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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스포츠이야기

대지진 1주일 전, 요트 타고 대마도 다녀왔습니다




'블루시티' 대한해협을 횡단하다 - 3(거제도 ~ 대마도 세일링 도전)
  
▲ 오사카행 여객선 이즈하라 항에서 출발하는 오사카행 여객선
오사카

이즈하라 주민들과 헤어짐의 손을 흔들 즈음, 요트는 엔진 소음을 내고 있었다. 이즈하라의 짧은 추억을 간직한 채 요트는 항구를 조용히 빠져 나와 큰 바다로 나아가고 있다. 방파제 끄트머리 붉은 등대도 말없이 배웅해 주고 있다. 항구를 동시에 빠져 나온 오사카 행 페리는 긴 기적소리를 내며 제 갈 길을 재촉한다. 집으로 향하는 바닷길, 기쁨의 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 GPS GPS 상에 나타난 요트 항적도. 왕복 선이 선명하며 중간에 끊긴 부분이 보이는데 이 구간에서 요트 엔진에 스크류에 문제가 있어 점검을 마치고 운항했다. 왕복 100마일의 세일링이었다.
GPS

큰 파도는 일어나지 않지만 날씨는 우중충하다. 바다와 하늘 모두가 검푸른 색이다. 야트막한 산 위에는 하양 빨강 색을 칠한 집들이 늘어서 있다. 섬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거제도나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바람이 불자 돛을 올렸다. 돛과 엔진을 이용하니 속도는 8~9노트까지 올라간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아소만으로 들어가는 좁은 수로가 있는 긴 방파제에 도착했다. 다시 돛을 내리고 엔진으로 항해는 계속된다. 작은 마을 하나가 나타나고 수산물 가공센터도 보인다. 오가는 사람들과 지나가는 배는 어촌의 살가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 세일링 만제키 다리 밑 물살이 센 수로를 통과하고 있다.
만제키

  
▲ 소용돌이 만제키 다리 밑으로 인공으로 만든 수로가 있다. 이 곳에는 물살이 센 곳으로 요트 위에서 바다로 보니 현기증이 날 정도로 물살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만제키 다리

만제키 다리 밑으로 접어들자 수로가 좁은 계곡 속으로 빨려드는 것만 같다. 비온 뒤 강물이 범람하는 기세다. 물살이 세게 출렁이고 하얀 거품이 이는 파도를 만들어낸다. 조류는 군데군데 소용돌이를 만든다. 한 방향으로 물살이 도는 것이 아니라, 위치에 따라서 반대방향으로 돌고 있다. 요트 위에서 바라보니 가슴이 섬뜩하다. 만약, 빠진다면 바다 저 깊은 속으로 빨려 들 것만 같다. 요트는 좌우로 요동을 치고, 더 이상 성난 바다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갑판에 주저앉았다. 손에 쥔 카메라를 놓치지 않으려 한 손으로 요트 밧줄을 힘껏 잡았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나 다를 바 없다. 이 모습을 본 선미 쪽 스키퍼가 슬며시 웃는다. 누구는 겁이 나 몸이 바들바들한데, 웃고 있다니. 

폭 약 50m 안팎, 길이 약 200m 정도의 만제키 인공수로를 지나 아소만으로 접어들자 물살은 평온하다. 뒤 따라 오는 동행자 '코엔스블루'는 잘 따라 오고 있다. 호수 같은 아소만에서 세일링하는 두 척 요트는 한 폭의 그림이요, 달력에 인쇄된 사진 한 장의 모습이다. 인근에는 양식장도 많이 있고 작업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풍요로운 어촌 풍경이다. 

  
▲ 세일링 대마도 아소만을 빠져 나온 '블루시티'호는 바람을 받고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거제시

대마도 중간 쯤, 돌출된 바위에 세워진 하얀 등대를 지나자 대한해협이다. 이 곳을 건너야만 귀향지인 거제도 지세포항으로 갈 수 있다. 큰 바다로 접어들자 또 다시 바람이 분다. 다시 헤드세일과 메인세일을 폈다. 바람을 받은 돛은 탱탱하다. 뒤 따라 오던 '코엔스블루'는 또 다시 앞서 나간다. 두 척의 요트는 한 때는 앞서거니, 또 다른 때는 뒤서거니, 같은 때는 동행하며 세일링을 즐기고 있다. 승무원 모두 밖으로 나와 갑판 위에 편히 앉았다.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 격려하는 모습이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 세일링 '코엔스블루'호는 힘찬 세일링을 하고 있다.
세일링

대마도 이즈하라 항에서 출항한 지 다섯 시간이 지났다. 거의 반을 온 셈이다. 대마도는 검은 색에서 희미한 색으로 멀어지고, 거제도는 그 반대로 진하게 다가온다. 덩치 큰 상선이 앞서가고 있다. 선실에서 물을 끓여 컵라면에 물을 붓고, 냉동 밥도 쪼개 풀었다. 아침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출항한지라 배가 고파온 것은 나만이 아니다. 반찬은 김치와 참치 캔이 전부. 힘든 세일링에서 체력유지가 필수라 높은 칼로리를 섭취해야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하다. 그래도 단합된 마음과 행동 덕에 운항하는 데는 별로 애로사항을 느끼지 못했다. 서로를 믿으며 큰 힘이 되었다. 

  
▲ 일출 요트에서 바라본 일출
일출

바람은 요트를 더욱 세차게 밀고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거제도가 더욱 검고 진한 색깔로 다가온다. 거제도 제일 명산 노자산의 등줄기가 오묘한 모습으로 곡선을 이루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거제도에 거의 다 왔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수평선은 그렇게 쉬이 일행을 곁에 두지 않을 기세다. 달리고 달렸다. 선명한 거제도를 보고서도 세 시간을 바다 위에서 보내야만 했다. 노력하는 자는 반드시 성과를 내고, 도전하는 자는 반드시 성공을 거두리라. 마침 내, 3일 전 출발했던 거제도 지세포항으로 요트는 진입했다. 바닷길 길잡이 역할을 하는 지세포항 방파제에 선 등대는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엊그제, 칠흑 같은 밤 우리 일행을 보냈던 그 지세포항은 아무 것도 변한 것 없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요트는 지세포항에 정박했다. 돛을 내리고, 엔진 시동도 껐다. 밧줄도 감고 선실 청소도 마무리 했다. 짐을 챙기고 입항신고 절차도 모두 마쳤다. 불편했던 대마도 이즈하라 항 입항 수속과는 큰 차이가 났다. 역시 안방이 제일 편하다는 생각이다. 아침 9시 대마도 이즈하라 항에서 출발하여 거제도 지세포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반. 8시간 반이 걸린 셈이다. 다시 정리하면, 거제도에서 대마도를 갈 때 13시간 반, 대마도에서 거제도를 올 때 8시간 반, 전체 22시간이 걸린 왕복 세일링이었다. 거제도~대마도 대한해협 첫 요트 세일링 횡단 기록을 세운 것이다.  

  
▲ 지세포항 3일을 비워 놓았던 지세포항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지세포항

대한해협 횡단과 관련한 기사를 찾아보았다. 윈드서핑으로는 1980년 10월 18일, 권희범 선수가 부산 태종대~대마도 구간을 횡단하는데 성공하였고, 수영으로서는 '아시아의 물개'라 불리는 조오련 선수가 있다. 2009년 8월 4일 타계하기 전까지, 그를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친한 형님 같은 편안한 모습은 오래도록 남아 있어, 이번 요트 대한해협 횡단은 새삼 그의 도전정신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는 1980년 8월 11일 부산 다대포~대마도를 13시간 16분 만에 단독횡단에 성공했고, 2000년 8월 28일 오후 1시 10분 거제도 서이말 등대에서 연예인 등과 함께 출발, 릴레이 수영으로 18시간 11분만인, 29일 오전 7시 22분 대마도 히타카투항 인근 해안에 도착했다는 기록이 있다. 

  
▲ 기념촬영 대마도에서 출항하기 전 거제시요트협회 회원들의 기념촬영 모습이다.
블루시티

  
▲ 세일링 동행자 '코엔스블루'는 멀리 앞서가고 있다.
코엔스블루

이번 거제도~대마도 대한해협 요트 횡단은 거제요트 역사를 새로이 썼다. 3만 불 시대 '마이요트(My Yacht)' 시대를 대비하는 첫 경험이요, 도전이었다. 강한 파도와 거센 바람, 작렬하는 태양을 정면으로 받으며, 돛을 올리고 내리면서 줄을 당기는 세일링에서 깊은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었기에. 앞으로도 거제시요트협회와 거제요트학교는 전국 U자 해안 세일링과 제주도, 울릉도, 독도를 항해하는 세일링을 계속 할 것이다. 물론 기량과 강한 도전 정신을 길러 해외 세일링에도 도전할 것이다. 

  
▲ 세일링 거제도~대마도 세일링
거제도

지난 3월 11일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 도호쿠 지방에서 규모 9.0의 강진과 쓰나미가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있었으며, 이웃나라인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인에게 큰 아픔을 남겼다. 거제도~대마도 대한해협 요트횡단은 3월 4일 밤 거제도 지세포항을 출발하여, 3월 6일 귀항했다.  

정확히 지진 발생 1주일 전 항해였던 셈이다. 일본 쓰나미로 지인들은 농담 삼아 못 볼 뻔 했다는 말을 하지만, 성난 파도 앞에 당할 자 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지진과 쓰나미로 목숨을 잃은 일본 주민의 명복을 빌며, 고통스러워하는 일본 국민 모두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