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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타지역

생애 이보다 더 아름다운 조각품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설악산에서 날개 달고 금강산에서 활짝 펴다 - 4

금강산을 여행함에 있어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머리를 맴돈다. 천하절경 금강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무슨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천하제일 명필 가인들은 금강을 실제 모습으로 읽을 수 있도록 글로써 표현하겠는가, 그 어느 화가가 금강의 갖가지 형상의 기암괴석과 수 천 년 버텨 온 나무를 화폭에 담아낼까, 그 어느 음악가가 바람이 우는 소리, 바위에 부딪히는 구름소리, 담소에서 목욕하기 위해 선녀가 옷을 벗는 소리, 물소리와 새소리의 화음은 어떤 장르의 음악으로 청중에게 들려주겠는가, 그 어느 사진작가가 금강의 빛과 색채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필름에 담아낼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금강에서 온몸으로 보고 느끼면서 시인이면서 화가가 되고, 음악가이면서 사진작가가 되는 것뿐, 금강은 그 어떤 이도 실제의 모습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이 빚은 종합 예술작품이기에.

  
▲ 금강의 기암 저 멀리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이 보인다.
금강산

구룡연 코스의 산행 탓인지 다리가 뻐근하고 걸음이 무겁다. 만물상 관광도 일천 명이 넘는 관광객이 한꺼번에 이동을 해야만 했다. 온정각에서 버스를 타고 넓은 계곡을 따라 돌고 돌아 휘감아 젓는다. 아흔아홉 개 대관령 구비보다 일곱 개 더 많은 백여섯 개의 구비를 도는 버스는 산 속의 자동차 레이스코스를 달리는 속도로 경주를 하는 것만 같다.

버스 노폭보다 약간 큰 도로인데도 코너를 도는 운전 솜씨는 기가 막힐 정도다. 구룡연 코스에서 사람에 밀려 앞서가지 못한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나자, 오늘은 선두에 서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앞장서 달렸다. 아침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도, 숨도 가쁘고 힘도 든다.

  
▲ 삼선암 만물상 입구에 서 있는 삼선암
삼선암

만물상으로 오르는 좁은 계곡에는 물이 말랐다. 비가 내리는 장마철에는 심하게 경사진 계곡을 흘러넘치는 계곡물이 예사롭지가 않을 것만 같다. 사람에 밀려 시간에 쫓기어 금강의 아름다움을 세세하게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카메라에 담지 못하고 바삐 움직여야 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얼마를 지났을까? 까마득한 높이의 뾰족한 바위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삼선암(三仙岩)이다. 옛날 네 신선이 장기를 두러 금강산에 내려왔다가, 한 신선은 훈수를 너무 많이 한다고 쫓겨 삼선암 너머에 떨어져 독선암이 되고, 나머지 셋도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 천선대를 오르는 길 천선대를 가기 위해서는 이 같은 철 계단을 올라야 한다. 아래를 내려다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천길 낭떨어지다.
천선대

두 다리를 비탈진 돌계단에 하나하나를 힘들게 얹어 놓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사오십 분을 올랐을까, 갈림길이 나오고 표지판에는 천선대 15분, 망양대 30분이다. 준비를 하고 올라왔건만 힘이 들었는지 서서 보는 볼일이 급하다. 급히 화장실로 들어서니 화장실 안에서 북측의 남녀 안내원이 화장실 안에 서 있고, 1달러를 달라고 한다. 달러가 없어 한국 돈을 주니 안 받는다고 손 사레를 친다.

겨우 사정사정해서 볼일을 보니 안심이다. 내가 사는 땅이었다면 몰래 실례를 했겠지만(물론,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럴 수도 없는 형편이다. 실례를 하다 적발되면 벌금은 물론이고, 망신도 당할 뿐더러, 긴 일행 때문에도 중간에 실례하기가 어려운 형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삼선암 저 멀리에는 둥근 요강을 머리에 얹어 벌을 받고 있는 듯 귀면암이 보인다.

  
▲ 만물상 신이 빚은 최고의 예술 조각품이다.
만물상

천선대가 가까이 오자 경사는 더욱 가파르고 설치한 철 계단은 오금을 저릴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 카메라는 목에 걸고 두 손은 양쪽 철 손잡이를 잡고 엉금엉금 기듯이 오른다. 앞사람에 막혀 제대로 나아갈 수 없다.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 신의 작품인 금강의 파노라마를 카메라에 담는다. 선녀들이 내려와 춤추고 놀았다는 곳, 천선대(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216호)를 힘겹게 올라 양 사방으로 펼쳐진 금강을 보았다.

  
▲ 만물상 천의 얼굴 만의 형상을 하고 있는 만물상은 드없이 높은 푸른 하늘을 향해 있다.
만물상

드디어 천의 얼굴을 하고, 만의 형태를 하고 있는 만물상(萬物相)이 그 모습을 드러내 나를 맞이하고 있다. 한동안 만물상의 기기묘묘한 바위 하나하나를 감상했다.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후 다시 고개를 돌려 만물상을 보니 또 다른 모습을 하며 나를 반기고 있지 않은가?

내 생애 이런 느낌의 환상은 없었다. 십수 년 전, 스위스 알프스산맥을 보았을 때도, 지난 6월 노르웨이의 피오르드와 눈 덮인 협곡을 보았을 때도 이런 감정도 없었고, 느낌도 아니었다.

  
▲ 금강의 기암 온갖 동물 모양을 한 형상의 바위가 금강산을 에워싸고 있다.
금강산

망장천에서 물 한 모금을 떠 목을 축였다. 한 잔 마시면 기운이 넘쳐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내 버리고 간다는 물이 샘솟는 망장천의 물은 가슴 속 깊이 금강의 기운을 불어 넣어 주는 것만 같다. 정말로 힘이 솟는다. 조금 내려가니 다시 망양대와 천선대 그리고 하산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일행 몇몇은 힘이 들어 곧바로 하산한다.

  
▲ 망양대 온갖 동물 모양을 한 바위들이 금강산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
망양대

힘이 들지만, 망양대의 절경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예까지 왔는데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아름다운 여인이 미소 지으며 유혹하는 것보다 더 뿌리치기 힘들다. 돌계단을 오르고, 철 계단을 오르니 훤하게 트인 푸른 시야가 펼쳐진다. 동해의 하늘과 바다가 내 눈을 덮친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사실, 망양대를 오를 때 동해의 바다를 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잡목과 고사목 사이로 펼쳐진 바다는 산을 오를수록 선명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 망양대에서 바라 본동해바다 망양대에 오르면 동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왼쪽 끝 흰 부분이 금강산 관광 뱃길을 처음으로 열었던 고성항(장전항)이다.
망양대

고성항을 품에 안은 동해의 바다는 포근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현대의 창업자인 정주영 명예회장은 일천 마리의 소 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었고, 그때부터 우리의 발길은 금강산에 닿을 수 있었다. 휴전선을 통과하는 육로 관광길이 열리기 전까지는 뱃길로 금강산에 다녀야 했고, 고성항은 금강산 관광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망양대에서 내려다보는 고성항은 조용한 모습으로 있다. 2007년 9월 말 통계에 의하면 금강산을 찾은 관광객은 160만을 넘어섰고, 지금도 하루에 2천여 명이 금강산을 오가고 있다고 한다.

  
▲ 절부암 도끼로 찍어 갈라져 결이 고운 모양을 하고 있는 절부암. 바위의 끝은 날카로운 도끼모양을 하고 있다.
절부암

금강에 오르면서 언제 정상에 다다를까, 몇 시간을 더 가야만 할까 하는 궁금증도 없고, 힘겨움도 필요 없는, 이제는 더 오르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내리막길이다.

마음도 여유롭다. 금강으로 비치는 포근한 가을 햇살, 구름을 안고 돌아가며 바위에 부딪히는 바람소리, 옥빛보다도 더 휘황찬란한 금강의 물을 뒤로 하고 하산 길로 접어든다. 오를 때 촬영하지 못한 금강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쉬엄쉬엄 쉬어가며 카메라에 담는다.

다시 보는 만물상, 천선대, 상등봉, 칠층암, 귀면암, 절부암, 하늘문, 삼선암 등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반가운 모습으로 반겨준다. 그러나 곧 헤어지는 아쉬움이다.

주차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북측의 안내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친절했고 남한에 대해 아는 것도 많았다. 남한의 관광객들이 전해 준 정보를 들어서일까? 북한의 유명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판매하는 곳에서 잠시 구경을 했다. 화려한 색채로 금강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한 점 살려니 제일 작은 그림도 십만 원이라고 한다. 끝내 한 점 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 칠층암 높이 30미터가 넘는 거대한 바위로, 일곱개의 큰 바위가 층층히 쌓여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칠층암

2박 3일의 금강산 여행이었지만, 실제로는 1박 2일 코스였다. 짧지만, 여행을 마친 뒤라 그런지 피로감이 밀려온다.

온정리 금강산 온천, 세조 왕이 이곳 온천에서 목욕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대자봉의 미인송에 둘러싸여 있는 이 온천에서는 일천 명이 한꺼번에 목욕을 할 수 있다. 따뜻한 라돈 온천수로 마음과 육체에 묻은 때를 씻고, 야외온천에서 홀딱 벌거벗은 몸으로 세상과의 대화하는 느낌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11월 2일 오후 네 시. 일행을 태운 버스는 남으로, 남으로 향하고 있다. 역시, 창 밖으로 보이는 북녘의 땅은 왠지 암울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금강산의 깊은 골짜기에 있을 때는 남인지 북인지 알 수 없는, 그저 내가 살고 있는 땅인가 싶었는데, 막상 길 옆에 서 있는 병사를 보노라니 여기가 북한 땅인가 느껴질 따름이다.

금강산을 여행하며 남북 출입소를 지나는데 네 번이나 짐을 내리고 싣고 해야만 했다. 귀찮고 어쩔 수가 없지만, 금강의 아름다움으로 대신하고 싶다. 우리네 땅을 밟으니 땅거미가 지고 있다. 온정각에서 아홉 시간을 달린 끝에 창원에 도착했다. 밤은 깊게 잠들었는데, 가방 끄는 바퀴소리는 귓가를 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