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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상지역

무병장수를 꿈꾸는 약초, 그 신비함을 찾아서


야생화와 한방약초에 푹 빠지다

푸름이 넘쳐나는 5월, 식물은 푸름을 더해가며 세상을 더욱 살찌게 만들고, 살아있는 생명체는 새 생명을 잉태하는 건강한 계절이다. 어린이날인 5일. 자식도 훌쩍 커 성인이 돼 버린 탓에 아이 손잡고 공원을 거닐며 놀이기구를 타 볼 일도 없다. 편안한 마음으로 '한방약초축제'가 열리는 산청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내내 많은 차로 혼잡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예상은 꼭 맞아 떨어졌다. 산청 나들목을 빠져 나오니 긴 꼬리를 문 차량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축제장소인 운동장으로 가는 또 다른 길을 아는 터라 차를 돌렸지만, 운동장 입구부터는 더 나아갈 수 없다. 지루한 시간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차 안에서 바깥 풍경에 취했다. 경호강 옆 작은 언덕 숲 속에선 하늘을 향해 쉼 없이 하얀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다. 시원하다. 오가는 사람 구경, 밀리는 차 구경을 뒤로하며 차를 돌렸다. 복잡한 곳과 기다리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탓이리. 

  
▲ 철쭉 붉고 하얀 철쭉 꽃 뒤로 멀리 좌측으로 철쭉 군락지인 황매산이 보인다.
철쭉

함양 상림 숲에나 가볼 요량으로 60번 국가지원지방도를 따라 가다보니 '동의보감촌'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업무든 놀이든 산청을 많이 다녔건만 이런 데가 있었나 싶었고, 그러면 차라리 이곳에 한번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장에서 약 6㎞를 달려 도착한 곳은 산청한의학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곳은 산청한방테마촌으로 '2013년 산청 세계전통의약엑스포' 개최 장소이기도 하다. 한의약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이 엑스포는 2013년 9월 10일부터 40일간 열린다고 한다. 

진분홍 철쭉이 붉은 미소로 나그네를 맞이한다. 많은 여행객이 붐비지만 주차장도 넓고, 터가 워낙 넓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지리산은 깊은 계곡과 골짜기로 뭇 생명이 살아 숨쉬는 자연의 보물창고다.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한 환경에서 자연의 경외감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곳이요, 죽어가는 생명을 치료하는 곳이다. 그러니 지리산에 나고 지는 풀 한 포기, 나뭇잎사귀 하나, 열매 한 개, 뿌리 한 줄기 그리고 나무껍질은 약재가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다. 

  
▲ 공원 산청한의학박물관 바깥으로는 공원이 아름답게 조성돼 있다.
산청한의학박물관

산청한의학박물관은 전통의학실과 약초전시실로 나뉘어져 있다. 전통의학실은 한의학의 역사와 발전 과정, 전통요법소개, 한의학의 우수성과 직접 체험해보는 한의학으로 구분돼 있다. 약초전시실은 역사와 분류, 약초 알아보기, 약초의 고장 소개 등으로 꾸며져 있다. 

1층으로 들어서자 좌측 한 공간에 2011 찾아가는 도립미술관 '치유하는 풍경 전'이 열리고 있다.  

"자연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를 의미한다.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은 반면 치유의 의미도 내재되어 있다. 지리산이 품고 있는 산청은 아름다운 산, 계곡, 그 속에 치유의 능력을 품고 있는 약초, 그리고 명의 유의태, 이처럼 산청은 스스로 치유하고 인간을 치유하는 잠재적 능력을 가진 신비한 고장일 것이다." 

안내문에는 위와 같이 적혀 있다. 산청한방약초축제 곁 손님으로 미술전시회를 통하여 자연과 약초와 산청을 돋보이게 하는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인다. 

  
▲ 한방치료 산청한의학박물관 내부에 한방치료를 하는 모습이 전시돼 있다.
산청한의학박물관

은은한 조명아래 잘 꾸며진 한방을 소개하는 공간은 예부터 많이 보아온 인상적인 모습이다. 한의사가 누운 환자를 진맥하고, 침을 놓는다. 손질한 한약 재료는 봉지에 담아 습기에 차지 않도록 천장에 매달아 잘 보관해야만 한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약봉지를 풀어 약단지에 넣고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약을 달인다. 노력과 지극한 정성이 들어간 보약을 먹은 사람은 자연으로 다시 돌아 갈 것이 틀림없다. 

2층으로 올라가자 역시 은은한 조명아래 옛 마을이 잘 꾸며져 있다. 위엄을 뽐내는 듯한 대궐 같은 집 옆에는 볼품없는 초라한 초가집이 있다. 내가 살던 옛 집의 모습이지만, 그래도 정감이 간다. 시골장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온갖 약재를 파는 모습도, 물건을 흥정하는 사람도 보인다. 짧게는 십여 년, 길게는 이십여 년 전의 장면을 이 곳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 불노문 산청한의학박물관 입구에 서 있는 불노문. 뒤쪽 현판에는 장생문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다.
불노문

나는 어떤 체질일까? 그러면 어떤 음식을 먹어야 좋을까? 좋은 약초는 뭘까? 한방에서는 크게 소양인, 소음인, 태음인 그리고 태양인으로 나눠 체질에 맞는 치료를 한다. 먼저, 소양인(少陽人)의 체질은 비대(脾大) 신소(腎小)하며, 굳세고 날랜 장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비뇨기 생식기 기능이 약하다.  

더운 음식보다는 찬 음식을 좋아하며, 음식을 빨리 먹는 경향이 있다. 약초로는 영지, 산수유, 구기자, 강활이 좋다. 소음인(少陰人)은 신대(腎大) 비소(脾小)하며, 엉덩이가 크고 앉은 자세가 크나 가슴둘레를 싸고 있는 자세가 외롭게 보이고 약하다. 더운 음식을 좋아하며 맛있는 것을 골라 먹는 경향이 있다. 음식은 대체로 늦게 먹는 편. 약초로는 익모초, 용담초, 적작약이 좋다. 

  
▲ 정화수 정화수 긷는 소녀
정화수

태양인(太陽人)은 폐가 크고 간이 작으며 가슴 윗부분이 발달한 체형이다. 목덜미가 굵고 실하며 머리가 크다. 대체로 냉랭한 음식을 좋아하며, 특히 담백한 음식을 좋아한다. 약초로는 가시오가피, 앵두나무, 시호 등이 좋다. 태음인(太陰人)은 간이 크고 폐가 작으며 허리 부위의 형세가 성장하여 서 있는 자세가 굳건하다. 반면에 목덜미 기세가 약하다. 식성이 좋아 대식가가 많으며 폭음, 폭식하는 경향이 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석창포, 백선피, 천마 등이 좋은 약초로 알려져 있다.  

평소 야생화와 약초에 관심이 많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전시관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발길을 옮기기는 더욱 어렵다. 설명문과 약초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다. 전시관이라 플래시 사용을 하지 않고 저속으로 촬영하며 기록을 남겼다. 약초에 대한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 전망대 곰 머리부분을 형상화한 전망대. 이 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참으로 아름답다. 멀리 좌측으로 철쭉 군락지인 황매산이 보인다.
전망대

잎을 쓰는 약초로는 질경이, 이질풀, 익모초, 애기똥풀, 차조기, 약모밀이 있다. 열매로는 오미자, 산딸기, 탱자나무, 머루, 구기자, 산수유, 익모초씨, 은행열매가 있다. 꽃이나 꽃가루를 쓰는 약초로는 매화꽃, 벚꽃, 인동꽃, 살구꽃, 홍화, 연꽃 등이 있다. 뿌리로는 도라지, 오이풀, 잔대뿌리, 더덕, 하수오, 만삼, 당귀가 있다. 껍질로 쓰는 약초로는 뽕나무껍질, 느릅나무, 멀구슬나무가 있다.  

이 밖에도 독초를 감별하는 법, 토종약초와 수입약초 구별하기, 모양이 비슷한 약초 알기 등 많은 정보가 사람들을 붙잡아 놓는다. 실제로 독초를 약초로 오인해 캐서 먹다 병원에 실려 가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하다. 독초 감별하기에서는 '이런 풀 사용할 때 주의하세요!'에 미치광이풀, 독말풀, 투구꽃을 소개하면서 약초로도 이용하지만 사용할 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 약초 갖가지 약초들. 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엉겅퀴, 등골나물, 곰취, 톱풀, 복수초, 노루귀, 풀솜대, 무릇.
약초

약초를 뿌리, 줄기, 잎 그리고 꽃 형태를 통째로 건조시켜 전시한 공간에는 식물의 특성을 알 수 있어 볼 만하다. 그동안 많이 접해 왔던, 생소하지 않은 들녘에 나는 풀이지만, 이 모든 풀이 약초로 쓰인다니. 74종류의 약초가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듯 형광 불빛에 몸을 드러내 놓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금낭화와 할미꽃은 꽃잎을 그대로 달고 있다. 또 다른 공간에는 야생화 전시장이 있다. 쥐오줌풀, 뿌리에서 쥐 오줌 냄새가 난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이름과는 달리 예쁘기만 하다. 5~8월경 줄기 끝에서 무리지어 피는 이 꽃은 지금 당장 분홍빛 꽃을 터뜨릴 태세다.  

  
▲ 쥐오줌풀꽃 뿌리에서 쥐 오줌 냄새가 난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이름과는 달리 예쁘기만 하다. 5~8월경 줄기 끝에서 무리지어 피는 이 꽃은 지금 당장 분홍빛 꽃을 터뜨릴 태세다.
쥐오줌풀

전시관에서 시간 반을 훌쩍 넘겼다. 그만큼 볼거리도, 공부거리도 많았다는 것. 밖으로 나오니 뜨거운 햇살이 쏟아진다. 철쭉꽃으로 유명한 황매산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붉은 철쭉 빛은 보이지 않는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모아 이른 새벽 처음 긷는 물이라는 정화수. 작은 연못에 효성이 지극한 소녀가 물을 긷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만, 요즘에도 저런 지극 정성한 소녀가 있을까 묻는다면, 내가 부정적이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까? 

큰 이빨을 드러내고 머리만 있는 거대한 곰 조각상이 있는데,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싱가포르에 있는 '머라이언상'을 닮은 모습이다. 입안으로 들어가 내려다보는 경치는 정말로 아름답다. 분수광장의 분수대는 하늘을 향해 물을 뿜어내고 있다. 열두 동물을 조각한 십이지 상에서도 물을 뿜는다. 분수대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아이는 옷이 흠뻑 젖었지만,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 분수광장 분수광장에서 시원한 물을 뿜어내고 있다.
분수광장

관람을 마치고 약초 판매장에 들렀다. 두통, 중풍(뇌졸증), 불면증, 고혈압, 우울증 등 질환에 불가사의하다 할 만큼 효력을 발휘한다는 천마. 일반 약재보다 비싸다는 천마를 한 봉지에 3만원에 샀다. 곱게 단청을 한 기와지붕의 큰 문 현판에는 '불노문(不老門)'이라 쓰여 있고, 반대편에는 '장생문(長生門)'이라 쓰여 있다. 중국 땅을 통일한 중국 최초의 진 시황제. 불로불사를 꿈 꿨던 최고의 권력자였지만, 불과 49년 그 꿈은 오래가지 못하고 접어야만 했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 한방약초축제 산청 한방약초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