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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산사순례

[108산사순례 14] 김천 불령산 청암사에서 108배로 14번 째 염주알을 꿰다/사찰여행/김천여행/김천 가볼만한 곳

 

[108산사순례 14] 김천 불령산 청암사에서 108배로 14번 째 염주알을 꿰다

/사찰여행/김천여행/김천 가볼만한 곳


김천 불령산 청암사 일주문.

 

[108산사순례 14] 김천 불령산 청암사에서 108배로 14번 째 염주알을 꿰다/사찰여행

/김천여행/김천 가볼만한 곳

 

맑은 물에 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단 하루라도 그렇게 살고 싶다

<108산사순례기도로 떠나는 사찰이야기> 불령산 청암사

 

이른 아침 한적한 도로. 자동차는 고속국도 35번을 따라 북쪽으로 나아간다. 스피드 욕구로 엑셀레이더를 밟자 굉음을 내는 자동차. 잠시 짜릿한 기분에 취했다, 속도를 줄였다. 지나치는 풍경을 보며 느긋함을 즐겨보고 싶어서다. 멀리 도로변에 터널을 이루며 길게 늘어서 핀 벚꽃은 이른 봄을 말해 주건만, 들녘에는 완숙함이 가득 내려앉았다. 연두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야산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길은 꺾여 88올림픽고속도로에 접어든다. 편도 1차선이라 속도를 내려야 낼 수가 없는 도로. 자신을 통제하지만 그 여유로움은 배가 된다. 지난 4일. '빠름과 느림'을 번갈아가며 <108산사순례> 14번 째 여행지인 김천 청암사로 떠났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신경이 곤두선다. 언젠가 본 듯한 익숙한 도로풍경 때문이다. 분명 그 언젠가 이 지역을 지난 것만 같은데 뚜렷하게 나지 않는 희미한 기억. 정확하고 선명한 장면은 눈앞에 끝내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거창을 지나 청암사로 향하는 국도 30번 도로는, 찌꺼기로 남은 기억을 모으기에 바쁘다. 고민하다 생각을 바꿨다. '처음으로 이 길을 지나겠지'라며. 그래야만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의 진미를 느낄 테니까. 절이 있는 곳에 계곡이 있고, 계곡이 있는 곳에 물이 있기 마련. 물소리가 봄노래로 들리는 청암사 입구에 다다랐다.


 

계곡을 낀, 훌쩍 키가 큰 붉은 소나무와 잡목 사이로 난 번듯한 오솔길이 끝날 때쯤 나타나는 일주문. 얼핏 보니 편액에 쓰인 글씨가 잘 읽혀지지 않는다. 겨우, '불산암 영청사'라 읽었다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머리를 굴려보니 글씨를 위아래로 반복해 쓴 서체다. 바로 보니, '불령산 청암사'로 읽힌다. 천왕문 사천왕상이 다른 사찰과 다른 모습이다. 보통 목조로 만든 사천왕상에 비해, 이곳은 벽에 그림 형태로 사천왕상을 모셨다.

 

목조의 사천왕상은 튀어난 눈, 화난 듯한 얼굴 표정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잔뜩 겁을 먹게 만들거나 주눅 들게 만든다. 그런데 벽화의 사천왕상은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으로, 무서움이 드는 것 보다 오히려 친근감이 들 정도다. 악마나 귀신을 쫓는, 불법을 수호하는 4명의 대천왕상인 사천왕. '근엄하고 겁난 표정'을 가진 사천왕이 제 임무를 잘 수행할까, 아니면 '온화하고 친밀한 얼굴'을 가진 사천왕이 더 나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경북 김천시 증산면에 자리한 청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다. 신라 헌안왕 3년(859) 도선국사가 건립한 고찰로, 조선인조 25년(1647) 화재로 전소됐으나, 허정혜원스님이 심혈을 기울여 중건하였다. 숙종의 비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무고로 폐위되고, 서인으로 있을 당시 이곳 극락전에서 기거하면서 기도했던 인연으로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불령산 적송림은 국가보호림으로 지정돼 궁에서 무기 등이 하사되었고, 조선말까지 상궁들이 내려와 신앙생활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한 사찰이다. 사찰 위쪽에 자리한 보광전은 인현왕후가 폐위 된 후 원당으로 건립된 전각으로 역사의 의미가 숨어있는 곳이다.


 

달콤함은 유혹으로 이끄는 재앙의 씨앗, 우비천에서 삶의 지혜를

 

천왕문을 지나니 '우비천(牛鼻泉)'이라는 작은 샘이 있다. 물 한 바가지를 떠 마셨다. 목이 말랐는지 달콤하다. 달콤함은 유혹으로 이끄는 재앙의 씨앗이다. 그런데 안내문을 보니 어찌 내 생각과 비슷한 글귀 내용이 눈길을 끈다. 재물을 멀리하고 수행에 정진하려는 스님들의 고뇌를 알 것만 같다.

 

"청암사는 소가 왼쪽으로 누워있는 와우형의 터다. 이 샘은 소의 코 부분에 해당되는 곳으로 우비천이라고 하며 코 샘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이 코 샘에서 물이 나오면 청암사는 물론, 증산면 일대가 부자가 된다고 하며 이 물을 먹으면 부자가 된다는 전설이 전하여져, 재물을 멀리한 스님들은 이 샘을 지날 때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고 한다."


 

청암사는 큰 계곡을 가로질러 전각들이 배치돼 있다. 그러다보니 크고 작은 다리를 건너야만 법당에 갈 수 있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물이 너무나도 맑다. 바닥이 훤히 보인다. 물결이 일지 않으면, 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다. 청정 그 자체다. 작은 물고기가 노니는 모습이 부럽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자신을 합리화하는 말일 뿐, 천만의 말씀이다. 단 하루를 살다 가더라도, 맑은 물에 사는 저 물고기처럼, 더러움에 물들어 살고 싶지는 않다. 작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하얀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 맘속의 때를 벗기려 한참이나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대웅전 앞마당에 서 있는 석탑은 둘레에 비해 길고 홀쭉한 모습으로 왠지 불안정한 형태의 4층 석탑이다. 탑은 대개 홀수 층으로 세우는 것이 보통인데, 이 탑은 4층으로 만든 그 이유가 궁금하다. "조선 후기의 탑으로 1912년 성주의 어느 논바닥에서 옮겨왔으며, 원래는 5층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한다.

 

지대석 위는 2층 기단을 올려놓고 4층의 탑신을 쌓았다. 탑신 1층 몸돌 각 면에는 불 좌상을 돋을새김 해 놓았는데 해학적인 모습이다. 석탑이 정교하게 조각됐거나, 예술적인 미가 한층 돋보이는 느낌은 아닐지라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1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깊은 역사를 간직한 청암사에 국보·보물 급 문화재가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나마 특별난 이 석탑을 보는 것만으로도 복이라 받아들이고 싶다.


 

청암사의 주 법당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로 용마루 끝은 장식용 기와로 마무리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청색의 기와지붕으로, 이는 처마 밑 색이 약간 바랜 단청과는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미술인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색채의 아름다움은 평면적인 것에 반해, 고건축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의 아름다움은 입체적이다.

 

그래서일까, 건물 외부 금단청의 강렬한 느낌은 모로단청으로 채색된 법당 안까지 이어지고 있다. 불전에 자리한 불상이 놀랍다. 보통 사찰의 법당에 안치된 불상과는 달리, 한 눈에 봐도 우리나라 불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머리에 있는 육계(정수리에 솟은 상투 모양의 살덩이)와 통견가사(양쪽 어깨를 모두 가리는 방식의 가사) 일부분 그리고 입술이 붉은 색이다. 붉은 색을 선호하는 중국계통의 불상임을 짐작케 한다.


 

대웅전 법당에서 눈여겨 볼만한 가치, 석가모니불과 벌집

 

청암사는 비구니스님이 수행 정진하는 도량이다. 오전 10시, 스님과 함께 법회에 참여했다. 법회를 마친 스님이 먼저 말을 건넨다. 법회가 열리기 전부터 기도하고, 마치고 나서도 자리를 떨줄 모르는 수상한(?) 사람을 보고 궁금했던 모양이다.

 

"기도를 열심히 하십니다. 어디서 오셨나요."

"예, 거제도에서 왔습니다" 답하면서, "불상이 달라 보입니다"라며 되레 여쭈었다.

"멀리서 오셨네요. 저 불상은 1914년 대운스님이 중국 항주 영은사에서 조성한 석가모니불을 모셔온 것이죠. 불상 가운데 붉은 색이 우리나라 불상과는 다른 점이죠. 그리고 저 위 보광전에 가시면 인현왕후가 폐비돼, 여기 청암사에서 기거했던 역사도 알 수 있습니다."

 

스님의 친절함에 고마움의 예로 두 손 합장하고, 문 밖으로 나가는데 법당 안에 작은 벌집 하나가 눈에 띈다. 건물 외벽에 나 있는 작은 구멍사이로 드나든 벌이 벌집을 지은 것. 건물 외벽과 법당 안 유리벽 사이 틈이래야, 겨우 벌 한 마리가 드나들 수 있는 좁은 공간임을 감안하면, 강인한 생명의 존귀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리라.


 

대웅전이 있는 터 다리를 건너, 스님이 알려 준 보광전으로 가는 길엔 따스한 봄볕이 마중 나와 반겨준다. 기분 좋은 이는 여행자만 아니다. 재촉하는 봄기운에 목련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활짝 웃음으로 꽃을 피웠다. 그럼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목련도 목채 떨어지는 아픔을 겪으리라. 문득,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계시는 어머니가 나타나는 것은 왜일까. 자연의 순리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지혜, 그것이 바로 깨우침이지 싶다. 볕이 반쯤 들어오는 곳에 핀 야생화. 절터 빈 곳곳마다 현호색이 무리지어 자리를 차지하며 봄의 기운을 알리려 손짓하고 있다.


 

스님이 일러주신 보광전. 42개의 손을 지닌 관음보살이 불전을 지킨다. 처마 밑 풍경은 봄바람을 타고 춤춘다. '쨍그랑, 쟁쟁하는 쇳소리'. 경쾌한 풍경소리는 흐트러지고 번뇌로 가득한 마음을 맑게 해 주는 청정 음이다. 마당엔 2개의 연꽃 문양이 새겨진 배례석이 있다. 배례석을 한자로 풀이하면, '돌 위에 엎드려 절하면서 예를 숭배한다'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배례석은 불상, 석탑, 석등 앞에 있는 판돌로, 돌 위에 촛불을 켜거나 향을 피우고 음식을 차려놓는 넓은 돌을 말하는 것으로, 불자라면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누군가 대여섯 개의 초를 얹어 놓았다.


 

작은 다리를 건너 인근 백련암에 들렀다. 여행자의 발자국 소리만 맴돌 뿐, 고요함만 가득한 작은 암자에서 참회의 의미를 되새긴다. '참회(懺悔)', '참(懺)'이란, '종신토록 잘못을 짓지 않는 것'이요, '회(悔)'란 '과거의 잘못을 아는 것'. <108산사순례>, 청암사에서 108배 기도로 14번 째 염주 알을 뀄다. 깨끗한 물, 맑은 풍경소리, 강인한 생명력 그리고 소중한 목숨의 의미를 되새겨 본 사찰 기도여행이었다.

 

『108산사순례 14

 

(1)양산 통도사 → (2)합천 해인사(483.8km) → (3)순천 송광사(367.8km) → (4)경산 선본사 갓바위(448.4km) →  (5)완주 송광사(220. 2km) →  (6)김제 금산사(279.2km)  → (7)여수 향일암(183.4km)  → (8)여수 흥국사(192.3km) → (9)양산 내원사(100.3km) → (10)부산 범어사(126.6km) → (11)구례 연곡사(156.8km) → (12)구례 화엄사(25.1km) → (13)구례 천은사(192.5km) → (14)김천 청암사(집 → 청암사, 204.9km)

 

☞ 총 누적거리 2,981.3km


 

[108산사순례 14] 김천 불령산 청암사에서 108배로 14번 째 염주알을 꿰다/사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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