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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상지역

[사천여행] 사천팔경 중 제7경 '사천읍성 명월'로 유명한 수양공원

 

[사천여행] 사천팔경 중 제7경 '사천읍성 명월'로 유명한 수양공원

 

사천읍성에 있는 '침오정'. 이곳에 올라가면 사천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사천여행] 사천팔경 중 제7경 '사천읍성 명월'로 유명한 수양공원

 

백성을 사랑하는 왕의 마음이 남아 있는 사천읍성!

황진이의 한시 한 구절인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하리'가

가장 생각나는 곳으로 달이 뜬 밤에 그 아름다움이 빛난다는 사천읍성.

 

사천시 홈페이지는 사천팔경 중 제7경인 '사천읍성 명월'에 대해 이렇게 기술해 놓았다.

그런데, '명월'을 보려면 밤에 가야 하거늘, 낮 시간에 간 탓에 '명월'은 고사하고 희미한 달조차도 구경하지 못했다.

물론, "이런 홍보내용을 알았더라면, 보름달 한번 찾아 가 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지난 4월의 마지막 일요일.

집에서 가까운 사천여행에서 도심에서 가까운 사천읍성을 찾았다.

 

읍성 내 우거진 숲은 더운 여름날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라는 느낌이다.

성벽 위를 따라 걸으며, 성을 쌓을 당시를 더듬어 보니, 조상들의 고단했던 삶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약자는 강자에게 약탈을 당해야만 했던 시절,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성을 만들어야 했던 왕.

왕과 백성은 한 몸이 되어 성을 축조하고 왜구를 물리쳤다.

이런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사천읍성에서 선조의 지혜를 배웠으면 좋겠다.

 

 

 

 

 

사천읍성에 있는 4층 규모 팔각정인 '침오정'에 오르면 사방으로 읍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다시 길을 따라 걸으면 작게 조성한 연못 한 가운데 탑이 서 있고, 벽 쪽으로는 용 한마리가 승천을 하고 있다.

성 외곽으로 걸으면 수양공원으로 이어지는데, 산책하기 좋은 코스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시간이 넉넉하지 못해 겉모습만 둘러 보고 돌아 온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음 여행 때는 밝은 보름달이 뜬 날 '명월'을 구경하러 가고 싶기만 하다.

 

새로 만든 성벽 큰 바위 표면에 낙서를 한 모습이 안타깝다.

관리하는 곳에서 빨리 깨끗하게 지웠으면 좋겠다.

 

 

 

사천읍성

경상남도 기념물 제144호

1994년 9월 26일 지정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인리 

 

 

읍성은 지방의 관청과 민가의 보호를 위해 그 주변을 둘러싼 성이다. 읍성을 가장 활발히 쌓은 시기는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고려 말로부터 조선 초까지였다. 이 시기에 왜구의 침범이 잦았기 때문에 세종(1418~1450 재위)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바다 가까운 지역에 새로 읍성을 쌓거나 수리하게 하였다. 읍성은 조선 왕조 마지막까지 존속되었으나, 1910년 한일합병과 함께 일본이 읍성 철거령을 내리면서 전국의 읍성 대부분이 헐렸다.

 

사천읍성은 1442년(세종 24)에 당시 병조참판이었던 신인손이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돌과 흙을 사용하여 쌓았다. 기록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913m, 높이는 3~3.5m로 성문이 세 곳에 있었다고 한다. 성문에는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낮은 담(성카퀴)을 설치하였고, 입구에는 ㄱ자 모양의 또 다른 성을 마련해 외부로부터 성물을 열게 하였다. 또 외부로부터의 접근을 막기 위해 방어용 도랑을 설치하는 등, 조선시대의 전형적이 읍성 구조이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허물어지고 약 300m 정도의 성벽만이 훼손된 채 여기 저기에 남아 있다. 이 성은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 치열한 전쟁을 벌인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듬해 9월 28일에 정기룡 장군의 지휘 아래 있던 조·명 연합군이 성에 진을 치고 있던 왜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이 성을 탈환했던 것이다.

 

현재 이곳 사천읍성 일대는 수양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천여행] 사천팔경 중 제7경 '사천읍성 명월'로 유명한 수양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