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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늦가을 풍경] 늦가을 거제도 고향으로의 여행

 

[늦가을 여행] 늦가을 고향 거제도에서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늦가을 여행] 늦가을 고향 거제도에서 어릴 적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늦가을로 치닫는 지난달 마지막 일요일인 28일.

고치친구였고 당시 국민학교를 같이 다녔던, 저를 포함해 다섯 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동네 형이 운영하는 식당인데 이 곳은,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소를 몰고 풀을 먹이러 다녔던 언덕배기가 있던 자리였습니다.

 

한 친구는 얼굴을 본지가 정말 오래 만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난지가 대충 기억으로도 20년은 된 것만 같습니다.

머리는 파마를 해서 그런지 베에토벤을 쏙 빼닮았습니다.

조선소에 근무하며, 잘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한 친구도 만난지가 족히 10년은 될 것만 같으며, 역시 조선소에 근무하면서 잘 산다고 합니다.

두 친구와 저는 거제도에서 태어나, 거제 땅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1년에 서너 번 정도 만나는 진해 친구도 조선소에 근무하며 직장에 잘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나머지 친구는 부산에 살며, 그날의 모임을 주선했고, 다섯 명의 친구가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었습니다.

 

내가 살았던 고향집은 거대한 조선소가 들어섰습니다

 

12시부터 시작한 술자리는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주제는 당연히 어릴 적 추억과 국가발전이라는 명분아래 강제로 쫓겨난 우리네 삶의 터전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술기운이 오르자 울분이 터집니다.

그 당시 원치 않았고 부당하게 강제 이주를 해야만 했던, 그 기억이 분노를 터지게 만든 것입니다.

 

어릴 적 살았던 고향 풍경. 넓은 들녘과 내가 살던 집은 거대한 조선소로 바뀌었습니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모래사장에서 물놀이 하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1974년 8월 25일.

이야기는 약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날은 학교 방학 때였고, 불볕 같던 늦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일요일이었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저는 낡은 트럭 뒤 칸에 이삿짐을 싣고, 짐 위에 올라탄 채 정든 집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할머니도, 부모님도, 형제들도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이사였던 것입니다.

 

이런 이사는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인근 4개 마을 385세대 약 2천여 명의 이주민은 삶의 터전인 논밭과 어장 그리고 삶의 휴식처인 집을 버렸습니다.

이사를 떠난 그 자리에는 거대한 공장이 들어섰습니다.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진 조선소였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조선소가 많습니다.

세계 10위권에 드는 조선소중 국내 조선소가 7개소를 차지합니다.

7개 조선소 중에서도 부동의 2,3위를 차지하는 조선소가 거제도에 두 곳이나 있습니다.

그 중 하나의 조선소가 저가 살던 고향땅에 건설이 된 것입니다.

 

40여년 만에 맛보는, 고향집 감나무에서 열린 홍시

 

그날 오후 다섯 시가 넘도록 한 자리에 앉아 술을 마셨습니다.

참 많이도 마셨습니다.

자리를 옮겨 또 다시 선술집에 앉아 술을 들이켰습니다.

오랜만에 만났던 불알친구끼리의 추억이야기에 쉽게 헤어지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운전을 해야만 했던 부산친구는 운전을 해야 한다기에 술잔을 거부하였지만, 끝내 거부할 순 없었습니다.

거제도에서 부산까지 대리운전비 7만원을 주겠다는 친구들의 권유에 끝내는,

술잔에, 고향이야기에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친구 모두 이제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았습니다.

세상물정 몰랐던, 고등학교 1학년 때 겪어야만 했던 강제 이주.

퇴직하면 당시의 실상을 하나하나 챙겨보리라, 친구 모두 다짐한 하루였습니다.

 

이 난을 빌려 안부를 전합니다.

그날 정성스레 음식을 장만하여 주신 형님과 형수님, 그리고 그날 모였던 친구 모두에게 건승을 기원합니다.

 

바깥으로 나오니 무성한 잎은 떨어진 채 겨울을 맞이하는 감이 붉게 익었습니다.

그 중 하나를 따서 바지가랑에 스윽 문질러 한 입에 물었습니다.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느낌이 참으로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어릴 적 살았던, 초가 집 뒤 심어진 감나무에 열렸던, 그 감이랑 똑 같은 맛이었기 때문입니다.

 

 

 

 

 

 

[늦가을 풍경] 늦가을 거제도 고향으로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