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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어머니와의 '사랑과 전쟁'/세상 사는 이야기

 

어머니와의 '사랑과 전쟁'/사람 사는 세상

 

 

지난 주말부터 마른기침에 코가 막히고 눈동자와 실핏줄이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머리에 열은 많이 나지 않지만, 아프고 무겁습니다. "약을 먹으면 괜찮겠지"라며 약국에서 약을 사 먹었지만, 나아질 기미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일요일 밤에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인 21일. 출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은 더 아파 가는데도, 재채기와 기침을 번갈아하며 무리한 출근길에 나섰습니다. 자동차로 약 10분여 거리에 있는 사무실까지 이동하는데, 두 가지 생각이 수차례 교차합니다.

 

"병가를 내고 병원에 가 볼까", "지난 주 인사발령으로 업무 파악을 해야 함은 물론, 오늘 중요한 기자회견이 있어 자리 준비를 해 줘야 하는데"라며.

 

결국, 사무실 앞에까지 가서야 고민 끝으로 차를 돌렸습니다. 10여 평 남짓한 동네 병원 원장실에 들어서자, 일부러 병을 알리기라도 하듯 기침을 뱉어내며 그칠 줄을 모릅니다.

 

"아이고, 많이 편찮은가 봅니다. 요즘 독감이 유행인데, 독감에 걸리셨군요."

"..."

 

말을 할 수가 없어 고개만 끄덕이며 간단한 진료를 받았고, 의사는 말을 이어갑니다.

 

"한 방에 감기를 낫게 해 드리겠어요. 이 주사 한대면 빨리 회복될 것입니다."

 

대답을 하면 자꾸 재채기와 기침이 나와, 무슨 주사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고개만 끄떡거렸습니다. 그렇게 약 30분이 흐른 시간, 병실 밖 접수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팔순 어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어머니는 주말과 휴일을 빼고, 매일 오전에는 이 병원에서 살다시피 할 정도로 자주 찾는 병원입니다. 평소, 숨이 가쁘고 허리가 안 좋아 이 병원에서 치료와 물리치료를 병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절차를 마친 어머니는 커튼이 쳐져 있는, 바로 내 옆자리 침대로 온 것입니다.

 

그런데 큰 고민이 하나 생깁니다. 그건 칸을 가로 막은 커튼을 걷어치우고, 옆 침대에 누운 어머니께 "엄마, 병원 왔어? 저도 감기가 들어 좀 전에 주사 한대 맞으러 여기 왔어"라고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 옆 침대에 누운 어머니, 아는 체도 하지 않고 몰래 나왔습니다

 

무슨 말씀이냐고요? 그건 팔순의 어머니가 오십 중반의 아들이 병원에 입원해서 주사를 맞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면, '거의 쓰러질 뻔 하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평소  어머니는 크고 작은 일에 일일이 간섭(?)하고, 잔소리하며 머리를 아프게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게 합니다. 무슨 일이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알려고 하는 성격 때문에, 피곤함을 느끼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다른 형제와는 달리 저는 '잔소리 듣는 것도, 하는 것도' 싫어하는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안다면, 나을 때 까지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 하기 때문입니다. 그걸 아는 저로서는 중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굳이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알릴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옆 침대에서 가만히 듣자보니, 어머니 특유의 입담은 계속됩니다.

 

"아침밥은 먹었나, 비는 오는데 애는 어쩌고 출근했어, 오지 않아도 될 망할 놈의 비가 온다"는 둥 간호사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말을 쏟아냅니다.

 

가만히 엿들어 보니 참으로 재미가 있습니다. 그 성격이 어디가나 싶기도 합니다. 이러다 옆 침대에 있다는 것이 탄로날까봐, 반대쪽 커튼을 들고 간호사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간호사가 달려와 큰 소리로 "주사약이 남았는데"라며, 말을 건넵니다. 저는 재빨리 손가락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하고, 스마트폰 노트북에 손톱으로 글을 썼습니다.

 

"옆에 엄만데, 알면 신경 쓰니 말하지 마세요."

 

어려운 자리를 도망치듯, 외투를 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떤 이는 병원에서 만났는데, 아는 체도 하지 않은 자식을 이해할 수 없다 하겠지만, 그래도 어머니와 저만의 사랑싸움 방식인 것입니다. 새해를 맞아 이마 주름 하나와 나이 한 살이 더 늘은 어머니. 전화기를 잡으면 30분은 기본입니다. 전화하는 사람이야 그렇다 치지만, 받는 사람은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그 연세에 치매기가 없다는 것은 큰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기가 다 나으면 그때, 어머니께 이야기 드릴 것입니다.

 

"병원 침대에 누우면 그냥 눈 감고 편히 쉬면서 주사만 맞으면 되지, 간호사 일도 못하게 무슨 말을 그렇게 쉬지도 않고 하냐고요?"

 

이 말을 듣는다면, 어머니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합니다. 참, 펜이 없었던 탓에 스마트폰이 제 기능을 발휘했습니다.

 

어머니와의 '사랑과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