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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사랑나누기는 아무나 하나?


정성들인 무와 배추, 홀로 계신 어르신댁으로 장가시집 보내기

  
▲ 김장절이기 김장 절이기 작업을 하고 있다
김장절이기

“아이 둘 낳아 키우는 것보다 더 신경 쓰이고 어려운 것 같아요. 지난 4월부터 시작한 고추배추농사를 끝내고, 이것으로 김장하여 홀로 사는 어르신들에게 드린다고 생각하니 기쁘고 행복합니다.” 

평소보다 쌀쌀한 날씨에도, 맨손으로 2천포기의 배추를 소금에 절이면서 말하는 당찬 그녀. 몸과 말은 따로지만, 그녀의 손놀림은 자동화 기계처럼 빈틈이 없다. 물론, 그녀와 함께 자원봉사단체 회원들이 일손을 도우고 있다. 

  
▲ 배추수확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김장

거제시 일운면 사무소에서 보조업무를 맡고 있는 장미자(40세)씨. 동료 직원들과 함께 농사를 짓지 않는 땅에 고추와 배추와 무를 심어 보자고 마음을 모은 것은 지난 4월. 대지에 생명이 한참 샘솟아 오를 무렵 일이다. 그때부터 출근은 언제나 작업복 차림이었고, 사무실 정리가 끝나면 긴 창이 달린 모자를 쓰고, 호미를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돼 버렸다. 

작은 면적이라고도 할 수 없는 1,500㎡의 농지. 갈고 고르는 작업은 기계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손이 가지 않는 데가 없었다. 그야말로, 애 낳아 젖먹이고, 목욕시키며, 기저귀 가는 일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딸 아들 둘 자식농사는 지어봤지만, 고추·배추·무 농사를 지어 보지 않은 그녀로서는 쉬운 게 하나라도 있을 리 만무했다. 

“농사란 게 땅에 씨 뿌려 놓고, 가끔 와서 관리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해 보니 장난이 아닙니다. 괜히 시작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중도에 포기할 수도 없잖아요.”  

  
▲ 배추다듬기 배추와 무를 다듬고 있다.
배추

  
▲ 배추나르기 배추와 무를 다듬어 나르고 있다.
배추

  
▲ 무 다듬기 무를 다듬고 있다.

그녀는 매일 고추밭, 배추밭, 무밭을 다니면서 김을 매었고, 비료를 주었으며, 정성과 땀도 곁들어 뿌렸다. 간간히 동료 직원들이 일손을 돕긴 했지만, 어디 그녀의 정성만큼이나 했겠는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책임자가 된다는 것은 소홀히 할 수 없는 일.  

뜨거웠던 여름, 고추를 수확하고 말리는 작업이 계속하여 반복됐다. 온 몸은 땀으로 젖었고, 100㎏이라는 많은 양을 다듬고 꼭지를 따내야 했다. 마스크를 쓰긴 했지만, 매운맛은 눈으로, 코로, 옮겨져 육신을 지치게 만들었다. 눈물, 콧물, 땀으로 봄과 여름은 그렇게 흘러갔다. 잠시 쉴 틈도 없이 배추농사는 계속됐다. 논두렁을 타며 배추밭을 돌보는 사이 가을은 또 그렇게 흘러갔고, 겨울이 다가왔다. 

지난 1일, 그동안 쏟았던 땀과 사랑의 결실을 보던 날. 그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배추 수확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 온 응원군. 관내 15개 자생단체에 활동하는 남녀 자원봉사자 35명이 그들이다. 싱싱한 배추 잎에는 늦가을 단풍보다 아름다운 그녀의 땀과 정성과 사랑이 푸르디푸르도록 물들어 있었다. 배추를 수확하는 땅에는 웃음과 환희가 함께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 김장준비 씻은 배추를 버무릴 준비를 하고 있다.
김장

  
▲ 김장하기 절인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고 있다.
김장

이어 김장이 시작됐다. 시래기를 따고, 무를 씻으며, 소금물에 절이는 과정에 모두가 한 몸이었다. 시끌벅적한 소리와 웃음도 작업장을 떠나지 않았다.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날씨였지만, 추위와 수고를 느낄 겨를도 없었다. 따뜻한 지역이라 잘 내리지 않던 눈도 내렸다. 진눈깨비였지만, 모두가 즐거웠다. 

3일간 여러 사람이 힘을 모은 김장은 끝이 났다. 푸르디푸르렀던 잎사귀는 붉은 고추색깔 옷을 갈아입고 하얀 보온그릇에 입장 완료. 이제 총각김치와 처녀김치가 장가시집 갈 날만 기다릴 뿐이다. 

  
▲ 김장하기 보기만 해도 맛이 있을 것만 같다.
김장

사랑을 옮긴다는 것. 아무나 쉽게 할 일은 아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사랑과 정성을 쏟았던 고추와 배추와 무는 한 몸이 됐다. 면 관내 115명의 홀로 계신 어르신들은 사랑이 듬뿍 담긴 김치 한 상자씩을 받았다. 홀로 사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김치와 젓갈 등 밑반찬으로 생활하는 실정이다. 때문에 김치는 겨울을 나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반찬이다. 17개 마을 경로당에도 똑같은 사랑을 나누었음은 물론이다. 

18살에 결혼하여 자식 하나 거두지 못하고 홀로 사는 진옥녀(75세) 할머니 집에도 사랑이 담긴 김치는 나누어졌다. 10년 전,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난 뒤로는 적적함에 쌓여 사람이 제일 그립다고 하는 할머니. 

“간이 맞고, 양념도 맛있어. 그라고(그리고) 너무너무 고마버.(고마워요) 청방(푸른 잎이 많은 배추)이라 배추 맛도 진해서 조코.(좋고) 내 거치(내 같이) 이리(이렇게) 혼자 사는 사람 땜시(때문에) 여러 사람이 욕봤다고(수고했다고) 들었는데, 정말 고맙고 감사혀.(감사해요)” 

  
▲ 고마움 홀로 사는 진옥녀 할머니. 할머니는 김치가 맛있다고 연신 자랑이다.
김치

가끔, 남이 하는 일이 쉬워 보일 때가 있다. 벽에 못을 치거나, 벽지를 바른다든가, 자동차 바퀴를 교체한다든가 하는 일들을 아주 쉽게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그러나 실제 자신이 해 보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한다. 남을 돕는 일도 마찬가지. 홀로 사는 노인이나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하늘같지만, 행동에 옮기기는 쉬운 일이 아님을 한번쯤은 느꼈으리라. 

사람들은 연말연초가 되면, 평소에는 잘 깨닫지 못하는, 사람 사는 도리를 느끼게 되는 걸까? 자신보다는 남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십수 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쌀가마니를 대문밖에 놓고 사라진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자기 돈이 아닌 남 돈으로, 사랑을 사서 이웃에 전하는 높은 직에 있는 사람도 있다. 자랑이야 뒤의 사람이 더 하겠지만. 

  
▲ 기념촬영 김장을 마무리하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촬영
김장

거의 1년 동안 농사짓고 김장까지 하는 고생을 하지 않고, 차라리 그 비용으로 사서 드리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쉽고, 편하고, 얼굴 알리기에 좋겠지만, 그런 사랑은 진실함이 묻어나지 않을 것만 같다. 씨 뿌린 곳에 사랑이 열린다는 것을 몸으로, 자연으로 배우는 소중함을 알겠는가? 

10개월을 몸으로 때운 사랑. 아이 낳아 키우는 것보다 힘들었다고 한 고추농사, 배추농사. 잠시, 생각에 잠긴 그녀. 뜨거웠던 여름날, 땀 흘리며 매운 맛에 콧물, 눈물 흘리면서, 고추 꼭지 따는 작업을 기억하는 모양이다. 내년에 또 하겠느냐는 질문에 쉽게 답을 못하는 그녀. 하지만, 그녀는 내년에도 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어찌 아느냐고? 물론, 그녀의 표정이 답을 대신하고 있다. 끝내 사진찍기를 손사레 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