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진짜 백화점에서 샀다니까... 떨이 하는 데서"
[사는 이야기] 태어나 두 번째로 어머니 선물을 샀습니다. 그리고 거짓말도 함께 포장을 했습니다.
[사는 이야기] "진짜 백화점에서 샀다니까... 떨이 하는 데서"
흔히 정이 많고 사근사근한 사람을 일컬어 ‘잔정이 많다’고 하는지요? 그러고 보면 나는 잔정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조카 용돈을 주는 것도 설날이나 추석 명절 때, 일년에 기껏해야 두 번 정도 줄까말까 하니까요. 그런 반면, 나 역시도 생일이나 무슨 기념일에 뭘 받아보겠다고 기대를 한 적이 결코 없다는 사실입니다. 생일날 친구들한테 은근히 귀띔하여, 소주 한잔 얻어 마셔보겠다는 것 까지도 말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역시 잔정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엊그제 잔정이 없다던 그간의 기록(?)을 깨고 말았습니다. 50중반을 넘기까지 어머니께 선물을 해 본 기억이 없는데, 서울 출장길에 어머니가 입을 옷 하나를 샀기 때문입니다. 물론, 젊었을 때 직장을 구하고, 첫 봉급으로 부모님 내의를 사 드린 이후, 두 번째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일. 서울에서 사 온 여름에 입을, 예쁜 블라우스를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이기 뭐꼬?”
“응, 선물이지. 서울 출장 갔다 오면서 하나 샀어. 여름에 입으라고. 안 예쁘나?”
“뭐, 니가 우짠 일이고, 선물을 다 사 주고. 얼매 줬노? 그라고 복닫한거(붉은 색)를 안 사고?”
“얼매모 머할라고? 그냥 입으면 되지. 어~~. 5만 원.”
“뭐~? 이거 길바닥에서 샀네. 그런데 머시 이기 5만 원이고?”
“진짜 5만 원 줬다니까. 사 줘도 탈이야.”
어머니는 길에서 산 옷이란 걸 단박에 알아차렸습니다. 차마 백화점에서 샀다고는 말을 못하고, 큰 가게에서 제법 큰 돈 주고 샀다고 은근히 자랑하려 했던 마음은 쏙 들어가고야 말았습니다. 팔순 어머니가 귀신같이 알아 차렸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자존심이 조금 상하는지라, 거짓말을 조금 더 보태 말을 이었습니다.
“진짜로 백화점에서 샀다니까. 떨이하는데서.”
“길바닥에서 산 거 맞는데 뭐. 내가 바본 줄 아나?”
“...”
길표가 백화점표로 둔갑할 뻔 했던, 어머니 블라우스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우겨봐야 다툼밖에 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옆에서 큰 형님이 중재를 서며 거듭니다.
“아들이 많아서 좋네 뭐. 이런 옷도 다 사 주고.”
“아들 많아도 옷 얻어 입어 보기는 첨인 것 같은데 뭐. 그래도 기분은 좋네.”
“복닫은거 보다 훨씬 더 좋아 보이네.”
작은 선물 하나 때문에 설전이 벌어지려다, 형님이 중간에 끼어든 덕(?)에 대화는 좋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사 온 블라우스를 안 입을 듯 하면서도 안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마루로 나오며 선을 보입니다. 참으로 잘 어울립니다. 거짓말 좀 보태서 십년은 젊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속으로는 한편 마음이 영 편하질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선물 하나, 어머니 옷 한 벌 사드리지 못한 아들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것도 평생 처음 한 벌도 아닌, 반쪽짜리 블라우스 하나 선물하면서 거짓말까지 했으니까 말입니다.
아직까지 어머니께는 얼마짜리 블라우스인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말을 하면 곧 실망 할 테니까요. 어쩌면 어머니는 얼마짜리인줄 알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면, 얼마짜리 블라우스냐고요? 2만 원을 주니 2천 원을 내어 주더군요. 거제도에서 왔다고 하니, 2천 원은 차비에 보태라면서.
오는 8월이면 어머니는 팔순이 됩니다. 그땐, 백화점에서 제대로 된 옷 한 벌 꼭 사 드려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거짓말 포장은 빼고 말입니다.
[사는 이야기] "진짜 백화점에서 샀다니까... 떨이 하는 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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