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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이야기

[최순실 국정농단] 3, 4차 청문회에 나서는 증인은 국민을 믿고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최순실 청문회/청문회 일정/세월호 청문회/세월호 3차 청문회/국정조사 청문회 일정


[최순실 국정농단] 3, 4차 청문회에 나서는 증인은 국민을 믿고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최순실 청문회/청문회 일정/세월호 청문회/세월호 3차 청문회/국정조사 청문회 일정


침몰하는 세월호.


2014년 4월 16일. 그날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언론 보도와 관련한 일을 하던 필자는 그날 출근하여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인터넷 뉴스 검색을 시작했다. 시간은 오전 9시를 조금 넘은 시간. 그런데 기사 제목 한 줄이 눈길을 끌었다.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한 속보였다. 바로 TV를 켜니 자막에 붉은 글씨로 세월호 침몰 관련 보도가 이어졌다. 다른 방송사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기억을 살려본다. 인천에서 제주로 출발한 세월호에 수학여행을 떠나는 많은 학생들이 타고 있었고, 배는 계속해서 침몰하고 있다는 것과 해경이 출동하여 구조 중이었다는 것. 사고 초기에는 "설마 무슨 일이 벌어지겠느냐"며 탑승객이 전부 구조되지 않겠냐"는 다소 낙관적인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예상은 처참하게 빗나가고 말았다.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내용을 인터넷 백과사전을 참고하여 간추려 본다. 사고 전날인 4월 15일, 안개로 출발이 2시간 반이나 지연됐던 세월호는 오후 9시 승객 476명과 화물을 싣고 인천항을 출발한다. 이 배에는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 교사 14명, 일반인 104명, 선원 33명이 탑승했다고 한다. 후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세월호는 적재 한도를 초과하여 운행했다는 것. 


세월호는 사고 당일인 4월 16일 오전 8시 30분 경, 맹골도와 서거차도 사이를 진입하고 8시 49분경 병풍도 부근에서 항로를 급격히 바꾸어 급선회 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오전 8시 52분 32초,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살려주세요"라는 학생의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최초의 신고전화였다. 이후 진도관제센터는 9시 6분 세월호와 교신하기 시작했고, 9시 17분 세월호 선원은 배가 50도 이상 기울어져 있다고 보고한다. 


해경은 구조에 나섰고, 9시 19분 세월호 침몰사고는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오전 10시, 정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하고 가동에 들어갔다. 세월호 당일 구조한 인원은 172명이었다.(학생 73명, 교사 3명, 일반이 71명, 승무원 23명) 나머지 304명은 배 안에 갇힌 상태였다.


문제는 정부의 안이한 대처 방식과 대통령의 7시간 동안 행적이다. 청와대는 오전 10시 세월호 침몰사고를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보고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서면보고를 받고도 TV를 켜지 않았는지, TV를 켜고도 아무런 감정이나 느낌도 없이 TV만 시청했는지. 


대통령의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언론보도처럼, 세월호가 분 단위로 기울어져 가는 것을 보고도 집무실로 출근해서,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한 것인지, 서면보고를 받고도 TV를 켰는지 조차도 의문인 대통령의 7시간. 


대통령의 기본적인 자세 외에 또 다른 문제는 참모들의 안이한 문제의식이야말로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지진이 비교적 안심하다는 한국에서 올해 들어 많은 지진이 전국에 걸쳐 발생했다. 갑자기 집이 흔들리면 '이게 지진인가'라며 119에 전화를 걸거나, 가족이나 지인에게 '거기는 어떻냐'며 궁금해 하고 불안해한다. 그리고는 인터넷을 검색하고 피난방법을 강구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그럼에도 세월호가 침몰하는 TV 장면을 보고서도, 그 누구 하나 대통령을 찾아가서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지 않은 참모진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할까. 이런 말도 하지 못하게 하는 대통령이라서 그런가? 이렇게 말이다.


"대통령님, 지금 TV를 보십시오. 승객 500여 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습니다. 분 단위로 배는 기울면서 침몰하고 있습니다. 빨리 집무실로 출근하여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대통령이 오전 시간 무엇을 했는지 몰라도 심각한 보고를 받고서도 묵살했는지, 아니면 대통령 눈치를 보느라 참모들이 직접 찾아가서 문을 두드릴 용기가 없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대통령에게 긴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지 못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대통령의 7시간' 행적과 관련하여서는 꼭 밝혀야 하지만, 참모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통령에게 세월호 침몰사고 상황을 인식시키려 노력했는지 특검에서 꼭 밝혀야 할 부분이다. 수 백 명의 목숨이 달린 세월호 침몰사고를 서면보고나 전화보고를 통해서 해야 할 일인지, 정말이지 묻고 싶다. 


백번을 양보해서 서면보고나 전화보고를 했다는 청와대의 발표를 받아들인다 치자. 그럼에도 대통령과 참모들의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업무태도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는 생각이다. 서면보고를 위해 서류를 만드는 그 시간 대신 대통령이 참모들과 생방송되는 TV를 보면서 적절한 대응조치를 하는 모습이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해졌으면 어땠을까. 


공직자는 국민과 국가를 위해 무한 책임을 지고 있다. 수 백 명의 소중한 목숨을 잃은, 그것도 꽃다운 학생들의 죽음이 대부분인 세월호 침몰사고. 대통령의 7시간 동안의 행적, 참모들과 비서진의 이날 업무태도는 꼭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억울한 목숨을 잃은 승객들의 한이 조금이라도 풀어지지 않을까. 또 다른 이유는, 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했을 때, 똑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지난 5일(1차)부터 6~7일(2차)까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가 열렸다. 오늘(14일) 열리는 3차 청문회는 16명의 증인이, 15일 열리는 4차 청문회는 30명의 증인이 채택됐다. 1, 2차 청문회는 '모르쇠', '맹탕' 청문회로 오명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 후 '대통령의 7시간'은 금기어로 돼 버렸다. 청문회에 나오는 증인은 역사 앞에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혹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진실을 밝히는 증인 뒤에는 막강한 힘을 가진 국민들이 있다. 국민들을 믿고 진실을 말해 줄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