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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거제도

올봄 가기 전, 이곳 한번 꼭 들러봐



거제도 공고지에 봄소리 전하는 수선화 '만발'
  
▲ 희망 여러송이 수선화가 한 꺼번에 집단으로 피어 있다. 기자에게는 희망을 주는 느낌이다.
희망근로

춘삼월 봄이라지만 영동지방은 아직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 25일, 많은 눈이 내렸다는 뉴스를 들었기에. 이보다 하루 지난 26일, 거제도 공곶 마을은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 전국에서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공곶(鞏串)마을, 사람들에게는 '공고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그렇게 불리고 있다. 거제도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전국에서 더 많이 알고 있는 명소다. 이곳 봄소식을 전하는 여행 기사를 각 일간신문에서 한번 다뤄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는 곳이기도 하다. 

  
▲ 외로움 홀로 핀 수선화. 외로움을 잔뜩 한 모습이다.
수선화

  
▲ 부부 두 송이 수선화. 이곳 공곶마을에는 강명식 할아버지 부부가 곱게 핀 수선화처럼 다정스레 농장을 가꾸며 살고 있다.
사랑

공고지는 거제시 일운면 예구리에 속해 있는 작은 마을이다. 아니,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가구 수가 너무 적다. 예전에는 몇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지만, 지금은 강명식(80) 할아버지 부부 한 가구만 살고 있다. 이곳 공고지를 가꾸고 공원을 만든 분으로, 2009년도 경남도로부터 '자랑스러운 경남농업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땅의 가치와 농작물의 소중함을 알고 실천하며 한 평생을 살아 온 농부였기에 할아버지 부부를 생각하면 근면과 성실이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떠오를 정도다. 

공고지는 봄꽃인 수선화로 유명하다. 2006년 3월 26일 이곳에 관한 기사를 쓴 후, 하루 차이도 없이 꼭 5년 만에 다시 찾아 가는 길이다. 물론, 그간 몇 번 다녀 온 적이 있지만, 봄에 가기는 그 이후로 처음이다. 예나 지금이나 가는 길은 가파른 고갯길로 올라서야 한다. 국립공원지역이라 도로를 포장하기 어려운 곳으로, 예전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폭이 넓어 다니기에는 조금 낫다는 점.  

20여 분 비탈길을 오르면, 거친 숨 때문에 조금 쉬어가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일부러 쉴 필요가 없다. 그때쯤이면 산언덕에 올라서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이할 수 있기에. 앞으로는 내도가 보이고, 멀리로는 해금강이 보인다. 유람선이 흰 물살을 일으키며 외도와 해금강을 바삐 오가며, 봄 바다를 갈라놓는다. 

  
▲ 공곶입구안내판 공곶마을 입구에는 강명식 할아버지와 수선화꽃을 담은 안내판이 이곳의 내력을 설명하고 있다.
공곶

언덕에는 예전에 없던 안내판이 하나 서 있다. 할아버지 모습과 수선화 사진을 담은 안내판에는 공고지의 이모저모를 설명해 주고 있다. 가까이 있는 푸른 바다는 봄바람을 실어 나르기 바쁘다. 향긋한 해풍은 육지에 닿아 고갯길을 오르는 사람에게 봄바람이라는 인식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한숨을 돌리고 나면 급경사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양쪽으로 울창한 동백나무는 꽃 터널을 만들고 땅바닥에 떨어진 붉디붉은 꽃잎은 비단길을 깔아 놓은 것만 같다. 돌계단을 하염없이 내리 걷고 또 걸었다. 울창한 동백 숲은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만들어 놓았다. 돌계단이 몇 개인지 세어가며 내리 걷는 기분도 쏠쏠한 재미다. 

  
▲ 내도 공곶마을에 바라 본 내도.
내도

내려가는 사람에 비해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목에 꽉 찼다. 단내가 쏟아짐을 느낀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빛 땅으로 나왔다. 종려나무가 빽빽이 서 있고, 동백나무는 붉은 꽃잎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햇살을 받은 꽃잎은 살포시 웃는다. 새색시 색동저고리 입고 뽐내는 모습과도 너무나 닮았다.  

이곳 동백은 한 동백꽃이라고 한다. 찰 한(寒)자를 써서 겨울에 피는 동백이라는 의미란다. 사실 동백은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피고지고를 반복하는 꽃이다. 거제도나 여수를 비롯한 남해안에서 바닷바람을 맞이해야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 땅바닥에 떨어진 붉은 꽃잎은 사랑 한번 해 보지 못한 늙은 총각의 슬픈 눈물인 듯, 보이는 것은 왜일까? 

  
▲ 독일수선화 독일에서 들여왔다고 해서 할아버지 부부는 독일수선화라고 부른다.
수선화

  
▲ 제주도수선화 제주도수선화
제주도수선화

옛 모습을 간직한 돌담장 길 할아버지 집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인근에 있는 서이말 등대로 가기 위해서는 할아버지가 사는 집 안을 거쳐 지나야만 한다. 이 곳 공곶마을은 사계절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수선화 피는 이때쯤이면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온다.  

이날 열 한 시경 도착, 오후 두 시까지 머물렀는데, 방문객은 줄잡아 2천여 명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수선화 밭은 노랑 꽃 물결로 일렁인다. 그 너머로는 푸른 물결이 넘실대며 배 한척이 흰 물살을 가르며 지나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수선화 꽃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어떤 사람은 수선화 꽃이 핀 밭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어대지만,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 동백꽃 햇볕을 받은 동백은 더욱 선명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동백

사실, 공곶마을의 많은 부분은 강 할아버지의 개인소유 농지다. 그 곳에다 1970년대 초반 농사를 시작했으며, 대표 농작물로 33000㎡에 종려나무를 재배해 왔다. 당시로는 주 소득원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는 게 할아버지 귀띔. 이 밖에도 50여 종의 식물 재배로 아름다운 농원을 만들어 가고 있다. 바다 풍경과 잘 어우러진 종려나무 숲에서는 2005년에 영화 <종려나무 숲>을 촬영했다. 그래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꽃밭을 드나들고 가끔은 농작물을 다치게 하지만, 노부부는 싫은 말 하지 않고, 그러려니 한다. 처음 대하는 손님이지만 차 한 잔 꺼내놓기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정이 많다. 개인농지인 이 곳에 수선화 피는 계절이 돌아오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노부부의 정이 있어서라는 생각이다. 

  
▲ 새싹 거제도 공곶마을에는 봄이 오는 소리로 가득하다.
새싹

바닷가 몽돌 밭에는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점심을 먹고 있다. 아직 뜨거운 땡볕은 아닌지라 길게 창이 달린 모자를 쓸 필요는 없다. 흔히 바닷가 하면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지만, 여기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물을 말리거나 해초를 널어놓은 곳에서 나는 비린내가 없기 때문에. 파도가 몽돌에 부딪힌다. 철썩~, 처~얼썩. 바닷속 자갈이 훤히 보이는 맑은 물 속에 발을 담가본다. 발끝에서 시작하여 온 몸을 거쳐 머리끝까지 전해 온 시원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하다.

카메라는 봄 소리를 담기에 바쁘다. 렌즈를 갈아 끼우는 작업도 쉬운 게 아니다. 가방에서 꺼내 다시 빼고, 끼우고 하는 반복 작업에서 왜 이렇게 할까 스스로 물어보지만 신통한 답은 없다. 그저 사진 찍기가 좋아서라는. 걷다가 좋은 피사체가 보이면 수 십장의 셔터를 누른다. 예전과 달리 필름을 사용하지 않기에, 돈이 더 들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많은 사진을 찍어 좋은 것만 골라 쓰는 재미도 있는 것이 디지털카메라가 아닌가?  

  
▲ 동백꽃 공곶마을을 구경하고 나가는 출구에는 한 송이 동백꽃이 목을 길게 내민 듯 달려있다. 뒤로 어두운 동백꽃터널을 올라서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동백꽃

컴컴한 동백나무 숲 계단 길을 오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몰아쉰 숨의 끝자락에 할아버지 모습이 보인다. 언덕 끄트머리에서 할아버지는 직접 생산한 수선화를 팔고 있다. 수선화 꽃망울을 피운 작은 화분은 3천 원, 큰 화분은 5천 원이다. 천리까지 향이 퍼진다는 천리향 작은 화분도 3천 원에 팔고 있다. 개인농장을 공짜로 구경하면서 집으로 돌아 갈 땐, 봄 소리 알려주는 수선화 꽃 화분 하나 팔아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 공곶마을 봄소식을 전하는 공곶마을에는 봄 소리로 가득하다.
수선화

봄소식을 전하는 봄 소리란 무얼까? 수선화 꽃 피는 소리, 담쟁이 넝쿨 눈 솟는 소리, 바닷바람 이는 소리, 파도에 몽돌 구르는 소리, 할아버지 댁 강아지 눈 웃음소리 그리고 할아버지 부부의 정겨운 대화 나누는 소리가 아닐까. 이 소리는 올 봄 내내 거제도 일운면 한적한 공곶마을에 울려 퍼질 것이다. 봄 소리를 듣고자 한다면 올 봄 가기 전, 이 곳을 찾아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