망대해로 이어지는 섬, 지심도가 보이는 장승포해안일주도로에 도착했다. 짙은 안개가 섬을 에워싸고 있다. 섬 꼭대기 일부만 보이고 주변은 하얗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자 안개는 바람에 밀려 하늘 길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하늘에도 안개가 흐르는 길이 있나 보다.

예전 같으면 아침 이 시간 거제에서 부산으로 가는 여객선을 보았는데, 이제는 볼 수가 없다. 지난해 개통한 거가대교로 인해 거제부산을 오가는 뱃길이 끊어졌기 때문. 한 바다엔 대형 상선 한 척이 안개 속에 묻힌 채 숨을 죽이고 정박해 있다. 짙은 안개 때문일까, 소리하나 들리지 않는 적막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바다. 해안가엔 세 척의 어선이 아침을 열고 있다. 어부의 바쁜 손놀림은 수확의 기쁨으로 결실을 맺는다.

길가에 무리지어 핀, 안개비를 머금은 원추리가 싱그럽다. ‘기다리는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원추리. 안개 자욱한 지심도를 내려다보며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손을 내밀어 꽃송이를 살포시 만져 봤다. 긴 장마를 버텨 이겨내 온 힘이 느껴진다. 주홍빛 꽃잎에서 강한 슬픔과 연민의 정이 일어남은 왜일까? ‘꽃이 되려거든 원추리가 되고, 새가 되려거든 두견새는 되지 마라’는 말이 있다. 슬픔과 근심을 잊는다는 야생화로도 많이 알려진 원추리. 길가 바람에 안개비를 맞으며 흔들거리는 원추리는 안개 속 지심도를 그리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