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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선생님 건강해 보이십니다


선생님 건강해 보이십니다

 

꽃게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시절, '예술'이 무언지 눈을 뜨게 해 준 분이 계셨으니, 그림을 그리셨던 문암 박득순 선생님이다. 당시 촌에서 먹고 살기에도 바쁜 궁핍한 삶에서, '예술'이 무슨 밥 먹여 줄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예술적 감각이 싹틀 수 있는 중요한 청년시절에 선생님을 만났으니, 선생님의 아름다운 영혼을 닮아서였을까?

분야는 다르지만, 예술을 한답시고 카메라를 맨 채, 전국의 산하를 돌아다닌 시절이 벌써 30년. 그렇다고 변변한 개인전도 한 번 연 적이 없다. 옛적 네가티브 필름을 인화한, 볼품없는 사진 몇 천 여장이 나의 재산이라면 재산이랄까.


영혼

나에게 예술적 영혼을 넣어준 그 선생님의 미술전시회가 고향 거제도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4일, 거제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문을 연 '화업 50주년 기념, 문암 박득순 초대전' 행사. 오는 9일까지 열리는 선생님의 전시회는 지난 2007년 1월에 이어 두 번째 개최하는 초대전이다. 나를 비롯한 동기생들이 고교졸업 30주년을 맞아, 특별히 초대한 지난 번 전시회는 많은 사연을 쏟아낸,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었다.


고송

그 때, 선생님은 밤을 꼬박 세워가며 그림을 그리셨고, 동기생들은 물감과 붓을 드는 작업을 도와드렸다. 선생님은 예술적 영혼과 제자에 대한 사랑을 화선지에 붓으로 표현하셨다. 그리고 평생 잊지 않도록 밤새 그렸던 그림을, 제자 모두에게 선물로 주신 선생님이셨다.


어촌풍경


선생님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청년시절 우연히 거제도 여행길에 올랐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미항 나포리보다 더 아름다운 장승포항의 매력에 빠져 거제도에 눌러앉기로 작정했다는 것. 당시 먹고 살아야했던 삶의 과제는 취업이라, 인근 학교 미술선생님으로 취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학교로 찾아가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싶다는 사정을 이야기 했고, 학교는 선생님을 받아 주게 된 것. 바로 그 학교가 내가 다녔던 거제 장승포에 있는 '해성고등학교'다.


거북선


문암 박득순, 30년 만에 첫 만남 그리고 5년 후 두 번째 만남

5년 만에 다시 보는 선생님은 건강한 모습으로 오셨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얼마나 많은 열정을 쏟아냈는지 눈에 확 들어오는 느낌이다. 전시 작품 수만 해도 70점. 모두 거제도의 풍경과 혼을 담아낸 작품들이다. 그만큼 거제도는 선생님에게 잊지 못할 곳이라는 것을 예술적 표현으로 대신하고 있다.


장승포항


그림은 거제도와 인간의 삶 전체를 표현하고 있다. 제일 잊지 못할 아름다운 항구인 '장승포항'은 선생님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해금강은 거제도를 대표하는 명소로, 장어통발 배는 어민들의 고단한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생동감이 넘치는 붉은 칠을 한 꽃게 다리를 보노라면, 하나 뚝 떼어, 살을 발라 먹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게 하고도 남는다.


동기생의 열창(위), 스케치하는 선생님(가운데), 개막식 테이프 컷팅(아래)

많은 동문과 지역 예술계 인사들이 선생님의 초대전을 찾아 격려 해 주시는 개막식 모습이 아름다웠다. 여자 동기생은 선생님의 예술적 혼 못지않은 영혼의 목소리로 국악 한 곡을 뽑아 전시실을 휘감아 울려 퍼지게 했다. 열창에 빠진 동기생의 모습을 일필휘지 붓으로 그려내는 선생님. 며칠 남지 않은 시간, 거제도에 머무르는 선생님과 따뜻한 점심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선생님 건강해 보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