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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지역언론

퇴박맞은 엄마와 나들이 길


새거제 2011년 6월 16일
거제타임즈 2011년 6월 9일
http://www.geoj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641
뉴스앤거제 2011년 6월 8일
http://www.newsngeoje.com/news/articleView.html?idxno=6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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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박맞은 엄마와 나들이 길


울 엄마, 세는 나이로 올해 칠십 아홉. 이 세상 고민과 무거운 짐을 혼자 다 짊어지고 사는 스타일이다. 큰 아들 이야기를 시작으로, 최근 가정을 꾸린 손자며느리에 이르면 한두 시간에 끝이 나지 않는다. 나는 일곱 자식 중 세 번째, 아들로는 둘째. 한 집에 같이 살진 않지만, 나랑 가끔 한번씩 티격태격 싸우고 지내며 살고 있다. 6일, 부산에 사는 자형이 입원 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 가는 길. 지난해 말 거가대교가 개통돼 한번 구경시켜 드린다고 했는데도, 기름 값 비싸다고 가보지 못하다 이번에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이게 무슨 다리고? 머시 이리 크노?"

"거가대교 아이가. 작년에 오자캤는데 기름값이 비싸다고 몬왔다 아이가."


통행료 1만 원 내는 것을 보고 처음 놀랐고, 큰 다리 두개를 보고 두 번 놀란 엄마. 이어 세 번째 놀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차가 지금 바다 밑으로 가고 있는데 침매터널이라고 해. 육상에서 시멘트 박스를 만들어 물속 얼추 50m 깊이에 터널을 만든 거지. 길이는 엄마 집에서, 우리 집 까지 정도 돼."

"바다 속이라꼬. 그랑께, 시원한 갑다. 아까보다 차안이 시원한기 이상하다 캤는데."


사실은 출발 할 때부터 에어컨을 틀었는데, 땡볕에 열기를 받은 차이 때문에 그렇게 느꼈으리라. 그렇다고 에어컨을 틀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괜히 이상한 분위기가 만들어 질까봐. 차는 다시 육지에 오르자 에어컨을 잠시 껐다. 에어컨을 켜서 시원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할 아들의 도리랄까.


엄마는 자식들 차를 탈 때, 제일 나를 좋아하고(?) 남들에게 자랑한다. 그 이유는 음악 때문. 평소에도 뽕짝 음악 외에 다른 장르를 별로 듣지 않는 탓에 트로트 음악이 제일 많이 준비돼 있다. 다른 자식들은 신세대 노래만 들어 좋아할 리 없고, 그렇다고 트로트 음반이 없어 틀어 줄 수도 없는 상태.


"쿵 짝, 쿵 짝, 쿵 짜작, 쿵 짝. 인생은 기껏 살아봐야 팔 십..."

"저 가수는 술도 한 잔 안하고, 우찌 저리 노래를 안 쉬고도 잘 하노?"


살짝 소리를 높여 주자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다. 룸미러에는 소리 나지 않게 손뼉 치며 흥얼거리는 모습이 선명하다.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면, 한 번씩 여행이라도 가자 하지만, 그 놈의 기름값 때문에 매번 거절하는 엄마다.


차는 부산에 접어들고 시내에 들어서니 내비게이션이 두 배로 울어댄다. 속도가 빠르니, 지하도 옆으로 가라니, 오만가지 간섭이다. 울어대는 내비게이션.


"칠십, 칠십. 칠십."

"아라따, 엥간이 씨버리라. 몽찰씨리(많이) 씨버리 쌌네."


나를 보고 나무라나 싶어 움칫 놀랬지만 대상은 아들이 아니다. 엄마는 드라마를 볼 때면 티브이와 싸움이 취미다. 바람 난 남자, 여자 주인공, 악역을 맡은 며느리가 엄마의 주 공격 타깃.


"저, 저,,, 망할 년, 놈 봤나? 저거를 그냥 확..."


어느새 삿대질은 티브이로 향한다. 티브이가 무슨 죄가 있고, 탤런트가, 내비게이션이 무슨 죄가 있나?


심장이 안 좋아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가쁜 엄마다. 병원 입구에 먼저 내리고 차를 주차하고 병실을 찾아가는데도 타박은 계속 이어진다. 처음 와 보는 병동이라 찾기 힘들고 복잡한데도, 그것도 제대로 못 찾는다는 식이다. 긴 복도를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상황.


"야이 놈아, 똥개 훈련시키나?"


이 글을 쓰며 이 대목에 이르자,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손짓과 몸동작, 표정 그리고 목소리까지 고스란히 그대로 들려오며 눈에 선하다. 그래도 재미있고 유머 넘치는 엄마다.


병실에서 자형을 면회하고 위로하며 한 동안 시간을 함께 했다. 때늦은 점심시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형제들이랑 자갈치시장 어느 횟집에서 회 한 접시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분위기가 오르자 거가대교 침매터널 지나오며 나눈 이야기를 폭로하고야 말았다.


"엄마. 아까 침매터널 지나올 때, 시원하다 캤제."

"그래, 시원하더라 아이가. 니는 안시원 하더나?"

"그때, 사실은 에어컨을 켜서 그렁기라."


잘 알아듣지 못한 조카 녀석들을 제외한 가족들의 한 바탕 웃음은 계속되었다.



인터넷신문 거제타임즈(2011년 6월 9일), 뉴스앤거제(2011년 6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