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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거제도/거제 100경

거제 유일의 사립학교 ‘반곡서원’/거제도 가볼만한 곳/거제도여행지추천

거제 유일의 사립학교 ‘반곡서원’/거제도 가볼만한 곳/거제도여행지추천

“글 읽는 소리 댓잎에 산산이 흩어지네”

 

 

거제 유일의 사립학교 ‘반곡서원’/거제도 가볼만한 곳/거제도여행지추천

“글 읽는 소리 댓잎에 산산이 흩어지네”

 

조선시대 유일한 공립학교가 ‘거제향교’였다면 유일한 사립학교는 ‘반곡서원’이었다. 반곡서원(盤谷書院)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그의 나이 일흔 셋이던 조선 숙종 5년(1679년 3월 25일)에 거제도로 유배와 머물렀던 곳에 거제유림들이 숙종 30년(1704년)에 지었다.

 

송시열은 인선왕후의 복상문제로 1675년 덕원(德源)으로 유배된 후 거제면 동상리 반곡 골짜기로 유배지를 옮겨 1년 2개월 여 동안 머물렀다. 반곡서원은 우암 송시열을 주벽(主壁)으로, 숙종 44년(1718년)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영조 1년(1725년) 몽와(夢窩) 김창집(金昌集)을 추배(趨拜)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다.

 

철종 계해년(1863년)에 단암(丹岩) 민진원(閔鎭遠), 삼호(三湖) 이중협(李重協), 계산(溪山) 김수근(金洙根)을 추배(趨拜)했다. 서원에는 3칸의 묘우(廟宇), 신문(神門), 4칸의 강당,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2칸의 전사청(奠祀廳), 정문, 4칸의 고사(庫舍) 등이 있었다.

 

 

 

 

묘우에는 송시열을 주벽(主壁)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김진규와 김창집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된 강당은 서원의 행사와 유림의 모임, 학문 강론장소 등으로 사용됐다. 동재는 제원들의 숙소로, 서재는 유생들이 머물며 공부하는 장소로 사용됐다. 전사청은 향사 때 제물(祭物)을 보관하던 곳이었다.

 

 

반곡서원은 고종 5년(1868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폐지령에 따라 철폐됐다. 광무 10년 병오년(1906년)에 서원의 옛 터에 제단과 비석을 건립하고, 매년 가을 단제를 봉행해 왔다. 1971년 윤병재 거제향교 전교가 반곡서원의 복원을 발의, 고재를 고치고, 고자실은 새로 지었다.

 

유림들의 끊임없는 서원 복원 건의에 따라 거제시는 2009년 예산을 확보, 201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공사에 들어가 지난 5월 준공식을 가졌다. 복원된 서원에는 우암사, 동록당(정훈선 선생을 모신 곳), 강당, 동재, 서제, 외삼문, 내삼문, 비각, 고직사, 협문, 죽천 등으로 꾸며져 있다.

 

 

 

반곡서원에서는 매년 3월과 9월 중정(中丁․ 둘째 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 4두(豆)다. 반곡서원에는 대숲 샘물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김진규는 1689년부터 1694년까지 귀양살이를 했다. 그는 5년 여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24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특히 대숲 샘물에서 지은 시는 명시(名詩)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대숲 샘물을 ‘죽천(竹泉)’으로 짓고, 그의 호로 삼은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달을 토해내는 가벼운 구름

꽃나무는 맑은 안개 속에 잠긴다

밤이 깊어 고요한 외딴 마을

맑은 샘물소리 대숲을 울리네

 

이 시는 1689년 거제도로 유배를 와 1694년 복권돼 거제를 떠난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선생이 반곡서원 옆에 있던 대숲 샘물(죽천․竹泉)에서 밤 풍경을 노래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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