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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지역언론

학동으로 가는 꽃무릇 길


새거제 5면 2008년 10월 23일~10월 29일
(제426호)

거제타임즈 2008년 10월 24일
http://www.geoj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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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동으로 가는 꽃무릇 길


꽃에도 명품이 있다면 단연 석산(石蒜)이라는 꽃을 추천하고 싶다. 다른 말로 꽃무릇이라 부르는 이 꽃은 수선화과에 딸린 여러 해 살이 풀로서, 산기슭이나 습한 땅에서 무리지어 잘 자라며, 특히, 절 근처에 많이 자생하는 꽃으로 절을 찾는 사람들은 이 꽃의 내력을 잘 알고 있다.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이 꽃은 몸은 하나인데도 꽃과 잎이 같은 시기에 피지 않아 서로가 만나지 못하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의 꽃이라 알려져 있지만, 필자는 꽃과 잎이 영원히 만나보지 못하는 애타는 그리움을 상징하기에 화엽영원불상견(花葉永遠不相見)의 꽃이라 이름 지어 부르고 싶다.


또한, 이 꽃은 슬픈 전설을 안고 있다. 상상화라고도 불리는 꽃무릇은 아주 먼 옛날, 절에 기도하러 온 예쁜 처녀가 스님을 사모하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뒤 절터 곳곳에 붉게 피어났다는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기다림은 영원토록 만남을 이루지 못하고, 그리움만으로 남는 것 같아 슬프기만 한 꽃이다. 스님을 얼마나 그리워하였으면, 절터 부도 옆에서도 홀로 또는 무리지어 활짝 피어 웃고 있는 모습이 그토록 애처로울까.


응달진 곳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꽃을 피우는 꽃무릇은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는 오후쯤이면 그 화려함은 절정을 발하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듬뿍 안겨주는 가을을 대표하는 사랑받는 꽃으로 유명하다. 9월 중순경부터 꽃을 피우고 10월 중순 무서리가 내리면 새파란 잎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 겨울을 나게 하는 특별한 꽃이다. 고고히 홀로 피는 자태는 양귀비의 고귀함보다 더 아름답고 무리지어 피는 화려함은 환장하리만큼이나 황홀하다.


지난 9월 말, 이 꽃을 보려고 전북 고창에 있는 선운사를 찾았을 때, 전국에서 몰려든 수많은 사진작가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살짝 건드리기만 하여도 꺾일 듯 연약한 꽃대는 가냘픈 처녀의 몸이고, 꽃잎은 스님을 애타게 그리는 사랑의 눈빛이런가. 그래서일까, 선운사 산신당 문지방에는 꽃무릇 다섯 송이가 애타는 모습으로 피어 있었다. 아마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걸 알면서도 매년 같은 시기에 저렇게 연약한 모습으로 스님을 애타게 그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상상화의 슬픈 전설을 알아버린 연유일까, 문지방에 핀 꽃무릇이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다.


꽃무릇의 화려함과 열정은 전국 각처의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다.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 등이 꽃무릇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으며, 함평은 꽃무릇 축제까지 하면서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제일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은 역시 선운사 꽃무릇이라 하겠다.


굳이 말한다면, 꽃무릇 하나로 관광객을 얼마만큼 불러들이고, 얼마의 관광수입을 벌어들이는지는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결단코 분명한 사실은 아름답게 핀 꽃무릇 하나만을 보러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진작가와 관광객이 찾아간다는 사실은 부인 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거제시에서는 아름다운 도시 조성을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사시사철 특색 있는 꽃길을 만들고 가꾸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략적인 조사지만 거제도 길가에 피는 꽃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페추니아, 펜지, 사루비아, 메리골드, 꽃잔디, 층층꽃, 설유화, 수선화, 원추리, 왕원추리, 개량왕원추리, 칸나, 금잔화, 코스모스, 황화코스모스, 구절초, 털머위, 수국, 벌개미취 등 외래종이든 국산 토종이든 많은 종류의 꽃이 계절마다 달리하면서 도로를 달리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마다 제각각 좋아하는 색깔과 스타일의 옷이 있다. 그건 누구라도 나무랄 일도 아니다. 남이 볼 때 별로라고 하지만 자신이 좋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때는 자신이 좋다고 해서 남이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것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꽃도 제각각 아름다움을 뽐내며 자기가 잘났다고 표현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꽃 중에서도 자태가 아름답고 고귀하며 뭔가 사람들에게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사연을 전하는 그런 꽃이 있다는 생각이다.


봄철, 일운 관내 도로변에는 노란 수선화 꽃길이 한 독지가의 열정으로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다. 그 독지가는 다름 아닌 영화 ‘종려나무 숲’ 촬영지 공곶마을의 강명식 할아버지로서, 지난 수년 간 약 십만 구근의 수선화를 기증하였으며, 그 정성을 기린다면 ‘강명식 수선화길’이라고 이름 붙여 주고 싶다. 또 하나는 ‘황제의 길’이라 불리는 일운면 망양삼거리부터 동부면 경계까지의 꽃무릇 길은 지난해 보다 더 많이 번식되어 더욱 화려한 자태를 보여 주었으며, 앞으로 고창 선운사보다 더 화려하게 꽃 피울 때, 이 길 역시 ‘꽃무릇 황제의 길’이라고 이름 지어 알리고 싶다.


거제지역에 꽃무릇 식재 적지로 꼽는다면 황제의 길 외에도, 학동고개부터 마을까지 이어진 꼬불꼬불한 비탈길, 그리고 수산마을부터 망양마을까지 바다를 바라보며 도는 길옆으로 심는다면, 거제도의 가을을 대표하는 ‘학동으로 가는 꽃무릇 길’이라는 이름을 명명할 수 있지 않겠는가. 꽃무릇은 구근식물로 번식력이 강해 2~3년이 지나면 여러 개의 구근을 번식하기 때문에 이식하여 꽃길 조성에 적당한 꽃이다. 덧붙여 이 꽃은 밀식을 해야 만이 그 화려함의 빛을 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인터넷신문 거제타임즈(2008.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