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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상지역

녹색 숲 하얀 꽃 이야기



차를 타고 가본 거창 북상면에서 함양 용추사 숲 속 길
  
▲ 녹색 숲길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서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까지 총 11㎞의 숲속 길. 전 구간이 시멘트 포장길로 비록 자동차로 이동했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김밥 싸서 녹색 향기 맡으며 걸어보고 싶은 정말로 멋진 길이다.
녹색 숲길

산야는 녹색으로 덧칠을 더해 가고 바람에 너울거리는 잎사귀는 녹색 물결을 이루고 있다. 깊은 산과 계곡의 푸름은 강한 햇살을 받아 더욱 푸르다. 바다는 매일같이 보는 터라 산이 그립다. 그래서 갯가 사람은 산으로, 뭍에 사람은 바다가 그리운 모양이다. 경남지역에서 산과 골이 깊은 곳을 치자면 역시 중부경남. 국립공원 지리산이 있는 산청·함양이나, 역시 국립공원 가야산이 있는 합천은 산세가 수려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 두 곳은 몇 차례 답사한 탓에, 이번에는 국립공원을 벗어나 보기로 했다. 

  
▲ 이팝나무 길 길게 쭉 뻗은 시원스런 이팝나무 가로수 꽃 길.
이팝나무
경남 거창과 함양을 사이에 두고 아우르는 기백산. 산세가 좋아 등산객이 많이 찾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계곡은 심신을 달래주는 휴양지로 각광 받고 있다. 지난 21일 35번 고속국도 서상 나들목을 나와 26번과 3번 국도를 따라 거창군 마리면 삼거리까지 갔다. 여기서 좌회전하면 37번 국도를 타게 된다. 이어 장풍삼거리에 이르고, 또다시 좌회전하여 37번 국가지원지방도를 따라 약 7㎞에 이르면 북상면사무소가 나타난다. 보며 즐기는 시간은 여기서부터. 물론, 여기까지 차를 운전하는 내내 펼쳐진 시원스러움은 아주 좋았던 편. 수승대관광지를 지나는 길목 좌측으로는 우거진 소나무 숲이 아름답다. 냇가의 바위와 맑은 물은 초여름의 시원함을 마음껏 느낄 수 있게 해준다. 
  
▲ 이팝나무 꽃 하얀 꽃이 수수모양으로 피어 나무를 뒤덮고, 쌀밥을 담아 놓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팝나무. 서양에서는 눈꽃나무라 불린다.
이팝나무

한적한 시골길, 오가는 차량은 한참을 지나야만 겨우 볼 수 있다. 들판에선 허리 숙여 일하는 농부의 손놀림이 바쁘다. 녹색 잎이 무성한 도로변 가로수는 눈이 부시도록 흰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아주 오래된 고목은 아니지만 그래도 길 양옆을 거의 이을 정도로 큰 가로수다. 알고 보니 이팝나무란다. 이팝나무는 하얀 꽃이 수수모양으로 피어 나무를 뒤덮고, 쌀밥을 담아 놓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서양에서는 눈꽃나무라 불린다. 5월 중순 경부터 피면 약 20여 일 동안 녹색 푸른 잎사귀와 동거한 후, 가을이면 보랏빛 콩 모양의 타원형 열매를 겨울까지 달고 있다. 어린잎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무침으로 해 먹기도 하고, 말린 잎은 차를 끓여 먹어도 좋다. 시원스레 길게 뻗은 도로는 나무위에 눈 내린 모습으로 여행객을 즐겁게 맞이하고 있다. 

  
▲ 폭포와 소 용추계곡에는 이런 작은 연못이 몇 군데나 있다.
용추계곡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좌측으로 아름다운 계곡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철이면 더위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올 명소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주은자연휴양림이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것만 같다. 북상면사무소에서 8.7㎞에 이르면 월성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면 시멘트 포장길이다. 차 한대 지나갈 정도의 노폭이라 마주 오는 차가 있다면 교행을 잘 해야만 할 것 같다. 작은 계곡은 이어지고 군데군데 새로운 펜션을 짓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주변의 울창한 숲을 낀 들녘은 전원주택지로 안성맞춤이다. 이런 곳에 오두막이라도 지어 남새밭에 곤달비 심고, 상추 뜯으며 살고 싶은 생각 간절하다. 좋아하는 야생화는 작은 농원에 심어 방문객에게 공짜로 주고, 충성심 강한 개 한 마리는 동반자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꿈이 아닌, 실제 상황으로 만들고 싶다. 요즘, 귀농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더욱 그런 마음 간절하다는 생각이다. 

  
▲ 쉼터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서 5.1㎞에 다달으면 정자가 있는 쉼터와 주차장이 나온다. 좌측으로 금원산(2.2㎞)이고, 우측으로 월봉산(3.0㎞)에 이른다.
금원산

숲 속 길을 걸어가는 재미가 좋으련만, 어차피 차를 타고 온 탓에 버릴 수도 없다. 산 속 길은 포장이 잘 돼 있어 운전하는 데는 별 애로사항이 없는 상태. 한참을 오르니 산 중턱에 정자 하나가 있다. 월성리에서 5.1㎞ 거리다. 운치 나는 정자에서 몇 사람이 둘러앉아 점심 먹는 모습을 보니 배가 고파 온다. 주차장엔 차량도 서너 대 서 있는 것을 보니 등산객도 있는 모양. 안내판을 보니 한쪽은 금원산(2.2㎞)이고 다른 쪽은 월봉산(3.0㎞)을 가리킨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금원산을 다녀왔음 하지만, 눈으로만 등산로를 따라 걸어 본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 애기폭포 깊은 계곡 작은 바위 틈을 흐르는 물은 맑고 청량하기 그지없다.
애기폭포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울창한 녹색 숲이 나오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차를 세웠다. 그런데 자연은 나를 극진히 환영한다. 녹색 나뭇잎은 바람을 타고 서로 경연하듯 춤추고, 새들은 저마다의 개성 있는 목소리로 노래하며 반긴다. 작은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도 질세라 졸졸졸 노래한다. 야생화는 그 작은 입에 함박웃음을 피워내고 나그네를 꾀고 있다. 갑자기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마트 웃겨 봤어?" 라며, 자신의 위상을 뽐내는 듯 하는 멘트는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입가에 미소를 만들 듯이. 

5월의 숲 속은 전체가 녹색이다. 다만 다른 색깔을 볼 수 있다면, 그건 꽃잎 색깔일 뿐. 야생화 미나리냉이도 녹색 잎에 하얀 꽃망울을 여럿 달고 있다. 하도 예뻐서 한참 동안이나 내려다보았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데 지나가는 차 한대가 멈춘다. 중년 남녀 몇 명이 내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어온다. 

"아저씨, 뭘 찍고 있어요? (다가서며) 어머, 예쁘라.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예, 미나리냉이라고 하는데요. 잎이 미나리와 비슷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죠. 예쁘죠?
"정말 곱고 아름답네요. 아저씨 야생화 전문가이신가 봐." 

  
▲ 미나리냉이 잎이 미나리와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미나리냉이.
미나리냉이

월성리에서 능선부에 이르기까지는 거창이지만, 넘어서부터는 함양이다. 거창 쪽 계곡도 아름답지만 함양 쪽 계곡도 빼어나다. 이 계곡은 용추계곡으로 이어지고 중간에는 용추폭포도 있다. 계단을 이루고 인공적으로 만든 작은 소(沼)가 몇 개 만들어져 있다. 물이 가득 차 넘쳐흐르는 모습이 시원스럽다. 아직까지 물이 찰 것 같지만 몇 사람이 발을 담그고 물놀이를 하고 있다. 

  
▲ 족두리풀 족두리풀
족두리풀

길은 계속 이어지고 녹색 숲도 끝이 없다. 숲 속, 키가 크고 잎이 무성한 나무에 흰 꽃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달고 있는 나무가 보인다. 층층나무다. 이 나무는 10~20m까지 자라고, 잎은 타원형이며, 하얀색의 꽃잎은 다발을 이루고 있다. 꽃을 피우는 화초나 나무 중에는 일반적이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 중 하나인 꽃무릇은 잎이 지고 꽃을 피우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이라고 한다. 나무에서 피는 꽃 역시 몇몇은 뚜렷한 특징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층층나무 꽃이다.   

  
▲ 층층나무 꽃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는 목련이나 벚꽃과는 달리 잎이 먼저 나고 꽃을 피우는 층층나무 꽃.
층층나무 꽃

벚꽃나무나 목련은 꽃을 먼저 피우고 잎이 나는 반면, 층층나무는 잎이 난 후 꽃을 피운다. 층층나무는 늦봄에 꽃을 피우는데, 이 꽃이 핀다는 것은 여름이 시작되고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했다는 것. 잎은 쌀가루 반죽을 해 기름에 튀겨 먹을 수도 있는데, 절에서는 초파일날 이 음식을 부처님 앞에 올렸다고도 전한다. 특히, 팔만대장경은 자작나무나 산벚나무 등으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드물게는 고로쇠나무를 비롯하여 이 층층나무를 경판용으로 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문 실정이다. 그래서 이 나무는 불교와도 깊은 사연이 있다고 알려진 나무다. 

  
▲ 단풍나무 길 함양군 안의면 용추사로 가는 길 옆으로는 붉은 단풍나무가 여행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뒤로는 기백산이 보인다.
단풍나무

걸어서 가야만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녹색 숲길, 비록 차량으로 지나왔지만 그래도 진한 녹색 향기를 맡을 수 있어 좋았다. 거창 월성리에서 시작한 길은 능선 주차장까지 5.1㎞, 다시 이곳에서 용추사 입구 주차장까지 5.9㎞, 총 11㎞의 거리다. 용추사를 뒤로하고 용추계곡을 빠져나와 안의까지 달리는 도로변은 붉은 잎 단풍나무가 초여름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옛 이름이 지우산(智雨山)인 기백산(해발 1,331m, 箕白山)은 웅장한 모습으로 계절에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