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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고향함양/함양가볼만한곳

함양여행, 여행하며 공부하는 함양 상림숲 '역사 인물 공원'을 찾아서 2



함양여행, 여행하며 공부하는 함양 상림숲 '역사 인물 공원'을 찾아서 2


 

함양여행, 함양 상림숲 '역사 인물 공원'에 있는 비석.

함양여행, 여행하며 공부하는 함양 '역사 인물 공원'을 찾아서

어제(6일)에 이어 함양 상림숲에 있는 '역사 인물 공원'을 찾았다.
흉상비 뒷면 설명문에 따르면 요즘 젊은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체의 단어가 많이 들어 있음을 느낀다.
알기 쉽게 풀어 써 놓았으면 어린아이들에게도 읽기 쉽고, 이해하기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뇌계 유호인

 

뇌계 유호인(1445~1494)

조선초 학문에 통달한 충효의 표본이며 3대 문장가 중의 1인이다. 함양 형곡(가성)에서 태어나 뇌계천(위천) 위 대덕에서 살았으며 성종 5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공은 점필재를 스승으로 섬기고 점필재는 공을 벗으로 대접했으며 학문과 문장 진충효양으로 인해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 어버이 봉양을 위해 주로 외직을 택했으며 가세가 청빈하여 사후에 하사하신 부의로 장례식을 치뤘고 후임군수(합천) 어득강이 유고를 출간해 주고 묘비를 세워 주었다. 충효청겸하고 침중간엄하며 시문이 고고하고 필력이 힘이 있어 당대의 삼절이라 했기에 후인들이 그의 학문과 인품을 흠모하고 있다. 저서로 '뇌계시집'이 있다.

일두 정여창

 

일두 정여창(1450~1504)

초선초기의 문신 성리학의 대가로 경사에 통달한 조선 5현의 1인이다. 함양 개평에서 태어나 성종 21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3년간 지리산에서 5경과 성리학을 연구했으며 체용의 학을 궁명하여 경명수행한 실천철학자로서 독서를 주로 하였다. 김굉필과 더불어 한국유학의 논리적 핵심부분인 이기론의 꽃봉오리를 맺게 하였다. 안음현감 재직 시는 문교, 산업, 부역, 조세, 형제 등을 개혁하여 주민들의 복지치화에 주력하였고, 왕도정치의 이상을 추구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공의 학문과 역행실천 도학사상이 만인의 추앙을 받고 있다. 저술은 무오사화로 소실되었고, 현재 '일두문집'이 남아 있다.

옥계 노진

 

옥계 노진(1518~1578)

조선중기 영남 유림의 거유이며 청백리로서 효행과 덕행이 남달라 신망이 두터운 인물이다. 함양 개평에서 태어나 명종 원년 문과 급제하고 지레현감 재직 시는 아전들의 비행과 불법을 밝혀 선정을 베풀어 높은 치성으로 칭송을 받았고 가는 곳마다 송덕비 유애비를 세워 공의 선정과 청덕을 길이 흠모하였다. 효제가 생활철학이며 근검절약으로 소박하고 사치와 허영을 몰랐다. 대사간, 대사헌, 이조판서 등 중책에 임명되었으나 수차 상소하여 사양하였다. 경을 수양의 요체로 삼아 위기지학에 치중하고 당파의 기미가 보이자 조정변을 제론하고 왕도정치에 노력했다. 저서로 '옥계문집'이 있다.
 
개암 강익

 

개암 강익(1523~1567)

조선중기 성리학에 밝고 향토를 빛낸 학자이다. 함양 모간(우명리) 사람으로 명종 4년 진사시에 합격 대과나 벼슬에는 뜻이 없고 학문과 시문을 벗삼으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천품이 맑고 밝으며 기국이 크고 침착과묵하며 학행이 독실정밀하고 실천을 중시했다. 일두선생의 한을 풀기 위해 유생 30여 명을 설득하여 일두선생 숭모사업을 착수하였다. 1552년 사림에서 뜻을 모으고 군수의 지원을 받아 남계서원 건립을 시작했으나 어려운 여건과 재정부족으로 공기가 연장되어 3명의 군수를 거치면서 어려움을 극복 10년 만에 완공하여 선비고장의 긍지를 높이고 학풍을 잇게 하여 군민의 존경을 받고 있다. 저서에 '개암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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