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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본래 마음자리, 정무스님/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본래 마음자리, 정무스님/오늘의 법문

 

남원 실상사 풍경.

 

[나의 부처님] 본래 마음자리, 정무스님/오늘의 법문

 

본래 마음자리/ 정무스님

 

불교에서는 본래의 마음자리를 흔히 거울에 비유합니다.

거울은 원래 밝은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먼지가 쌓이면 거울의 환한 빛이 사라지고 어두워져 아무 것도 비추지 못합니다.

무엇이 밝은 거울에 끼는 먼지인가?

우리의 번뇌망상입니다.

그리고 번뇌망상을 버리는 것이 거울의 먼지를 닦아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울은 무엇인가?

거울은 우리의 무심입니다.

이 무심이 불교에서는 불성이니 본래면목이니 하는 것입니다.

거울에 끼인 먼지를 다 닦아내면 환한 거울이 나타납니다.

동시에 말할 수 없이 맑고 밝은 광명이 나타나 만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냅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번뇌망상이 완전히 떨어지면 크나큰 대지혜의 광명이 나타나게 됩니다.

달리 비유하자면 구름 속의 태양과 같습니다.

구름이 다 걷히면 태양이 드러나고 광명이 온 세계를 비춥니다.

이와 같이 모든 망상이 다 떨어지면 마음의 대지혜 광명이 시방세계를 온전히 비추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해가 떠서 온 천하를 비추는 환한 대낮이라도 눈 감은 사람은 광명을 보지 못합니다.

앉으나 서나 전체가 캄캄할 뿐 광명을 못 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대우주법계가 광명인 동시에 대낮 그대로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전체가 부처 아닌 존재가 없고 전체가 불국토 아닌 것이 없는데, 이것을 모르고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은 "내가 중생이다", "여기가 사바세계다"라고 말할 뿐입니다.

 

 

부처님 제자 중에 주리반특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둔한 사람이었는지 게송의 앞부분을 외우면 뒤의 것을 잊어버리고, 뒷부분을 외우면 앞의 것을 잊어버리는 정도였습니다.

절망에 빠져 있는 주리반특을 보고 부처님께서는 빗자루를 주면서 당부했습니다.

"이 빗자루를 가지고 청소를 하면서, '먼지를 털리라', '때를 없애리라'를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해서 외워라"

 

우둔하기는 해도 남달리 정직하고 성실했던 주리반특은 빗자루로 사원의 구석구석을 청소하면서 '먼지를 털리라', '때를 없애리라'를 되풀이 했습니다.

날이 감에 따라 점점 익숙해져서 그냥 이 말이 술술 나오게 되었고, 마침내는 '지혜의 빗자루로 마음의 먼지를 쓸어내는'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주리반특처럼 하면 됩니다.

평상 속에서 마음 땅의 티끌을 꾸준히 쓸고 또 쓸면 됩니다.

그리하여 번뇌가 없는 평상심을 회복해 가지면 됩니다.

 

본래 마음자리/정무스님

 

 

[나의 부처님] 본래 마음자리, 정무스님/오늘의 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