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가는 여행지는 이름난 곳으로, 청양 출렁다리
- '삶이란 무엇일까'를 느낀, 장승과의 대화 -
[청양칠갑산장승여행] 청양 칠갑산장승공원에 서 있는 여러 종류의 장승.
“그 동안 책을 안 읽어서, 한 권 읽어 보려는데, 책 한권 추천해 줄 수 있어?”
“나 역시 최근에 읽은 책이 별로 없어 잘 모르겠어. 그럼, 인터넷이나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중에서 한 권 선정해서 읽어봐.”
지인과의 대화에서 나눈 얘기로, 뜬금없이 여행이야기를 하면서 왜 이런 내용을 풀어 놓을까. 타지로의 여행에서, 어디로 가 볼까 고민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것도 아무런 정보도 없는, 처음 가는 여행지는 더욱 그럴 터. 그렇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답은 의외로 명확하다. 처음 가는 지역에서는 제일 이름난 명소를 찾아 가는 것.
[청양여행] 천장호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
빨간 고추. 청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차를 타고 청양지역을 지나 간 적이 있는지 모르지만, 지난 13일 청양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 후덥지근한 날씨를 맞이하며 도착한 곳은 청양 칠갑산 동쪽 기슭, 36번 국도변에 위치한 천장호. 그리 크지 않는 이 호수는 대전과 청양을 잇는 국도변에 있는 인공호반으로, 칠갑산의 자연경관과 잘 어우러져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특히, 이 호수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는 대단위 관광명소가 없는 이 지역으로서는 최고의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청양여행] 세계에서 제일 큰 고추와 구기자.
더운 날씨에도 입구 주차장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 간간히 내리는 빗줄기에 더러 우산을 받쳐 든 사람도 있지만 호수 주변을 산책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진입로를 따라 좌우측 숲 사이로 보여 지는 호수는 잔잔하다. 가뭄 탓인지 물도 제법 많이 빠진 상태. 입구에는 안내판이 몇 개 서 있다. 천장호는 1978년 건설하였으며, 출렁다리는 길이 207m, 폭 1.5m, 높이 24m로 국내 최장이며, 동양에서 두 번째로 긴 다리라고 표시하고 있다.
천장호 출렁다리, 아이는 즐거움인데 어른은 긴장감으로
다리 입구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다리를 지탱하는 한쪽 기둥은 청양의 명물답게 빨간 고추 모양을 해 놓고, ‘세계에서 제일 큰 고추˙구기자’라고 적어 놓았다. 약간 긴장한 마음으로 다리에 발을 옮겨 놓아 보았다. 몇 걸음을 내딛자 역시 다리 이름값을 하듯, 출렁이기 시작한다.
바닥재는 나무로 잘 다듬어져 있고, 양쪽에는 안전을 위하여 어른 키 반 정도의 높이로 쇠줄을 설치해 놓았다. 줄을 잡고 한 걸음, 두 걸음, 내딛자 좌우 출렁임은 강도를 더해간다. 아이들은 재미있어하는 반면, 나이든 어른들은 얼굴에 긴장감과 공포감이 함께 묻어남 느낄 수 있다. 물이 많이 빠진 탓인지, 다리와 수면의 높이는 제법 높아 보이는데, 만수위가 되면 거의 물에 닿을 정도라고 한다.
다리를 건너니 칠갑산으로 향하는 들머리가 시작되고, 포효하는 용과 호랑이상이 하나씩 있다. 안내문에는 용과 호랑이에 관한 전설을 담고 있다.
“칠갑산 아래 이곳 천장호는 천년의 세월을 기다려, 승천을 하려던 황룡이 자신의 몸을 바쳐 다리를 만들어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하고, 이를 본 호랑이가 영물이 되어 칠갑산을 수호하고 있어, 이곳을 건너 칠갑산을 오르면, 악을 다스리고 복을 준다는, 황룡의 기운과 영험한 기운을 지닌 영물 호랑이의 기운을 받아, 복을 받고 잉태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는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다시 돌아 나오는 출렁다리는 재미를 만끽하며 건넜다. 여행자만 호들갑을 들뿐, 호수는 말없이 잔잔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다.
천장호에서 약 8.5km 거리에 있는 청양목재문화체험장과 구기자타운. 바로 앞으로는 물이 잠긴 또 다른 작은 호수인 칠갑호가 자리하고 있다. 물과 산이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무로 만든 대형 조각품 전시돼 있는데, 그 옆에 서 있는 안내문이 눈길을 끈다.
<“무제”?? 무엇을 상상 할 수 있을까요?>
숙제가 어렵다. 다른 전시관에서는 작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만 안내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런데 이 체험장에서는 여행자 자질을 시험(?)하는 듯한 문구가 자극을 유발한다. 그래도 좋다. 이런 문구가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게 분명할 터. 그런데 가만히 보니, ‘소 엉덩이에 뿔이 난’ 유명 화가의 작품처럼, 새도, 곤충도, 사자도, 말도, 고기도 한데 뒤섞여 있다. 시험을 푸느라 한 동안 고민했지만, 답을 풀 수가 없다.
목재문화체험장에서 어려운 숙제를 푸느라 고민해야
[청양여행] 청양목재문화체험장에서 만든 작품들.
기획전시관 1층에는 목공예 소품 등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체험공간이, 2층에는 목재를 이용한 특별전시공간으로 돼 있다. 목재문화체험관 1층에는 산림과 목재를, 2층에는 목재의 생산과 활용, 이용 역사와 다양한 목재 놀이와 교감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체험장은 1시간 여 관람을 하기엔 지식을 넓힐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아닐까 싶다.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은, 나무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단단한 돌로 바뀐 것이라는 규화목. 식물화석인 규화목에는 미세한 구조들이 보존돼 있어 식물종속의 성쇠, 고식물 지리, 고기후, 지질층위 등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고 한다.
[청양 가볼 만한 곳] 나무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단단한 돌로 바뀐 화석인 규화목.
잠시 호수를 내려다보며, 잠시 전, 왔던 길 만큼인 8.5km를 달려, 칠갑산장승공원에서 장승과의 대화에 나섰다. 장승은 고대 솟대와 선돌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하며, 조선시대에 장승이라 불렀다고 한다. 장승은 지역간 경계나 이정표,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겨, 나무나 돌로 형상을 만들어 마을 입구에 세웠다. 특별한 날에는 장승제를 지내고 마을의 평화와 무병장수를 기원하기도 했다.
장승공원에 들어서자, 멀리 높이 뜬 두 개의 장승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얀 이빨을 드러낸 채, 부릅뜬 두 눈은 여행자를 호령하듯 노려본다. 그런데 겁이 나야할텐데, 웃음이 절로난다. 장승이 알면 자기를 비웃는다고 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장승이지만, 똑 같이 닮은 모양 없이, 제각각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몸통에 새긴 이름도, 얼굴 표정과 같은 느낌이 든다.
돌장승에 새겨진 글귀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해 주고 있다.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장승과의 대화, 삶이란 무엇일까?
[청양칠갑산여행] 각 방위의 액운을 막아 준다는 오방장승.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하지만,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최근 개인적으로 느낀,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 이 글귀를 보니 더욱 실감이 난다. 오방장승은 각 방위의 액운을 막아주는 장승으로, 동방, 서방, 남방, 북방 그리고 중앙이 있으며, 음양오행설에서 유래되었다. 장승의 구성은 오방장승과 와장승, 중앙장승을 보좌하는 장승이 좌우로 배치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양여행] 장승무덤에 잡초가 무성하다. 올 추석을 맞아 벌초도 해야 하리라.
외국 장승도 한 자리에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알래스카와 플로리다주 토템, 캐나다 밴쿠버 토템도 조각돼 있는데, 우리나라 장승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다. 장승공원 한 쪽 귀퉁이에 자리한 장승무덤엔 잡초가 무성하다. 생명은 없지만 우리의 삶과 문화와 혼이 담겨 있는 장승. 여러 종류 장승과의 대화에서 ‘삶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 청양여행이었다.
처음으로 가는 여행지는 이름난 곳으로, 청양 출렁다리
[천장호출렁다리, 청양목재문화체험장, 청양칠갑산장승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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