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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여행/북유럽

북유럽 여행기 6 - 17시간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오슬로 바이킹 박물관으로


북유럽 여행기 - 노르웨이 오슬로 주변 항구에 정박한 요트

2007년 6월 14일(목) 아주 맑은 날씨, 파란 하늘을 보다

피곤했던지 크루즈에서 하루 밤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6시 반, 눈을 떴다. 유람선에서 맞이하는 아침, 쌀쌀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맞이한다. 일행이 타고 가는 유람선 뒤로 또 다른 유람선이 우리를 쫓아 오고 있다. 길게 생긴 만의 양쪽 옆으로는 육지가 보이고, 하얀 집들이 그림처럼 그려져 있다.

북유럽 여행기 - 노르웨이로 향하는 크루즈

바다를 감상하며 하는 선상의 아침식사는 맛을 더욱 당긴다. 전날 저녁식사 자리는 동양인과 서양인을 구분해 자리를 배치해 놓았던데, 아침은 뒤섞인 자유로운 모습이다. 휴가를 즐기는 서양인들의 모습이 참 부럽기만 하다. 긴 항해 끝 6월 14일 09:30. 바이킹의 도시 오슬로 항구에 도착했다. 덴마크에서 17시간 동안 해상여행을 한 셈. 항구에 닿은 여객선은 하선준비에 여념이 없는 여행객들로 분주하다.

북유럽 여행기 - 크루즈 내부(맨 위)와 덴마크에서 노르웨이를 향하는 길목

노르웨이. 수도는 오슬로이다. 16만 개 이상의 크고 작은 호수들이 점점히 흩어져 있는  이 산악 국가는 북위 58~72도(북북동에서 남남서로 약 1753킬로미터)와 동경 4~32도(동남동에서 서북서로 약 430킬로미터 폭) 사이에 걸쳐 있다. 북쪽으로 바렌츠해, 서쪽으로 노르웨이해 및 북해, 남쪽으로 스카게라크 해협, 동쪽으로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연방 등과 접하고 있다. 면적은 323,758평방킬로미터, 인구 4백 3십여만 명.

북유럽 여행기 - 오슬로 주변 항구

우리에게 '바이킹의 나라'로 잘 알려진 노르웨이는 8세기 이후 강력한 해상 세력을 바탕으로 점차 세력을 확장했다. 890년에 즉위한 하랄 미발 왕은 노르웨이를 통일함과 동시에 지금의 아일랜드 지역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10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계속되는 왕위 계승 다툼으로 수차례에 걸친 분열과 재통일이라는 역사적 시련기를 맞는다.

노르웨이는 바다를 십분 활용해 해상활동을 재개하며, 11세기에는 이탈리아 남부까지 세력을 넓여 노르만 제국을 건설한다. 이어 12~13세기에는 아이슬란드, 세틀랜드 제도까지 세력을 확장하기도 했으나, 계속되는 왕권 분열과 쇠퇴 등으로 해상 경제 봉쇄 등 대내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국가 존망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1397년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3국 연합(칼마르 동맹)이 성립됨에 따라 실질적으로 덴마크가 북유럽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그 여파로 노르웨이는 19세기 초까지 덴마크의 지배를 받게 된다.

북유럽 여행기 - 오슬로항

나폴레옹 전쟁 때는 덴마크가 나폴레옹 편에 가담했기 때문에 그의 몰락과 더불어 1814년 다시금 스웨덴의 통치하에 놓인다. 그러나 스웨덴은 노르웨이의 독립과 새 헌법을 인정했고 외교, 방위 이외의 자치권을 허용한다. 덕분에 1880년대에는 세계 3위의 상선 보유국으로 성장 할 수 있었다. 19세기,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1905년 국민투표를 실시, 입헌군주국으로 완전 독립 국가를 수립하기에 이른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의 침략을 받기도 했으나, 독일의 패망과 더불어 독립국으로 출범하여 조선, 석유, 수산업 등을 집중 육성해 지금은 북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성장 할 수 있었다.

북유럽 여행기 - 오슬로 바이킹 박물관

오슬로, 9백여 년 전부터 북유럽을 주름잡던 바이킹들이 가장 사랑했던 도시다. 오슬로는 여름철이나 해를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겨울철에도 늘 젊고 패기 있는 분위기를 발산한다.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때는 8세기 이후로 바이킹의 활동이 두드러져 바이킹의 수도라는 별명을 얻었다. 오슬로는 피오르드의 북쪽 안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도시의 인구는 46만여 명.

10:10. 오슬로 바이킹 박물관에 도착. 바이킹 박물관은 정말 쇼킹 그 자체였다. 9세기 초, 어떻게 그런 큰 배를 만들 수 있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오슬로의 피오르에서 발견된 오세베르그호, 고크스타호, 투네호 등 3척의 바이킹선을 복원해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이중 가장 크고 우아한 오세베르그호는 9세기 초에 건조된 것으로 배의 양쪽에 16개의 노 젓는 구멍이 뚫려 있고, 32명의 노 젓는 사람과 돛을 이용해 항해하였다.

북유럽 여행기 - 오슬로 바이킹 박물관

가장 먼저 방문객을 반기는 오세베르그호는 834년에 건조돼 1904년에 발굴된 이집트 여왕의 선박이다. 돛의 길이만도 21.5미터로 엄청난 높이로 폭풍우 치는 강한 바람에 어떻게 견뎌 냈을까하는 점이 의문스럽다. 오세베르그호에서는 각종 장식품과 부엌용품과 가구류가 발견되었으며, 50년 정도 사용된 후 여왕의 관으로 사용되었다.

9세기에 만들어진 고크스타호는 전형적인 바이킹선으로 12두의 말과 6두의 개, 짐승머리로 장식된 침대, 3척의 보트 등이 발견되었다. 투네호는 배 밑바닥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대부분 부패된 채 발견됐는데, 원거리 항해용으로 이용된 것으로 보이며, 배들의 이름은 발견된 지명을 따서 붙여졌다고 한다.

북유럽 여행기 - 오슬로 바이킹 박물관

세계 3대 해전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는 이순신 해전. 경남도에서 남해안 시대 핵심 콘텐츠 사업으로 이순신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해군에서 10년간 거북선 찾기를 시도했으나 실패로 끝나자, 다시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성공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420여년 전 가라앉은 거북선을 찾는다면 귀중한 역사적 자료를 보유하게 되고 관광자원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