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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찾기프로젝트

[벌초작업] 추석을 앞두고 할머니와 조상님 산소에 벌초 작업하기

할머니 산소 벌초작업(2020. 9. 11.)


올해 추석은 10월 1일(목)이다.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5일간 이어지는 연휴지만 추석 분위기는 예년과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때문이겠지.

 

추석을 앞두고 조상님 산소에 벌초를 다녀왔다.

귀농한 함양에서 고향 거제도 할머니 산소가 있는 데까지 149.5km, 내비 상으로 1시간 41분이 걸리는 거리다.

엑셀러레이타를 좀 밟으면 1시간 반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리지만 서두를 것이 없다.

시속 100km를 유지해서 현지에 도착하니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는 고향 거제도.

그러고 보니 지난 설날 때 고향 방문 후 처음으로 가보는 거제도는 그리 낯설지가 않다.

세계 랭킹 1~2위 조선소가 있는 거제도는 호황을 누렸던 예전 경기와는 달리 몇 년 째 지역경제는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또 언제쯤 경기가 회복될 지는 아무도 예측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리엔 차량이 많이 보이지 않는 것만 봐도 지역경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예측이 가고도 남는다.

 

할머니 산소는 아버지 산소를 비롯한 조상님 산소가 묻힌 동네 공동묘지와 좀 떨어져 있다.

추석 전 조상님 산소 벌초는 형제들이 공동으로 하는데, 할머니 산소 벌초 작업만큼은 꼭 내 몫인데 그 이유가 있다.

셋째 손자인 나는 할머니가 무척이나 아끼고 좋아 했다.

우리 형제는 큰형, 누나, 나 그리고 아래로 4명의 남동생 등 6남 1녀로, 할머니는 당시 아들 선호사상 때문에 누나를 낳은(딸을 낳았다고) 어머니를 무척이나 시집살이 시켰다.

나는 그때 세 번째로 태어난 아들이자 손자였기 때문에 할머니는 종일 나를 업고 키웠다고 할 정도였다.

 

나 역시도 할머니를 유난히도 좋아했고 따랐던 기억이다.

1980년 군 현역 입영 때 할머니는 82세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살아 계신다면 122세로 추정되는 나이다.

할머니는 살아 계실 적 밀감(귤)과 바나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치아도 성치 않은 상황에서 물렁물렁한 귤과 바나나는 그리 오래 씹지 않아도 먹는데 불편하지 않았던 과일이라 특히나 좋아했다.

오죽했으면 군 입대하는 손자가 할머니한테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났을까.

 

"할머니! 손자 문이가 군에 가는데 제대할 때 귤하고 바나나 사 올 테니, 그때까지 건강하게 지내시고 꼭 살아계셔야 해요. 손자하고 약속해요. 알았죠?"

 

그런데 할머니는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 무엇보다 한스러웠던 것은 할머니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하사관학교 후반기 교육생이었던 나는 부모 사망의 경우가 아니라면 특별휴가를 갈 수 없었던 제도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가던 먼 친척으로부터 군 면회실에서 들어야만 했고, 그 때 크나 큰 슬픔은 지금까지도 너무나도 생생한 기억으로 머리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할머니와의 해후는 첫 휴가 때 산소에서 영혼으로서 만나야만 했다.

차가운 땅, 무덤 속 할머니의 육신은 흙이 돼 자연으로 돌아갔고, 영혼은 극락세상에서 평온히 잠들어 있을 것이라는 믿음뿐이었다.

그래야만 내가 편안할 수 있었기에.

 

한 시간 넘게 열심히 기계를 돌리고 풀을 깎았다.

봉분은 더욱 정성을 들여 작은 잡초 하나까지 말끔히 잘랐다.

이발사가 남정네 덥숙머리를 시원하게 깎아내고 마지막 가위질로 손질하는 것처럼 정성을 다했다.

잡초 속에 묻힌 봉분이 예쁜 모습으로 태어났다.

흡사 깔끔한 스포츠형 젊은 사내 머리 스타일이 연상된다.

 

소주 한 잔과 물 한 잔 그리고 할머니와 약속한 그 바나나와 과자를 놓고 두 번 반의 절을 올렸다.

 

"할머니! 손자 문이 왔습니다. 할머니가 좋아하던 바나나 사 왔으니 많이 드시고, 손자 잘 되도록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추석 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봉분 옆에 노랑 꽃 한 송이를 꽂았다.

지난 설날 봉분 양쪽으로 꽂은 조화는 벌써 탈색이 돼 새 꽃으로 바꿨다.

하늘나라에 계신 할머니도 환히 웃는 모습으로 이런 손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 동안 벌초작업을 하면서 깊은 생각이 인다.

생과 사, 부모와 자식 관계, 인간의 도리 등 삶이란 참 어렵고 고통의 연속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