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2의고향함양/함양의사찰과문화

[함양여행] 함양 서암정사, '상량이오~' 도편수의 외침이 수미산을 울리다


 


경남 함양군 서암정사 대웅전 상량식 법회

  
▲ 조감도 서암정사 대웅전 조감도
서암정사

서암정사 주차장은 버스와 승용차로 빼곡히 차 있다. 가파른 언덕길은 사람들로 만원이다. 지난 3월 말 함양군 칠선계곡 주변에 자리한 서암정사를 찾은 이후 보름이 지난 10일 다시 이곳을 찾았다. 좀처럼 보기 드문 사찰 대웅전 건립 상량식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단체여행 이름표를 단 일부 지리산 둘레길 여행객들은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왔나" 하며 궁금해하는 눈치다. 시간에 늦지 않을까 마음 졸이며 달려왔지만, 다행히 아직 식은 시작되지 않았다. 

절터 마당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전국 각지에서 온 스님들도 의자에 앉아 식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는 맑고 푸른 기운이 감돈다. 기와불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두 손 모아 합장 기도하고 기왓장에 '가족건강'과 '세상광명'이라고 썼다. 

  
▲ 기와불사 창원에서 왔다는 노 부부가 기와불사를 하고, 가족의 안녕과 건강을 빌고 있다.
기와불사
  
▲ 상량식 상량식
상량식

대웅전 법당이 될 공간에는 양쪽에 흰 광목으로 묶여 있는 마룻대가 가로로 누워 있다. 앞으로는 조촐한 제례상이 차려져 있다. 큰 지팡이를 잡고 침묵을 지키는 서암정사 큰스님인 원응스님은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내외 귀빈이 참석하고 11시가 되자, 식의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가 울려퍼진다. 징 소리는 칠선계곡 깊은 골짜기를 따라 천왕봉을 거쳐 수미산(須彌山)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서암정사가 있는 지리산 칠선계곡은 6·25한국전란 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피를 흘린 곳이다.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해 원응 큰스님은 1960년 4월 말경, 번다한 도시를 뒤로하고 심산유곡을 찾아 이곳 벽송산중(碧松山中)에 주석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희생된 원혼들의 비탄성을 느끼고 명복을 빌기 위해 십여 년간 암벽에 아미타불과 불보살상을 조각하게 되었다. 국내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암벽 불사가 있는 곳, 바로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 있는 서암정사다. 

  
▲ 상량문 서암정사 큰 스님인 원응스님이 상량문을 낭독하고 있다.
상량문

징 소리와 함께 상량식은 열리고 이어서 반야심경을 암송한다. 머리가 나빠서일까, 기억력에 한계가 있는 것일까. 아무리 외워도 중간 부분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식순에 따라 원응 큰스님이 상량문을 낭독한다. 속세 나이 팔순이 됐지만, 아직도 목소리는 맑고 깨끗하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 대웅전 건립 상량식을 여는 원응스님의 감회는 그 누구보다도 남다를 것이다. 암벽 불사 10년을 거쳐 절터 마당에 새로운 불사 대웅전 건립이기에 더욱 그러하리라는 생각이다. 이 대웅전은 국내 사찰을 비롯한 고건축에서도 보기 드문 '아(亞)' 자 형태의 지붕을 하고 있다. 조감도를 보니 대단히 안정적인 구도로서, 참으로 잘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아(亞) 자 지붕은 전남 순천 송광사 대웅전이라 할 수 있다. 

  
▲ 염원 맑고 깨끗한 목탁소리는 마음에 담은 간절한 소원을 이루게 해 줄 것이다.
목탁

절차에 따른 식은 모두 마쳤고, 이제 마룻대를 올리는 일만 남았다. 앞서 사회를 보는 스님이 아닌 다른 스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상량식은 목조 건물의 지붕틀을 짜 세울 때, 최종적으로 마룻대를 올리는 일을 기념하기 위해 지내는 의식이다. 이날은 성대한 상량고사를 지내는데, 떡, 술, 과일, 백지 등을 마련하여 잔치를 벌인다. 주인, 목수, 토역꾼 등이 재난이 없도록 지신과 택신에게 절을 하며 제사를 지낸다.

  
▲ 상량문 집을 새로 짓거나 수리할 때 연,월,일,시,좌향,축원문 등을 적은 글로서 상량하는 상량대에 홈을 파서 넣어 둔다.
상량문

상량기문은 정성스레 간 먹물을 듬뿍 묻혀 붓으로 쓰는데, 쓰기에 앞서 백묵으로 마룻대에 칠을 한 다음 쓰면, 먹물이 퍼지지 않아 선명한 글체를 볼 수 있다. 보통은 '용(龍)' 자와 '구(龜)' 자 사이에 "□년 □월 □일 □시 상량(上樑)"이라고 쓰는데, 용 자는 거꾸로 써서 구 자와 마주보게 하며, 이때 '입주'를 빼고 쓰는 경우도 많다. 

용 자와 구 자를 쓰는 것은 용과 거북이가 수신(水神)이므로 화재를 예방해주리라는 속신에서 비롯된다. 그 밑에는 두 줄로 "불신보편시방중(佛身普遍十方中), 삼세여래일체동(三世如來一體同)"이란 글귀를 넣어 축원의 뜻을 담기도 한다. "부처님의 몸은 온 세상에 두루 계시니, 삼세의 여래가 모두 같은 한 몸이네"라는 뜻이다. 

  
▲ 수호신 천장에는 잘 조각된 용 두마리가 마주하며 수호신 역할을 할 것이다.

이날은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 이미 마룻대에 글귀를 다 새겨놓았고, 제사상도 마련돼 있었다. 목수나 불자들이 제사상에 절을 하지 않는 걸로 봐서 그 전에 고사 지내는 일도 다 마친 모양이다. 

진행을 맡은 스님 말씀에 따라 마룻대에 걸쳐 놓은 천으로 만든 빨강 노랑 봉투에 신자들이 격려금 봉투를 넣는다. 이 격려금은 목수와 인부들이 그동안 고생해온 데 대한 보상 차원의 격려금이다. 유머 넘치는 스님이 또 한 번 주문을 외자 많은 신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봉투를 내민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불자들의 발길이 끊어졌다.  

  
▲ 도편수 서암정사 대웅전 건축 책임을 맡고 있는 조남칠 도편수(전통한옥건축전문 문화재 수리기능자 제1255호)
도편수

이어서 대웅전 건립 책임을 맡고 있는 도편수가 "상량이오, 상량이오, 상량이오!" 하고 외치자 지붕 위에 있던 인부들이 천을 잡아당긴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올라가는 마룻대. 곧바로 스님과 불자 모두 "화엄성중(華嚴聖衆)"이라고 반복하여 게송한다. '화엄성중'은 화엄경 설법 시 성인과 현인들을 모두 칭송하는 것으로, 화엄경 설법의 삼대성원(三大聖員)은 비로자나부처님, 문수보살님, 보현보살님을 말한다. 

새로 짓는 서암정사 대웅전은 약 40평으로서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다. 2010년 1월 착공하여 2011년 5월 말경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웅전 건립 책임을 맡고 있는 도편수는 조남칠(73, 문화재수리기능자 제1255호)옹. 조옹은 이 밖에도 전북 김제시 금산면 통천사 대자보전, 전남 광양시 백운산 소재 성불사 종각, 경남 함양군 서상면 남덕유산 소재 영각사 화엄전 건립에서도 도편수를 맡았다고 한다. 

경남 지방에서 아(亞) 자 지붕 형태의 사찰 전각 건립은 처음이며, 조옹이 직접 스케치를 하여 공사를 진행시키고 있다. 상량에 쓰인 마룻대 재료는 '더글러스 퍼(Douglas Fir)'라 불리는 북미대륙 서부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나무로, 문화재 건축에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 불심기도 두 손 모아 합장 기도하는 할머니의 맑은 눈 웃음과 입가에 잔잔히 흐르는 미소는 108번뇌를 모두 떨쳐 버린 듯한 모습이요, 평화로움 그 자체다.
불심기도
  
▲ 불심 불자들이 두 손 모아 합장 기도를 하고 있다.
불심

스님과 불자들이 열심히 기도한 덕일까. 천에 휘감긴 마룻대는 무사히 상량되었다. 열띤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상량법회에 참석한 불자는 줄잡아 오백여 명. 모두 웃음 가득한 평화로운 얼굴이다. 부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부처요, 부처가 내가 아닌가? 혼자 간 탓에 공양하기도 민망한지라, 그냥 발길을 돌렸다. 그래도 행복 가득한 휴일 하루 여행이었다.(2011. 0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