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날 꼭 떠나고 싶은 가을여행

이 가을날 꼭 떠나고 싶은 가을여행

푸른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듯, 푸른 하늘도 얼마나 높은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특히, 맑은 가을하늘은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노랗게 익은 열매만 봐도 배부른 계절이요, 수확하는 모습만 봐도 기쁨 가득한 진한 가을이다. 가을 냄새가 온 천지로 퍼져 있다. 24일. 경남 하동 북천면 하늘에도 가을향기는 가득 차 있었다.

이 가을날 꼭 떠나고 싶은 가을여행

몇 해 전, 가을여행을 떠나든 차 우연히 만난 코스모스 축제 현장. 바다같이 넓은 땅은 가을바람을 타고 코스모스가 물결치는 모습을 보았다. 정말로 장관이었던 그 때,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 이번에 맘먹고 다시 찾았다.

어떤 지역이든, 축제장으로 가는 길 중 제일 걱정되는 것은 주차문제. 그런데 휴일을 맞아 엄청나게 많은 인파와는 달리 넓은 주차장으로 우려했던 걱정은 덜은 셈. 귀찮게 여겨지는 사소한 것은 조금 걸어야 한다는 것. 하기야 축제장에 와서 걷지 않고 무슨 구경을 할까 생각하면 문제가 될수는 없지.

이 가을날 꼭 떠나고 싶은 가을여행

수만 평의 넓은 들녘은 그야말로 코스모스 물결이다. 논둑길을 따라 형형색색 사람물결도 일렁인다. 손에 과자봉지를 든, 엄마 손에 이끌려 논둑을 따라 걷는 아이는 어떤 감정일까? 아직도 처녀적 시절 단꿈에 빠진 듯 한, 아주머니라고 해야 하나, 할머니라고 불러야 하는, 애매한 60대. 모두 코스모스 파도치는 가을향기에 빠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개울 한 가운데서 한 폭의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 있는 젊든 화가의 모습도 예뻐 보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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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에는 코스모스만 있는 게 아니다. 더욱 진한 가을을 느끼게 배려한 점도 눈에 띈다. 코스모스 하나만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가을을 느끼게 해 주는 소재랄까. 원두막 위로 줄을 칭칭 감아 올라가 핀 박 넝쿨. 떨어지는 물줄기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와 그 사이로 보이는 코스모스. 약 5백 미터 길이에 40여 종의 박과 식물을 심은 조롱박 터널. 조랑말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코스모스 꽃밭을 한 바퀴 도는 코스는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는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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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 중간에 눈꽃이 폈다. 소녀 둘이 눈싸움을 하는 듯한 장면이 보인다. 그런데 알고 보니 눈이 내린 것이 아니다. 메밀꽃이 눈처럼 내려 눈꽃을 피운 것이다. 아마도 소녀 둘은 평생토록 메밀꽃 밭에서의 추억을 잊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가을날 꼭 떠나고 싶은 가을여행

길 건너 맞은편에는 가을을 상징하는 곡식으로 가득 차 있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목을 축 늘어뜨린 수수와 조는 수많은 씨앗을 달고 하늘로, 땅을 향해 힘겹게 서 있다. 해바라기도 목을 늘어뜨리기는 마찬가지. 곡식이 익으면 고개를 숙이는 법, 자연의 이치이지만 사람도 자연에서 배워야 할 것이 아니던가. 모두 어릴 적부터 농사지으며 보아왔던 풍경인데, 오늘 이 곳에서 왠지 가슴이 저 밀어 옴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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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역. 60~70년대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정겨운 역사가 캡슐 한 알처럼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득 안은 채 내리고, 떠난다. 삶의 교차점이요, 만남과 이별의 현장이다. 그곳에서 예쁜 소녀 넷을 만났다. 생면부지의 만남. 내 블로그에 싣는다고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니, 잠시 망설임 끝에 웃으며 승낙한다. 아마 이 소녀들도 메밀밭 소녀들처럼 평생 추억으로 간직하리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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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거제도엔 기차가 없다. 그러다보니 여행은 순전히 자가용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터. 그러다 보니 때론 기차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부럽고, 하고 싶기도 하다. 이날 북천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농촌지역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차여행을 하는지는 몰랐다. 물론, 코스모스축제를 보러 기차여행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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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기차가 도착하고 떠나는 모습이 보고 싶어 한참을 기다렸다. 오전시간 코스모스 사진을 찍느라 두 시간을 넘기고, 점심시간도 어중간 해 점심도 그른 상태. 역무원에 물으니, 오후 1시 31분 열차는 도착한단다. 무궁화호 1941호. 열차를 타 봤던 기억은 군 시절 휴가 나올 적, 그 때 뿐. 열차가 8분 늦게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밉기만 하다. 배는 고픈데 기다리는 시간이 지겹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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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소리 울리며 천천히 들어서는 열차.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철로에 귀를 대며 열차와 숨바꼭질 하는 촌 동네 순진한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묵중한 몸을 이끈 열차는 중압감에 하얀 숨을 내뿜으며 정확한 위치에 멈춘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린다. 먼저 내려야 탈 수 있으련만, 타기에 바쁜 사람들로 혼잡하기 그지없다. 새로운 사람을 실은 열차는 떠나기에 바쁘다. 그런데 저 멀리 청춘 남녀가 달려온다.

"아저씨! (열차)안에 짐이 있어요."
"안돼요."(역무원이 하는 말)

사실 열차는 문을 완전히 닫았고, 서서히 떠나는 상태. 약 10미터를 달리다 열차는 다시 멈추고 만다. 그 짧은 시간 기관사와 연락이 닿았는가 보다. 청춘 남녀는 열차에 올랐고, 다시 열차는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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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가지 궁금증이 밀려온다. 그 청춘남녀의 가방이 어떻게 열차 안에 남기게 됐는지? 앞선 역에서 계속 열차를 타고 북천역에서 내려 코스모스 축제를 구경할 계획이었는데, 짐을 두고 내렸는지? 그렇다면 코스모스 축제 구경도 못한 그 청춘 남녀가 안됐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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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북천에는 갖가지 물결로 일렁인다. 들녘은 노란 물결이요, 코스모스 꽃밭은 꽃물결, 도로는 차량 물결이요, 그리고 논둑길은 사람물결로 일렁이며 가을이 넘쳐나고 있다. 북천 코스모스 메밀축제는 다음 달 3일까지 열린다. 가을을 느끼고 싶다면 하동 북천 기차여행도 좋으리라는 생각이다.

이 가을에 꼭 떠나고 싶은 가을여행

주요행사 중 전시마당으로 옛 농기구 전시, 이동 동물원, 조롱박터널 등이 있고, 도리깨질, 새끼 꼬기 등 전통문화 체험마당, 미꾸라지 잡기, 메밀묵 만들기, 밤.고구마 구워먹기 등 체험행사를 비롯한 많은 행사가 북천을 찾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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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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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ophism-travel.tistory.com BlogIcon 무념이 2011.09.27 00: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주말 연휴에 와이프와 하동으로 나들이 가기로 약속했어요~! ㅎㅎ

    • 죽풍 2011.09.27 0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번 가 보시기 바랍니다. 넓은 땅에 가을이 만땅 내려 앉아 있습니다.

  2. 바따구따 2011.09.27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 한장 한장이 정말 멋집니다~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낄수 있는 기차여행도 낭만이 가득하겠네요^^

    • 죽풍 2011.09.27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정말 기차여행 한번 떠나고 싶네요.
      그런데 기차여행 하려니 거제도에서 시작하기란
      여간 번거로운게 아니라서,,,

  3. Favicon of http://blog.daum.net/young9123 BlogIcon 작은별 2011.09.27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사진과 글 감사히 즐감합니다.
    메밀꽃도 멋지지만 고개숙인 조와 수수도 정겹고 멋집니다.
    북천역 여행 꼭 가보고 싶어지네요....^^

    • Favicon of https://bamnwind.tistory.com BlogIcon 죽풍 2011.09.27 1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북천에는 다음달 초순까지는 가을이 기다려 줄것 같습니다. 한번 가셔서 가을정취를 듬뿍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4. Favicon of https://neowind.tistory.com BlogIcon 김천령 2011.09.27 1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천역, 가을 정취가 물씬 풍깁니다.
    오마이에서 보고 이곳에서 보니 새롭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5. 박성제 2011.09.27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이 아름다운 가을에 어디론가 떠나고싶은 마음은 다들똑 같을거에요
    몇일만에 인사드림니다 풍성한 가을 을 맞이 하시기을

  6. 하나비 2011.09.27 2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가보고싶은 여행이네요 코스모스가너무이쁜곳 ~~

  7. §러브레터§ 2011.10.04 0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걸어보고 싶네요~
    이 가을 누구든 한번의 여행길을
    갈망하며 살아가는듯 합니다
    죽풍님 덕에
    마음의 여행을 떠나봅니다^^

    • 죽풍 2011.10.05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죠...
      코스모스 춤추는 들녘길을 걷는다 생각하면, 인생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를 것 같습니다.


after 10 years

after 10 years - 하동 북천 코스모스 축제장에서 만난 소녀들

2011. 9. 24. 하늘은 높고 파랗다.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날. 하동 북천의 하늘과 땅도 가을 향기로 가득하다. 널따란 땅 들길에는 바람에 파도를 일으키는 코스모스 물결로 넘쳐나고, 사람은 그 들길을 따라 거닌다. 꽃밭에서 예쁜 소녀 둘이 눈싸움을 하고 있다. 계절 이른 눈이 내렸나 싶었는데, 눈이 아니다. 메밀꽃이 펴 눈처럼 보였다.

북천역. 6~70년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정겨운 역사가 캡슐 한 알처럼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득 안은 채 내리고, 떠난다. 삶의 교차점이요, 만남과 이별의 현장이다.

그곳에서 예쁜 소녀 넷을 만났다. 생면부지의 만남. 내 블로그에 싣는다고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니, 잠시 망설임 끝에 웃으며 승낙한다. 그런데 막상 달랑 사진 한 장 싣자니 너무 밋밋하다. 그래서 밤새 고민하여 닉네임을 지어 편지를 쓴다.

하동 북천역에서 만난 딸 같은 소녀들에게

2011년 9월 24일은 너희들도 아마 잊지 못할 날이라 생각하겠지. 날씨가 너무 좋았고, 아름답게 핀 코스모스는 청춘시절 소풍간 기억을 영원토록 간직해 줄 것이기에. 딸이 없는 나로서는 내 딸 같은 느낌이 들었지.

너희들끼리, 그날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겨 영원토록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겼으면 하는 바람이야. 그 날은 인생 제2막을 여는 제2의 생일로 정해 영원토록 변치 않는 우정을 새겼으면 하고. 그리고 10년 후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며, 하루하루 자신들에게 충실하게 지냈으면 해.

그런 의미에서 코스모스를 연상하며 사진 왼쪽부터 이름을 지어보마.

코 : Cupid(큐피드, 로마의 사랑의 신)
스 : Swan(스완, 백조)
모 : Mona Lisa(모나리자,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그린 초상화 인물)
스 : 스머페트(개구장이 스머프에 나오는 아리따운 금발머리 여성 스머프)

이름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모든 것은 내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삶의 지혜를 새겼으면 하면서, 항상 웃음 잃지 않는 건강한 친구끼리 지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오늘, 오늘도 항상 즐겁게.

after 10 years - 하동 북천 코스모스 축제장에서 만난 소녀들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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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ophism-travel.tistory.com BlogIcon 무념이 2011.09.26 13: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주에 가보려다 연휴인 다음주로 미루고 청도에 다녀왔는데 다음주에 가도 코스모스는 한창 피어있겠죠? 하동가서 코스모스 보고 시집간 동생이 사는 광양에 들러 광양 불고기 한번 먹고 와야겠습니다~ ^^

  2. 바따구따 2011.09.26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십년전에 누군가가 죽풍님처럼 누군가가 이런 말씀을 해주었다면 ...
    저의 앞으로 10년후의 모습은 어떨지 잠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그럼 죽풍님도 즐거운 한 주 시작하세요^^

    • Favicon of https://bamnwind.tistory.com BlogIcon 죽풍 2011.09.26 21: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
      늦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도 10년 후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그려 봅니다. 아니, 5년 후부터 그려 보려 합니다. 초가집은 아닐지언정, 산골짝 스레트 집에 야생화 키우며, 약초 차 재배하여 오는 손님 무료로 대접하고, 시베리안 허스키 개 한 마리 키우는 게 소원이자 희망입니다.

  3. 코스모스 2011.09.27 0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아침부터 너무 기분좋은 시작을 할수있어 감사합니다 ^ㅁ ^
    고등학교때부터 10년지기 친구들인데 이렇게 좋은 인연으로 또 한장의 추억과 마음에 담을 말씀을 남겨주셨네요
    삼각대가 없어서 단체사진이 늘 아쉬웠는데 너무 이쁘게 나온거 같아요 ~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 - ^

    • 죽풍 2011.09.27 1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 남겨 줘서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여자친구들, 평생 잊지 못하고 가슴 속에 안고 살아야 할 친구들이지요. 아침부터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수 있어 감사하다는 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웃으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4. 유붕 2011.09.27 0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똑같은 하루일상을 시작하며 무료해지던 화요일 아침, 블로그를 받아적던 친구에게서 쪽지가 왔습니다.
    너무 멋진 아저씨라며,.. ㅎ 무슨 기삿거리라도 있나 싶었죠,.
    마냥 어리지만 않은 나이, 미래를 생각하며 또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나도 모르게 씁쓸함이 묻어나게 됩니다.
    다시 되짚어봅니다., 너무 나를 옭아매진 않았는가,. 너무 조급하게 때로는 내가 아닌 다른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버린
    내 인생을,.
    삶의 여유를 찾아 깔깔대며 같이 있는것만으로도 즐거운 친구들과의 여행속에서 "사진찍어주세요"라고만 했지
    "사진한장찍어줄게요"라는 말은 조금 이상한 기분? ㅎ
    잠시 잊고있었던 그날의 즐거움이 다시금 저를 웃음짓게 만듭니다.

    즐거운 날 , 멋진분을 만나 오늘 하루,.. 그리고 나의 인생은 앞으로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

    • 죽풍 2011.09.27 1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 남져 줘 고맙네요. 너무 멋진 아저씨라니 너무 과한 칭찬입니다. 어째 그리 글도 참 잘 쓰시네요. 겉으로는 어려 보이지만, 역시 속 마음은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뿜어내는 것 같습니다. 고교시절 여자동창, 인생에 있어 잊을 수 없는 동기들입니다. 그 우정과 사랑, 영원토록 간직하며, 세상에 사랑을 베풀고 잘 살았으면 바람입니다.
      아, 참 친구들끼리 찍은 사진은 '오마이뉴스' 기사에도 실렸으니, 기회되면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ohmynews.com/

  5. 큐피드 2011.09.27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 크리스찬 세례명. 영어 이름. 누구나 하나 쯤은 가지고 있는 별명.
    그리고, 2011년 북천역에서 만난 아저씨가 지어주신 코스모스 이름.
    아저씨 덕분에 의미 있는 닉네임을 하나 더 얻었습니다.

    처음 저희에게 말을 건내 셨을때, 호기심 삼아 머슥하게 서서는 카메라를 향해 있는 힘껏 웃어 드리는게 다였는데,
    이렇게 사진을 보니 좀 더 이쁜 척이라도 하고 찍을 껄 하며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실, 사진 찍는게 늘 어색한 저에겐 아저씨가 찍어주신 사진 속 모습이 최선인데 말입니다 ^^

    어릴때부터 시골에서 자란 저에겐 하동 북천 코스모스 길은 ' 아 이쁘다 ' ' 이쁘긴 이쁘던데요? '
    요정도의 표현이 한계였는데, 아저씨의 글을 읽으면서 하동 북천 길을 다시 되집어보게 됩니다.

    물 흐르듯 흘러버리는 세상을 그리고 카메라 앵글 속에 담는 추억 추억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아저씨의 글 처럼 감동에 감동을 부여하며 살아야 겠습니다.

    어제까지만해도 메밀 국수가 맛있는, 메밀 전병이 맛있는 하동 북천이였는데요~
    아저씨의 블로그 속 북천역 코스모스 철길에 선 저희 모습에
    하동 북천은 평생 의미 있는 소풍으로 기억될 코스모스 길이 되었네요 ^^

    사실, 이번 소풍은 가을 나들이 의미도 있었지만, 굳이 아쉬운(?) 핑계를 대자면
    곧, 10월에 결혼할 저를 위해 결혼 전 같이 바람도 쐴겸 다녀 오자는 친구의 말에 계획된 주말 소풍이였습니다.
    고맙습니다. 그저 그렇게 묻혔을 이번 소풍은 아저씨를 만나 정말 더 특별한 하루가된것 같네요 ^^
    앞으로도 달콤한 세상 많이 많이 담으시면서 평생 행복한 마음의 부자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2011년 가을 정말 기분 좋은 인연이였습니다^^

    • 죽풍 2011.09.27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 잘 보았습니다. 먼저, 축하부터 해야겠군요. 다가 올 10월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댓글 속에 삶의 진솔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친구 넷 모두 영원토록 우정과 사랑을 간직하고 살았으면 합니다. 결혼을 한다 하니 축의금 대신 인생 선배의 조언으로 축의금을 대신 할까 합니다.
      "결혼은 남녀가 각각 다른 환경에서 자랐기에, 각자 개인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성격과 내 것에 맞추려 하지 말고,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면 반드시 나도 인정받고 존중 받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행복한 삶을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친구 넷 우정도 변치 마시고요.
      감사합니다.

  6. 롱이 2011.09.27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
    사진속 빨간남방의 소녀입니다 ^-^
    소녀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색한 27살 아가씨지만요 ㅎㅎ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는 시간, 반복되는 일상속에 지쳐갈쯤
    선생님의 편지한통은 기쁨+반가움+달달함으로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편지를 다 읽을즈음엔 그날의 추억과함께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
    우리가 이렇게 멋진분과 함께했다니 하는 감동과 함께말입니다 .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그냥 스쳐가는 인연임에도 불구하고 저희를 위해 이름 지어주신거,
    아버지로써 인생선배로써 아낌없는 응원과 메세지. ^-^

    선생님 덕분에 저희는 쭉 행복한 나날들을 보낼거 같습니다.
    선생님같이 멋진분을 만난 자체가 이미 큰 행운이였겠죠 ^^
    멋진 추억 한 페이지 남겨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 ^

    건강하세요 >ㅁ<

    • Favicon of https://bamnwind.tistory.com BlogIcon 죽풍 2011.09.27 23: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그냥 스쳐가는 인연,,,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어느 하나 의미가 없는 것은 없습니다. 비오는 날 출근 할 때 만난 개구리 한 마리도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불교에선 만날 '연'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중요한건 그날 친구들의 만남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며 좋은 추억으로 영원히 간직하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친구 넷 모두 꿈 많은 소녀 시절의 추억 오래도록 간직하기를 바라며 항상 건강한 웃음으로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홀연한 산사의 모습입니다.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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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성제 2011.07.15 1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속에 있는 산사는 무언가 중엄한 무게 감이 있지요

    생각을 할수있는 여유와소리없는풍광 정말 좋습니다

    오늘도 아름다운 사진을 주신 님게 감사합니다

    • 죽풍 2011.08.01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에 폰카로 그냥 찍은 것을 올렸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절 마당과 대웅전만 바라보는 절을 떠 올립니다. 사물을 보는 각도에 따라 마음도 달라집니다. 절에 다니면서 많은 것을 깨우치려 하지만 현실은 다른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안다니는 것 보다 다니면서 하나 하나 깨쳐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기와지붕만 보이는 산사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 Favicon of https://porky.tistory.com BlogIcon 뽀키 2011.09.02 2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갑습니다. 댓글보고 찾아왔어요...
    산사의 고즈녁한 풍광에 마음을 내려놓고 쉬었다갑니다.
    앞으로 좋은 이웃이되기를 바랍니다.
    편안한 휴일보내시기 바랄게요.^^


울산 울기등대와 대왕암에서 여유를 느끼다

  
▲ 파도 파도가 작은 바위를 몰아치고 있다.
파도

녹음으로 물든 숲은 맑은 공기를 내뿜으며 사람들에게 건강과 편안한 쉼터를 주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5월 하면 숲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성하의 계절로 접어드는 5월의 마지막 날(30일). 바다는 쪽빛을 뿜으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남해바다와 동해바다가 무슨 차이가 있으랴만, 느낌마저 같을 리는 없을 터. 거가대교를 건너 부산 기장까지 한걸음에 내달렸다. 31번 국도에 접어드는 시점부터 동해바다는 나그네를 반겨주었다. 

역시나 차를 몰고 드라이브하는 느낌은 차창 밖 풍경이 아름다워야 제 맛이 나는 법. 그것도 시원한 강줄기나 푸른 바다가 보인다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 동해바다는 그래서 좋다. 오래전, 7번 국도를 따라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가는 내내 바다를 거의 볼 수 있었기에. 

  
▲ 대왕암 대왕암
대왕암

울산의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울기등대와 대왕암은 멀리 동해바다로 이어진다. 대왕암공원은 휴일을 맞아 많은 여행객들로 혼잡하다. 무성한 잎을 가진 큰 나무는 축 늘어진 모습으로 그늘을 만들고, 푹신한 산책로는 걷기에 편해 좋다. 

입구 안내판에는 4개의 산책코스가 있는데 거리와 소요시간(30~55분)을 알려주고 있다. 45분이 걸리는 A코스를 따라 가 보기로 했다. 이 코스는 울기등대를 지나 대왕암전망대, 탕건암, 할미바위, 용굴을 경유하는 코스다. 

  
▲ 울기등대 앞쪽이 구 등대이고, 뒤쪽이 신 등대이다.
울기등대

울기등대는 방어진항을 유도하는 항로표지로, 일본이 1905년 2월 목재로 등간을 설치하면서, '울산의 끝'이라는 뜻으로 울기등간(蔚崎燈干)이라 하였다. 이후 1906년 3월 현재의 장소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설치, 1987년까지 80여 년간 사용되었다고 한다. 

신 등탑은 주변 소나무 성장으로 해상에서 식별이 어려워 1987년 12월 12일 설치하였으며, 높이는 24.79m로 등명기는 프리즘 렌즈를 사용, 국내 최초로 대형급으로 설치하였다고 한다. 구 등탑은 등대라기보다는 아담한 모양의 집을 연상시켜 주는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구한말 시대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한 건축물로, 신 등대와 비교를 통해 당시 건축술과 기법 등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한다. 

  
▲ 대왕암바위 대왕암바위
대왕암바위

탁 트인 광장에 이르니 세찬 바람이 분다. 먼 바다에서 밀려온 파도는 한숨을 삼키며 바위를 몰아치고 흰 거품을 내뱉는다. 흐린 날씨 탓인지 바다는 쪽빛으로 보이지 않는다. 큰 바위가 깨져 작은 바위를 이루는지, 작은 바위 군상이 모여 큰 바위처럼 보이는지 알 수가 없다. 

바위 모양도 제각각 천상의 얼굴로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만 같다. 바위색깔은 녹슨 것처럼 보이고, 황금빛으로도 보인다. 대왕암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황금빛을 하고 있는 것일까. 

  
▲ 남측해안 대왕암에서 바라 본 남측해안
남측해안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 30대 문무왕은 지의법사에게 "나는 죽은 후에 호국대룡이 되어 불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려고 한다"라고 하였다. 대왕이 재위 21년 만에 승하하자 유언에 따라 동해구의 대왕석에 장사를 지내니 마침내 용으로 승화하여 동해를 지키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가 경주 양북면에 있는 해중릉인 문무대왕릉인 것. 

이후 왕비도 세상을 떠나게 되고 한 마리의 큰 호국룡이 되어 하늘을 날아 울산바다 대암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고 전한다. 사람들은 이곳을 대왕바위(대왕암)라 불렀으며, 용이 잠겼다는 바위 밑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고 전해오고 있다. 

  
▲ 대왕암 대왕암에서 바라 본 울기등대.
대왕암

전망대에 올라서니 저 멀리 상선 한 척만 외로이 떠 있고 망망대해가 끝이 안 보인다. 바닷물 속에 잠겨 있는 작은 바위 위로 세찬 물살이 앞뒤로 출렁인다. 물질하는 해녀가 수면으로 올라 숨을 몰아쉬듯, 작은 바위는 파도가 넘은 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만 같다. 강한 바람과 거친 파도에도 강태공은 고정된 자세로 한 동안 꿈쩍도 하지 않고 바다만 응시하고 있다. 몇 마리의 고기를 낚아 올렸을까 궁금해진다. 

돌아 나오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바람과 파도를 피하지 못한 인고의 세월을 거쳐서일까, 소나무 두 그루가 같은 방향으로 드러눕다시피 하고 있다. 키는 작지만, 나이는 고희를 넘어 보인다. 나이 들어 휘어질 대로 휘어지고, 꼬부라진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이다. 

북측해안 산책로에 부부송이라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데, 여기 두 그루의 소나무는 '노부부송'이라 이름을 붙여본다. 강한 비바람과 폭풍에도 꺾일지언정 뿌리째 뽑히지 않는, 언제까지 푸름을 잃지 않는, 저 늙은 두 그루의 소나무가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 

  
▲ 노부부송 대왕암공원 홍보책자에는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늙은 소나무 두 그루. 나그네가 노부부송이라 이름 지어 주었다.
노부부송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반복하고, 꼬불꼬불한 길을 돌고 돌아도 해안가 절벽은 아름답다. 흙이라곤 별로 없는 바위 틈새에서 소나무는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어나 있다. 그 강한 생명력이야말로 진정 자연에서 배워야 할 태도가 아닌가 싶다. 

해안가에서 가장 높은 곳을 '고이'라 하며, 이곳 전망대에선 미포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넙디기'는 해안 바위 중 가장 넓은 곳을 말하며, 넙덕바위가 변한 말이다. 탕건암은 넙디기 앞 바다에 있는 바윗돌로 마치 갓 속에 쓰는 탕건 같이 생겼다 하여 이름 붙인 것.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형상으로 우뚝 솟은 할미바위도 보인다. 

사람도 제각각 자기만의 이름을 가졌듯이 바위도, 나무도 이름을 가지지 못할 것은 없는 법. 앞서 본 늙은 소나무 두 그루에 '노부부송'이라 이름 지어주었는데,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을는지. 

  
▲ 탕건암 탕건암은 넙디기 앞 바다에 있는 바윗돌로 마치 갓 속에 쓰는 탕건 같이 생겼다 하여 이름 붙인 것.
탕건암

  
▲ 할미바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형상으로 우뚝 솟은 할미바위.
할미바위

그래서 대왕암 공원에는 이름 붙인 바위와 나무가 수도 없이 많다. 북측 해안에는 바깥 막구지기, 햇개비, 민섬, 수루방, 용굴, 부부송, 넙디기, 할미바위(남근암), 탕건암이 있다. 북동 해안에는 고이와 사근방(사금을 채취했다고 붙여진 이름)이 있고, 남측 해안에는 용디이목, 샛구직, 과개안(너븐개), 고동섬, 중점·노애개안, 배미돌이 있다. 

  
▲ 소나무숲 대왕암공원에는 1만 5천여 그루의 소나무가 하늘을 덮고 빽빽히 서 있다.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 참으로 행복하다.
소나무숲

해안가를 돌아 언덕길로 오르니 울창한 송림이다. 하늘을 향해 날씬하게 쭉쭉 뻗은 소나무는 20m가 족히 넘을 것만 같다. 대왕암 공원은 울산 12경중의 하나로 이곳에는 1만 5천여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평평한 숲 속, 오솔길을 걷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 천천히 걷는 시간만큼 여유로움을 얻을 수 있어 좋다. 

45분이면 된다던 거리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나그네에겐 가진 것은 시간뿐인데, 두 시간이면 어쩌랴. 시간에 쫓겨 박물관을 휑하니 둘러보는 것이나, 여행지 안내판만 읽어보고 오는 여행에서 얻는 것이 무얼까. 여유로움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싶다. 

  
▲ 대왕암 대왕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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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동구 일산동 | 울기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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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보기 드문 석재로 만든 대웅전과 마애석불을 찾아서
  
▲ 석불사 병풍처럼 펼쳐진 거대한 암석이 자리한 곳에 석불사가 자리하고 있다.
석불사

남해안 바다 한 가운데를 시원스레 관통하는 거제도와 부산을 연결하는 거가대교. 이 다리는 2010년 12월 14일 개통하였으며, 2개의 사장교(3.5㎞)와 침매터널(3.7㎞) 그리고 육상터널(1.0㎞)로 총 8.2㎞의 길이다. 이로써 거제도와 부산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한층 가볍게 해 놓았다. 소요시간도 종전보다는 많이 단축됐다. 때문에 꼭 가지 않아도 될 일도 '이제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하는 둥' 핑계거리도 없어졌다고나 할까. 그 동안 부산을 오갈 때 몇 차례 가 본 석불사에 28일 또 다시 들렀다. 

  
▲ 마애석불 사천왕상을 한 마애석불
마애석불

석불사는 부산이 자랑하는 금정산에서 뻗어 나온 산자락 하나가 남쪽 만덕동 끄트머리에 다다르는데, 그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절 위쪽으로 거대한 크기의 바위가 군상을 이루며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해서 병풍암이라고도 불린다. 거대한 바위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한 석불사.  

이 절은 석재와 철재로 조성한 절로, 거대한 자연 암석 사이에 세운 전각과 불상이 눈길을 끈다. 부산지역에서 마애석불 절로서도 이름 나 있다. 절 입구 턱 밑, 주차장에 차를 놓고 경사진 대나무 숲길을 오르면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끼를 두른 큰 소나무는 세월의 흔적을 안고 있다. 

아담한 모습을 한 일주문. 금색도장을 한 '석불사'란 편액이 정겹다. 급경사진 자리에 절을 조성하다보니 마당도 넓지 않다. 높은 받침대를 세우고 마당높이에 맞춰 만든 지혜로움이 돋보이는 종각. 휘고 구부러진 나이 많은 소나무와 동무 삼아 천년 세월을 함께 하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한 듯 한 모습이다 

  
▲ 마애석불 암벽에는 16나한상이 조각돼 있다.
마애석불

  
▲ 마애석불 위로는 미륵존불이 아래로는 십일면관세음보살이 조각돼 있다.
마애석불

대웅전은 팔작지붕을 한 2층으로 석재로 건축하였는데, 나무기둥의 목조와는 달리 칸 수가 정확하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용머리를 세운 돌 기둥을 봐서 3칸으로 보이며, 화려하고 섬세한 목조형태의 포와는 달리 포를 대신한 동물모양의 조각은 하나의 예술품을 전시해 놓은 듯 하다. 역시 지붕 밑으로는 부처님을 조각해 모셔 놓고 있다. 또한, 여느 절과는 달리 나무 문양을 한 문이 아니라, 철제문을 만들어 놓았고, 난간도 철제로 돼 있는 점이 특이하다. 

대웅전 옆으로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 하나가 나 있는데, 이 통로는 절 밖과 연결돼 있다. 예전에는 사람이 다녔다고 하는데, 지금은 문이 닫혀 있어 다닐 수 없게 돼 있다.  

  
▲ 석불사 석불사에 오르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석불사

  
▲ 범종각 높은 받침대를 세우고 마당높이에 맞춰 만든 지혜로움이 돋보이는 종각. 휘고 구부러진 나이 많은 소나무와 동무 삼아 천년 세월을 함께 하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한 듯 한 모습이다.
범종각

두 손 모아 삼배하고 대웅전 뒤로 들어서니 거대한 바위가 눈앞에 떡하니 버텨 서 있다. 사방이 움푹 팬 듯한 공간에 좌우로는 높이가 족히 30~40m의 바위로 둘러쳐져 있는 터. 넓게 보아도 100㎡가 돼 보이지 않는 좁은 면적의 그곳은 서방정토요, 극락세계였다. 온 기운이 빠져나감을 느낀다. 꿈을 꾸며 천상의 세계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저 높은 암벽에 어떻게 불상을 새겼을까. 그 웅장함에 기가 눌린다. 불상의 표정도 온화하며 다양하다. 불상의 수도 하나 둘이 아니다.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약사여래불, 미륵불, 십일면관세음보살불, 16나한상 그리고 사천왕상 등을 포함하여 총 29개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최대규모의 마애석불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큰 바위에 자연적으로 생긴 틈새에 부처님을 모셔 놓았다. 두 분의 부처님에 두 개의 촛불이 세상을 밝혀 주고 있다. 이승의 인연을 끊음일까, 속세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라는 뜻일까. 제 몸을 태워 세상을 밝게 비추는 촛불이 가진 깊은 의미를 다시금 새겨 주고 있다 

  
▲ 부처님 곧 무너질 듯 한, 큰 바위와 작은 바위 사이에 부처님이 계신다. 부처님은 위태로운 이런 공간에 믿음 하나만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처님

몇 십 개의 돌계단을 오르니 돌로 만든 독성산령각이 나온다. 작은 공간이지만 역시 부처님의 세상이다. 옆으로 작은 틈이 하나 있다. 겨우 몸을 비켜 세워야만 지날 수 있는, 아주 작은 폭의 틈새. 힘겹게 지나니 또 다른 불국토의 세상이 나온다. 곧 무너질 듯 한, 큰 바위와 작은 바위 사이에 부처님이 계신다.  

부처님은 위태로운 이런 공간에 믿음 하나만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만약, 큰 바위를 지탱하는 작은 바위가 없다면 하는 생각에 이르면 아찔하다. 믿음이 없다면, 얼마나 긴 이 세월을 참고 견뎌 왔을까? 한 쪽이 힘들다고, 다른 한 쪽이 믿음 없이 쉽게 포기한다면 결국, 둘은 공멸하고 말지 않겠는가?  

  
▲ 석굴법당 암벽에 있는 작은 석굴은 그 자체로도 장엄함이 넘치는 법당이기도 하다. 암굴에서 나는 송불 소리는 바깥세상을 향해 넓고도 멀리 퍼져 나갈 것이다.
석굴법당

  
▲ 풍경 석재로 만든 대웅전 처마에 걸린 풍경. 부처님 모습도 보인다.
풍경

갑자기 군 시절 목봉체조 훈련시간, 교관의 훈계가 떠오른다. 

"한 사람이 힘들다고 꾀를 피우면, 다른 사람이 꾀를 피우고, 그러면 모두가 힘들어진다. 훈련은 마쳐야 하는데, 나 하나 괜찮다는 식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훈련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그러니 서로를 믿고 하나가 됨이 중요하다. 

훈련 받을 때는 힘들고 귀찮아서,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참으로 옳은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절을 찾을 때면 이렇게 나 자신을 돌아본다. 꼭 절터가 아니더라도 자연의 이치에서 배울 것은 무궁무진하게 많다. '모든 것은 내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명언도 자연에서 터득한 진리 아니던가? 

  
▲ 불심 서울에서 왔다는 불자가 아들의 건강과 소원을 기도하고 있다.
불심

나오는 길, 대웅전 앞에서 정성스레 합장 기도하는 불자를 만났다. 서울에서 왔다는 불자는 아들이 프로축구 선수인데, 건강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기도하러 들렀다고 한다. 나도 합장 기도로 마주하며 소원성취토록 빌어 주었다 

석불사는 1930년 창건한 절로 그리 오래된 절은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불자와 여행객들로부터 관심을 끄는 것은 국내 최대규모라 할 수 있는 마애석불이 있기 때문. 또한 석재와 쇠로 만든 전각은 국내에서 보기가 드물다. 암벽에 있는 작은 석굴은 그 자체로도 장엄함이 넘치는 법당이기도 하다. 암굴에서 나는 송불 소리는 바깥세상을 향해 넓고도 멀리 퍼져 나갈 것이다. 

주차장엔 아주 진한 녹색 잎을 가진 감나무가 한 그루가 서 있다. 감꽃은 이미 떨어지고 열매는 영글어져 가고 있다. 붉은 단풍이 드는 계절, 다시 들르고 싶은 마음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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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몽돌해변, 파도와 바위의 싸움에서 진리를 깨닫다
  
▲ 파도 거센파도는 바위를 세차게 몰아치며 때리고 있다. 바위는 인내하며 말이 없다.
파도

살아가면서 가끔은 '자연'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던져 봅니다. 불교에서는 '화두'라고 말 할 수 있는데요, 이 세상에 진리를 전파한 큰스님도 자연의 이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이 정도의 지식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자연 속에서 진리를 안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식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모든 진리를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 파도 성난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파도

  
▲ 파도 성난파도가 뭍에 올랐다.
파도

5월의 마지막 주말인 28일. 지인에게 축하할 일이 있어 울산에 갔다가, 1027번 지방도를 따라 시내에서 약 15㎞ 떨어진 주전몽돌해변에 들렀습니다. 여행을 즐겨하다 보니 어떤 곳에 갔다가, 볼일만 보고 오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적 업무든, 사적 일이든 가리지 않고 어떤 지역에 가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이름난 곳을 둘러봅니다. 물론 떠나기 전, 반드시 여행정보를 확인하는 것은 필수사항이지요. 

주말 날씨는 그리 밝지 않습니다. 꼭 화난 사람 표정 같기만 합니다. 날씨뿐만 아니라, 바다도 잔뜩 성이 났나 봅니다. 바닷물은 흰 거품을 쏟아내며 뭍으로 몸을 던져 버립니다. 하지만 힘에 부치는 듯 몸뚱이는 이내 산산조각 나 버리고 맙니다. 그래도 화가 덜 풀렸는지 파도는 꼭 누구한테 따져야겠다는 듯, 계속해서 뭍으로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써 봅니다. 앞보다는 10m 더 올라갔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선에서 왔다 갔다 하며 그치고야 맙니다. 

  
▲ 몽돌 억겁의 세월동안 파도가 씻긴 윤기나는 몽돌. 이렇게 작은 몽돌은 또 다른 억겁의 세월을 거치면 모래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몽돌

동해안은 큰 바다와 이어져 있습니다. 먼 바다에서 힘을 받은 파도는 큰 바위를 무참히도 때립니다. 어떤 때는 있는 힘을 다해 세차게 몰아치고, 어떤 때는 자존심만 상하게 툭툭 건드리며 약을 올리는 수준에 이릅니다. 바위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 어떤 표정도 짓지 않습니다. 바위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 성난파도 성난파도는 바위를 세차게 몰아붙여 때리지만, 바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버티며 인내하고 있다.
주전몽돌해변

"그래, 때리려면 때려줘. 얼마든지 맞아줄게. 계속 때려봐. 네 몸만 아플 걸." 

바위는 파도가 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몸뚱이만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때리는 파도가 더 아프다는 것을, 바위는 너무나도 잘 안다는 표정입니다. 한동안 파도와 바위의 싸움을 지켜봤습니다. 자리를 뜰 때까지 둘의 싸움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에는 아마도 싸움은 멈추었겠지요. 누가 이겼는지, 졌는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서로 화해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둘은, 둘의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부드럽고 윤기 나는 돌멩이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수억만 년 전부터 파도는 이곳 바위를 깨트리고 작은 몽돌을 만들었습니다. 몽돌끼리 부딪히는 소리는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그 소리는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합니다. 억겁의 세월은 주전몽돌해변에 새알 같은 작은 몽돌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누가 압니까? 또 다른 억겁의 시간이 흘러 저 작은 돌멩이가 모래가 될지 말입니다. 

  
▲ 몽돌 윤기나는 몽돌
몽돌

  
▲ 몽돌 파도가 거품을 내며 작은 몽돌을 닦고 있다.
몽돌

약 1.5㎞ 길이에 쭉 뻗어있는 주전몽돌해변을 걷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사진 찍기에도 힘든 세찬 바람과 파도에 흩어지는 물줄기로 몽돌 밭을 걸어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지압효과가 있다는 몽돌 밭을 걸어보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만 했습니다.  

  
▲ 파도 성난파도
파도

주전몽돌해변 이외에도 유명한 몽돌해변이 있습니다. 2000년 환경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에 선정된 거제도 학동흑진주몽돌해변. 이곳은 약 2㎞에 펼쳐진 몽돌 밭으로 파도에 밀려왔다 쓸려내려 갈 때 내는 소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또 한 곳은 북한지역이 눈앞으로 보이는 백령도 콩돌해안입니다. 이곳은 약 1㎞에 걸친 몽돌 밭으로 형형색색을 한 콩알크기만 한 몽돌이 폭이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억겁의 시간을 실제로 체험하고 느끼고 싶다면, 몽돌 밭을 걸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 파도 성난 파도는 흰 거품을 일으키며, 누구한테 따지려 하는 듯 뭍으로 올라가려 하고 있다.
파도

  
▲ 파도 성난파도
파도

현명한 사람은 자연을 통해 성찰해 나갑니다. 과오에 대해서는 자연의 모습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반성하며 살아갑니다.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한 스승은 자연의 참 된 모습에서 찾는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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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동구 남목3동 | 주전몽돌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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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가본 거창 북상면에서 함양 용추사 숲 속 길
  
▲ 녹색 숲길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서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까지 총 11㎞의 숲속 길. 전 구간이 시멘트 포장길로 비록 자동차로 이동했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김밥 싸서 녹색 향기 맡으며 걸어보고 싶은 정말로 멋진 길이다.
녹색 숲길

산야는 녹색으로 덧칠을 더해 가고 바람에 너울거리는 잎사귀는 녹색 물결을 이루고 있다. 깊은 산과 계곡의 푸름은 강한 햇살을 받아 더욱 푸르다. 바다는 매일같이 보는 터라 산이 그립다. 그래서 갯가 사람은 산으로, 뭍에 사람은 바다가 그리운 모양이다. 경남지역에서 산과 골이 깊은 곳을 치자면 역시 중부경남. 국립공원 지리산이 있는 산청·함양이나, 역시 국립공원 가야산이 있는 합천은 산세가 수려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 두 곳은 몇 차례 답사한 탓에, 이번에는 국립공원을 벗어나 보기로 했다. 

  
▲ 이팝나무 길 길게 쭉 뻗은 시원스런 이팝나무 가로수 꽃 길.
이팝나무
경남 거창과 함양을 사이에 두고 아우르는 기백산. 산세가 좋아 등산객이 많이 찾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계곡은 심신을 달래주는 휴양지로 각광 받고 있다. 지난 21일 35번 고속국도 서상 나들목을 나와 26번과 3번 국도를 따라 거창군 마리면 삼거리까지 갔다. 여기서 좌회전하면 37번 국도를 타게 된다. 이어 장풍삼거리에 이르고, 또다시 좌회전하여 37번 국가지원지방도를 따라 약 7㎞에 이르면 북상면사무소가 나타난다. 보며 즐기는 시간은 여기서부터. 물론, 여기까지 차를 운전하는 내내 펼쳐진 시원스러움은 아주 좋았던 편. 수승대관광지를 지나는 길목 좌측으로는 우거진 소나무 숲이 아름답다. 냇가의 바위와 맑은 물은 초여름의 시원함을 마음껏 느낄 수 있게 해준다. 
  
▲ 이팝나무 꽃 하얀 꽃이 수수모양으로 피어 나무를 뒤덮고, 쌀밥을 담아 놓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팝나무. 서양에서는 눈꽃나무라 불린다.
이팝나무

한적한 시골길, 오가는 차량은 한참을 지나야만 겨우 볼 수 있다. 들판에선 허리 숙여 일하는 농부의 손놀림이 바쁘다. 녹색 잎이 무성한 도로변 가로수는 눈이 부시도록 흰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아주 오래된 고목은 아니지만 그래도 길 양옆을 거의 이을 정도로 큰 가로수다. 알고 보니 이팝나무란다. 이팝나무는 하얀 꽃이 수수모양으로 피어 나무를 뒤덮고, 쌀밥을 담아 놓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서양에서는 눈꽃나무라 불린다. 5월 중순 경부터 피면 약 20여 일 동안 녹색 푸른 잎사귀와 동거한 후, 가을이면 보랏빛 콩 모양의 타원형 열매를 겨울까지 달고 있다. 어린잎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무침으로 해 먹기도 하고, 말린 잎은 차를 끓여 먹어도 좋다. 시원스레 길게 뻗은 도로는 나무위에 눈 내린 모습으로 여행객을 즐겁게 맞이하고 있다. 

  
▲ 폭포와 소 용추계곡에는 이런 작은 연못이 몇 군데나 있다.
용추계곡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좌측으로 아름다운 계곡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철이면 더위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올 명소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주은자연휴양림이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것만 같다. 북상면사무소에서 8.7㎞에 이르면 월성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면 시멘트 포장길이다. 차 한대 지나갈 정도의 노폭이라 마주 오는 차가 있다면 교행을 잘 해야만 할 것 같다. 작은 계곡은 이어지고 군데군데 새로운 펜션을 짓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주변의 울창한 숲을 낀 들녘은 전원주택지로 안성맞춤이다. 이런 곳에 오두막이라도 지어 남새밭에 곤달비 심고, 상추 뜯으며 살고 싶은 생각 간절하다. 좋아하는 야생화는 작은 농원에 심어 방문객에게 공짜로 주고, 충성심 강한 개 한 마리는 동반자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꿈이 아닌, 실제 상황으로 만들고 싶다. 요즘, 귀농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더욱 그런 마음 간절하다는 생각이다. 

  
▲ 쉼터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서 5.1㎞에 다달으면 정자가 있는 쉼터와 주차장이 나온다. 좌측으로 금원산(2.2㎞)이고, 우측으로 월봉산(3.0㎞)에 이른다.
금원산

숲 속 길을 걸어가는 재미가 좋으련만, 어차피 차를 타고 온 탓에 버릴 수도 없다. 산 속 길은 포장이 잘 돼 있어 운전하는 데는 별 애로사항이 없는 상태. 한참을 오르니 산 중턱에 정자 하나가 있다. 월성리에서 5.1㎞ 거리다. 운치 나는 정자에서 몇 사람이 둘러앉아 점심 먹는 모습을 보니 배가 고파 온다. 주차장엔 차량도 서너 대 서 있는 것을 보니 등산객도 있는 모양. 안내판을 보니 한쪽은 금원산(2.2㎞)이고 다른 쪽은 월봉산(3.0㎞)을 가리킨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금원산을 다녀왔음 하지만, 눈으로만 등산로를 따라 걸어 본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 애기폭포 깊은 계곡 작은 바위 틈을 흐르는 물은 맑고 청량하기 그지없다.
애기폭포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울창한 녹색 숲이 나오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차를 세웠다. 그런데 자연은 나를 극진히 환영한다. 녹색 나뭇잎은 바람을 타고 서로 경연하듯 춤추고, 새들은 저마다의 개성 있는 목소리로 노래하며 반긴다. 작은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도 질세라 졸졸졸 노래한다. 야생화는 그 작은 입에 함박웃음을 피워내고 나그네를 꾀고 있다. 갑자기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마트 웃겨 봤어?" 라며, 자신의 위상을 뽐내는 듯 하는 멘트는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입가에 미소를 만들 듯이. 

5월의 숲 속은 전체가 녹색이다. 다만 다른 색깔을 볼 수 있다면, 그건 꽃잎 색깔일 뿐. 야생화 미나리냉이도 녹색 잎에 하얀 꽃망울을 여럿 달고 있다. 하도 예뻐서 한참 동안이나 내려다보았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데 지나가는 차 한대가 멈춘다. 중년 남녀 몇 명이 내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어온다. 

"아저씨, 뭘 찍고 있어요? (다가서며) 어머, 예쁘라.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예, 미나리냉이라고 하는데요. 잎이 미나리와 비슷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죠. 예쁘죠?
"정말 곱고 아름답네요. 아저씨 야생화 전문가이신가 봐." 

  
▲ 미나리냉이 잎이 미나리와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미나리냉이.
미나리냉이

월성리에서 능선부에 이르기까지는 거창이지만, 넘어서부터는 함양이다. 거창 쪽 계곡도 아름답지만 함양 쪽 계곡도 빼어나다. 이 계곡은 용추계곡으로 이어지고 중간에는 용추폭포도 있다. 계단을 이루고 인공적으로 만든 작은 소(沼)가 몇 개 만들어져 있다. 물이 가득 차 넘쳐흐르는 모습이 시원스럽다. 아직까지 물이 찰 것 같지만 몇 사람이 발을 담그고 물놀이를 하고 있다. 

  
▲ 족두리풀 족두리풀
족두리풀

길은 계속 이어지고 녹색 숲도 끝이 없다. 숲 속, 키가 크고 잎이 무성한 나무에 흰 꽃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달고 있는 나무가 보인다. 층층나무다. 이 나무는 10~20m까지 자라고, 잎은 타원형이며, 하얀색의 꽃잎은 다발을 이루고 있다. 꽃을 피우는 화초나 나무 중에는 일반적이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 중 하나인 꽃무릇은 잎이 지고 꽃을 피우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이라고 한다. 나무에서 피는 꽃 역시 몇몇은 뚜렷한 특징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층층나무 꽃이다.   

  
▲ 층층나무 꽃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는 목련이나 벚꽃과는 달리 잎이 먼저 나고 꽃을 피우는 층층나무 꽃.
층층나무 꽃

벚꽃나무나 목련은 꽃을 먼저 피우고 잎이 나는 반면, 층층나무는 잎이 난 후 꽃을 피운다. 층층나무는 늦봄에 꽃을 피우는데, 이 꽃이 핀다는 것은 여름이 시작되고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했다는 것. 잎은 쌀가루 반죽을 해 기름에 튀겨 먹을 수도 있는데, 절에서는 초파일날 이 음식을 부처님 앞에 올렸다고도 전한다. 특히, 팔만대장경은 자작나무나 산벚나무 등으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드물게는 고로쇠나무를 비롯하여 이 층층나무를 경판용으로 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문 실정이다. 그래서 이 나무는 불교와도 깊은 사연이 있다고 알려진 나무다. 

  
▲ 단풍나무 길 함양군 안의면 용추사로 가는 길 옆으로는 붉은 단풍나무가 여행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뒤로는 기백산이 보인다.
단풍나무

걸어서 가야만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녹색 숲길, 비록 차량으로 지나왔지만 그래도 진한 녹색 향기를 맡을 수 있어 좋았다. 거창 월성리에서 시작한 길은 능선 주차장까지 5.1㎞, 다시 이곳에서 용추사 입구 주차장까지 5.9㎞, 총 11㎞의 거리다. 용추사를 뒤로하고 용추계곡을 빠져나와 안의까지 달리는 도로변은 붉은 잎 단풍나무가 초여름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옛 이름이 지우산(智雨山)인 기백산(해발 1,331m, 箕白山)은 웅장한 모습으로 계절에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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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 북상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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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 대신 안개꽃 보며 오른 황매산 등산길
  
▲ 정자 황매산 철쭉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황매산 철쭉

봄은 사람을 유혹하여 집 밖으로 불러내는 마법을 가졌나보다.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산과 바다에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로 넘친다. 특히, 축제가 열리는 곳이나 이름이 잘 알려진 곳은 북새통을 이루기 일쑤.  

봄이라지만 초여름이다. 산은 녹색물결을 이루고 꽃은 색깔을 더욱 진하게 물들이고 있다. 5월을 상징하는 철쭉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한창이다. 경남지방에서 철쭉이 군락을 이루는 곳은 황매산. 해발 1,108m의 이 산은 산청과 합천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있고, 산의 세 봉우리가 매화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황매산영화주제공원 정상에서 내려다 본 산청 쪽 황매산영화주제공원.
황매산영화주제공원

한 달에 한번 휴가를 권장하는 직장 분위기로 특별휴가를 낸 20일. 선 분홍 철쭉을 구경하러 황매산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주말과 휴일을 피해 일부러 평일에 휴가를 낸 것. 황매산을 가기 위해서는 산청군 차황면과 합천군 가회면 방향의 두 곳 중 한 곳을 택해야만 한다.  

차황면은 황매산영화주제공원이 있는 곳으로 영화 '단적비연수'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35번 고속국도 산청 나들목을 나와 약 18㎞ 거리에 이르면 황매산 들머리에 들 수 있지만, 이보다 약 12㎞를 더 둘러 합천 가회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산청 쪽은 몇 해 전 와 봤던 터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었기에. 역시 선택은 잘했다는 생각이다. 똑 같은 산과 들이지만 처음 맞이하는 새로움이란 즐거움이 있었기에.  

  
▲ 깃발 황매산 중턱에 펄럭이는 깃발. 에베레스트 산 입구에 나부끼는 깃발이 연상된다.
깃발

물이 많이 빠진 합천댐은 황톳빛 속살을 드러내고 있지만, 여름이 오면 이내 수줍은 속살도 감추게 될 것이리라. 중간 중간 드러난 작은 섬, 저 언덕은 이곳에 뿌리내려 살았던 옛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 옴을 느낀다. 나 역시도 태어난 집과 삶의 생명인 논과 밭을 조국근대화(?)를 위한 명분으로 다 내어주고 쫓겨나다시피 한 이주민이기에. 이런 모습에서 동병상린의 아픔을 느꼈다고 말하면, 너무 거창하고 호들갑 피운다고 할까?

가슴에 평생을 안고 살아가는 아픔이 있다면,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아픔을 쉽게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여행이란 머릿속에 지워진 낡은 흑백필름을 천연색으로 재생시켜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합천댐이 세계 최대의 조선소가 들어선 내 고향 거제를 기억해 내게 한다. 

  
▲ 억새 황매산 평원에는 억새가 만발이다.
억새

  
▲ 황매산 정상이라고 보여지는 저 봉우리를 넘어서면 또 다른 봉우리가 있는데, 거기가 해발 1,108m 황매산 정상이다.
황매산

합천댐 주변 회양삼거리에서 1089번 지방도를 따라 조금 지나니 황매산 만남의 광장이 나오고, 곧 이어 황매산 들머리인 입구다. 잘 닦여진 꼬불꼬불한 길은 경사를 오르게 한다. 등산복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팡이를 짚고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힘겹게 옮겨 놓는다. 정상부에 다다르자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고원이 넓게 펼쳐져 있다. 키 큰 나무라곤 볼 수도 없다. 억새와 철쭉만이 평원을 지키고 있는 파수꾼이다. 

평일인데도 넓은 주차장은 차량들로 넘쳐난다. 빈 배를 국밥 한 그릇으로 채웠다. 자욱한 안개는 선 분홍빛 철쭉을 보여주지 않는다. 산인지 평야인지 구분이 안가는 넓은 땅은 차가 교차할 수 있는 넓은 노란색 포장길을 만들어 놓았다. 왜, 꼭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차라리 걷기 좋은 푹신한 흙길이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얼마를 걸었을까, 산 중턱에 올라섰다. 능선 좌우로 넓게 확 트인 고원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다. 군데군데 군락 지은 철쭉은 붉디붉은 선 분홍빛을 볼 수가 없다. 너무 늦게 온 탓일까, 벌써 꽃잎은 떨어지고 꽃 수술대 몇 개만 붙어 있는 철쭉 모습이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걸었다. 

  
▲ 황매산으로 오르는 길 황매산으로 오르는 길은 나무 데크로 잘 만들어져 있어 걷는 즐거움이 있어 좋다.
황매산

나무로 만든 데크는 걷기에 편해 좋았다. 경사진 계단을 오를 때는 계단 수를 세는 습관이 있어 세어보기로 했다. 하나, 둘, 셋... 백 개가 넘어가면 손가락 하나를 접었다. 내려오는 사람과 부딪힐라치면, 순간 숫자가 생각나지 않는다. 한참을 올라 산 아래를 내려 보니 가슴이 확 트인다. 사진에 보는 붉은 철쭉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산을 오르는 즐거움으로 대신할 수밖에. 

목에는 제법 무게가 나가는 카메라를 멨다. 걸을 때 마다 좌우로 출렁거려 중심 잡기가 어렵다. 걷기 편하도록 가지고 간 지팡이는 오히려 짐이다. 눈이 부시어 쓴 선그라스는 흐르는 땀에 미끄러져 콧등을 벗어난다. 많은 등산객이 교차하는 곳에서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양손을 이용해야만 하는 바위를 오를 때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대략 난감이다. 안전사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다음부턴 작은 가방이라도 준비해서 등에 메야 할 것 같다. 

  
▲ 황매산 철쭉 황매산 드넓은 고원에 철쭉꽃이 붉은빛 물결을 이루고 있다.
황매산 철쭉

산중턱에 올라섰다. 아래에서 볼 때 이곳이 정상인줄 알았는데, 그 너머로 더 높은 봉우리가 또 하나 있다. 거기가 정상인 모양이다. 눈으로 볼 때, 그래도 제법 더 가야할 판. 맥이 풀린다. 한 숨을 몰아쉬고 또 힘을 내야만 했다. 체력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느낀다. 쉽게 하는 말이지만, 지나가는 등산객이 쏟아 내는 말도 비슷하다. 일 년 전과 오늘이 다르다고. 녹색 잎 사이로 철쭉은 활짝 펴 있다. 산 아래보다는 그래도 색깔은 더욱 선명한 붉은빛이다. 아기 얼굴에 흑점이 군데군데 있는 모습을 한 꽃잎은 예쁘기만 하다. 사마귀 머리를 닮은 암수 수술대는 머리를 치켜들고 세상 밖 구경이나 하는 모습으로 내밀고 있다. 

  
▲ 황매산 안개 황매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 왼편은 합천 쪽이고, 오른편은 산청 쪽. 산청에서 부는 바람으로 합천에서 인 안개가 산 능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황매산 안개

힘겹게 정상에 올랐다. 바람이라도 시원하게 불었으면 하는데, 몸을 식혀 줄 바람은 외출이라도 나갔나 보다. 산 아래를 보니 합천 쪽에서 인 안개가 산청 쪽 산등성이에 머물러 있다. 산청 쪽 바람이 합천 쪽 안개를 밀어내고 있는 모습이다. 며칠만이라도 좀 더 일찍 왔으면, 철쭉꽃 물결의 장관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땀은 온 몸을 적시고 갈증은 진한 목마름을 느끼게 한다. 물건을 파는 듯한 사람이 있어 물어보니, 물은 없고 아이스바만 있단다. 하나 사서 먹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몇 사람이 나무그늘에 쉬면서 물을 마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가가 체면불구하고 구원을 요청하니 흔쾌히 물병을 내 준다. 미안하고 쑥스럽기까지 하다. 멋쩍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한마디 했다.  

"제가 절에 다니는데, 다음에 절에 가면 이 고마움을 여러분에게 복이 돌아가도록 기도 해 드리겠습니다." 

  
▲ 여행객 힘들게 올랐던 황매산 정상에서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신 고마움에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다. 한국도로공사 단성영업소 마실기획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밝은 모습이다.
황매산

황매산 표지석에 있는 정상 바위에서 한동안 쉬며 사방팔방으로 사진을 찍었다. 정상에서 제법 시간을 보내며 사홍서원(모든 보살의 네 가지 큰 서원.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모든 번뇌를 끊고, 모든 가르침을 배우고, 불도를 이루는 것)을 기도했다. 바위 아래로 내려가자 물을 얻어 마셨던 단체 여행객이 아직 쉬고 있다. 또 다시 다가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한국도로공사 단성영업소 마실기획 직원들이란다. 이어 기념사진도 한 장 찍어주겠다고 하니 모두 일어서 자리를 이동하고 포즈를 잡는다. 찰깍하고 작별인사를 하며 하산길이다. 

  
▲ 철쭉꽃 아기 얼굴에 흑점이 군데군데 있는 모습을 한 꽃잎은 예쁘기만 하다. 사마귀 머리를 닮은 암수 수술대는 머리를 치켜들고 세상 밖 구경이나 하는 모습으로 내밀고 있다.
황매산 철쭉

올라왔던 길을 똑 같이 내려가는 터라, 나무계단에서 또 다시 숫자를 세어보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 올 때 보다 힘이 덜 들어서인지 비교적 숫자 기억도 쉽다. 모두 583개. 그런데 올라 올 땐 564개라고 핸드폰에 저장돼 있다. 이렇게도 많이 차이가 날까 하는 의문이다. 하기야 어떤 여행객은, 4백 9십 몇 개라는 말을 하는 것도 들었다. 숫자가 뭐 그리 중요할까, 모두 내 마음의 문제란 생각이다. 

산중턱에 자리한 기와지붕의 정자는 고즈넉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안개가 지붕을 살짝 넘나들며 춤추는 모습은 정말 고요하고 아늑한 자태다. 철쭉 꽃 숲길을 지나니 평평한 산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묵상하며 걸었다. 사진에서 보는 화려한 철쭉 군락을 보지는 못했지만, 나름 의미 있는 하루의 휴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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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 차황면 | 황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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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와 한방약초에 푹 빠지다

푸름이 넘쳐나는 5월, 식물은 푸름을 더해가며 세상을 더욱 살찌게 만들고, 살아있는 생명체는 새 생명을 잉태하는 건강한 계절이다. 어린이날인 5일. 자식도 훌쩍 커 성인이 돼 버린 탓에 아이 손잡고 공원을 거닐며 놀이기구를 타 볼 일도 없다. 편안한 마음으로 '한방약초축제'가 열리는 산청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내내 많은 차로 혼잡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예상은 꼭 맞아 떨어졌다. 산청 나들목을 빠져 나오니 긴 꼬리를 문 차량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축제장소인 운동장으로 가는 또 다른 길을 아는 터라 차를 돌렸지만, 운동장 입구부터는 더 나아갈 수 없다. 지루한 시간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차 안에서 바깥 풍경에 취했다. 경호강 옆 작은 언덕 숲 속에선 하늘을 향해 쉼 없이 하얀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다. 시원하다. 오가는 사람 구경, 밀리는 차 구경을 뒤로하며 차를 돌렸다. 복잡한 곳과 기다리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탓이리. 

  
▲ 철쭉 붉고 하얀 철쭉 꽃 뒤로 멀리 좌측으로 철쭉 군락지인 황매산이 보인다.
철쭉

함양 상림 숲에나 가볼 요량으로 60번 국가지원지방도를 따라 가다보니 '동의보감촌'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업무든 놀이든 산청을 많이 다녔건만 이런 데가 있었나 싶었고, 그러면 차라리 이곳에 한번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장에서 약 6㎞를 달려 도착한 곳은 산청한의학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곳은 산청한방테마촌으로 '2013년 산청 세계전통의약엑스포' 개최 장소이기도 하다. 한의약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이 엑스포는 2013년 9월 10일부터 40일간 열린다고 한다. 

진분홍 철쭉이 붉은 미소로 나그네를 맞이한다. 많은 여행객이 붐비지만 주차장도 넓고, 터가 워낙 넓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지리산은 깊은 계곡과 골짜기로 뭇 생명이 살아 숨쉬는 자연의 보물창고다.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한 환경에서 자연의 경외감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곳이요, 죽어가는 생명을 치료하는 곳이다. 그러니 지리산에 나고 지는 풀 한 포기, 나뭇잎사귀 하나, 열매 한 개, 뿌리 한 줄기 그리고 나무껍질은 약재가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다. 

  
▲ 공원 산청한의학박물관 바깥으로는 공원이 아름답게 조성돼 있다.
산청한의학박물관

산청한의학박물관은 전통의학실과 약초전시실로 나뉘어져 있다. 전통의학실은 한의학의 역사와 발전 과정, 전통요법소개, 한의학의 우수성과 직접 체험해보는 한의학으로 구분돼 있다. 약초전시실은 역사와 분류, 약초 알아보기, 약초의 고장 소개 등으로 꾸며져 있다. 

1층으로 들어서자 좌측 한 공간에 2011 찾아가는 도립미술관 '치유하는 풍경 전'이 열리고 있다.  

"자연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를 의미한다.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은 반면 치유의 의미도 내재되어 있다. 지리산이 품고 있는 산청은 아름다운 산, 계곡, 그 속에 치유의 능력을 품고 있는 약초, 그리고 명의 유의태, 이처럼 산청은 스스로 치유하고 인간을 치유하는 잠재적 능력을 가진 신비한 고장일 것이다." 

안내문에는 위와 같이 적혀 있다. 산청한방약초축제 곁 손님으로 미술전시회를 통하여 자연과 약초와 산청을 돋보이게 하는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인다. 

  
▲ 한방치료 산청한의학박물관 내부에 한방치료를 하는 모습이 전시돼 있다.
산청한의학박물관

은은한 조명아래 잘 꾸며진 한방을 소개하는 공간은 예부터 많이 보아온 인상적인 모습이다. 한의사가 누운 환자를 진맥하고, 침을 놓는다. 손질한 한약 재료는 봉지에 담아 습기에 차지 않도록 천장에 매달아 잘 보관해야만 한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약봉지를 풀어 약단지에 넣고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약을 달인다. 노력과 지극한 정성이 들어간 보약을 먹은 사람은 자연으로 다시 돌아 갈 것이 틀림없다. 

2층으로 올라가자 역시 은은한 조명아래 옛 마을이 잘 꾸며져 있다. 위엄을 뽐내는 듯한 대궐 같은 집 옆에는 볼품없는 초라한 초가집이 있다. 내가 살던 옛 집의 모습이지만, 그래도 정감이 간다. 시골장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온갖 약재를 파는 모습도, 물건을 흥정하는 사람도 보인다. 짧게는 십여 년, 길게는 이십여 년 전의 장면을 이 곳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 불노문 산청한의학박물관 입구에 서 있는 불노문. 뒤쪽 현판에는 장생문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다.
불노문

나는 어떤 체질일까? 그러면 어떤 음식을 먹어야 좋을까? 좋은 약초는 뭘까? 한방에서는 크게 소양인, 소음인, 태음인 그리고 태양인으로 나눠 체질에 맞는 치료를 한다. 먼저, 소양인(少陽人)의 체질은 비대(脾大) 신소(腎小)하며, 굳세고 날랜 장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비뇨기 생식기 기능이 약하다.  

더운 음식보다는 찬 음식을 좋아하며, 음식을 빨리 먹는 경향이 있다. 약초로는 영지, 산수유, 구기자, 강활이 좋다. 소음인(少陰人)은 신대(腎大) 비소(脾小)하며, 엉덩이가 크고 앉은 자세가 크나 가슴둘레를 싸고 있는 자세가 외롭게 보이고 약하다. 더운 음식을 좋아하며 맛있는 것을 골라 먹는 경향이 있다. 음식은 대체로 늦게 먹는 편. 약초로는 익모초, 용담초, 적작약이 좋다. 

  
▲ 정화수 정화수 긷는 소녀
정화수

태양인(太陽人)은 폐가 크고 간이 작으며 가슴 윗부분이 발달한 체형이다. 목덜미가 굵고 실하며 머리가 크다. 대체로 냉랭한 음식을 좋아하며, 특히 담백한 음식을 좋아한다. 약초로는 가시오가피, 앵두나무, 시호 등이 좋다. 태음인(太陰人)은 간이 크고 폐가 작으며 허리 부위의 형세가 성장하여 서 있는 자세가 굳건하다. 반면에 목덜미 기세가 약하다. 식성이 좋아 대식가가 많으며 폭음, 폭식하는 경향이 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석창포, 백선피, 천마 등이 좋은 약초로 알려져 있다.  

평소 야생화와 약초에 관심이 많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전시관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발길을 옮기기는 더욱 어렵다. 설명문과 약초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다. 전시관이라 플래시 사용을 하지 않고 저속으로 촬영하며 기록을 남겼다. 약초에 대한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 전망대 곰 머리부분을 형상화한 전망대. 이 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참으로 아름답다. 멀리 좌측으로 철쭉 군락지인 황매산이 보인다.
전망대

잎을 쓰는 약초로는 질경이, 이질풀, 익모초, 애기똥풀, 차조기, 약모밀이 있다. 열매로는 오미자, 산딸기, 탱자나무, 머루, 구기자, 산수유, 익모초씨, 은행열매가 있다. 꽃이나 꽃가루를 쓰는 약초로는 매화꽃, 벚꽃, 인동꽃, 살구꽃, 홍화, 연꽃 등이 있다. 뿌리로는 도라지, 오이풀, 잔대뿌리, 더덕, 하수오, 만삼, 당귀가 있다. 껍질로 쓰는 약초로는 뽕나무껍질, 느릅나무, 멀구슬나무가 있다.  

이 밖에도 독초를 감별하는 법, 토종약초와 수입약초 구별하기, 모양이 비슷한 약초 알기 등 많은 정보가 사람들을 붙잡아 놓는다. 실제로 독초를 약초로 오인해 캐서 먹다 병원에 실려 가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하다. 독초 감별하기에서는 '이런 풀 사용할 때 주의하세요!'에 미치광이풀, 독말풀, 투구꽃을 소개하면서 약초로도 이용하지만 사용할 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 약초 갖가지 약초들. 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엉겅퀴, 등골나물, 곰취, 톱풀, 복수초, 노루귀, 풀솜대, 무릇.
약초

약초를 뿌리, 줄기, 잎 그리고 꽃 형태를 통째로 건조시켜 전시한 공간에는 식물의 특성을 알 수 있어 볼 만하다. 그동안 많이 접해 왔던, 생소하지 않은 들녘에 나는 풀이지만, 이 모든 풀이 약초로 쓰인다니. 74종류의 약초가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듯 형광 불빛에 몸을 드러내 놓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금낭화와 할미꽃은 꽃잎을 그대로 달고 있다. 또 다른 공간에는 야생화 전시장이 있다. 쥐오줌풀, 뿌리에서 쥐 오줌 냄새가 난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이름과는 달리 예쁘기만 하다. 5~8월경 줄기 끝에서 무리지어 피는 이 꽃은 지금 당장 분홍빛 꽃을 터뜨릴 태세다.  

  
▲ 쥐오줌풀꽃 뿌리에서 쥐 오줌 냄새가 난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이름과는 달리 예쁘기만 하다. 5~8월경 줄기 끝에서 무리지어 피는 이 꽃은 지금 당장 분홍빛 꽃을 터뜨릴 태세다.
쥐오줌풀

전시관에서 시간 반을 훌쩍 넘겼다. 그만큼 볼거리도, 공부거리도 많았다는 것. 밖으로 나오니 뜨거운 햇살이 쏟아진다. 철쭉꽃으로 유명한 황매산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붉은 철쭉 빛은 보이지 않는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모아 이른 새벽 처음 긷는 물이라는 정화수. 작은 연못에 효성이 지극한 소녀가 물을 긷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만, 요즘에도 저런 지극 정성한 소녀가 있을까 묻는다면, 내가 부정적이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까? 

큰 이빨을 드러내고 머리만 있는 거대한 곰 조각상이 있는데,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싱가포르에 있는 '머라이언상'을 닮은 모습이다. 입안으로 들어가 내려다보는 경치는 정말로 아름답다. 분수광장의 분수대는 하늘을 향해 물을 뿜어내고 있다. 열두 동물을 조각한 십이지 상에서도 물을 뿜는다. 분수대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아이는 옷이 흠뻑 젖었지만,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 분수광장 분수광장에서 시원한 물을 뿜어내고 있다.
분수광장

관람을 마치고 약초 판매장에 들렀다. 두통, 중풍(뇌졸증), 불면증, 고혈압, 우울증 등 질환에 불가사의하다 할 만큼 효력을 발휘한다는 천마. 일반 약재보다 비싸다는 천마를 한 봉지에 3만원에 샀다. 곱게 단청을 한 기와지붕의 큰 문 현판에는 '불노문(不老門)'이라 쓰여 있고, 반대편에는 '장생문(長生門)'이라 쓰여 있다. 중국 땅을 통일한 중국 최초의 진 시황제. 불로불사를 꿈 꿨던 최고의 권력자였지만, 불과 49년 그 꿈은 오래가지 못하고 접어야만 했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 한방약초축제 산청 한방약초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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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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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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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고 달려온 33년의 세월, 산행에서 배운 인생이야기
 
  
▲ 정열 붉게 타는 단풍잎이 정열을 뿜고 있다. 인생도 저렇게 정열을 뿜으며 살고 싶다.
정열

한 해로 친다면, 새해 초 꿈과 희망을 가득 실은 배는 항구에 정박할 시간이건만, 무슨 연유인지, 급하게 서두르는 마음 하나는 긴 항해를 위해 떠나는 마지막 배를 타려는 듯, 몹시 서두르고 있다.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긴 고동소리. 다급함은 몸과 마음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날 동창들을 보고 싶은 설렘 때문일까. 

고교시절. 그 당시는 우리나라 대부분이 시골이었지만, 시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창과 헤어진 지 33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이다. 얼굴엔 듬성듬성 여드름이 나 있었고, 세련미라고 볼 수 없었던 촌티 나는 모습이 내 머릿속에 추억으로 남은 동창들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껏 같은 동네에 살고, 그 동안 가끔 만나온 동창들은 정반대로 새로운 이미지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 가을단풍 떨어지는 가을단풍이 내 소매를 붙잡고 있다.
가을단풍

가을이 한창 떨어지고 있는 11월 셋째 주 일요일(16일). 마산 무학산 입구 서원곡 주차장은 마지막 가을 산행을 하기 위한 등산객들로 붐볐다. 대형버스를 타고 간 일행을 보태니 꽉 차는 분위기다. 시끌벅적한 시골장터가 따로 없다. 한 세월 보지 못한 여자 동창들은 끼리끼리 부둥켜안고, 발을 구르며 난리법석이다.  

남자들은 어깨를 가벼이 포옹하며 고교시절의 얼굴을 기억해 내려한다. 그런데 남자동창들은 그럭저럭 알 것만 같기도 한데, 여자동창 몇 명은 얼굴도, 이름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난감했지만, 여자동창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잠시나마 반가움은 식을 줄 몰랐고, 인사 나누는 데만 한참 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각자의 개성 있는 얼굴모습에서  그간 앞만 보고 최선을 다해 살아온 장편의 인생역정 드라마를 볼 수 있었고, 삶의 형체를 찾을 수 있었다. 

  
▲ 인생의 산행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여력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의 모습이다.
인생

그렇게 산행은 시작되었다. 십여 분 지났을까, 급경사의 시멘트 포장길을 오르는 데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여력도, 없었다. 힘에 부쳐 앞만 보고 걸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그야말로 진지한 삶의 모습과 똑 같다. 산을 오름에 있어, 그것도 정상에 이르기까지 한 순간도 힘들지 않는 시간은 없다. 그래서 산에서 삶을 알고 인생 공부를 한다고 했던가. 

힘든 시간이지만, 등산길 옆으로는 좋은 글귀의 팻말이 몇 개 서 있다. 꼭, 등산객들에게 교육 시킬 요량인 것만 같다. 좋은 말이다. 저렇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어디 그렇게 쉽게 될 일인가. 그래도 가슴에 새겨 어려울 때 한번쯤 자신을 뒤돌아보리라는 생각이다. 

자기를 이기는 것이 가장 어진 것

그러므로 그를 사람 중의 왕이라 하네

생각을 다스리고 몸을 길들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를 이루나니

(법구경에서)

 

  
▲ 동창 억새무리가 마산만을 내려다보며 제각각 하늘거리고 있다. 멀리 마창대교가 희미하게 보인다.
억새

육십여 명이 한꺼번에 출발했지만, 힘에 부쳐 간격도 멀어지고, 삼삼오오 짝을 이뤄 대오가 흩어진다. 산 중턱 하나에 올라서니, 멀리 꼭대기가 보인다. 저기가 정상이라면, 삼십여 분만에 오를 것만 같다. 하산하는 사람들에게 정상이 얼마치 남았냐고 묻지도 않았다.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있는 힘을 다해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상이라 생각했던 그곳에 올라서니, 저 멀리 학의 형상을 한 무학산 정상(해발 761.4m)이 보였다. 허탈했다. 절친한 친구에게 속은 느낌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것이 인생이며, 산행이다. 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산을 전문으로 다니는 사람들이야 별로 높지 않다고 하겠지만, 산의 높이로만 친다면, 해발의 시작점이 수면과 별 차이가 없는 터라, 내륙의 일천 미터 급의 산과 비슷하다 할 수 있으며, 그리 만만히 볼 산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산행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도 나눌 법도 한데, 힘이 드니 말할 기운도 없고, 조용히 사색하며 혼자 걷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  

  
▲ 인생역정 제몫을 다하고 떨어져 편안히 쉬고 있는 잎사귀.
인생역정

노랗게 물들어 아직도 떨어지지 않고, 힘겹게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잎사귀 하나는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떨어질 것만 같이 위태위태하다. 땅바닥에 벌써 떨어져 나뒹구는, 그래도 형체만이라도 원형대로 갖춘 낙엽은 편안하게 쉬고 있다. 사람들의 발에 밟혀 산산조각 부서져, 다른 나무의 밑거름이 될 낙엽 부스러기는 희생의 또 다른 모습이다. 계속되는 가뭄에도 소나무 밑동에 새파랗게 난 이끼와 갈바람에 이리저리 뒤척이는 억새에서 인생 산행을 경험하고 있다. 

  
▲ 무학산 멀리 철탑이 있는 곳이 해발 761.4미터의 무학산 정상이고, 365 건강계단이 보이며, 아래 평평한 곳은 서마지기터다.
무학산

이것저것 사색하며, 마침내 눈앞으로 정상이 보이는 중턱에 올라섰다. 아래로는 널따란 평지가 보인다. 농토 서마지기 크기의 서마지기 터다. 정상까지는 나무 계단이 설치돼 있고, 건강계단이라 이름 붙여 놓았다. 마음속으로 계단을 세어 봤으나, 이내 그만뒀다. 계단 사이에 숫자가 표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계단을 오르며 마음속으로 자신이 세어 보면 좋으련만, 내가 할 일을 남이 해 준 것만 같아 씁쓸한 기분이다. 꼭대기까지 365계단이다. 일 년 동안 내내 걷고 또 걸으며 건강하게 살라는 의미일까. 

  
▲ 365건강계단 서마지기에서 정상까지 이르는데 설치해 놓은 365개의 나무계단. 365일 내내 건강하게 살라는 의미일까.
365건강계단

먼저 도착한 동창 네 명이 충무김밥을 먹고 있다. 산행에 있어 충무김밥은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간편하기도 하지만, 맛도 일품이다. 귤도 마찬가지. 귤의 수분은 목마름을 채워주고 단맛은 피로감을 없애준다. 힘든 산행 끝에 먹는 김밥과 귤 맛은 산행에 있어 갖추어야 할 필수품. 시간이 제법 흘렀다. 정상의 넓은 터에는 하나 둘씩 동창들이 모여들었다. 산행 중 나누지 못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기념 촬영은 기본. 사람 스무 명이 모이면, 틔는 사람이 꼭 한 사람 있다고 했던가. 한 동창이 틔고 싶은 모양이다. 

  
▲ 정상탈환 거제 해성고등학교 23회 졸업생이 33년만에 정상을 탈환했다. 사람 스무명이 모이면 틔는 사람이 꼭 있다고 했던가. 앞자리에 앉은 그는 이날 반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정상탈환

마산만을 내려다보는 무학산은 태극기를 머리에 이고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전쟁터에서 꼭 진지를 탈환한 것만 같다. 무명용사들이 아니라 거제 해성고등학교 23회 졸업생들이다. 그런데 고지를 탈환한 동창은 출발할 때 인원의 반이 조금 넘을 뿐이다.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중에 연유를 물으니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정상을 올랐으니, 하산을 아니 할 수는 없다. 언제나, 정상에 머무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산 길은 쉬우리라 생각했건만, 오르는 것 못지않게 힘들다. 경사진 곳, 두 다리에 버티는 힘이 더욱 필요하다. 

  
▲ 행복 김해에서 왔다는 유진(10), 경진(6)과 아빠엄마. 아이들은 네살때부터 산을 올랐고, 매주 한번 정도 가족끼리 가까운 산을 찾는다는 이 가족은 행복을 가득안고 산을 내려오고 있다.
행복

예쁜 여자 아이와 남동생 그리고 아빠엄마 한 가족이 행복을 가득안고 산을 내려가고 있다. 김해에서 왔다는 이 가족은 매주 한번 정도 가까운 산을 다니며, 딸 아들 모두 네 살 때부터 산을 다녔다고 한다. 어릴 적, 힘들 때는 어깨에 태워 산행을 했지만, 이제는 제힘으로 다닌다고 하니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든단다. 세 살배기 아들을 목말 태워 산을 올랐던 추억이 순간 떠올라 잠시 머뭇거렸다. 지금, 그 녀석은 최전방에서 제대를 얼마 남겨 두고 있지 않은 군인으로 근무하고 있다. 

  
▲ 만추 하산길에 만난 만추.
만추

무학산, 두 시간을 올랐고, 한 시간을 내려왔다. 정상을 오르는 것은 두 배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이미, 정상을 밟은 동창도 있지만, 아직도 7~9부 능선을 오르는 동창들도 많다. 모두들 제자리에서 정상의 고지를 탈환하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정상이 꼭 인생의 목표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 실제 산행에 있어서도, 많은 동창들이 정상에 오르지 않았거나 못했다. 그들 나름의 이유와 사정은 있으리라.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도 산을 오르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다. 

앞만 보며 산을 오르고, 화려한 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단풍을 보며, 잎사귀 지는 가을에서, 33년 만에 만난 동창들과 함께 인생의 산행을 한 소중한 하루였다. 마지막 가는 가을. 다시, 인생의 험한 항로를 여행할 배는 긴 고동소리로 소매를 붙잡고 있는 나를 재촉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거제도에 있는 해성고등학교 23회 동창들을 33년 만에 만나게 해 준 회장단과 멀리 서울에서, 부산에서 온 동창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특히, 황성부 동창에게는 감사의 메시지를 별도로 전합니다. 그는 함안에서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화합의 한판인 뒤풀이도 깔끔하게 마무리한 신사랍니다. 동창들에게 해 온 그의 남다른 정을 본다면,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내내 건승하심을 빌어봅니다. 그리고 산행 중에 만난 예쁜 아이 아빠가 이 글을 보고 연락주시면 원본 사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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