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처님] 사람아 무엇을 비웠느냐/ 법정스님/ 오늘의 법문

 

사람아 무엇을 비웠느냐/ 법정스님

 

사람아 무엇을 비웠느냐.

사람마다 생각하는 대로 다 버릴 수 있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대로 다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무슨 인생이라 말할 수 있겠느냐.

 

버릴 수 없는 것 그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못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 하나.

얻지 못하니 이것이 너와 내가 숨 헐떡이며

욕심 많은 우리네 인생들이 세상에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이라 하지 않더냐.

 

사람들마다

말로는 수도 없이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린다고들 하지만

무엇이든 다 채우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이 마음속에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버려야만 하는지 알지 못하고

오히려 더 채우려 한단 말이더냐.

 

사람들 마다 마음으로

무엇이든 다 채우려고 하지만

정작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몸 밖에 보이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 유리한

허울 좋고 게걸스러운 탐욕뿐일 진데.

 

사람아...

그대가 버린 것이 무엇이며

얻는 것 또한 그 무엇이었단 말이더냐.

얻는 것이 비우는 것이요,

비우는 것이 얻는다 하였거늘

무엇을 얻기 위해 비운단 말이더냐.

 

사람이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것은 끈적거린 애착과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과

불만족스러운 무거운 삶뿐인 것을

비울 것이 무엇이며

담을 것 또한 무엇이라 하더냐.

어차피 이것도 저것도 다 무거운 짐인 것을...

 

사람아 무엇을 비웠느냐...

 

사람아 무엇을 비웠느냐/ 법정스님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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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dlsg.tistory.com BlogIcon 도생 2018.04.22 16: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욕심이 앞서면 비우고 채우는 그 의미가 사라집니다.
    행복하세요^^

 

[나의 부처님] 나 자신의 등뼈 외에는/ 법정스님/ 오늘의 법문

 

 

나 자신의 등뼈 외에는/ 법정스님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 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단순한 삶을 이루려면

더러는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단순해지고 순수해진다.

이때 명상의 문이 열린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순수하며 자유롭고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서 당당하게 있음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디에도 기대서는 안 된다.

오로지 자신의 등뼈에 의지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 진리에 의지해야 한다.

 

자신의 등뼈 외에는

어느 것에도 기대지 않는

중심 잡힌 마음이야말로

본래의 자기이다.

 

나 자신의 등뼈 외에는/ 법정스님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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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jongamk.tistory.com BlogIcon 핑구야 날자 2018.04.15 08: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 한번 삶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네요

  2. Favicon of http://gdlsg.tistory.com BlogIcon 도생 2018.04.15 1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뢰심은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행복하세요^^

 

[나의 부처님] 직접 체험하라/ 티벳 사자의 서’/ 오늘의 법문

 

직접 체험하라/ 티벳 사자의 서

 

 

참깨에서 기름이 나오고

우유에서 버터가 나오지만,

짜지 않고 젓지 않으면,

기름도 버터도 나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가 붓다이지만,

수행이 없이는 깨닫지 못한다.

 

소치는 목동도 수행을 하면 깨닫는다.

자신의 깨달음을 설명할 수는 없을지라도

확실한 체험은 할 수 있다.

 

그대가 직접 설탕 맛을 보았다면

설탕 맛이 어떠냐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볼 필요가 없다.

 

마음이라는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전문적인 학자라도

오류를 범할 것이다.

 

9단계 수행에 대해

기가 막히게 설명하는 사람이라도

마음을 깨닫지 못했다면,

그들의 이야기는

그저 주워들은 소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불성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다.

 

직접 체험하라/ 티벳 사자의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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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dlsg.tistory.com BlogIcon 도생 2018.04.08 17: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마음을 울리는 글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행복하세요^^

 

[나의 부처님] 자기와 이별하기/ 성전스님/ 오늘의 법문

 

경주시 감포읍에 소재한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감포도량.

 

자기와 이별하기/성전스님

 

자기를 돌아본다는 것은

기존의 자기와 이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찰은 경박했고

조급했고 지나쳤던

자기의 모습과

헤어지라 말한다.

 

버림으로 가벼워진다는 것이

성찰의 가르침이다.

 

돌아보지 않으면

삶은 언제나 욕망을 쫓아가게

되어 있다.

욕망하는 대로 사는 사람은

언제나 자유와 만날

 

욕망이라는

무거운 자기를 껴안고

일생을 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기와 이별할 줄 아는 사람만이

자유롭게 시간의 길을 걸어가

행복과 만날 수 있다.

 

라는 견해로 자신을 무장한 사람은

그 어떠한 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산다.

나라는 견해로,

인간이라는 우월감으로 살아가고 있다.

 

입으로는 행복을, 상생을 말하지만

이것은 이기적 탐욕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세태이다.

 

생명은 채움이다.

내가 없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무아의 구현이다.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는 곳에서

우리는 생명의 즐거움을

만날 수가 있다.

 

자기와 이별하기/ 성전스님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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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deborah.tistory.com BlogIcon Deborah 2018.04.01 0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명은 채움이다. 내가 없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무아의 구현이다.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는 곳에서 우리는 생명의 즐거움을 만날 수가 있다.
    위의 부분이 마음에 와닿네요.
    새로운 깨달음을 알게 해주셨네요.
    좋은글 잘봤습니다.
    활기찬하루 열어가세요.

  2. Favicon of http://gdlsg.tistory.com BlogIcon 도생 2018.04.01 19: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떠나는 내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에 내가 있는 것이기에 욕망 덩어리였지만 고마운 존재입니다.
    행복하세요^^

  3. Favicon of http://xuronghao.tistory.com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8.04.01 2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말씀 듣습니다
    남매지 생각이 나는곳입니다^^

 

[나의 부처님] 모든 것이 다 필요한 존재이다/법정스님/오늘의 법문

 

 

모든 것이 다 필요한 존재이다/법정스님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필요한 것이다.

어떤 생물이 됐든 필요하기 때문에 생겨났다.

그런데 그것이 귀찮다고 해서

농약으로, 강한 살충제로 죽여 보라.

그 생물만 없어지는 게 아니고

그것이 연쇄반응을 일으켜서

우리에게 진짜 없어서는 안 될

이로운 것까지 모두 사라진다.

 

오늘 이 생태계의 이변과 환경 문제,

또 지구 온난화 문제,

이것이 다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가 전체적인 흐름과 조화를 모르고

어떤 부분적인 것에 갇혀서

그것만 지나치게 소비하고 낭비하고

혹사시키다 보니까 지구 자체가 인간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털어 내고

재채기도 하느라고 지구는 지진도 일으켰다가

또 사방에 불을 일으키는 것이다.

지구 표면에 사는 인간들이

마치 물건처럼 하도 귀찮게 구니까

 

또 자연은 잘못된 현대 문명의 유일한 해독제이다.

자연은 모두 생명의 원천이고

사람이 기댈 영원한 품이다.

하늘과 구름, 별과 이슬과 바람, 흙과 강물,

햇살과 바다, 나무와 짐승과 새들,

길섶에 피어 있는 하잘 것 없는 풀꽃이라도

그것은 우주적인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건성으로 보지 말고 유심히 바라보라.

그러면 거기에서 자연이 지니고 있는,

생명이 지니고 있는, 신비성과 아름다움을

캐낼 수가 있다.

 

모든 것이 다 필요한 존재이다/ 법정스님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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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dlsg.tistory.com BlogIcon 도생 2018.03.25 2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명도 대자연의 일부인데, 현대문명은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가장 큰 주범이 되어 있습니다.
    행복하세요^^

 

[나의 부처님] 사랑은 이해의 또 다른 이름/ 틱낫한 스님/ 오늘의 법문

 

양산 통도사에 있는 샘물.

 

사랑은 이해의 또 다른 이름/ 틱낫한 스님

 

진정한 사랑은 깊은 이해를 요구한다.

사실 사랑은 이해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뿐이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두리안이라고 불리는

가시가 있는 커다란 과일을 지나칠

정도로 좋아한다.

그 과일에 중독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두리안에서는 매우 강한 냄새가 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과일을 다 먹고 나서

과일 냄새를 계속 맡기 위해 껍질을

침대 맡에 놓아두기까지 한다.

하지만 나는 두리안의 냄새를 끔찍이 싫어한다.

 

어느 날 내가 베트남의 한 절에서 경전을 외우고

있는데 불상 앞에 어느 신도가 바친

두리안이 놓여 있었다.

나는 목탁을 두드리고 큰 사발처럼 생긴 종을

함께 울리며 경전을 외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두리안 냄새 때문에 도저히

집중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마침내 종을 들고 불상 앞으로 가서

그 종으로 두리안을 덮어씌웠다.

그때서야 비로소 평화롭게 경전을 욀 수 있었다.

경전을 다 왼 뒤 나는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두리안을 해방시켜 주었다.

 

만일 그대가

저는 당신을 너무 사랑합니다.

그러니 두리안을 좀 드십시오하고

내게 말한다면 나는 고통 받을 것이다.

 

그대는 나를 사랑하고

내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게 억지로

두리안을 먹이려고 한다.

그것은 이해심이 없는 사랑의 본보기다.

의도는 좋지만 그대는 상대방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올바로 사랑하려면 그대는 이해해야 한다.

이해하는 것은 상대방이 겪는 시련과 고통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대가 그것을 보지 못한다면

상대방을 위해 많은 것을 할수록

그 사람은 더욱 고통 받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다정한 마음과 자비심이 있고

그리고 어떤 조건도

붙지 않은 사랑을 의미한다.

 

사랑은 이해의 또 다른 이름/틱낫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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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xuronghao.tistory.com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8.03.18 11: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건이 없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맞는것 같습니다^^

  2. Favicon of http://deborah.tistory.com BlogIcon Deborah 2018.03.18 14: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은 이해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말 동감합니다. 사랑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해 보게되는 글이네요.

  3. Favicon of http://gdlsg.tistory.com BlogIcon 도생 2018.03.18 19: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은 다르지만 의미는 같습니다.
    행복하세요^^


[나의 부처님] 녹슨 삶을 두려워하라/법정스님/오늘의 법문

 

 

녹슨 삶을 두려워하라/법정스님

 

이 육체라는 것은

마치 콩이 들어찬 콩깍지와 같다.

수만 가지로 겉모습은 바뀌지만

생명 그 자체는 소멸되지 않는다.


모습은 여러 가지로 바뀌나 생명

그 자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생명은 우주의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하는 세계가 있을 뿐.


이미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들은 다른 이름으로 어디선가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원천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불멸의 영혼을 어떻게 죽이겠는가.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이다음 순간을 누가 아는가.

순간순간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매 순간을 자기 영혼을 가꾸는 일에

자기 영혼을 맑히는 일에 쓸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늙는다.

그리고 언젠가 자기 차례가 오면 죽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늙음이나

죽음이 아니다.


녹슨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삶이 녹슬면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

녹슨 삶을 두려워 하라/법정스님


[나의 부처님] 녹슨 삶을 두려워하라

/법정스님/오늘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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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dlsg.tistory.com BlogIcon 도생 2018.03.11 1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적 변화가 됐든 외적 변화가 됐던 모든 것은 변화합니다.
    행복하세요^^


[나의 부처님] 불 속에 핀 연꽃/무비스님/오늘의 법문


불 속에 핀 연꽃/무비스님


욕망 속에서 참선을 하는 것은 지견의 힘이다.

불 속에서 연꽃이 핀 것과 같아서 끝내 시들지 않는다.


재욕행선지견력  화중생련종불괴

在欲行禪知見力 火中生蓮終不塊


<증도가>


불교라고 하면 흔히 인간의 감정을 초월하고

세상만사에 무심한 나머지 목석과 같은 삶을

사는 선승을 흔히 떠올린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불교를 공부하고

참선과 염불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와 같은 것도 불교적 삶의 일부이기는 하다.

그러나 끝까지 그러한 마음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그것은 천연외도(天然外道)이다.

또한 자신만을 위한 소극적인 열반을 추구하여

산중에 들어가 끝까지 세상을 외면한 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사는 것은 불법에 붙어사는

외도, 즉 부불법외도(附佛法外道)다.


이러한 것들은 이상적인 수행자의 길은 결코 아니다.

이상적인 수행자라면

마음속에 의욕이 넘치고 생기가 떨떨하고

꿈이 높고 욕망이 들끓어야 한다.

그런 마음이 있어야 큰 도를 이룰 수 있다.

그와 같은 의욕이 넘치는 속에서

그 힘으로 참선하고, 기도하고, 간경하고,

주력을 해야 무엇인가가 터진다.

상상하지도 못하던 불가사의한 경계가 일어난다.

마치 불 속에서 고운 연꽃이 피는 것과 같아서

끝내 시들지 않는다.


‘연꽃이 어떻게 불 속에서 필 수 있는가’라는

의문과 같다.

불 속에서 연꽃이 피는 것도 가능하고,

중생이 부처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한 생각을 돌이켜서 눈을 뜨고 보면

중생이 그대로 부처며, 불꽃이 그대로 연꽃이다.

이것이 곧 지견의 힘이며 인목의 힘이다.


영가 현각(665~713) 스님은 <증도가>에서

“욕망 속에서 참선을 행하는 것은 지견의 힘이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불설정업장경>이라는 경전에 나오는

과거 먼 옛날의 사례를 들고 있다.


옛날 중향 세계에 무구정광 부처님이 계시던 때에

용시라는 젊은 비구가 있었다.

그는 수행에 열중하였으나 어쩌다가 잘못하여

출가인의 금기사항인 음행을 행하고 살인까지 하게 되었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번민 속에서 헤매던 용시 비구는

비국다라라는 보살을 찾아가서 참회를 구했다.

비국다라 보살은 자신의 신력으로

부처님을 나타내어 법문을 설하셨다.


“모든 법은 거울에 비친 영상과 같고,

물속에 비친 달그림자와 같다.

그런데도 마음이 미혹한 범부들은

실재하지도 않는 온갖 그림자들을 보고는

어리석음과 성냄과 애착을 일으킨다.“


이 법문을 듣고 불생불멸의 이치를 깨달은

용시 비구는 죄의 성품도 본래 텅 비어 없음을 알았다.

이로써 성불한 용시 비구는 보월여래가 되었다.


<선문염승>에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어떤 노파가 한 암주를 20년 동안 공양하였다.

노파는 항상 딸을 시켜 스님에게 밥을 보내고 시봉하게 하였다.

어느 날 딸로 하여금 그 스님을 꼭 껴안고 물어보게 하였다.


“이럴 때 어떠합니까?”


암주가 말하기를,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의지하였으니

삼동에 따뜻한 기운이 하나도 없다.“


딸이 돌아와서 노파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니

노파는 “내가 20년 동안 겨우 속한(俗漢)에게 공양했구나”

하며 암자를 불질러버렸다.


연꽃이 불교의 사상을 잘 표현하는 꽃으로

인정을 받는 이유는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기 때문이다.

진흙이 아니면 연꽃이 피어날 수 없듯,

인간적인 욕망이 없으면 견성도, 성불도,

지혜도, 자비도, 무르익을 수 없다.

욕망 속에서 참선을 하는 것이 진정 지견의 힘이다.


불 속에 핀 연꽃/무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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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dlsg.tistory.com BlogIcon 도생 2018.03.04 1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깨끗하게 흐르는 물에는 연꽃이 피지 않습니다.
    행복하세요^^


[나의 부처님] 인과역연(因果歷然)/성철스님/오늘의 법문


인과역연(因果歷然)/성철스님


만사가 인과의 법칙을 벗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어,

어떤 결과든지 그 원인에 정비례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

우주의 원칙이다.


콩 심은 데 팥 나는 법 없고,

팥 심은 데 콩 나는 법 없나니,

나의 모든 결과는 모두 나의 노력여하에

따라 결과를 맺는다.


가지 씨를 뿌려놓고 인삼을 캐려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미친 사람일 것이다.

인삼을 캐려면 반드시 인삼 씨를 심어야 한다.

불법도 그와 마찬가지로,

천만사가 다 인과법을 떠나서는 없다.

세상의 허망 영화에 끄달리지 않고

오로지 불멸의 길을 닦는 사람만이

영원에 들어갈 수 있다.


허망한 세상길을 밟으면서 영생을 바라는

사람은 물거품 위에 마천루를 지으려는

사람과 같으니 불쌍하기 짝이 없다.

이것이 생사 윤회하는 근본이니, 대도를 닦아서

불멸을 얻으려는 사람은 모든 행동을 이 원칙에

비추어 일시 주는 한이 있더라도

영원을 위해서 악인과는 맺지 않아야 한다.


모든 일이 다 내 인과 아님이 없나니,

추호라도 남을 원망하게 되면

이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며,

이같이 못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모두 내가 지어

내가 받는 것인데, 누구를 원망한단 말인가?

만약 원망한다면 거울을 들여다보고 울면서,

거울 속의 사람에게는 웃지 않는다고

성내는 사람이다.

또 몸을 구부리고 서서,

그림자 보고 바로 서지 않았다고 욕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어리석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천만사가 전생이건 금생이건

다 내 인과인 줄 깊이 믿어 남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가 더욱 노력하여야 할 것이니,

이래야 인과를 믿는 수도인이라 이름할 것이다.


털끝만큼이라도 남을 해치면

반드시 내가 그 해를 받는다.

만약 금생이 아니면 내생 언제든지 받고야 만다.

그러므로 나를 위하여 남을 해침은 곧 나를 해침이고,

남을 위하여 나를 해침은 참으로 나를 살리는 길이다.


부처님께서 전생에 누더기를 깁다가

모르고 바늘로써 누더기 속에 든

이 한 마리를 찔러 죽였다.

이 인과로써 성불하여서도 등창이 나서

오랜 동안 고생하셨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정업은 면하기 어려우니,

자기가 지은 죄업은 꼭 재앙을 받고 만다.


인과의 법칙은 털끝만치도 어김이 없다.

그러나 출가한 불자로서

수도를 부지런히 하지 않고

해태굴에 빠져서 시주물만 헛되이 소비하는 무리는

하루에 천 명을 때려 죽여도 인과가 없다 하였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오직 부지런히 정진할 것이다.

비극 가운데서 비극은 스님이 가사 입은 몸으로서

공부를 부지런히 하지 않고 게으름만 부리다가,

죽어서 악도에 빠져 사람 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지금 불자로서

사람 몸을 잃지 않을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 걱정하고 걱정할 일이다.


인과역연/성철스님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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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dlsg.tistory.com BlogIcon 도생 2018.02.25 18: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만사에 인과의 법칙이 적용되지만, 인과에 얽매이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행복하세요^^

  2. Favicon of http://jongamk.tistory.com BlogIcon 핑구야 날자 2018.02.25 18: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사 모든 것이 인간관계 결부되어 있으니 늘 염두에 두고 살면 좋을 것 같아요


[나의 부처님] 낯 씻다가 코 만지기보다 쉽다/우롱스님/오늘의 법문


낯 씻다가 코 만지기보다 쉽다/우롱스님


우리가 경을 들여다보고 책을 읽고 법문을 듣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어디까지나 ‘말’입니다.

‘불’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작용을 하지만,

우리가 ‘불’!하며 외친다고 해서 말하는

사람의 혓바닥이 타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 것은 ‘불’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여태껏 불교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불’이라는 말만 했지, 혓바닥이 타는 것을

체험하지는 못했습니다.

내 자신의 똘똘 뭉친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언제나 말에서 그치고 말뿐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믿어지지 않는 일,

실제로 혓바닥이 불에 타는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수나라 말기에 중국 익주의 심본현 왕자리라는 동네에

성이 구씨인 선비가 있었습니다.

구씨 선비는 평소에 금강경을 즐겨 외워

깊은 이치를 터득했습니다.


어느 날 선비는 마을의 동쪽에 있는 들판에 서서,

하늘을 향해 손가락으로 글씨 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이상하게 여긴 동네 사람들이 까닭을 물었습니다.


“선비 어른, 하늘을 향해 무엇을 쓰고 있습니까?”

“금강경을 쓰고 있노라.”

“왜요?”

“천상의 사람들이 이 경을 읽고 공경심을 내도록 하기 위함이야.”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그 말씀을

이해하거나 믿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뒤부터 비가와도 그 자리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으므로, 들에 나갔던 사람들이

소나기를 만나면 그 자리에서 비를 피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2~30년의 세월이 흐른 당나라

고조의 무덕연간(618~628)에, 인도에서 온 스님이

그 동네를 지나가다가 구씨 선비가 글씨를 썼던 곳에 이르러

끊임없이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거기에는 부처님도 없고 탑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공중을 향해 그토록 열심히 절을 합니까?“


동네 사람의 질문에 오히려 스님은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모두가 이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시오.”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절을 하는 까닭을 모르십니까?”“예, 왜 절을 하십니까?”

“이 자리에는 금강경이 쓰여 져 있어 언제나 천상사람들이

와서 공양을 올리고 예배를 올립니다. 그런데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다니 참으로 안타깝구려.

절대로 이 자리를 더럽히지도 않도록 하십시오.“


스님이 떠나간 뒤 동네 사람들은 그 자리에

깨끗한 정자를 지어 신성시 하였으며,

그 정자에 있으면 가끔씩 인간세상에서는 들을 수 없는

매우 아름다운 풍악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낯 씻다가 코 만지기보다 쉽다/우롱스님


[나의 부처님] 낯 씻다가 코 만지기보다 쉽다/우롱스님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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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jongamk.tistory.com BlogIcon 핑구야 날자 2018.02.18 07: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말씀 잘 듣고 갑니다

  2. Favicon of http://gdlsg.tistory.com BlogIcon 도생 2018.02.18 2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성이면 감천의 의미가 더 와닿습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