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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스포츠이야기

요트서 본 일출, 장엄하도다


'블루시티' 대한해협을 횡단하다 - 1(거제도~대마도 세일링 도전)

 

  
▲ 세일링 성난 파도와 한 판 싸움을 벌이는 세일링에서 자연을 이해하고 도전 정신을 기른다.
세일링

칠흑같은 밤이다. 지세포항은 깊은 잠에 빠져있다. 묵직한 발걸음 소리는 바다를 깨우고, 소리에 놀란 파도는 몸을 일으켜 흰 거품을 내며 물결을 인다. 15명의 일행을 대마도(쓰시마)로 태워 갈 두 척의 요트는 조용히 정박해 있다. 마스트 꼭대기에 걸려있는 큰 별 금성은 다이아몬드 빛을 내고 있다. 3월 4일 금요일 밤, 거제도 지세포항 풍경이다. 

한 달 전부터 요트를 타고 대한해협을 건너보자는 의견이 거제시요트협회('블루시티'호)와 거제요트클럽('코엔스블루'호) 두 단체 사이에 있었다. 대마도에서 세일링을 즐기는 요트인과 교류를 시작해 보자는 것. 지세포항에서 대마도까지 가장 가까운 직선거리는 31마일(약 50㎞) 정도지만, 일행이 가야할 이즈하라 항구까지는 약 50마일 80㎞ 거리. 아소만을 통과하여 우회로 돌아가야 하는 항로 때문이다. 운항시간도 엔진과 바람을 이용하면 9시간 안팎이라, 여유롭다. 때문에 세일링을 즐기는 요트인으로서 바다를 탐험해 볼 만한 코스라 말 할 수 있다. 

  
▲ 거제요트학교 거제요트학교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뒤로 보이는 섬이 대마도다.
거제요트학교

적막감만 감도는 시간. 시동을 걸자 엔진 소리가 정적을 깬다. GPS를 켜고 각종 계기를 점검하고 출발준비에 바쁘다. 수심 5m, 풍속 3m/sec로 바람을 느끼지 못하는 내항 상태다. 좌표, 정박지인 지세포항은 34°49.967˙N, 128°42.182˙E, 목적지인 이즈하라 항은 34°11.718˙N, 129°17.526˙E. 3월 5일 오전 0시 50분 상황이다. 

항을 벗어나 큰 바다로 나가자 멀리 지세포항 주변 불빛만 깜빡거린다. 엔진은 열을 내고 속도는 탄력을 받는다. 호수같이 잔잔했던 항내와는 달리 파도가 뱃전을 친다. 피칭(배가 앞뒤로 흔들리는 일)과 롤링(배가 좌우로 흔들리는 일)을 반복한다.  

깜깜한 밤이라 스키퍼(요트에 있어 선장)와 두 명의 보조 승무원만 밖에서 항해를 책임지고 있다. 나머지는 선실에서 대기 상태로 이번 항해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계기판을 확인하니 수심 70~80m, 속도는 6노트 정도로 순항하고 있다. 멀리 큰 바다 위 정박해 있는 상선에 불빛만 보일 뿐이다. 동행한 코엔스블루는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앞서가고 있다. 

  
▲ 일출 요트에서 바라본 장엄한 일출
일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시간과의 싸움은 진행형이다. 선실에서 밖으로 나와 스키퍼와 항해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피로감을 들어주기 위해 시간을 같이 했다.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얼굴에 맞닿는 느낌이 예상외로 차갑다. 계절을 볼라치면 3월 봄바람이지만, 바다는 아직 겨울 찬 바다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두세 시간, 그럭저럭 시간은 흘렀다. 아직까지는 별반 지겹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잠도 오지 않아 견딜 만하다. 선천적으로 배 멀미는 하지 않아 멀미약도 붙이지 않았다. 혹시나 배 멀미 때문에 고생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상 신호는 오지 않아 다행이다. 

출항한 지 5시간이 지날 무렵, 속도가 떨어진다. 평균속도 6노트 내외로 달리던 요트는 4노트로 현저하게 떨어졌다. 뭔가 이상이 있다는 신호다. 스키퍼와 승무원 모두 긴급회의를 가졌다. 선실 안과 밖에 설치된 기계와 각종 기기를 점검하였다. 그러나 별다른 이상 징후를 찾지 못했다.  

스크루에 해초가 감겨 프로펠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잠정 결론이다.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노련한 스키퍼를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요트를 세워 물 속으로 들어가 수리를 하려했지만, 아직도 깜깜한 밤이라 위험했다. 저속으로 운항하기로 결정하고 요트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 일출 큰 바다 수면 바로 위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장엄하다. 밑으로 길게 드러누워 있는 섬이 대마도(쓰시마)다.
쓰시마

 요트는 쉬지 않고 달렸다. 선수 앞쪽으로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큰 바다 바로 수면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장엄하다. 검푸른 파도는 너울너울 춤을 춘다. 바다 끝 수평선 위 하늘에 붉은색 물감을 칠한 듯하다. 그 사이로 길게 드러누워 있는 검은 띠 모양이 희미하게 보인다.  

대마도다. 남북 약 80㎞, 동서 중 넓은 곳이 약 18㎞. 맑은 날이면 거제도와 부산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대마도지만, 쉽게 가지 못하는 땅이다. 이번 거제도~대마도 대한해협 요트횡단은 거제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전국 요트클럽에서도 대마도 횡단을 했다는 소문 역시 들어보지 못한 실정이다. 

  
▲ 항해 아소만을 빠져 나오는 블루시티호. 뒤로 대마도 상하 두 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보인다.
항해

태양은 하늘 멀리 올라가고, 날이 완전히 밝아오자 거친 숨을 몰아 쉰 뒤처럼 후련하다. 좌우 1m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보다는 마음은 훨씬 평안을 찾는다. 메인세일을 폈다. 깃대에 바람이 충돌한다. 헤드세일도 올렸다. 엔진과 세일이 힘을 합치니 속도는 파도를 세차게 갈라놓는다.  

앞서 가는 동행자 코엔스블루는 얼마나 앞서 갔는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뒤처지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무전도 교신이 잘 되지 않아 얼마나 떨어져 항해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다. 

오전 9시, 출항한 지 8시간째. 대마도 중앙부 섬 끄트머리가 보인다. 대마도는 상하 두 개의 큰 섬을 이루고 있다. 섬 중앙부에 아소만이 있고, 산을 인공적으로 굴착하여 만든 만제키세토라는 수로가 있다. 이 수로를 지나야만 목적지인 이즈라하 항에 도착할 수 있다. 목적지까지는 반을 조금 넘어 왔을 뿐,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드디어 요트는 아소만에 접어들고 잔잔한 파도에 미끄러지듯 아소만으로 빨려들고 있다. 

  
▲ 스키퍼와 크루 좌로부터 블루시티호 스키퍼 이재철 거제요트학교 팀장, 이주혁, 모성훈 크루. 아침 식사로 컵라면을 먹고 있다.
스키퍼

갑자기 요트 엔진소리가 멎는다. 스키퍼가 요트를 세운 것. 운항 중 스크루에 감긴 해초를 풀고 다시 운행하겠다는 스키퍼의 판단이다. 차가운 겨울바다 속으로 들어가야 가능한 작업인데, 스키퍼는 결단을 내리고 작업 준비를 하고 있다. 승무원 모두 긴장감을 가지고 지켜보는 동안, 바닷물 속을 드나드는 약 20분의 작업이 끝이 났다.  

스키퍼의 얼굴이 파랗다 못해 새까맣다. 승무원 모두 감동어린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스크루에 감긴 해초는 완전히 제거되었고 요트는 다시 운항을 시작했다. 항해에 있어 스키퍼의 의사결정과 명령은 절대적. 선장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은 항해에서 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결단을 함에 있어 이익도 손해도 생길 수 있기에 결정은 그래서 어려운 법이라는 생각이다. 

  
▲ 코엔스블루 블루시티호보다 앞서 가던 코엔스블루호는 아소만에서야 볼 수 있었다.
코엔스블루

지세포항에서 같은 시각 출항한 코엔스블루는 앞서 운항을 하고 있다가 아소만에 와서야 약 1㎞ 전방에서 앞서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만은 호수같이 고요하고, 낚시꾼은 갯바위에서 고기를 낚고 있다.  

양식장을 오가는 작은 배는 물살을 일으키며 바쁘게 움직인다. 예쁘장한 집도 몇 채 흩어져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다. 야트막한 산은 잎이 넓적한 활엽수가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키 작은 하얀 등대는 끄트머리에 외로이 서 있다. 거제도나 다를 바 없는 평온한 바다풍경이다. 

  
▲ 마중 대마도요트협회에서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온 요트.
대마도

아소만을 얼마나 지났을까, 앞쪽 멀리서 하얀 요트 한 척이 달려온다. 세일링을 즐기는 동호인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다. 혹시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오는 것일까 생각했는데 맞다. 지세포항을 출항하기 전, 대마도 요트협회에서 마중 나올 것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고 우리 일행을 인도하며 앞서 나아가고 있다. 협곡 같은 좁고 긴 수로로 접어드니, 물살이 세게 흐르고 있다. 물살에 떠밀려 요트는 더 빠른 속도로 운항중이다. 위로는 빨간 다리가 보인다. 대마도 상하 두 섬을 연결하는 다리다. 원래 이곳은 섬이 하나로 연결된 암석지대였는데, 굴착기로 뚫어 두 개의 섬으로 만들고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아소만을 관통하는 운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어업활동과 교통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단다. 이 마을에는 수산물 가공센터도 보인다. 

세일링은 역시 바람이 불어야 제 맛 

오전 9시. 요트는 수로와 항구를 지나 아소만을 완전히 빠져 나갔다. 대양의 파도막이 역할을 하는 제파제를 지나자 다시 망망대해다. 세찬 바닷바람이 분다. 역시 세일링은 바람이 불어야 제 맛이 드는 법. 엔진 시동을 껐다. 크루(승무원)는 헤드세일과 메인세일을 폈다. 줄을 감고 잡아당기면서 손놀림은 빨라졌고, 몸은 재빠르게 움직인다. 선수는 치켜들고 선미는 반대로 가라앉으며, 요트는 좌우 요동을 반복한다. 좌현이 바닷물에 잠길 기세다. 돛은 팽팽히 댕긴 모양으로 바람을 가득 안은 상태다. 

"성훈아, 댕겨 줄 댕겨. 오른쪽, 오른쪽 줄 말이야."
"감아. 감아. 주혁아, 윈치. 머리 조심해, 붐. 붐에 머리 닿지 않도록 조심해." 

  
▲ 세일링 큰 바다에서 바람을 타고 즐기는 세일링. 검푸른 바다와 세찬 바다에 맞서 세일링을 즐기고 있다.
세일링

 

강한 바람이 불자 긴박한 상황은 잠시 동안 이어졌다. 태킹(Tacking, 요트가 바람이 부는 풍상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 세일을 좌현에서 우현 또는 반대로 이동시켜서 방향을 바꾸는 것)과 자이빙(Jibing, 요트가 바람을 뒤에서 받아 범주 하는 중 돛을 좌현에서 우현 혹은 그대로 옮기는 것)을 번갈아 가며 세일링을 즐기고 있다.  

데크에서 몸을 가누기가 힘들기에 조심스럽게 이동해야만 한다. 동행하는 코엔스블루는 연신 하얀 거품을 만들어 내뱉고 있다. 검푸른 바다에서 거친 파도와 거센 바람과 한 판 싸움을 벌이는 드라마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거제도~대마도 대한해협 첫 횡단 영화 한편을 찍고 있는 중이다.  

스키퍼가 총감독이라면, 크루는 주연이고 다른 승무원은 조연이다. 모두 배우 역할을 해내고 있다. 총감독은 요트의 안전운항을 맡고 있다면, 촬영감독은 기록을 남겨야 한다. 요동치는 선상에서 생동감 넘치는 사진을 찍기랑 쉬운 일이 아니다. 몸을 지탱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 이즈하라항 입구 이즈하라항 입구 붉은 등대와 방파제. 요트는 항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13시간의 긴긴 항해 끝에 휴식을 맛 볼 수 있었다.
이즈하라항

엔진을 끄고 돛에 의지한 네 시간, 힘겨운 파도와 싸우고 세찬 바람을 얼굴로 맞이해야만 했다. 저 멀리 방파제 끝 빨간 등대가 보인다. 산언덕 야트막한 곳에 집도 보인다. 마을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앞쪽 방파제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안착할 이즈하라 항구다.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는 느낌이다. 세일을 내리고 다시 엔진 시동을 켰다. 요트는 방파제 안으로 서서히 움직이며 피로감을 풀고 있다.  

  
▲ 대마도 거제도~대마도 요트 횡단
대마도

거제도 지세포항을 출항, 목적지인 이즈하라 항구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13시간 25분. 위치는 북위 34°11.718˙, 동경 129°17.526˙를 가리키고 있다. 지루하고 긴 시간이었고, 힘들고 지친 지겨운 시간이었다. 긴장감이 풀어지자 피로감이 몰려온다. 

  
▲ 대마도 거제도~대마도 요트 첫 횡단
지세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