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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상지역

[울주명소] 몰래 훔쳐 본, 연두색 옷으로 갈아입는 봄/울주여행/반구대암각화/울주천전리각석

몰래 훔쳐 본, 연두색 옷으로 갈아입는 봄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서 울산의 고민도 함께 느낀 여행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 강물을 이룬다.

 

얼었던 땅이 녹았다. 깊은 산골짜기 땅에서 샌 작은 물방울은 하나 둘 모여 그릇을 넘쳐 내를 따라 흐른다. 작은 물줄기는 이내 큰 강물을 이루고, 봄의 기운을 온전히 받은 연두색 자연 속으로 빠져든다. 가을철이 아님에도 붉은 단풍을 볼 수 있는 자연이 신비롭다. 홍단풍 잎 사이로 강의 물줄기를 이루는 봄의 왈츠는 여행자의 매력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 21일. 울주 반구대 암각화를 보러 떠나는 길목 풍경이다.

 

작은 돌 틈 사이로 한 바퀴 돌아 나온 물은 맑은 소리를 내며 하얀 거품을 인다. 봄바람도 살랑살랑 불어대니 잎사귀도 춤춘다. 4분의 3박자 경쾌한 춤곡인 왈츠다. 연두색 드레스가 플로어를 스쳐 미끄러진다. 나의 손은 여인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여인의 허리를 안은 채 빙빙 돌고 있다. 반구대 입구 연두색 나뭇잎과 그렇게 한동안 왈츠를 추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웃음보다 자연이 주는 이 아름다움이 나는 더 좋다.

 

물속에서 아름드리 자란 버드나무 잎 사이로 운치 있는 나무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 위를 걸으니 마음까지 넉넉하고 평온해진다. 이어 흙으로 잘 다져진 길 양쪽으로 대숲이 울창하다. 블로그에서 활동하는 나의 애칭은 ‘대숲에서 이는 바람’이라는 뜻의 ‘죽풍’. 대나무 숲길을 걸으며 나의 애칭을 이곳 대숲에서 느끼는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하늘을 덮은 대나무가 숲길을 이룬다. 대숲에서 우는 바람소리에 설렘이 인다. 

 

무리 진 영산홍 꽃 봉우리가 탄력 있는 모습으로 곧 터질 것만 같다. 손만 대면 터질 듯한, 봉숭화 열매 같기도 하고, 민들레 홀씨처럼 입으로 ‘후우’ 하고 불면, 곧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위태로운 모습이다. 연두색 새싹이 하늘로 솟았다. 햇살을 받은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세 살배기 아이의 행동이 사랑스럽다지만, 나는 순수한 자연이 주는, 이 보다 더한 사랑스러움을 느낄 수가 없다.

 

봄의 왈츠,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연두색 

 

화려한 색깔을 한 참나무잎에 붉은 열매가 달려 만져보니, 열매가 아니라 참나무잎혹벌레라는 것을 알았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에서 꽃이 폈다. 꽃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모습이 꼭 아프리카 여인의 귀걸이를 연상케 한다. 아직 여물지 않은 참나무 순에 열매가 열려 만져보니 단단하다. 알고 보니 열매가 아니라 참나무잎혹벌레란다.

 

문화탐방 전문 여행자가 아니라면, 이곳 반구대까지 얼마나 찾을까 싶기도 하건만, 생각이외로 많은 여행자가 찾고 있다. 특히 아이들과 학습 차원에서 찾는 여행자가 많다는 것도 특징이다. 봄 햇살을 맞으면서도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은 계속된다. 자신에 찬 모습에 조금이라도 더 알려 주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아름답다.

 

너비 10m, 높이 3m 규모에 약 300여 점의 동물그림 등이 그려져 있는 국보 제285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문화재 지정과 울산의 물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저기 물 건너편 암벽에 편편한 면을 봐 주세요. 규모는 너비 약 10m, 높이 약 4m로 이 곳 벽면에 약 300여 점의 암각화가 새겨져 있습니다. 제작연대는 대부분 신석기시대로 추정되며, 일부는 청동기시대에 그려졌다고도 합니다. 그림은 바다와 육지동물, 사냥모습 그리고 고래의 포경 장면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혹등고래를 비롯한 고래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는데, 고래도시로 알려진 울산의 명성이 우연의 일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보 제285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안내판.

 

암각화에 대한 설명에 이어 울산이 안고 있는 고충도 들을 수 있었다.

 

“울산은 물 부족 현상이 심각합니다. 낙동강에서 물을 사 먹고 있는 실정으로, 하천 아래에 위치한 댐의 수위를 높이면 암각화가 물에 잠겨 문화재가 빠르게 훼손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문화재지정을 서두르고, 시는 물문제와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문화재도 중요하지만, 울산시민의 식수문제는 생존과 직결된 것으로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양측의 입장이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울산시민이 아니면서도 해설사의 설명에 울산의 심각한 물 문제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입구에는 “반구대 암각화 명승지 지정을 결사반대한다”라는 주민일동이 내건 펼침막이 걸려 있는 반면, 문화재가 위치한 현장에는 ‘암각화 보존 및 청정수 확보대책’이라는 어느 단체의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연두색 봄.

 

문화재 보존과 물 문제 고민을 동시에 품은, 반구대 암각화

 

티브이로만 보았던, 울산 반구대암각화를 처음으로 직접 보는 느낌이 남다르다. 문화재 보존이냐, 생존의 문제냐, 무엇이 먼저인지, 어느 하나 쉬운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반구대 암각화의 정식 명칭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1971년 동국대학교 학술조사단에 발견되었으며, 1995년 6월 23일 국보 제285호로 지정되었다. 암각화는 바다짐승, 육지동물, 사람, 도구 등이 주를 이룬다. 바다짐승으로는 고래, 물개, 거북 등 다수이며, 육지동물로는 사슴, 호랑이, 멧돼지, 개 등 여러 동물도 보인다. 사람의 얼굴과 배에 탄 모습도 나타난다. 도구로는 배, 울타리, 그물, 작살, 방패, 노 등이 있으며, 암벽 곳곳에 여러 종류의 그림도 그려져 있다.

 

 

연두색 봄.

 

주차한 곳에서 문화재까지 약 500m 거리. 왕복 1km의 오솔길은 걷는 동안, 회색에서 연두색 옷으로 갈아입는 봄을 보니 설렘이 인다. 남몰래 옷을 갈아입는 여인을 훔쳐보는, 야한 느낌마저 든다. 강 건너 쪽에 기암괴석이 하늘로 솟았다. 울창한 나무에 싸인 팔작지붕을 한 정자는 말없이 강물을 내려다본다. 바위도 정자도 연두색에 파묻혀 있다.

 

부족한 시간으로 이곳 먼데까지 왔다가 중요한 다른 문화재를 둘러보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에 소재한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 언양읍 대곡리에 소재한 ‘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울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13호). 다음에 다시 찾아봐야겠다는 아쉬움만 남겼다.

 

울산암각화박물관 전경.

 

막내 동생을 보고 싶어 찾아 간 울산에서 장생포고래박물관을 관람했다. 박물관 해설사로부터 내가 알지 못하는 고래에 관한 많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장을 가보지 않고 만족할 수 없었던 숙제. 그것은 고래그림이 새겨진 암각화에 대한 것. 의문은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인지라, 반구대 암각화를 관람하러 울주여행으로 이어진 것. 그래서일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차 엔진소리도 부드럽게 들린다. 한층 좋아진 기분 탓이리라.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현장으로 가는 길에 연두색 봄이 활짝 피었다.

 

몰래 훔쳐 본, 연두색 옷으로 갈아입는 봄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서 울산의 고민도 함께 느낀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