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묘비에 새긴 기록, 벼슬하지 못한 사람은 죽어서도 차별받는 사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표사유피 인사유명/호사유피


군산근대역사박물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누구나 들어봄직한 말로, 사람의 명예를 중요시 할 때 비유되곤 한다.

그런데 이 말 속에서 나오는 단어 중에서 '호랑이'가 아니라, 원래는 '표범'이란 단어를 썼다는 것.


"표사유피 인사유명(豹死留皮 人死留名)"

이 말은 『신오대사(新五代史』 〈왕언장전(王彥章傳)〉에 나오는 말로, '왕언장'은 당나라 때 무인으로 글을 읽지 못하였는데, 사람들에게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豹死留皮 人死留名)"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어떤 경위에서 표범에서 호랑이는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표사유피’ 대신 ‘호사유피(虎死留皮)’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묘비에 관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내용인즉슨, 죽어서도 벼슬이 영원하다는 것,

즉, 평민은 죽어서도 영원한 평민이고, 벼슬한 사람은 죽어서도 영원히 벼슬한 표시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평민이 죽으면 '학생'으로 표시하고, 벼슬한 사람이 죽으면 '지위(관직)'를 표시하는 것이 그렇다.


아래 사진은 선산김씨가 죽은 후 묘에 기록한 묘비명으로, 현재에도 이 양식을 따르고 있다.

관직을 하지 않은 사람은 '학생', 사무관 이상 벼슬(?)을 한 사람은 '관직'을 쓴다는 것.

또한, 묘비에 갓을 씌우는 것 역시도 그렇다.

평민은 갓을 씌우지 못하고, 벼슬을 한 사람은 갓을 씌운다는 것.


수염 기르고, 갓 쓰고, 양반행세 하는 조선시대도 아닌,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죽어서도 이렇게 차별화를 하는 것이 맞는지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줄 마지막 '지'자 다음에 '묘'자가 망실되었다.


휘(고인을 높여 부르는 칭호) 선산김씨 학생(양반으로 관직에 나가지 못한 사람의 호칭) 우종의 묘. 공의 자(결혼 후에 이름이나 호 이외에 부르는 이름)은 황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한석이며, 어머니는 이씨이다. 1793년(정조 17) 2월 6일 태어났으며, 1859년(철종 10) 9월 2일 돌아가셨다. 동년 10월 9일 임피 여방리 기린동에 손좌(남동쪽 방향) 자리를 마련하여 묻었다. 이씨 규석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으며, 아들은 유학 두칠, 진사 두팔, 유학 두구가 있고, 딸은 우주황씨 노헌에게 시집갔다.


※ 당시 양반들은 7일 혹은 9일 장례가 보편적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사망한 날부터 매장한 날까지 1달 이상 소요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경우, 제작과정의 오류이거나 명당을 찾거나 육탈을 시킨 후에 장례를 치르는 초빈의 풍습이 아닐까 추정된다.



아래 사진에서 '명정'이란, "장례식 쓰이는 붉은 천에  글씨 죽은 사람 관직이나 성명 따위 적은 조기"를 말한다.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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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jongamk.tistory.com BlogIcon 핑구야 날자 2016.09.10 08: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타까운 일이네요~~ 사실 죽은 다음에 뭐라고 남겨지는 무슨 필요가 있을까 생각도 들지만~~

  2. Favicon of http://xuronghao.tistory.com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6.09.10 1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몰랐던 사실 알고 갑니다
    요즘 시대에는 고쳐야할 관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