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쭉 대신 안개꽃 보며 오른 황매산 등산길
  
▲ 정자 황매산 철쭉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황매산 철쭉

봄은 사람을 유혹하여 집 밖으로 불러내는 마법을 가졌나보다.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산과 바다에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로 넘친다. 특히, 축제가 열리는 곳이나 이름이 잘 알려진 곳은 북새통을 이루기 일쑤.  

봄이라지만 초여름이다. 산은 녹색물결을 이루고 꽃은 색깔을 더욱 진하게 물들이고 있다. 5월을 상징하는 철쭉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한창이다. 경남지방에서 철쭉이 군락을 이루는 곳은 황매산. 해발 1,108m의 이 산은 산청과 합천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있고, 산의 세 봉우리가 매화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황매산영화주제공원 정상에서 내려다 본 산청 쪽 황매산영화주제공원.
황매산영화주제공원

한 달에 한번 휴가를 권장하는 직장 분위기로 특별휴가를 낸 20일. 선 분홍 철쭉을 구경하러 황매산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주말과 휴일을 피해 일부러 평일에 휴가를 낸 것. 황매산을 가기 위해서는 산청군 차황면과 합천군 가회면 방향의 두 곳 중 한 곳을 택해야만 한다.  

차황면은 황매산영화주제공원이 있는 곳으로 영화 '단적비연수'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35번 고속국도 산청 나들목을 나와 약 18㎞ 거리에 이르면 황매산 들머리에 들 수 있지만, 이보다 약 12㎞를 더 둘러 합천 가회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산청 쪽은 몇 해 전 와 봤던 터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었기에. 역시 선택은 잘했다는 생각이다. 똑 같은 산과 들이지만 처음 맞이하는 새로움이란 즐거움이 있었기에.  

  
▲ 깃발 황매산 중턱에 펄럭이는 깃발. 에베레스트 산 입구에 나부끼는 깃발이 연상된다.
깃발

물이 많이 빠진 합천댐은 황톳빛 속살을 드러내고 있지만, 여름이 오면 이내 수줍은 속살도 감추게 될 것이리라. 중간 중간 드러난 작은 섬, 저 언덕은 이곳에 뿌리내려 살았던 옛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 옴을 느낀다. 나 역시도 태어난 집과 삶의 생명인 논과 밭을 조국근대화(?)를 위한 명분으로 다 내어주고 쫓겨나다시피 한 이주민이기에. 이런 모습에서 동병상린의 아픔을 느꼈다고 말하면, 너무 거창하고 호들갑 피운다고 할까?

가슴에 평생을 안고 살아가는 아픔이 있다면,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아픔을 쉽게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여행이란 머릿속에 지워진 낡은 흑백필름을 천연색으로 재생시켜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합천댐이 세계 최대의 조선소가 들어선 내 고향 거제를 기억해 내게 한다. 

  
▲ 억새 황매산 평원에는 억새가 만발이다.
억새

  
▲ 황매산 정상이라고 보여지는 저 봉우리를 넘어서면 또 다른 봉우리가 있는데, 거기가 해발 1,108m 황매산 정상이다.
황매산

합천댐 주변 회양삼거리에서 1089번 지방도를 따라 조금 지나니 황매산 만남의 광장이 나오고, 곧 이어 황매산 들머리인 입구다. 잘 닦여진 꼬불꼬불한 길은 경사를 오르게 한다. 등산복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팡이를 짚고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힘겹게 옮겨 놓는다. 정상부에 다다르자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고원이 넓게 펼쳐져 있다. 키 큰 나무라곤 볼 수도 없다. 억새와 철쭉만이 평원을 지키고 있는 파수꾼이다. 

평일인데도 넓은 주차장은 차량들로 넘쳐난다. 빈 배를 국밥 한 그릇으로 채웠다. 자욱한 안개는 선 분홍빛 철쭉을 보여주지 않는다. 산인지 평야인지 구분이 안가는 넓은 땅은 차가 교차할 수 있는 넓은 노란색 포장길을 만들어 놓았다. 왜, 꼭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차라리 걷기 좋은 푹신한 흙길이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얼마를 걸었을까, 산 중턱에 올라섰다. 능선 좌우로 넓게 확 트인 고원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다. 군데군데 군락 지은 철쭉은 붉디붉은 선 분홍빛을 볼 수가 없다. 너무 늦게 온 탓일까, 벌써 꽃잎은 떨어지고 꽃 수술대 몇 개만 붙어 있는 철쭉 모습이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걸었다. 

  
▲ 황매산으로 오르는 길 황매산으로 오르는 길은 나무 데크로 잘 만들어져 있어 걷는 즐거움이 있어 좋다.
황매산

나무로 만든 데크는 걷기에 편해 좋았다. 경사진 계단을 오를 때는 계단 수를 세는 습관이 있어 세어보기로 했다. 하나, 둘, 셋... 백 개가 넘어가면 손가락 하나를 접었다. 내려오는 사람과 부딪힐라치면, 순간 숫자가 생각나지 않는다. 한참을 올라 산 아래를 내려 보니 가슴이 확 트인다. 사진에 보는 붉은 철쭉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산을 오르는 즐거움으로 대신할 수밖에. 

목에는 제법 무게가 나가는 카메라를 멨다. 걸을 때 마다 좌우로 출렁거려 중심 잡기가 어렵다. 걷기 편하도록 가지고 간 지팡이는 오히려 짐이다. 눈이 부시어 쓴 선그라스는 흐르는 땀에 미끄러져 콧등을 벗어난다. 많은 등산객이 교차하는 곳에서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양손을 이용해야만 하는 바위를 오를 때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대략 난감이다. 안전사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다음부턴 작은 가방이라도 준비해서 등에 메야 할 것 같다. 

  
▲ 황매산 철쭉 황매산 드넓은 고원에 철쭉꽃이 붉은빛 물결을 이루고 있다.
황매산 철쭉

산중턱에 올라섰다. 아래에서 볼 때 이곳이 정상인줄 알았는데, 그 너머로 더 높은 봉우리가 또 하나 있다. 거기가 정상인 모양이다. 눈으로 볼 때, 그래도 제법 더 가야할 판. 맥이 풀린다. 한 숨을 몰아쉬고 또 힘을 내야만 했다. 체력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느낀다. 쉽게 하는 말이지만, 지나가는 등산객이 쏟아 내는 말도 비슷하다. 일 년 전과 오늘이 다르다고. 녹색 잎 사이로 철쭉은 활짝 펴 있다. 산 아래보다는 그래도 색깔은 더욱 선명한 붉은빛이다. 아기 얼굴에 흑점이 군데군데 있는 모습을 한 꽃잎은 예쁘기만 하다. 사마귀 머리를 닮은 암수 수술대는 머리를 치켜들고 세상 밖 구경이나 하는 모습으로 내밀고 있다. 

  
▲ 황매산 안개 황매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 왼편은 합천 쪽이고, 오른편은 산청 쪽. 산청에서 부는 바람으로 합천에서 인 안개가 산 능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황매산 안개

힘겹게 정상에 올랐다. 바람이라도 시원하게 불었으면 하는데, 몸을 식혀 줄 바람은 외출이라도 나갔나 보다. 산 아래를 보니 합천 쪽에서 인 안개가 산청 쪽 산등성이에 머물러 있다. 산청 쪽 바람이 합천 쪽 안개를 밀어내고 있는 모습이다. 며칠만이라도 좀 더 일찍 왔으면, 철쭉꽃 물결의 장관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땀은 온 몸을 적시고 갈증은 진한 목마름을 느끼게 한다. 물건을 파는 듯한 사람이 있어 물어보니, 물은 없고 아이스바만 있단다. 하나 사서 먹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몇 사람이 나무그늘에 쉬면서 물을 마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가가 체면불구하고 구원을 요청하니 흔쾌히 물병을 내 준다. 미안하고 쑥스럽기까지 하다. 멋쩍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한마디 했다.  

"제가 절에 다니는데, 다음에 절에 가면 이 고마움을 여러분에게 복이 돌아가도록 기도 해 드리겠습니다." 

  
▲ 여행객 힘들게 올랐던 황매산 정상에서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신 고마움에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다. 한국도로공사 단성영업소 마실기획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밝은 모습이다.
황매산

황매산 표지석에 있는 정상 바위에서 한동안 쉬며 사방팔방으로 사진을 찍었다. 정상에서 제법 시간을 보내며 사홍서원(모든 보살의 네 가지 큰 서원.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모든 번뇌를 끊고, 모든 가르침을 배우고, 불도를 이루는 것)을 기도했다. 바위 아래로 내려가자 물을 얻어 마셨던 단체 여행객이 아직 쉬고 있다. 또 다시 다가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한국도로공사 단성영업소 마실기획 직원들이란다. 이어 기념사진도 한 장 찍어주겠다고 하니 모두 일어서 자리를 이동하고 포즈를 잡는다. 찰깍하고 작별인사를 하며 하산길이다. 

  
▲ 철쭉꽃 아기 얼굴에 흑점이 군데군데 있는 모습을 한 꽃잎은 예쁘기만 하다. 사마귀 머리를 닮은 암수 수술대는 머리를 치켜들고 세상 밖 구경이나 하는 모습으로 내밀고 있다.
황매산 철쭉

올라왔던 길을 똑 같이 내려가는 터라, 나무계단에서 또 다시 숫자를 세어보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 올 때 보다 힘이 덜 들어서인지 비교적 숫자 기억도 쉽다. 모두 583개. 그런데 올라 올 땐 564개라고 핸드폰에 저장돼 있다. 이렇게도 많이 차이가 날까 하는 의문이다. 하기야 어떤 여행객은, 4백 9십 몇 개라는 말을 하는 것도 들었다. 숫자가 뭐 그리 중요할까, 모두 내 마음의 문제란 생각이다. 

산중턱에 자리한 기와지붕의 정자는 고즈넉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안개가 지붕을 살짝 넘나들며 춤추는 모습은 정말 고요하고 아늑한 자태다. 철쭉 꽃 숲길을 지나니 평평한 산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묵상하며 걸었다. 사진에서 보는 화려한 철쭉 군락을 보지는 못했지만, 나름 의미 있는 하루의 휴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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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 차황면 | 황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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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와 한방약초에 푹 빠지다

푸름이 넘쳐나는 5월, 식물은 푸름을 더해가며 세상을 더욱 살찌게 만들고, 살아있는 생명체는 새 생명을 잉태하는 건강한 계절이다. 어린이날인 5일. 자식도 훌쩍 커 성인이 돼 버린 탓에 아이 손잡고 공원을 거닐며 놀이기구를 타 볼 일도 없다. 편안한 마음으로 '한방약초축제'가 열리는 산청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내내 많은 차로 혼잡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예상은 꼭 맞아 떨어졌다. 산청 나들목을 빠져 나오니 긴 꼬리를 문 차량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축제장소인 운동장으로 가는 또 다른 길을 아는 터라 차를 돌렸지만, 운동장 입구부터는 더 나아갈 수 없다. 지루한 시간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차 안에서 바깥 풍경에 취했다. 경호강 옆 작은 언덕 숲 속에선 하늘을 향해 쉼 없이 하얀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다. 시원하다. 오가는 사람 구경, 밀리는 차 구경을 뒤로하며 차를 돌렸다. 복잡한 곳과 기다리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탓이리. 

  
▲ 철쭉 붉고 하얀 철쭉 꽃 뒤로 멀리 좌측으로 철쭉 군락지인 황매산이 보인다.
철쭉

함양 상림 숲에나 가볼 요량으로 60번 국가지원지방도를 따라 가다보니 '동의보감촌'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업무든 놀이든 산청을 많이 다녔건만 이런 데가 있었나 싶었고, 그러면 차라리 이곳에 한번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장에서 약 6㎞를 달려 도착한 곳은 산청한의학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곳은 산청한방테마촌으로 '2013년 산청 세계전통의약엑스포' 개최 장소이기도 하다. 한의약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이 엑스포는 2013년 9월 10일부터 40일간 열린다고 한다. 

진분홍 철쭉이 붉은 미소로 나그네를 맞이한다. 많은 여행객이 붐비지만 주차장도 넓고, 터가 워낙 넓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지리산은 깊은 계곡과 골짜기로 뭇 생명이 살아 숨쉬는 자연의 보물창고다.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한 환경에서 자연의 경외감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곳이요, 죽어가는 생명을 치료하는 곳이다. 그러니 지리산에 나고 지는 풀 한 포기, 나뭇잎사귀 하나, 열매 한 개, 뿌리 한 줄기 그리고 나무껍질은 약재가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다. 

  
▲ 공원 산청한의학박물관 바깥으로는 공원이 아름답게 조성돼 있다.
산청한의학박물관

산청한의학박물관은 전통의학실과 약초전시실로 나뉘어져 있다. 전통의학실은 한의학의 역사와 발전 과정, 전통요법소개, 한의학의 우수성과 직접 체험해보는 한의학으로 구분돼 있다. 약초전시실은 역사와 분류, 약초 알아보기, 약초의 고장 소개 등으로 꾸며져 있다. 

1층으로 들어서자 좌측 한 공간에 2011 찾아가는 도립미술관 '치유하는 풍경 전'이 열리고 있다.  

"자연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를 의미한다.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은 반면 치유의 의미도 내재되어 있다. 지리산이 품고 있는 산청은 아름다운 산, 계곡, 그 속에 치유의 능력을 품고 있는 약초, 그리고 명의 유의태, 이처럼 산청은 스스로 치유하고 인간을 치유하는 잠재적 능력을 가진 신비한 고장일 것이다." 

안내문에는 위와 같이 적혀 있다. 산청한방약초축제 곁 손님으로 미술전시회를 통하여 자연과 약초와 산청을 돋보이게 하는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인다. 

  
▲ 한방치료 산청한의학박물관 내부에 한방치료를 하는 모습이 전시돼 있다.
산청한의학박물관

은은한 조명아래 잘 꾸며진 한방을 소개하는 공간은 예부터 많이 보아온 인상적인 모습이다. 한의사가 누운 환자를 진맥하고, 침을 놓는다. 손질한 한약 재료는 봉지에 담아 습기에 차지 않도록 천장에 매달아 잘 보관해야만 한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약봉지를 풀어 약단지에 넣고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약을 달인다. 노력과 지극한 정성이 들어간 보약을 먹은 사람은 자연으로 다시 돌아 갈 것이 틀림없다. 

2층으로 올라가자 역시 은은한 조명아래 옛 마을이 잘 꾸며져 있다. 위엄을 뽐내는 듯한 대궐 같은 집 옆에는 볼품없는 초라한 초가집이 있다. 내가 살던 옛 집의 모습이지만, 그래도 정감이 간다. 시골장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온갖 약재를 파는 모습도, 물건을 흥정하는 사람도 보인다. 짧게는 십여 년, 길게는 이십여 년 전의 장면을 이 곳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 불노문 산청한의학박물관 입구에 서 있는 불노문. 뒤쪽 현판에는 장생문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다.
불노문

나는 어떤 체질일까? 그러면 어떤 음식을 먹어야 좋을까? 좋은 약초는 뭘까? 한방에서는 크게 소양인, 소음인, 태음인 그리고 태양인으로 나눠 체질에 맞는 치료를 한다. 먼저, 소양인(少陽人)의 체질은 비대(脾大) 신소(腎小)하며, 굳세고 날랜 장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비뇨기 생식기 기능이 약하다.  

더운 음식보다는 찬 음식을 좋아하며, 음식을 빨리 먹는 경향이 있다. 약초로는 영지, 산수유, 구기자, 강활이 좋다. 소음인(少陰人)은 신대(腎大) 비소(脾小)하며, 엉덩이가 크고 앉은 자세가 크나 가슴둘레를 싸고 있는 자세가 외롭게 보이고 약하다. 더운 음식을 좋아하며 맛있는 것을 골라 먹는 경향이 있다. 음식은 대체로 늦게 먹는 편. 약초로는 익모초, 용담초, 적작약이 좋다. 

  
▲ 정화수 정화수 긷는 소녀
정화수

태양인(太陽人)은 폐가 크고 간이 작으며 가슴 윗부분이 발달한 체형이다. 목덜미가 굵고 실하며 머리가 크다. 대체로 냉랭한 음식을 좋아하며, 특히 담백한 음식을 좋아한다. 약초로는 가시오가피, 앵두나무, 시호 등이 좋다. 태음인(太陰人)은 간이 크고 폐가 작으며 허리 부위의 형세가 성장하여 서 있는 자세가 굳건하다. 반면에 목덜미 기세가 약하다. 식성이 좋아 대식가가 많으며 폭음, 폭식하는 경향이 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석창포, 백선피, 천마 등이 좋은 약초로 알려져 있다.  

평소 야생화와 약초에 관심이 많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전시관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발길을 옮기기는 더욱 어렵다. 설명문과 약초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다. 전시관이라 플래시 사용을 하지 않고 저속으로 촬영하며 기록을 남겼다. 약초에 대한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 전망대 곰 머리부분을 형상화한 전망대. 이 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참으로 아름답다. 멀리 좌측으로 철쭉 군락지인 황매산이 보인다.
전망대

잎을 쓰는 약초로는 질경이, 이질풀, 익모초, 애기똥풀, 차조기, 약모밀이 있다. 열매로는 오미자, 산딸기, 탱자나무, 머루, 구기자, 산수유, 익모초씨, 은행열매가 있다. 꽃이나 꽃가루를 쓰는 약초로는 매화꽃, 벚꽃, 인동꽃, 살구꽃, 홍화, 연꽃 등이 있다. 뿌리로는 도라지, 오이풀, 잔대뿌리, 더덕, 하수오, 만삼, 당귀가 있다. 껍질로 쓰는 약초로는 뽕나무껍질, 느릅나무, 멀구슬나무가 있다.  

이 밖에도 독초를 감별하는 법, 토종약초와 수입약초 구별하기, 모양이 비슷한 약초 알기 등 많은 정보가 사람들을 붙잡아 놓는다. 실제로 독초를 약초로 오인해 캐서 먹다 병원에 실려 가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하다. 독초 감별하기에서는 '이런 풀 사용할 때 주의하세요!'에 미치광이풀, 독말풀, 투구꽃을 소개하면서 약초로도 이용하지만 사용할 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 약초 갖가지 약초들. 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엉겅퀴, 등골나물, 곰취, 톱풀, 복수초, 노루귀, 풀솜대, 무릇.
약초

약초를 뿌리, 줄기, 잎 그리고 꽃 형태를 통째로 건조시켜 전시한 공간에는 식물의 특성을 알 수 있어 볼 만하다. 그동안 많이 접해 왔던, 생소하지 않은 들녘에 나는 풀이지만, 이 모든 풀이 약초로 쓰인다니. 74종류의 약초가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듯 형광 불빛에 몸을 드러내 놓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금낭화와 할미꽃은 꽃잎을 그대로 달고 있다. 또 다른 공간에는 야생화 전시장이 있다. 쥐오줌풀, 뿌리에서 쥐 오줌 냄새가 난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이름과는 달리 예쁘기만 하다. 5~8월경 줄기 끝에서 무리지어 피는 이 꽃은 지금 당장 분홍빛 꽃을 터뜨릴 태세다.  

  
▲ 쥐오줌풀꽃 뿌리에서 쥐 오줌 냄새가 난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이름과는 달리 예쁘기만 하다. 5~8월경 줄기 끝에서 무리지어 피는 이 꽃은 지금 당장 분홍빛 꽃을 터뜨릴 태세다.
쥐오줌풀

전시관에서 시간 반을 훌쩍 넘겼다. 그만큼 볼거리도, 공부거리도 많았다는 것. 밖으로 나오니 뜨거운 햇살이 쏟아진다. 철쭉꽃으로 유명한 황매산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붉은 철쭉 빛은 보이지 않는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모아 이른 새벽 처음 긷는 물이라는 정화수. 작은 연못에 효성이 지극한 소녀가 물을 긷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만, 요즘에도 저런 지극 정성한 소녀가 있을까 묻는다면, 내가 부정적이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까? 

큰 이빨을 드러내고 머리만 있는 거대한 곰 조각상이 있는데,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싱가포르에 있는 '머라이언상'을 닮은 모습이다. 입안으로 들어가 내려다보는 경치는 정말로 아름답다. 분수광장의 분수대는 하늘을 향해 물을 뿜어내고 있다. 열두 동물을 조각한 십이지 상에서도 물을 뿜는다. 분수대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아이는 옷이 흠뻑 젖었지만,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 분수광장 분수광장에서 시원한 물을 뿜어내고 있다.
분수광장

관람을 마치고 약초 판매장에 들렀다. 두통, 중풍(뇌졸증), 불면증, 고혈압, 우울증 등 질환에 불가사의하다 할 만큼 효력을 발휘한다는 천마. 일반 약재보다 비싸다는 천마를 한 봉지에 3만원에 샀다. 곱게 단청을 한 기와지붕의 큰 문 현판에는 '불노문(不老門)'이라 쓰여 있고, 반대편에는 '장생문(長生門)'이라 쓰여 있다. 중국 땅을 통일한 중국 최초의 진 시황제. 불로불사를 꿈 꿨던 최고의 권력자였지만, 불과 49년 그 꿈은 오래가지 못하고 접어야만 했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 한방약초축제 산청 한방약초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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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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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고 달려온 33년의 세월, 산행에서 배운 인생이야기
 
  
▲ 정열 붉게 타는 단풍잎이 정열을 뿜고 있다. 인생도 저렇게 정열을 뿜으며 살고 싶다.
정열

한 해로 친다면, 새해 초 꿈과 희망을 가득 실은 배는 항구에 정박할 시간이건만, 무슨 연유인지, 급하게 서두르는 마음 하나는 긴 항해를 위해 떠나는 마지막 배를 타려는 듯, 몹시 서두르고 있다.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긴 고동소리. 다급함은 몸과 마음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날 동창들을 보고 싶은 설렘 때문일까. 

고교시절. 그 당시는 우리나라 대부분이 시골이었지만, 시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창과 헤어진 지 33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이다. 얼굴엔 듬성듬성 여드름이 나 있었고, 세련미라고 볼 수 없었던 촌티 나는 모습이 내 머릿속에 추억으로 남은 동창들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껏 같은 동네에 살고, 그 동안 가끔 만나온 동창들은 정반대로 새로운 이미지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 가을단풍 떨어지는 가을단풍이 내 소매를 붙잡고 있다.
가을단풍

가을이 한창 떨어지고 있는 11월 셋째 주 일요일(16일). 마산 무학산 입구 서원곡 주차장은 마지막 가을 산행을 하기 위한 등산객들로 붐볐다. 대형버스를 타고 간 일행을 보태니 꽉 차는 분위기다. 시끌벅적한 시골장터가 따로 없다. 한 세월 보지 못한 여자 동창들은 끼리끼리 부둥켜안고, 발을 구르며 난리법석이다.  

남자들은 어깨를 가벼이 포옹하며 고교시절의 얼굴을 기억해 내려한다. 그런데 남자동창들은 그럭저럭 알 것만 같기도 한데, 여자동창 몇 명은 얼굴도, 이름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난감했지만, 여자동창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잠시나마 반가움은 식을 줄 몰랐고, 인사 나누는 데만 한참 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각자의 개성 있는 얼굴모습에서  그간 앞만 보고 최선을 다해 살아온 장편의 인생역정 드라마를 볼 수 있었고, 삶의 형체를 찾을 수 있었다. 

  
▲ 인생의 산행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여력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의 모습이다.
인생

그렇게 산행은 시작되었다. 십여 분 지났을까, 급경사의 시멘트 포장길을 오르는 데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여력도, 없었다. 힘에 부쳐 앞만 보고 걸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그야말로 진지한 삶의 모습과 똑 같다. 산을 오름에 있어, 그것도 정상에 이르기까지 한 순간도 힘들지 않는 시간은 없다. 그래서 산에서 삶을 알고 인생 공부를 한다고 했던가. 

힘든 시간이지만, 등산길 옆으로는 좋은 글귀의 팻말이 몇 개 서 있다. 꼭, 등산객들에게 교육 시킬 요량인 것만 같다. 좋은 말이다. 저렇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어디 그렇게 쉽게 될 일인가. 그래도 가슴에 새겨 어려울 때 한번쯤 자신을 뒤돌아보리라는 생각이다. 

자기를 이기는 것이 가장 어진 것

그러므로 그를 사람 중의 왕이라 하네

생각을 다스리고 몸을 길들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를 이루나니

(법구경에서)

 

  
▲ 동창 억새무리가 마산만을 내려다보며 제각각 하늘거리고 있다. 멀리 마창대교가 희미하게 보인다.
억새

육십여 명이 한꺼번에 출발했지만, 힘에 부쳐 간격도 멀어지고, 삼삼오오 짝을 이뤄 대오가 흩어진다. 산 중턱 하나에 올라서니, 멀리 꼭대기가 보인다. 저기가 정상이라면, 삼십여 분만에 오를 것만 같다. 하산하는 사람들에게 정상이 얼마치 남았냐고 묻지도 않았다.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있는 힘을 다해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상이라 생각했던 그곳에 올라서니, 저 멀리 학의 형상을 한 무학산 정상(해발 761.4m)이 보였다. 허탈했다. 절친한 친구에게 속은 느낌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것이 인생이며, 산행이다. 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산을 전문으로 다니는 사람들이야 별로 높지 않다고 하겠지만, 산의 높이로만 친다면, 해발의 시작점이 수면과 별 차이가 없는 터라, 내륙의 일천 미터 급의 산과 비슷하다 할 수 있으며, 그리 만만히 볼 산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산행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도 나눌 법도 한데, 힘이 드니 말할 기운도 없고, 조용히 사색하며 혼자 걷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  

  
▲ 인생역정 제몫을 다하고 떨어져 편안히 쉬고 있는 잎사귀.
인생역정

노랗게 물들어 아직도 떨어지지 않고, 힘겹게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잎사귀 하나는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떨어질 것만 같이 위태위태하다. 땅바닥에 벌써 떨어져 나뒹구는, 그래도 형체만이라도 원형대로 갖춘 낙엽은 편안하게 쉬고 있다. 사람들의 발에 밟혀 산산조각 부서져, 다른 나무의 밑거름이 될 낙엽 부스러기는 희생의 또 다른 모습이다. 계속되는 가뭄에도 소나무 밑동에 새파랗게 난 이끼와 갈바람에 이리저리 뒤척이는 억새에서 인생 산행을 경험하고 있다. 

  
▲ 무학산 멀리 철탑이 있는 곳이 해발 761.4미터의 무학산 정상이고, 365 건강계단이 보이며, 아래 평평한 곳은 서마지기터다.
무학산

이것저것 사색하며, 마침내 눈앞으로 정상이 보이는 중턱에 올라섰다. 아래로는 널따란 평지가 보인다. 농토 서마지기 크기의 서마지기 터다. 정상까지는 나무 계단이 설치돼 있고, 건강계단이라 이름 붙여 놓았다. 마음속으로 계단을 세어 봤으나, 이내 그만뒀다. 계단 사이에 숫자가 표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계단을 오르며 마음속으로 자신이 세어 보면 좋으련만, 내가 할 일을 남이 해 준 것만 같아 씁쓸한 기분이다. 꼭대기까지 365계단이다. 일 년 동안 내내 걷고 또 걸으며 건강하게 살라는 의미일까. 

  
▲ 365건강계단 서마지기에서 정상까지 이르는데 설치해 놓은 365개의 나무계단. 365일 내내 건강하게 살라는 의미일까.
365건강계단

먼저 도착한 동창 네 명이 충무김밥을 먹고 있다. 산행에 있어 충무김밥은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간편하기도 하지만, 맛도 일품이다. 귤도 마찬가지. 귤의 수분은 목마름을 채워주고 단맛은 피로감을 없애준다. 힘든 산행 끝에 먹는 김밥과 귤 맛은 산행에 있어 갖추어야 할 필수품. 시간이 제법 흘렀다. 정상의 넓은 터에는 하나 둘씩 동창들이 모여들었다. 산행 중 나누지 못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기념 촬영은 기본. 사람 스무 명이 모이면, 틔는 사람이 꼭 한 사람 있다고 했던가. 한 동창이 틔고 싶은 모양이다. 

  
▲ 정상탈환 거제 해성고등학교 23회 졸업생이 33년만에 정상을 탈환했다. 사람 스무명이 모이면 틔는 사람이 꼭 있다고 했던가. 앞자리에 앉은 그는 이날 반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정상탈환

마산만을 내려다보는 무학산은 태극기를 머리에 이고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전쟁터에서 꼭 진지를 탈환한 것만 같다. 무명용사들이 아니라 거제 해성고등학교 23회 졸업생들이다. 그런데 고지를 탈환한 동창은 출발할 때 인원의 반이 조금 넘을 뿐이다.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중에 연유를 물으니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정상을 올랐으니, 하산을 아니 할 수는 없다. 언제나, 정상에 머무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산 길은 쉬우리라 생각했건만, 오르는 것 못지않게 힘들다. 경사진 곳, 두 다리에 버티는 힘이 더욱 필요하다. 

  
▲ 행복 김해에서 왔다는 유진(10), 경진(6)과 아빠엄마. 아이들은 네살때부터 산을 올랐고, 매주 한번 정도 가족끼리 가까운 산을 찾는다는 이 가족은 행복을 가득안고 산을 내려오고 있다.
행복

예쁜 여자 아이와 남동생 그리고 아빠엄마 한 가족이 행복을 가득안고 산을 내려가고 있다. 김해에서 왔다는 이 가족은 매주 한번 정도 가까운 산을 다니며, 딸 아들 모두 네 살 때부터 산을 다녔다고 한다. 어릴 적, 힘들 때는 어깨에 태워 산행을 했지만, 이제는 제힘으로 다닌다고 하니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든단다. 세 살배기 아들을 목말 태워 산을 올랐던 추억이 순간 떠올라 잠시 머뭇거렸다. 지금, 그 녀석은 최전방에서 제대를 얼마 남겨 두고 있지 않은 군인으로 근무하고 있다. 

  
▲ 만추 하산길에 만난 만추.
만추

무학산, 두 시간을 올랐고, 한 시간을 내려왔다. 정상을 오르는 것은 두 배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이미, 정상을 밟은 동창도 있지만, 아직도 7~9부 능선을 오르는 동창들도 많다. 모두들 제자리에서 정상의 고지를 탈환하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정상이 꼭 인생의 목표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 실제 산행에 있어서도, 많은 동창들이 정상에 오르지 않았거나 못했다. 그들 나름의 이유와 사정은 있으리라.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도 산을 오르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다. 

앞만 보며 산을 오르고, 화려한 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단풍을 보며, 잎사귀 지는 가을에서, 33년 만에 만난 동창들과 함께 인생의 산행을 한 소중한 하루였다. 마지막 가는 가을. 다시, 인생의 험한 항로를 여행할 배는 긴 고동소리로 소매를 붙잡고 있는 나를 재촉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거제도에 있는 해성고등학교 23회 동창들을 33년 만에 만나게 해 준 회장단과 멀리 서울에서, 부산에서 온 동창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특히, 황성부 동창에게는 감사의 메시지를 별도로 전합니다. 그는 함안에서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화합의 한판인 뒤풀이도 깔끔하게 마무리한 신사랍니다. 동창들에게 해 온 그의 남다른 정을 본다면,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내내 건승하심을 빌어봅니다. 그리고 산행 중에 만난 예쁜 아이 아빠가 이 글을 보고 연락주시면 원본 사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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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의장군 곽재우의 발자취를 찾아서

방랑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혼자서 여행을 떠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머리가 복잡하고 골치가 아플 때 주변의 명소로 떠나는 짧은 시간의 드라이브가 아닌, 집으로부터 약간 멀리 떨어진 지역을 혼자서 여행하기란 분명 어려울 것이 틀림없다.

새해가 시작되고 벌써 한 달이 지나가는 일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참으로 세월이 유수 같다는 느낌을 가지고 혼자만의 역사기행에 발길을 옮겨 놓았다. 차를 몰고 어디를 갈까 망설이다 의령으로 향했다. 무작정 떠난 여행이라 여행정보는 더더욱 알 리가 없다. 군청에 전화로 물어 가 볼 만한 곳이 어디냐고 물었고, 몇 군데 관광안내 정보를 듣고서야 읍내에 있는 충익사에 가 보기로 했다. 

  
▲ 의령관문 야경 야간에 이곳을 통과하는 운전자들에게 또 다른 감흥을 주고 있다
의령관문

남해고속도로 군북 IC를 빠져 나와 의령읍 방향으로 십 여분 지나니 전통 한옥양식으로 된 기와지붕 모습의 의령관문이 쓸쓸히 방랑객을 맞이한다. 의령관문, 서부경남과 북부호남을 연결하여 주는 위치에 있는 문으로, 남강변에 우뚝 서 있어 자연경관과도 조화로움을 이룬다.

밤이면 화려한 조명 불빛으로 자태가 더욱 아름답게 빛나면서, 이 곳을 지나는 운전자에게 또 다른 감흥을 준다. 이 관문은 임진란 때 정암진 전투로 유명한 전적지에 세워져 있어 그 역사적 의미도 다시 한번 되새겨볼 만한 곳이기도 하다. 남강은 겨울의 외로움을 몽땅 안고 흘러가고 있다. 흐르는 저 강물이 어찌 홀로 떠나는 이내 마음과도 같을까 하는 심정이다.

사람들은 의령을 일컬어 충의의 고장 또는 충절의 고장이라 부른다. 임진왜란 시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 불렸던 망우당 곽재우가 태어난 곳인 데다가 당시, 전국 최초로 의병들의 봉기에 불씨를 붙여 왜적을 막아내고 나라를 구한 인물의 고장이라는 의미에서 의령을 그렇게 부른다. 선조 25년(1592년) 4월, 섬나라 왜군이 조선을 침략하자 곽재우는 임란 발발일로부터 아홉째 되는 날 전국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모집하고 왜놈과 맞서 싸운다.

왜군이 조선을 침략해 오자 평민들 위에 군림하던, 소위 양반이라고 행세한 사대부 기득권 세력들은 임금과 나라를 버리고 도망치고 만다. 이 때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세력은 국록을 먹던 조정의 신하와 관군이나 지배계층이 아닌 그저 땅을 갈고 열심히 조세를 바치던 평범한 백성이었던 것이다. 그 선봉에 홍의장군이 있었고, 지금까지 의령을 상징하는 인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 의병탑 충익사 입구에 있는 탑이다. 곽재우 장군과 17명의 의병장의 혼을 기리고 있다.
충익사탑

의령천 다리를 건너니 정면으로 보이는 탑 중간에 열여덟 개의 둥근 고리를 한 의병탑이 읍내를 내려다보며 침묵한 채 서 있다. 이 열여덟 개의 둥근 고리는 곽재우 장군과 장수 17명의 혼을 기린다는 뜻이다. 충익사의 정문인 충의문을 들어서니 공원보다 더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마당에 겨울 오후의 햇살이 내려앉아 조용히 쉬고 있다.

  
▲ 겨울연못 충익사내 있는 작은 연못으로 겨울하늘과 겨울바람을 안고 조용히 침묵하고 있다
겨울연못
  
▲ 모감주나무 충익사내 정원에 심겨져 있는 수령 280년이 된 모감주나무
충익사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충익사의 모과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83호)는 높이 12m이고, 수령이 약 280년 된 것으로 지금까지 조사된 모과나무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는 수관이 옆으로 퍼져 절이나 연못가에 심으면 운치가 더욱 살아나는 나무로 충익사 내에 있는 작은 연못과도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중년의 두 남녀가 손을 꼭 잡은 채 속삭이며 호숫가를 거닐고 있다.

  
▲ 충의각 의병장들의 시호가 새겨진 명패를 보관하고 있는 건물이다.
충의각
의병장들의 시호가 새겨진 명판을 보관하고 있는 충의각, 화려한 단청이 아름다우며, 건물의 지붕만 들어낸다면 옛 전통 상여의 모습 그대로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의도를 잘 읽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홍의장군 이름을 딴 솟을대문의 홍의문을 들어서면 야트막한 산기슭에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열일곱 명의 의병장과 의병 용사들의 위패를 모신 충익사당이 있다.
  
▲ 홍의문과 충익사 솟을대문의 홍의문과 충익사당
홍의문

거금(?) 일만 원의 성금을 내고 경건한 마음으로 향을 사른 후 묵념을 올렸다. 찡한 기운이 감돌며, 임란 당시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임전무퇴 정신이 느껴져 오는 것만 같다. 기념관에는 망우당의 전투 장면을 그린 다섯 폭의 그림과 말안장 장검 화살촉 등이 보물 제671호로 보존되고 있으며, 학생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근심을 잊는다는 망우당, 곽재우의 호다. 망우당은 아버지 정암 곽월과 어머니 진양 강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나 영남 유학의 최고봉인 퇴계와 쌍벽을 이루는 남명 조식의 제자가 돼 학문에 심취하여 남명의 외손녀 상산 김씨와 혼인하게 된다. 도학에 빠진 망우당은 자굴산 중턱에 위치한 백련암에서 일천여 권의 책을 읽으며 은둔을 원한다. 그러나 국란은 그를 전장터로 내 보내고 만다.

곽재우는 붉은 색의 옷을 입고 대외적으로 자신의 강한 존재를 나타낸다. 붉은 색은 적을 흥분시켜 이성을 마비시키고 유인하는데 적격인 셈. 이름 그대로 홍의장군이 입었던 붉은 비단 옷은 27세 때 부친을 따라 명나라로 갔을 때 조정으로부터 받았던 것으로 붉은 색은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

  
▲ 정암교와 솥바위 의령으로 들어가는 정암교 너머 솥바위가 보인다. 임란당시 정암진 전투로 유명한 곳이다.
정암교

곽재우가 용맹을 떨쳤던 곳은 정암진 전투로서, 정암진 나루는 왜군이 군량을 확보하기 위해 부산이나 마산에서 전라도 곡창지대로 가기 위해 건너야 했던 중요한 요충지였다. 왜군의 장수는 초병을 보내 강물 깊이를 재 얕은 곳에 말뚝을 쳐 표시를 해 놓았는데, 곽재우는 이 말뚝을 몰래 빼 진흙 밭으로 옮겨 박아 놓았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왜군은 강을 건너기 위해 말뚝을 따라 들어가다 진흙에 빠졌다. 곽장군이 배치한 의병들이 왜군을 향해 활을 쏘자 허둥대는 왜군은 도망을 치려했지만 진흙에 빠져 나오지 못해 거의 전멸한다. 이로 인하여 전라도 곡창지대를 손에 넣지 못한 왜군은 군량미 부족으로 전술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전쟁은 끝났어도 백성을 돌보지 않는 무능한 정치와 변하지 않는 세상은 그대로였다. 한때 모함과 역적에도 몰렸지만, 나라를 지켜낸 망우정. 전쟁이 끝난 뒤 24년간 29번의 관직을 제수 받았지만, 거부하였거나 바로 사직하였다.

망우정이라는 호와는 달리 세상을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곽재우. 두 아들과 패랭이를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가야만 했고, 세상과 단절하고자 속세의 음식도 먹지 않았다. 솔잎만 먹고 사는 벽곡(辟穀)을 해야만 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 의령 소싸움 벽화 의령공설운동장 벽면에 의령을 상징하는 민속놀이 소싸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의령소싸움

의령을 상징하는 또 하나는 민속놀이로 지정된 소싸움이다. 의령천 모래사장에서 매년 열리는 소싸움 대회그림이 실제모습보다 더 실감나게 의령공설운동장 벽면에 그려져 있어 잠시 발길을 머물게 한다.  

 
  
▲ 기지개 펴는 목련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목련이 봄을 알리고 있다
목련

겨울은 변하지 않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현재의 자리에 안주하려고 하건만, 봄은 그렇게 순순히 겨울을 그냥 놔두지 않을 모양이다. 겨울의 무게를 느끼는 얼어붙은 땅 속에서 밖으로 치솟아 오르는 강렬한 봄의 기운은 추웠던 지나간 겨울을 잊도록 하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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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까지 열린 지리산 한방 약초축제

여행을 하면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꼭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이 한 군데 있다. 야생화를 볼 수 있는 곳.

야생화를 볼 수 있다면 널찍한 공원이든, 아담하게 꾸민 도로변 화원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저 야생화 향기가 좋아서, 앙증맞은 모습으로 폼을 내는 자태가 좋아서, 좁은 공간이지만 하나 구입하여 키우면서 꽃을 피우는 동안 즐거움을 맛볼 수 있어서이다.

▲ 나이 든 할미꽃. 어버이날을 맞아 일흔네 살 어머니 모습처럼 보인다.
7일, 야생화를 좋아하는 내게 기쁜 소식이 하나 있어 집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야생화와 한방 약재와의 만남, 건강을 위한 한약재도 사고 야생화도 구경할 겸 산청으로의 여행길에 올랐다. '지리산 한방 약초축제'에 가기 위해서다.

35번 고속국도를 타고 산청 IC를 빠져 나오면, 왼쪽 방향으로 약 5백 미터 지점에 산청군 종합운동장이 나온다. 휴일이자 3일간의 연휴 마지막 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축제장까지는 차량 진입이 어려울 정도여서 군청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10분 거리를 걸어서 가기로 했다.

▲ 경호교 난간위로 조성된 꽃밭 아래로 엊그제 내린 비로 흙탕물이 경호강을 따라 흐른다.
군청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좌측으로 경호강이 흐른다. 제법 높이가 만만찮은 강 언덕에 나무로 만든 산책로가 나온다. 봄기운에 딱 맞아떨어지는 색칠을 한 나무다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있어 걷는 기분이 최고다.

주변으로는 형형색색 봄에 피는 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강물은 어제(6일) 내린 비로 인하여 아직도 흙탕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보러 왔지만, 이 좋은 산책로를 걸어보지도, 구경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고야 말 것이다. 너무나도 운치 있게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걸어가 보면 마음이 행복한 것을, 왜 많은 사람들은 행사장 입구까지 차를 타고 가야만 할까. 이런 생각을 하니 절로 행복이 찾아오는 것만 같다.

▲ 봄기운에 알맞게 색칠한 나무로 된 산책로. 오른쪽으로 경호강을 보면서 걷는 기분이 최고다. 발이 참으로 편하다.
축제장 입구부터 수많은 인파가 붐볐다. 야생화와 한약재를 홍보하고 판매하는 각 코너에는 발을 들여놓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귀가 시끄러울 정도로 크게 틀어놓은, 축제장에 빼 놓을 수 없는 뽕짝음악이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든다.

▲ 들꽃과 약초가 함께한 축제장에 모인 사람들.
약초골 산청(山淸)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높이를 가진 지리산(智異山, 해발 1915.4m)이 소재하는 곳이다. 최고봉인 천왕봉은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산 208번지로서 산청군에 소속되어 있으며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지리산은 반달곰을 방사할 정도로 산림이 울창하고 다양한 식물의 종이 분포하며 특히 수 백여 가지의 약초가 자생하는 지역이다. 이곳에서 나는 한약재는 전국 최고로 손꼽힐 정도다.

‘불노장생(不老長生) 꿈을 여는 산청’이라는 슬로건으로 올 해 여섯 번째 개최하는 '지리산 한방 약초축제'는 류의태, 허준 상(常) 시상을 시작으로 약초 화분 체험, 한방 무료진료, 한방약 처방, 수지침 강좌와 무료체험 등 총 50여개의 체험 및 단위행사가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5일간 군 일원에서 열려 관광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 산청종합운동장 축제행사장의 불로장생문(不老長生門).
이 축제의 최고 정점은 ‘한방약초 웰빙요리 경연대회’. 지난해에 이어 올 해 두 번째로 열리는 이 대회는 학생부와 일반부로 나누어 총 57개 팀이 참가하여 경연을 펼쳤다.

산청군 금서면 매촌 마을(면소재지)에서 삼거리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권일점 여사. 지난해 일반부에 참가하여 동상을 받았고, 올 해 다시 금상에 도전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면서 ‘다슬기 약수탕수’라는 요리를 만드는데 손놀림이 분주하다.

다슬기나 재첩 등 푸른 국물을 내는 패류는 간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이 고향인 권 여사는 지난 1988년부터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웰빙 다슬기 정식, 다슬기 회 무침, 다슬기 탕, 메기 찜, 피리 조림 등 주로 한약재를 이용한 건강음식을 만들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서울 등 도심에서도 고정 손님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 지난해 요리경연대회에서 동상을 받은 권일점 여사. 올 해는 금상을 목표로 요리를 하는 중 심사관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산청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전시행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몰려 웅성거린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사람들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고 보니 ‘장뇌삼’이 전시돼 있다. 토종옹기에 심겨 있는 장뇌삼은 난생 처음 보는 것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 뿌리 사서 집에서 키우면서 매일아침 잎사귀에 물 뿌림 하면서 감상하면 산삼 한 뿌리 사서 먹는 것 보다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쉽게도 판매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파트에서는 키우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 장뇌삼. 한 뿌리 집에서 키우면서 매일 감상하고 싶은 욕심이다.
구경도 맘껏 하고, 약재도 몇 종류 샀다. 한약재 끓여 먹고 얼마나 더 건강해 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건강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산청군 약초 연구회가 제공한 자료에 의하여 약초탕 몇 가지를 소개한다.

사물탕은 혈허증과 혈병에 두루 사용하며 월경불순, 갱년기장애, 임신중독, 산후증, 빈혈 등에 두루 쓰이며 당귀, 숙지황, 천궁, 작약을 4g씩 16g을 400㏄ 정도 다려서 아침저녁으로 100㏄ 복용한다. 총명탕은 원활한 혈액순환과 기의 흐름을 돕고, 머리를 맑게 하는 것으로 백복신, 석창포, 원지를 각 20g씩 물 600㏄에 넣고 물이 반으로 줄 때까지 약 1시간 달인 후 찌꺼기는 걸러내고 하루 세 번씩 나누어 복용한다.

당귀차는 부인의 냉증, 혈색불량, 산후회복, 월경불순에 좋으며 오랫동안 먹으면 손발이 찬 증상이 개선된다. 당귀 10g을 물 300~500㎖에 넣어 끓이는데, 끓기 시작하면 은근한 불로 낮추어 오랫동안 달인다.

▲ 재래식 아궁이에 한약을 달이는 여인들.
같은 사물을 놓고도 보는 이들의 평가가 제각각 다르다. 축제장을 둘러보고 사진 찍는 데만 세 시간이 훨씬 넘었다. 야생화에 관심이 많은 터라 내게는 대단한 볼거리로 기억에 남았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라면 재미도 있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를 것이리라. 군(郡)에서는 이 축제를 문화관광부 선정축제로 지정받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한다.

▲ 야생화 은방울꽃. 사랑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여행에 있어 먹을거리는 필수. 구경을 하다 보니 점심시간을 넘겨 오후 두시가 훌쩍 넘었다. 시계를 보니 배고픔이 갑자기 더욱 심하게 느껴진다. 축제장을 빠져 나와 은어회를 맛보기로 하고 35번 국도를 따라 진주방향으로 신안면 원지마을로 이동했다.

▲ 적지 않게 내린 봄비로 강물은 불어 남강으로 흐르고 있다.
지리산 계곡 각 지선에서 흘러내린 물은 경호강을 거쳐 남강으로 이어진다. 경호강 맑은 물에서 자란 은어는 7~8월이면 수박 향기를 내뿜으며 식도락가들에게 최고의 맛을 제공한다.

아직 수박향기는 나지 않았지만, 시장기가 곧 맛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순식간에 회 한 접시를 비웠다. 배가 부르니 몸은 무거운데 마음만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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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름에서 정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름은 불러만 봐도 목이 메이는 것만 같고, 어떤 이름은 들어만 봐도 눈물이 왈칵 쏟아 질 것만 같은 정겨운 이름이 있습니다. ‘하동(河東)’이라는 이름이 그런 느낌을 줍니다. 자신이 태어난 고장이 아름답고 자랑스럽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다마는 내게 있어서 경남 하동은 어머니 품 같이 포근하고 사랑스런 고장입니다. 군 근무시절 첫 휴가 나와 힘차게 거수경례를 하며 어머니를 보았을 때, 가슴 찡하고 눈물이 날 것만 같은데도 억지로 참았던 기억과도 같은 그런 느낌이기도 합니다.

▲ 어머니 젖줄 같고, 어머니 품 같이 포근한 섬진강.
그저 하동이 좋아 일년에도 몇 번을 갑니다. 하동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하동에 살고 있는 사람보다 하동을 더 많이 안다고 자랑을 하다 '구살머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만큼 자랑스럽고 좋다는 말입니다. 남해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읍내로 가는 길목 삼거리 공한지에는 하동을 대표하는 관광안내 표지판이 몇 개가 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제 눈을 사로잡고야 맙니다. ‘당신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에서)’라는 표지판입니다. 차량이 신호등에 의해 정지된 경우가 아니라면 많은 운전자들이 그냥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 당신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에서)
전국에는 아름다운 드라이브코스가 많이 있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하동포구에서 섬진강을 따라 구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19번 국도, 천혜의 자연절경과 쪽빛바다,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굽이굽이 도는 칠백리 해안선을 자랑하는, 거제도 장승포에서 해금강까지 이어지는 14번 국도, 북한강 푸른 강줄기를 옆에 두고 46번 국도를 따라가다 의암댐에서 다시 403번 지방도로 이어지는 강변도로가 제일 아름답다는 생각입니다. 이 세 군데 드라이브코스 중 어느 곳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혹여, 이 기사를 접하고 필자가 언급한 곳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고도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구례까지 43㎞가 남았습니다.
삼거리를 지나니 구례까지 43k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옵니다. 길옆으로는 하동의 자랑인 배 밭이 보입니다. 배꽃이 흰눈처럼 쌓여 있습니다. 바람이 부니 배꽃 잎이 날려 갑니다. 올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 줄 것만 같습니다.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국도 주변으로 식재된 벚꽃나무 터널입니다. 운전자에게 즐거움을 더해 주기 때문입니다. 4월초, 잎보다 먼저 활짝 폈던 벚꽃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는 푸른 녹음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 시원한 모습이다. 강과 도로가 나란히 어깨동무하며 구례 쪽으로 가고 있다.
하동은 영화, 드라마, CF 촬영지로 유명합니다. 영화로는 피아골(1995), 역마(1967), 청춘(2000), 취화선(2002) 등이 있고, 드라마는 허준(1999∼2000), 토지(2003∼2005), 태양은 가득히(2000) 등이 있어 여행객들의 발길을 잠시 머물게 합니다.

▲ 섬진강 둑에 지천으로 피어 난 제비꽃. 너무나도 아름답다.
악양면 평사리는 들판 가득 녹색 보리밭의 푸른 물결이 출렁거립니다. 동학혁명에서 해방에 이르기까지 이 곳을 무대로 한 한민족의 대서사시, 박경리 원작의 ‘토지’의 주무대입니다. 차에서 내려 소설속의 무대로 잠시 빨려 들어 가 봅니다.

“길상아, 난 다 버릴 것이다. 양반으로서의 체면도 여자로서 굴레도, 그리고 반드시 돌아와 저 땅을 다시 찾고 말 것이다.” 한 여인의 한 맺힌 집념과 한을 엿 볼 수 있는 드라마 ‘토지’ 대사의 일부분입니다.

겨우내 추위로 땅에 짝 달라붙어 있던 보리는 어느새 작은아이의 키만큼 훌쩍 자라 버렸습니다. 오월이 되면 그 싱그러운 푸르름은 절정에 이를 것입니다. 넓은 들판 뒤로는 ‘최 참판댁’이 보입니다.

▲ 악양면 평사리 들판. 좌측으로 보이는 마을이 드라마 ‘토지’의 주무대인 최참판댁이 있는 곳이다.
지리산 자락의 수많은 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은 어머니 품으로 모여듭니다. 명절마다 형제들이 큰집으로 모이는 것과 같다는 느낌입니다. 오후의 햇살을 받은 강물은 은색으로 빛이 반짝거립니다. 강가에서 두 남자가 낚시를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브래드 피트가 열연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가 오버랩 됩니다.

무릎까지 찬 강물에 중심을 잡기도 어려운 자세로 플라이 낚싯줄을 던지는 모습과 햇살을 받은 낚싯줄이 춤을 추듯 날아가는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숨 가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잠시 동안이나마 자연을 벗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복되고 풍요로운 생활인지 일깨워 주는 영화라서 그런지 더욱 그런 생각이 사무칩니다. 참으로 서정적인 모습입니다.

▲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낚시장면과 서정적인 모습이 너무나 흡사하다.
자동차는 경상도를 넘어 전라도 땅에 접어듭니다. 구례읍으로 가다 토지면 구례동중학교 입구 도로 이정표에 표시된 사성암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간전교를 지나 섬진강을 건넜습니다. 다시 우회전하여 충실하게도 도로표지판의 지시에 따라 갔는데 안내표지판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한참이나 갔던 길을 되돌아와 다시 찾아갔건만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 4월의 섬진강은 푸르름을 더해만 가고 있다. 이쪽은 경상도요, 저쪽은 전라도라.
아쉬운 마음으로 광양방향으로 차를 돌려야만 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섬진강 반대편 전라도 땅입니다. 섬진강 좌우의 도로에는 ‘전망 좋은 곳’이라는 표지판이 여러 군데 서 있습니다. 작은 주차장도 있어 잠시 차에서 내려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강물 속에 빠져버린 자신의 모습도 감상할 수 있어 좋습니다. 여름철이었다면 강물에 발을 담그고 물놀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 벚꽃나무 가로수 길. 4월초에 핀 벚꽃은 사라져 버렸다.
광양 매화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작지만 한국의 미가 흠뻑 넘치는 정자에 올라 푸른 강줄기를 내려다봅니다. 모래사장에는 주인을 어디로 보냈는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어선 몇 척이 있습니다. 조금 외로워 보입니다.

▲ 休息(휴식).
섬진강 다리를 건너 다시 하동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재첩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고전면 선소리 신방촌마을 식당이 즐비한 주변 공터에는 섬진강에서 잡은 재첩과 가리맛조개를 파는 할머니들의 부산함이 즐거워 보입니다. 2만원을 주고 재첩과 조개를 샀습니다.

한 대야가 훌쩍 넘는 엄청 많은 양입니다. 중국산 아니냐고 슬쩍 농담조로 물으니 아니라고 손사래를 칩니다. 저녁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와 함께 재첩국은 끓이고 조개는 숯불에 구워 먹었습니다. 4월의 셋째 주 일요일(4월 16일)은 섬진강 물줄기와 며칠만에 보는 어머니와 시원한 국물 맛에 흠뻑 취하고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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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한답시고 찾아간 동료들과 찾아간 섬, 매물도

혁신(革新)과 여행.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두 단어의 만남. 3월의 마지막 토요일(25일)은 내가 속해 있는 조직의 '혁신'을 위하여 소속 직원 모두가 배를 타고, 꼭 한번 가 보고 싶었던 작은 섬으로의 여행을 떠났다.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에 속한 소매물도. 소매물도는 거제도 남서쪽에 위치한, 바다위에 떠 있는 수많은 섬 중 하나로서, 둥그스레한 언덕 위에 하얀 등대가 서 있는 아름다운 섬으로, 많은 잡지에 섬 여행지로서 단골로 소개될 정도로 이름이 나 있는 곳이다.

▲ 동백꽃, 색깔도 자태도 참으로 곱다. 짝사랑하고 싶은 여인과도 같다.
소매물도는 통영항에서 동남방으로 직선거리로 26km 떨어져 있으며, 면적은 0.33㎢, 17세대 40여명의 주민이 고기잡이와 해조류를 채취하며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사람의 정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작은 섬이다. 대매물도, 소매물도, 등대도(일명 글썽이섬) 등 세 개의 섬을 통틀어 매물도라 부르는데, 소매물도라고 하면 등대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해안암벽이 장관을 이루는 등대도는 직접 가 보지 않으면 후회할 정도로 아름답다.

▲ 마을 뒷산 너머로 바라보이는 등대도 비경.
일행을 실은 여객선이 소매물도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팀은 세 개로 나뉘어졌다. 매물도 앞 바다 선상 낚시팀, 방파제 학꽁치 뜰채팀, 소매물도 탐험팀 등 제각각 임무수행을 위한 역할 분담이 시작되었다. 탐험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무슨 탐험까지 되겠는가? 그냥 섬을 둘러본다고나 할까.

▲ 정상에서 바라 본 소매물도항과 마을전경. 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소매물도의 최고봉인 망태봉에 오르기 위해서, 마을 뒤편으로 나 있는 쉬운 길을 피하고 일부러 산속으로 기어오르다시피 하면서 산을 헤맸다. 무리지어 노는 흑염소 떼가 발걸음소리에 놀랐는지 혼비백산하며 흩어진다. 거의 직각으로 날이 세워진 가파른 암벽을 달리기 경주하듯 도망치는 염소 떼의 모습에서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발을 헛디디면 바로 천길 낭떠러지 바다로 추락하는데도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 알고서 꼭 즐기는 것만 같다.

▲ 아직 완전히 돋아나지도 않은 풀을 뜯으며 한가로이 노는 염소 떼. 두 마리가 싸움을 하는지 장난을 하는지 앞 다리를 들고 서로 뿔로서 박치기를 하고 있다.
산 정상 주변에 오래 된 폐교가 쓸쓸한 모습으로 옛 추억에 잠겨 홀로 있다. 유리창에는 낙서가 가득하고,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다. 교실은 책걸상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모습이다. 운동장이라고까지 할 수 없는 작은 마당에는 아이들의 노는 모습이 눈에 선하고 웃음소리도 귓가에 맴돈다. 유리창에 써 있는 시 한편을 읽기 위해 한참동안이나 유리창을 뚫어지게 쳐다봐야만 했다.

▲ 망태봉 정상부근에 있는 폐교. 뒤로는 대매물도가 보인다.
망태봉에 오르니 남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희뿌연 안개 탓인지 하늘은 회색빛이고 바다 빛도 겨울의 쪽빛만큼 푸르지 못하다. 남쪽으로는 대매물도의 뒷모습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하얀 등대가 있는 등대도가 가슴을 확 트이게 한다. 저 멀리 작은 섬이 보인다. 섬이 움직이는 것만 같다. 그리고 섬은 더욱 더 커진다. 그런데 섬이 아니다. 유람선이다. 차츰 내게로 다가온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리는 유람선에는 무슨 사연을 담은 사람들로 가득했을까?

▲ 역광을 받고 빛나는 동백나무 잎. 유람선이 오가고 있다.
비탈진 산에는 동백나무 수천 그루가 숲을 이루고, 역광을 받은 동백 이파리가 은빛을 쏟아 내고 있다. 그 사이로 붉은 동백꽃이 얼굴을 내밀고 노란 웃음으로 미소 지으며 나를 유혹하고 있다. 그 유혹에 넘어 가 버리고 싶다. 아이와 엄마가 동백꽃을 사이에 두고 키스를 한다. 동백꽃잎 사랑인가 보다.

등대도는 바다 물때를 잘 맞추면 걸어서 넘어 갈 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등대섬을 갔다가 되돌아온다. 동백꽃에 반하고 자연에 취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벌써 점심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등대도까지 가 보지 못한 아쉬움을 접고 동네로 내려가야만 했다. 선상 낚시팀이 낚아 온 붉은 볼락(거제도말로 '열기'라고 부름)과 뜰채팀이 뜰채로 잡은 학꽁치가 소쿠리 가득하다. 굽고 회를 뜨고 난리법석이다. 점심을 먹으며 '혁신'을 논의했다. 그러나 모두가 점심 먹기에 정신이 없다.

▲ 소매물도 선착장에는 뜰채로 잡을 정도로 학꽁치가 많다.
여행, 일상의 삶과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마음으로 자연 속에 나를 맡기는 것. 국어사전에서도 정의하지 않는 나만의 해석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의 만남, 여행과 혁신. 이번 여행을 통하여 너무도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행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작은 기쁨 하나. 바로 그것이 내가 살아가면서 내 자신을 끊임없이 혁신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아닐까?

▲ 멀어져 가는 매물도. 하얀 물보라가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내 자신의 혁신을 위하여, 내 가족의 혁신을 위하여, 내가 소속된 조직과 내 주변 공동체의 혁신을 위한 여행을 떠나 보자.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반드시 찾을 수 있으리라. 문득, 부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깨달음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여행의 깨달음은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까?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느낌과 감정, 그리고 만족감이 여행을 통한 깨달음이 아닐까?

▲ 글썽이굴을 배경으로 한 기념사진(왼쪽 중국의상을 한 사람이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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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댐 거쳐 단장면 사연리 동화마을까지
거리에 주차된 자동차 지붕의 희뿌연 먼지와 하얀 마스크를 쓴 채 찌푸린 모습으로 걸어가는 중국 사람들의 밝지 못한 표정을 카메라에 잡은 3월 첫째 주 토요일 아침 티브이 장면. 올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황사가 올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갈까 말까를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결국 집을 나서기로 했다. 십여 년 전, 재약산을 오르면서 들른 표충사의 화려한 단청이 눈에 아른거려 다시 한번 찾아 가기로 마음 먹은 것. 밀양으로 향하는 길은 그런 망설임 끝에 이루어졌다.

▲ 밀양댐. 가뭄으로 물이 많이 빠져 있다.
여행이란 출발하기에 앞서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떠나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건만, 이번에는 오래 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던 몇 장의 추억사진만을 가지고 차를 몰았다. 당초, 사찰의 화려한 단청과 선이 아름다운 기왓장 지붕을 감상하며, 옛 건축물을 공부하고자 표충사를 목적지로 정했건만, ‘밀양댐’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자 예정에 없이 차는 유턴을 시작했고 처음으로 가 보는 밀양댐에 도착했다.

▲ 나뭇가지에 걸린 밀양댐.
아름다운 영남알프스의 풍경과 어우러져 친환경적 공법으로 지난 2001년 준공했다는 밀양댐. 새로 난 도로를 따라 정상에 이르면 수몰지역 주민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세워진 망향비가 나온다. 잠시 차에서 내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오래 전 이곳에서 땅을 일구며 살았던 주민들의 애환을 살짝 들여다보니, 문득, 내 고향 거제도가 생각난다.

▲ 밀양댐 수몰지역 주민을 위한 망향비. 댐 정상부에 있으며, 넓은 광장도 있다.
70년대 초 가난의 아픔을 벗고자 국가발전이라는 대명제 아래 중공업정책이 입안되고, 내 고향 거제도에 대형 조선소 건립이 시작된다. 당시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문전옥답은 반강제로 국가에 내주다시피하고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하게 된다.

중학생 까까머리 철부지 시절, 내가 살던 초가집과 재산목록 1호 누렁이 황소, 가을이면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주었던 뒤뜰에 심겨져 있던 키가 큰 감나무, 그리고 덤프트럭에 실려 처음으로 이사를 갔던 기억은 내 머릿속에 선명한 그림으로 남아 있다. 아직도 내 고향 거제도에는 망향비 하나 세위지지 않고 있어 당시의 한 많은 아픔이 내 가슴 한쪽 파편으로 심어져 있다.

▲ 화려한 단청.(좌) 선이 아름다운 누각.(우)
망향비를 넘어 가는 도로에는 3월초에 내린 눈으로 모래 흔적들이 곳곳에 쌓여 있고, S자로 굴곡진 도로는 자동차면허 시험을 보는 듯 아슬아슬하고 다리에 오금이 날 정도로 긴장감이 돈다. 하지만 이런 기분이 자동차 여행의 또 다른 참 맛이 아닐까?

▲ 굴곡진 S자 길. 제설작업으로 뿌려진 모래 흔적.

▲ 재약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봄을 재촉하고 있다.
재약산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봄을 재촉하고 있는 단장면 사연리 동화마을. 이런 맑은 물에서 자란 청정미나리는 밀양의 대표적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으며, 3농가가 만여 평의 미나리 농사를 짓고 있다. 한우와 딸기 농사를 하다가 3년째 미나리 농사를 짓고 있다는 구본기씨의 얼굴은 언제나 미소 가득한 부처님 모습이다. 부인 또한 똑같은 얼굴이다. 누군가 부부는 살아가며 닮는다고 했던가?

▲ 미나리를 캐는 할머니. 방송에도 몇 번 나왔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이 곳에서 자란 미나리는 11월에서 다음해 5월까지, 딸기는 1월에서 4월까지 판매되고 있으며, 지금이 제일 맛이 있는 시기라고 한다. 미나리를 맛있게 먹는 방법으로, 생미나리를 된장에 찍어 먹으면 독특한 향이 입안에 오래남아 있어 좋고, 고추장에 생무침을 해 먹어도 좋다. 또한, 뜨거운 물에 반쯤 데친 후 무침을 해 먹어도 좋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미나리는 황달, 부인병, 음주 후의 두통이나 구토에 효과적이며, 최근에는 혈압을 내리는 약효도 인정받고 있어 고혈압 환자가 즐겨 찾는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리고 비만증, 황달, 목이 아플 때는 생즙을 짜서 마시면 효과를 본다고 한다. 가족형제들과 나눠 먹으려고 미나리 세 봉지를 샀다. 어린아이 주먹 만한 딸기는 주인이 맛보라고 몇 개 내준다.

▲ 미나리, 딸기 부부. 참 어울리는 정겨운 모습이다.

▲ 보리밭 사이 길로 딸기아줌마가 환하게 웃으며 걷고 있다.
하루 종일 박무현상(안개는 아주 작은 물방울이 대기 중에 떠 있는 현상으로 시정거리가 1㎞미만일 때를 말하며, 시정거리가 1~10㎞일 때는 박무현상이라고 한다)으로 그다지 상쾌함을 느끼지 못했던 오늘 여행. 'Travelling'이라는 'Jeremy Spencer Band'의 감미로운 사운드를 들으며 하루를 위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내 고향 범도마을. 할아버지가 밭에 심을 묘목을 나르고 있는 모습이 예전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Travelling

머나먼 땅으로의 여행...
난 하루를 한껏 누렸습니다.
여행은 늘
나의 길을 감동으로 채우곤 하죠
밤과 도시의 불빛에도
나는 향수에 젖어 들곤 했죠
난 쓸쓸했고
사랑을 그리워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사랑...
그 사랑을 마음껏 가질 순 없을까
당신의 사랑...
그 사랑을 받을 순 없을까

여행...
여기서는 늘 혼자
내 시간을 돌아봅니다
오늘 밤 당신을 생각해 봅니다
당신이 얼마나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는지
삶의 한 지점에서 깨닫습니다
이제는 최선을 다해 볼 것입니다
나는 한 남자일 뿐
그래서 당신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사랑...
그 사랑을 마음껏 가질 순 없을까
당신의 사랑...
그 사랑을 늘 받을 순 없을까
세상을 돌아보는 여행
내겐 당신의 말이 들리는 듯 합니다
당신의 사랑을 원해요
내겐 당신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머지않아 나는 돌아가겠습니다
그 시간은 그리 멀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원해요
내겐 당신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사랑...
그 사랑을 마음껏 가질 순 없을까
당신의 사랑...
그 사랑을 늘 받을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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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도 솔솔 나서 좋은 삼천포 어시장
▲ 교각 밑에서 바라다 본 삼천포대교.
물오른 나무 가지에서 새 싹이 움트는 것을 보며 봄을 느낀다. 문턱에서 손짓하는 봄을 따라 밖으로 나가니 어디론가 벌써 사라져 버리고 없다. 얄미운 봄의 흔적을 찾아 무작정 길을 나선 끝에 삼천포에 닿았다.

웅장한 두 개의 교각이 버티고 서 있는 삼천포의 명물인 삼천포 대교, 그 밑에서 얄미운 봄은 나를 기다리며 웃고 있었다. 봄의 소식을 제일 먼저 알리는 매화, 그 다음으로 쑥, 냉이를 비롯한 봄나물과 실개천이 흐르는 곳에 피어나는 버들강아지는 주로 들녘에서 봄의 생기를 전해 오지만, 특별히 올해는 바다에서 봄의 향기를 맡아 보자.

▲ 제법 쌀쌀한 날씨인데도 몇 가족들이 봄 소풍을 즐기고 있다.
삼천포 대교 밑으로 흐르는 물살이 강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홍수 난 강물보다 물살이 더 세다. 작은 어선 한 척이 물살을 따라 순식간에 교각 사이로 빠져 나간다. 물살은 겁이 날 정도로 거세고 위협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바다 물살이 가장 세기로는 해남과 진도간의 좁은 해협을 이루고 있는 울돌목이라고 한다.

이 곳은 동양 최대 시속인 11노트의 조수가 흐르며, 젊은 사람이 큰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물소리가 크며, 거품이 일고 물이 용솟음 쳐 배가 거슬러 올라가기 힘들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물살이 센 곳이 삼천포 대교가 있는 이 곳.

▲ 겨우내 얼어 있던 저 나뭇가지에도 싹은 트겠지.
사람들이 잠든 새벽녘, 먼 바다에 쳐 놓은 그물에 부푼 기대를 안고 거센 파도를 헤쳐 나갔다 돌아오는 작은 어선 한 척. 얼마나 많은 고기가 배 안 가득 실려 어부의 기분을 좋게 할런지, 아니면 오늘은 허탕을 쳤지만 내일을 기약할지, 어부의 기분이 어째 궁금하다. 갈매기 한 마리가 작은 배를 뒤따라 날고 있다.

아직까지 아침 끼니를 때우지 못한 갈매기는 어부가 버리는 고기 한 조각이라도 낚아 채 허기진 배를 채울 심상이다. 또 다른 여러 마리의 갈매기가 포구 위를 힘차게 날고 있다. 정겨운 모습이다. 어릴 적 동화를 그렸던 그림이 삼천포항이 아닌가 싶다.

▲ 갈매기 한 마리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비상하고 있다.

▲ 괭이갈매기. 날개 짓이 힘차다.
삼천포 어시장이 시끌벅적하다. 살아 숨쉬는 역동적인 모습이다. 손님은 한 푼이라도 깎기 위해 통사정을 하며 주인을 치켜세우면서 칭찬에 열을 올리고, 주인은 오히려 정반대의 모습으로 한 푼이라도 더 받아 내기 신경전이 치열하다. 개조개를 그림 그리듯 네모나 원형 모습으로 놓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한 개에 500원부터 1500원까지 크기별로 다양하다.

멍게를 두 조각으로 싹둑 잘라 다듬는 손이 보통 사람의 손이 아니다. 따뜻한 국물을 데우면서 홍합을 까는 저 할머니의 손은 몇 년을 연습한다고 해도 저렇게까지 숙련되지 않을 정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손을 놓지 못한 할머니의 두 손에서 아들 딸이 대학도 갔을 것이고, 나이 들어 돈 못 벌고 애 먹이는 영감님 소주도 사 주었을 테고, 지난 설날 오랜만에 고향 찾아온 손자들께도 용돈도 주었으리라. 경매를 하기 위해 개조개를 정리하고 있다. 왜 이렇게 그림 그리듯 놓느냐고 물으니, "보기도 좋고, 숫자 파악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지"라고 한다.

▲ 경매를 하기 위해 개조개를 정리하고 있다. 왜 이렇게 그림 그리듯 놓느냐고 물으니, “보기도 좋고, 숫자 파악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지”라고 한다.

▲ 홍합을 까는 할머니의 손. 삶의 흔적을 가냘픈 저 두 손은 알겠지.
다른 한 쪽에서는 하루 종일 서서 고기를 다듬고 있는 할머니가 눈에 띈다. 숭어 한 마리 물통에서 건져 올려 비늘 벗겨, 배를 가르고, 회를 썰어 내는데 걸리는 시간이 채 삼분이 걸리지 않는다. 회를 써는 솜씨가 한석봉의 어머니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삼천포 어시장에는 환갑을 훌쩍 넘긴 어르신들이 아직도 직업 전선에서 아름다운 삶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참동안 구경을 하고서야 할머니가 정성스레 썬 회 한 접시를 한 푼도 깎지 않고 샀다. 이십 년 전의 어머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시장 바닥에서 대야를 놓고 생선과 조개와 홍합과 해초를 팔아 일곱 남매를 교육시키면서 육칠십년 대를 살아 온 평범하지만 장한 어머니다. 그 장한 어머니가 생각났기에 한 푼도 깎지 않았다. 아니 깎을 수가 없었던 것이 내 진심이었으리라.

▲ 한석봉 어머니의 손보다 손놀림이 더 빠른 할머니의 손.
봄 도다리, 가을 전어란 말이 있다. 봄에는 도다리회가 가을에는 전어회가 제일 맛이 있다는 뜻이다. 필자도 거제도 촌놈(?)이지만 도다리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주로 뻘밭에서 자라는 제도다리, 자갈밭에서 자라는 자갈밭도다리, 참도다리, 점도다리, 돌도다리, 담배재이도다리 등 많은 종류의 도다리가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 제일 맛이 있고 비싼 것이 돌도다리로서 kg당 경매가로 15만원을 호가한다. 이 곳에서 회를 먹으려면 어종별로 가격차이는 다소 있지만 보통 4인 기준으로 2만5000원에서 3만원 정도 회를 썰어 초장과 야채를 별도로 파는 식당에서 맛 볼 수 있다. 바닷가에 와서 회 한 접시 맛보지 않을 수 없다. 포구의 갯내음과 싫지 않은 어촌가의 비린 향기를 맡으며 먹는 봄도다리 회가 정말 맛있다.

▲ 싱싱한 횟감이 즐비한 삼천포어시장.
삼천포 어시장, 삶을 느끼는 현장이다. 북적대는 어시장이 그래서 더욱 좋다. 이 봄철에 생기 있는 사람의 모습과 팔딱거리는 싱싱한 회 맛을 진정으로 느끼고 싶다면 삼천포 어시장에서 숨은 그림을 찾아보시라. 얼굴에 삶의 주름선이 선명한 할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회 한 접시 사서 상치에 쌈을 싸고 입 안 가득 넣어 봄의 향기를 맡아 보자.

▲ 언니! 오늘 얼마 벌었소? 두 자매 할머니가 기분 좋게 오늘 번 돈을 세고 있다.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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