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달려온 33년의 세월, 산행에서 배운 인생이야기
 
  
▲ 정열 붉게 타는 단풍잎이 정열을 뿜고 있다. 인생도 저렇게 정열을 뿜으며 살고 싶다.
정열

한 해로 친다면, 새해 초 꿈과 희망을 가득 실은 배는 항구에 정박할 시간이건만, 무슨 연유인지, 급하게 서두르는 마음 하나는 긴 항해를 위해 떠나는 마지막 배를 타려는 듯, 몹시 서두르고 있다.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긴 고동소리. 다급함은 몸과 마음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날 동창들을 보고 싶은 설렘 때문일까. 

고교시절. 그 당시는 우리나라 대부분이 시골이었지만, 시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창과 헤어진 지 33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이다. 얼굴엔 듬성듬성 여드름이 나 있었고, 세련미라고 볼 수 없었던 촌티 나는 모습이 내 머릿속에 추억으로 남은 동창들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껏 같은 동네에 살고, 그 동안 가끔 만나온 동창들은 정반대로 새로운 이미지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 가을단풍 떨어지는 가을단풍이 내 소매를 붙잡고 있다.
가을단풍

가을이 한창 떨어지고 있는 11월 셋째 주 일요일(16일). 마산 무학산 입구 서원곡 주차장은 마지막 가을 산행을 하기 위한 등산객들로 붐볐다. 대형버스를 타고 간 일행을 보태니 꽉 차는 분위기다. 시끌벅적한 시골장터가 따로 없다. 한 세월 보지 못한 여자 동창들은 끼리끼리 부둥켜안고, 발을 구르며 난리법석이다.  

남자들은 어깨를 가벼이 포옹하며 고교시절의 얼굴을 기억해 내려한다. 그런데 남자동창들은 그럭저럭 알 것만 같기도 한데, 여자동창 몇 명은 얼굴도, 이름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난감했지만, 여자동창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잠시나마 반가움은 식을 줄 몰랐고, 인사 나누는 데만 한참 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각자의 개성 있는 얼굴모습에서  그간 앞만 보고 최선을 다해 살아온 장편의 인생역정 드라마를 볼 수 있었고, 삶의 형체를 찾을 수 있었다. 

  
▲ 인생의 산행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여력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의 모습이다.
인생

그렇게 산행은 시작되었다. 십여 분 지났을까, 급경사의 시멘트 포장길을 오르는 데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여력도, 없었다. 힘에 부쳐 앞만 보고 걸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그야말로 진지한 삶의 모습과 똑 같다. 산을 오름에 있어, 그것도 정상에 이르기까지 한 순간도 힘들지 않는 시간은 없다. 그래서 산에서 삶을 알고 인생 공부를 한다고 했던가. 

힘든 시간이지만, 등산길 옆으로는 좋은 글귀의 팻말이 몇 개 서 있다. 꼭, 등산객들에게 교육 시킬 요량인 것만 같다. 좋은 말이다. 저렇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어디 그렇게 쉽게 될 일인가. 그래도 가슴에 새겨 어려울 때 한번쯤 자신을 뒤돌아보리라는 생각이다. 

자기를 이기는 것이 가장 어진 것

그러므로 그를 사람 중의 왕이라 하네

생각을 다스리고 몸을 길들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를 이루나니

(법구경에서)

 

  
▲ 동창 억새무리가 마산만을 내려다보며 제각각 하늘거리고 있다. 멀리 마창대교가 희미하게 보인다.
억새

육십여 명이 한꺼번에 출발했지만, 힘에 부쳐 간격도 멀어지고, 삼삼오오 짝을 이뤄 대오가 흩어진다. 산 중턱 하나에 올라서니, 멀리 꼭대기가 보인다. 저기가 정상이라면, 삼십여 분만에 오를 것만 같다. 하산하는 사람들에게 정상이 얼마치 남았냐고 묻지도 않았다.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있는 힘을 다해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상이라 생각했던 그곳에 올라서니, 저 멀리 학의 형상을 한 무학산 정상(해발 761.4m)이 보였다. 허탈했다. 절친한 친구에게 속은 느낌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것이 인생이며, 산행이다. 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산을 전문으로 다니는 사람들이야 별로 높지 않다고 하겠지만, 산의 높이로만 친다면, 해발의 시작점이 수면과 별 차이가 없는 터라, 내륙의 일천 미터 급의 산과 비슷하다 할 수 있으며, 그리 만만히 볼 산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산행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도 나눌 법도 한데, 힘이 드니 말할 기운도 없고, 조용히 사색하며 혼자 걷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  

  
▲ 인생역정 제몫을 다하고 떨어져 편안히 쉬고 있는 잎사귀.
인생역정

노랗게 물들어 아직도 떨어지지 않고, 힘겹게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잎사귀 하나는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떨어질 것만 같이 위태위태하다. 땅바닥에 벌써 떨어져 나뒹구는, 그래도 형체만이라도 원형대로 갖춘 낙엽은 편안하게 쉬고 있다. 사람들의 발에 밟혀 산산조각 부서져, 다른 나무의 밑거름이 될 낙엽 부스러기는 희생의 또 다른 모습이다. 계속되는 가뭄에도 소나무 밑동에 새파랗게 난 이끼와 갈바람에 이리저리 뒤척이는 억새에서 인생 산행을 경험하고 있다. 

  
▲ 무학산 멀리 철탑이 있는 곳이 해발 761.4미터의 무학산 정상이고, 365 건강계단이 보이며, 아래 평평한 곳은 서마지기터다.
무학산

이것저것 사색하며, 마침내 눈앞으로 정상이 보이는 중턱에 올라섰다. 아래로는 널따란 평지가 보인다. 농토 서마지기 크기의 서마지기 터다. 정상까지는 나무 계단이 설치돼 있고, 건강계단이라 이름 붙여 놓았다. 마음속으로 계단을 세어 봤으나, 이내 그만뒀다. 계단 사이에 숫자가 표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계단을 오르며 마음속으로 자신이 세어 보면 좋으련만, 내가 할 일을 남이 해 준 것만 같아 씁쓸한 기분이다. 꼭대기까지 365계단이다. 일 년 동안 내내 걷고 또 걸으며 건강하게 살라는 의미일까. 

  
▲ 365건강계단 서마지기에서 정상까지 이르는데 설치해 놓은 365개의 나무계단. 365일 내내 건강하게 살라는 의미일까.
365건강계단

먼저 도착한 동창 네 명이 충무김밥을 먹고 있다. 산행에 있어 충무김밥은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간편하기도 하지만, 맛도 일품이다. 귤도 마찬가지. 귤의 수분은 목마름을 채워주고 단맛은 피로감을 없애준다. 힘든 산행 끝에 먹는 김밥과 귤 맛은 산행에 있어 갖추어야 할 필수품. 시간이 제법 흘렀다. 정상의 넓은 터에는 하나 둘씩 동창들이 모여들었다. 산행 중 나누지 못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기념 촬영은 기본. 사람 스무 명이 모이면, 틔는 사람이 꼭 한 사람 있다고 했던가. 한 동창이 틔고 싶은 모양이다. 

  
▲ 정상탈환 거제 해성고등학교 23회 졸업생이 33년만에 정상을 탈환했다. 사람 스무명이 모이면 틔는 사람이 꼭 있다고 했던가. 앞자리에 앉은 그는 이날 반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정상탈환

마산만을 내려다보는 무학산은 태극기를 머리에 이고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전쟁터에서 꼭 진지를 탈환한 것만 같다. 무명용사들이 아니라 거제 해성고등학교 23회 졸업생들이다. 그런데 고지를 탈환한 동창은 출발할 때 인원의 반이 조금 넘을 뿐이다.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중에 연유를 물으니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정상을 올랐으니, 하산을 아니 할 수는 없다. 언제나, 정상에 머무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산 길은 쉬우리라 생각했건만, 오르는 것 못지않게 힘들다. 경사진 곳, 두 다리에 버티는 힘이 더욱 필요하다. 

  
▲ 행복 김해에서 왔다는 유진(10), 경진(6)과 아빠엄마. 아이들은 네살때부터 산을 올랐고, 매주 한번 정도 가족끼리 가까운 산을 찾는다는 이 가족은 행복을 가득안고 산을 내려오고 있다.
행복

예쁜 여자 아이와 남동생 그리고 아빠엄마 한 가족이 행복을 가득안고 산을 내려가고 있다. 김해에서 왔다는 이 가족은 매주 한번 정도 가까운 산을 다니며, 딸 아들 모두 네 살 때부터 산을 다녔다고 한다. 어릴 적, 힘들 때는 어깨에 태워 산행을 했지만, 이제는 제힘으로 다닌다고 하니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든단다. 세 살배기 아들을 목말 태워 산을 올랐던 추억이 순간 떠올라 잠시 머뭇거렸다. 지금, 그 녀석은 최전방에서 제대를 얼마 남겨 두고 있지 않은 군인으로 근무하고 있다. 

  
▲ 만추 하산길에 만난 만추.
만추

무학산, 두 시간을 올랐고, 한 시간을 내려왔다. 정상을 오르는 것은 두 배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이미, 정상을 밟은 동창도 있지만, 아직도 7~9부 능선을 오르는 동창들도 많다. 모두들 제자리에서 정상의 고지를 탈환하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정상이 꼭 인생의 목표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 실제 산행에 있어서도, 많은 동창들이 정상에 오르지 않았거나 못했다. 그들 나름의 이유와 사정은 있으리라.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도 산을 오르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다. 

앞만 보며 산을 오르고, 화려한 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단풍을 보며, 잎사귀 지는 가을에서, 33년 만에 만난 동창들과 함께 인생의 산행을 한 소중한 하루였다. 마지막 가는 가을. 다시, 인생의 험한 항로를 여행할 배는 긴 고동소리로 소매를 붙잡고 있는 나를 재촉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거제도에 있는 해성고등학교 23회 동창들을 33년 만에 만나게 해 준 회장단과 멀리 서울에서, 부산에서 온 동창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특히, 황성부 동창에게는 감사의 메시지를 별도로 전합니다. 그는 함안에서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화합의 한판인 뒤풀이도 깔끔하게 마무리한 신사랍니다. 동창들에게 해 온 그의 남다른 정을 본다면,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내내 건승하심을 빌어봅니다. 그리고 산행 중에 만난 예쁜 아이 아빠가 이 글을 보고 연락주시면 원본 사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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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까는 삶의 현장에서 굴 요리도 함께 하는 특별한 여행

  
▲ 거제만의 굴양식장 겨울철 최고의 보양음식인 굴 양식장

생굴의 계절이 돌아왔다. 찬바람을 맞으며 갯가의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굴 맛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거리다. 날씨가 추울수록 알이 차고 맛도 풍부해지기 때문에 겨울철 최고 보양음식으로 꼽히는 굴은 사람들이 붙이는 별칭도 가지각색이다.  

바다의 우유라 불리고, 사랑의 묘약이자 먹는 화장품으로도 불린다. 나폴레옹 1세도 전쟁터에서 하루 세끼 굴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날것으로 먹지 않는 서양에서 거의 유일하게 먹는 수산물이 굴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겨울철 별미로 알려져 있는 음식, 비타민 A의 함량이 쇠고기의 8배가 넘는다는 굴, 제철을 만난 굴 맛을 보러 거제도로 떠나보자. 35번 고속국도의 남쪽 끝 톨게이트인 통영영업소를 지나 왼쪽 거제도 방향으로 차를 돌려 3분여 지나면, 거제대교를 만나게 된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 둔덕방향으로 가다보면 한려수도 청정 해역에 펼쳐진 굴 양식장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생굴 향기를 맡을 수 있다. 

  
▲ 굴요리 준비 거제도의 굴요리는 흰 장갑과 작은 손칼을 준비하면서 시작된다.
굴요리

둔덕면에서 거제면으로 이어지는 1018번 지방도 주변에는 굴을 전문으로 요리하는 식당이 즐비해 있다. 어느 집에 들르더라도 생굴의 특별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식탁 위에는 흰 목장갑과 작은 손칼 하나가 놓여진다.  

  
▲ 생굴 국화 꽃잎으로 치장한 생굴. 우유빛이 가득하다.
생굴

거제도의 굴 요리 방식을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투박하다는 생각과 함께 당황할 수도 있으리라. 커다란 양은솥에 한 솥 가득 굴이 담겨져 가스 불에 올려진다. 따로 물을 붓지 않아도 자체 수분 때문에 잠시 후 입을 벌리면서, 독특한 향기와 우유 빛을 띤 탱글탱글한 굴을 보게 된다. 

  
▲ 굴구이 한 솥 가득한 굴이 익혀지자 굴을 까 먹기에 여념이 없다.
굴요리

껍데기 속 굴을 젓가락으로 콕 집어 고추장에 찍어 한 입 가득 씹으면, 그 맛이 가히 일품이다. 더 좋은 굴 맛을 원한다면 너무 오래 열을 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중간 정도 익히는 것이 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창가로 펼쳐진 쪽빛의 거제도 바다는 추억을 함께 만들어 줄 것이다. 

  
▲ 굴 껍데기 술 굴을 까먹고 난 껍데기에 한잔 가득한 술. 술맛이 엷어져 한층 부드럽다.
굴껍데기술

이왕 맛을 즐기려면 빈 굴 껍데기에 소주를 따라 마셔보자. 굴 향기와 바다 향기가 그대로 스며들고 독한 소주 맛은 엷어져 부드럽기 그지없다. 거기다 동행한 사람과 건배를 곁들인다면 행복은 두 배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굴 따는 어부의 딸은 피부가 좋다는 우리네 말이 있다. 굴을 먹으면 더 오래도록 사랑한다는 유럽 사람들의 말도 있다. 굴에 들어있는 글리코겐은 에너지의 원천으로 남성들에게는 힘을 상징하는 식품으로, 여성들에게는 피부를 곱게 하는 훌륭한 건강 미용식품으로, 어린이들에게는 성장기 발육을 도와주는 영양식품으로 각광받는 굴.  

가족끼리, 연인끼리 거제도의 푸른바다를 배경삼아 식탁에 둘러 앉아, 조금은 투박하지만, 한 손에는 흰 목장갑을 끼고, 한 손에는 작은 손칼로 굴을 까는 즐거움을 만끽해보자. 

  
▲ 굴의 속살 탱글탱글한 굴의 속살, 맛이 일품이다.
생굴

생굴회, 굴 생채, 굴라면, 굴 삼겹살...입맛대로 골라드세요

굴을 재료로 하는 요리는 다양하다. 바다냄새와 굴 특유의 향기를 맡으려면 생굴을 초장에 찍어 먹거나, 버무려 먹는 생굴회가 좋고,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을 원한다면 굴 칼국수, 여러 사람이 함께 굴 까는 재미를 느끼겠다면 굴 껍데기채로 가스불이나 석쇠에 굽어 먹는 석화구이가 좋을 것이다.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겨울초를 넣고 버무린 굴 생채, 전을 좋아한다면 계란에 비벼 지지는 굴전, 바쁜 직장인이라면 굴라면, 삼겹살 구이로 동료끼리 파티를 원한다면 굴 삼겹살 요리가 분위기를 한층 더 돋우게 될 것이다.  

또한, 굴은 냉동시켜 먹어도 맛과 영양분이 훼손되지 않는다는 것이 굴을 전문으로 양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니 싱싱한 굴을 급랭시켜 두고두고 먹어도 좋을 것만 같다. 

이른 겨울의 거제도 바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기만 하다. 그러나 생명은 열심히 숨쉬고 생산 활동은 멈추지 않고 있다. 겨울 별미로 애용되는 굴도 이 시기에 제 몸을 살찌운다. 거제만에서 생산되는 굴은 전국의 가정으로, 식당으로 배달되어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 굴까기의 달인 평생을 굴까는 작업에 매달린 삶의 현장이다.
삶의 현장

 

  
▲ 삶의 현장 산더미 같이 쌓인 굴을 까는 삶의 현장이다. 굴까는 소리는 내 고향의 소리요, 내 삶의 소리임에 틀림이 없다.
삶의 현장

굴 식당 인근의 굴까는 작업장을 방문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굴까는 소리가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것만 같다. 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다. 열심히 작업하는 아주머니들의 손끝에서 울려 퍼지는 감동의 소리.  

굴까는 소리는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에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내 고향의 소리요, 내 삶의 소리임에 틀림없다. 자식들 키우고, 학교 보내며, 가족의 삶을 위해 평생을 굴 까는 작업에 매달렸기에, 어찌 그 소리가 싫을 수 있겠는가. 

  
▲ 삶의 현장 온 종일 서서 일하는 고된 굴까는 작업이지만, 얼굴에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삶의 현장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해가 질 무렵까지, 종일 서서 일을 해야 하는 굴까는 작업은 그야말로 중노동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손놀림은 쉴 틈 없이 부지런하다.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가까이 하니, 한 아주머니는 활짝 웃는 모습으로 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장난 끼를 발동한다. 작업에 방해가 될까 조심스러웠지만, 작업장에는 잠시 동안이나마 웃음이 넘쳐흘렀고 피로감도 풀어졌으리라. 

오랜 세월 연마된 숙련일까. 굴까는 손동작이 보통 아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개를 까고 또 한 개를 집어 잡는다. 플라스틱 대야 한 통 가득 채우는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는 솜씨로 하루에 4~50킬로 깐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생굴은 지금부터 출하를 하기 시작하여 내년 4월경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현지 시세로는 ㎏당 1만원 내외로 즉석에서 깐 싱싱한 생굴을 현장에서 사서 요리해 먹었으면 좋겠다. 거기다가 굴까는 작업도 구경할 겸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체험하는 것도 좋으리라. 

  
▲ 노을진 거제만 노을진 거제만은 평화롭다. 외롭고 쓸쓸하게 보이는 작은 배는 가을 한 모퉁이에서 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노을

노을이 지는 거제만의 바다는 옷깃을 세우게 할 정도로는 추운 느낌이다. 떨어지는 햇살과 바다에서 부는 갈바람 때문이런가. 달님은 일찍이도 나와 해맑게 웃으며 거제만을 내려다  보고 있다. 힘에 지친 모습일까, 늦가을 추위에 몸을 움츠린 탓일까. 쓸쓸하고 외롭게 보이는 작은 배는 가을 한 모퉁이에서 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출처 : 굴 삼겹살에 굴라면, 게다가 굴 생채까지... - 오마이뉴스(2008.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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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바다와 진도 바다의 또 다른 가을 느낌

  
▲ 늦가을 진도의 바다 거제도에서 310km를 달려 도착한 진도. 안개에 휩싸인 진도대교가 늦가을을 품에 안고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다.
진도대교

바닷가에서 태어나 반세기 동안 바다를 보고 살아왔지만, 매일같이 바라보는 바다는 하루도 같은 느낌이 아닌, 볼 때마다 새로운 감정을 가지게 해줬다. 그래서 바다를 사랑하게 됐고, 앞으로도 영원히 변치 않게 사랑할 것만 같다.  

가을은 깊어 가는데, 화려하게 치장한 단풍이 물든 산보다는 비릿한 냄새가 나는 바다가 더 좋다. 내 삶의 터 거제의 바다가 아닌, 또 다른 삶이 묻어 있는 바다를 보러 자동차로 갈 수 있는 최남단의 섬인 진도로 향했다. 몇 달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진도였지만, 미루고 미루다 가는 여행길은 희뿌연 안개만이 안전운행을 일깨워 줄 뿐이다. 

  
▲ 쌍계사 국화축제 진도의 쌍계사에선 국화축제가 한창이다.
쌍계사

11월 첫 주 일요일(2일). 아침 일찍 거제에서 310㎞를 달렸고, 세 시간 반을 넘겨서야, 진도대교를 볼 수 있었다. 안개에 휩싸인 사장교의 진도대교는 휘황찬란한 야경사진에서 보는 아름다움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였다. 우뚝 솟은 주 탑은 웅장하였고, 언뜻, 거미줄 같아 보이는 로프는 육중한 상판 때문이었는지, 힘에 겨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마, 그런 느낌은 장시간의 운전으로 인한 피곤한 육신 때문이었을까. 동시에 느끼는 착시와 착각 현상의 탓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리 밑은 초속 11노트(6m)의 빠른 조수가 흐르고, 동양에서 바다 물살이 제일 세다고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해남과 진도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으로 이순신이 왜군을 상대로 맹활약을 펼친 명량대첩지라 불리는 유명한 울돌목이다. 

유람선터미널로 전화를 걸었다. 유람선은 오전·오후 각 한 차례 운항하고, 10명 이상 되어야만 출항한다는 안내원의 설명이다. 점심을 미루고 쉬미항에 도착했다. 자동차는 제법 많이 주차돼 있었지만, 관광객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주변은 한산했다. 현장 분위기로 봐서 배는 출항하지 않을 것만 같았고,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안개 낀 날씨로 차라리 유람선이 운항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시야가 흐려 사진촬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 강아지 삼형제 새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삼형제가 지친 탓일까 곤히 잠들어 있다.
진도

다시 돌아서 읍내로 나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듯, 운이 좋게도 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역시, 시골장터 만큼은 볼거리가 풍성하다. 풋풋한 정이 흐르고, 서로 싸우듯이 흥정하며, 왁자지껄한 장터의 모습에서 삶의 의미를 보고 느낀다.  

형제처럼 보이는, 새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세마리는 지친 탓일까,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 귀엽고 정겹기만 하다. 한 달여 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애견 선이의 모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며, 이별에 대한 슬픔과 애절함이 가슴을 죄어 오는 것만 같아 더 이상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 녹색의 땅 섬사람들의 부지런함을 느낄수 있는 들녘이다.
녹색의 땅

섬사람들은 근면성을 타고 난 것일까? 몇 해 전, 남해를 갔을 때도 겨울철에 노는 땅을 볼 수가 없었다. 마늘을 심은 들판은 녹색의 땅이었고, 근면과 성실의 현장이었다. 진도 역시 대파와 배추가 심겨진 들녘에서 섬사람 특유의 부지런함을 느낄 수 있었다. 

  
▲ 운림산방 허련선생의 화실
운림산방

예까지 왔으니 운림산방(雲林山房)을 아니 보고 갈 수는 없다. 깊어 가는 이 가을에 딱 어울리는 명소라는 생각이다.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인 허련선생(1809년~1892년)이 말년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리던 화실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이곳 작은 연못에는, 가을이 수면에 넉넉히 내려앉아 포근히 쉬고 있다. 수면 위에 자연이 그려낸 한 폭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일필휘지의 힘도 느껴지지만, 곡선의 부드러움은 그 시대 가을 놀이하는 여인의 하늘거리는 치맛자락 같은 느낌도 든다. 

  
▲ 자연산수화 진도의 대표적인 명소로 운림산방의 작은 연못. 수면은 화선지요, 물감은 자연이며, 붓은 하늘로 그린 연못위의 그림 한점. 허련선생은 이 연못에서 그림의 영감을 얻은 듯만 하다.
운림산방

연못 위 그림 한 장. 수면은 화선지요, 물감은 자연이며, 붓은 하늘이다. 연못 위 자연이 그린 그림을 본 때문일까. 소치기념관에서 감상하는 선생의 작품은 조금 전, 연못에서 본 잔영이 그대로 남아 실제 그림과 혼동을 일으키게 한다. 선생은 당시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겠지만, 영감(靈感)은 연못에서 느꼈으리라.  

매주 토요일 11시, 기념관 바로 옆에 있는 진도역사관에서는 유명작가들이 그린 한국화, 서예 그리고 문인화 등을 경매한다는 안내를 듣고서야, 차라리 토요일에 방문하였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 대웅전 진도 쌍계사 대웅전앞에 국화가 만발하다.
쌍계사

  
▲ 분재국 처음 보는 분재국. 엄지손가락 굵기 정도의 국화에서 핀 수 백 송이의 꽃은 지극정성의 결실이다.
국화분재

쌍계사는 하동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진도에는 또 다른 쌍계사가 있었고, 이곳에선 국화대축제가 한창이었다. 사찰은 규모면에서 하동보다 크지 않지만, 고풍스러움만큼은 못지 않아보였다.  

엄지손가락 굵기보다 더 큰 분재국의 가지에서 핀 수백 송이의 국화는 일 년 내내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는지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동물 모양의 소원등과 국화가 어우러진 쌍계사의 가을은 긴 겨울잠을 자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 신비의 바닷길 매년 4~5월이면 뽕할머니상에서 오른쪽 안개에 싸인 모도까지 신비의 바닷길이 열린다.
신비의 바닷길

상큼한 국화향기를 뒤로하고 신비의 바닷길에 도착한 시간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뽕할머니상에서 바닷길이 열리는 모도(茅島)를 바라보니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제법 멀어 보이기도 하지만, 들 물이라 수심도 꽤 깊어 보였는데, 바닷물이 갈라진다고 하니 신비스럽기만 하다. 바닷길은 매년 4~5월에 3~5회 정도 열리며, 길이 약 2.8㎞, 폭 약 40m라고 한다.  

잠시 후, 대형 관광버스 두 대가 부산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술시가 지나고 술 마신 기운 탓인지 여행객은 시끄럽기 짝이 없다. 아저씨부대는 포장마차로 향하고, 아줌마부대는 한 할머니가 작업하고 있는 김 건조장으로 향한다. 할머니가 파는 곱창김은 금세 동이 났다. 1미터가 넘는 곱창김은 곱창처럼 꼬불꼬불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진도에서 만난 할머니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곳에서 어미같은 할머니가 곱창김을 다듬고 있다.
신비의 바닷길

파도가 밀려간 듯 여행객들이 철수한 조용한 시간, 할머니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올 해 일흔 아홉이라는 할머니는 정정해 보였지만, 힘겨운 모습도 함께 보였다. 남편은 쉰셋에 세상을 떠났고, 아들 넷은 모두 잘 산다고 한다.  

아직 일을 할 수 있으니, 놀지 않는다면서, 오늘 하루 동안 한 봉지 만원하는 김을 스무 개 정도 팔았다고 한다. 어미 같은 생각에 기꺼이 한 봉지를 샀고, 집에 와서 무쳐먹었더니 맛이 기가 막힌다. 아마도 할머니가 힘들게 노력하고 정성을 들인 손맛과 신비의 바닷길이 만들어준 마력이 더해져 좋은 맛을 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진도의 바다는 그렇게 나의 머릿속에 저장되었다. 

여행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소개팅이라고 말하고 싶다. 청춘남녀가 소개팅을 하려면 키는 얼마이고, 몸매는 어떠며, 외모는 잘 생겼는지, 성격은 괜찮은지 등등, 먼저, 상대방에 대하여 궁금한 것을 대략 알아보고 만나듯, 여행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가고자 하는 곳, 가보고 싶어 하는 곳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이해가 있어야 만이 한층 더 품격 있는 여행이 되지 않겠는가. 

스스로 구세대라 생각하는 지금이다. 청춘시절, 소개팅을 해 본 경험이 없어 아쉽기도 하지만, 이제는 전국을 대상으로 여행 소개팅을 하러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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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 운림산방 쌍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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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농업개발원에서 열리는 작은 가을 전시회
  
▲ 꽃가지 가을을 느끼게 해 주는 꽃가지의 화려함
꽃가지

재촉도 하지 않았는데도 가을은 누가 쫒아 오는 냥 더욱 멀리 달아나고 있다. 포근하게 느껴지는 가을 기온과 느낌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시간의 흐름에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떨어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기도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가을걷이를 마무리한 휑한 들녘을 바라보면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이 더욱 물밀 듯 밀려온다. 

  
▲ 국화길 산책로를 따라 도는 길목에는 수십만본의 국화가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국화의 향연

이렇게 좋은 계절, 많은 사람들은 단풍놀이로 전국의 명산을 찾고 있다. 가을엔 단풍이 최고라고 하지만, 단풍 못지않게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자연의 진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국화가 아닐까. 가을 냄새 그윽한 날, 코끝으로 찐한 국화 향을 맡아 보려 거제도 농업개발원의 국화축제 현장으로 달렸다. 길목의 들판은 가을걷이한 모습이라 쓸쓸함과 외로움의 흔적만 남았고, 사람 사는 살가움이 없는 고독함만 가득하였을 뿐, 가을의 풍요로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 절망과 집착 국화를 상징하는 여러가지 표현 중 하나이다
절망과 집착

  
▲ 헌신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국화

  
▲ 절개 굳은 절개를 느낀다
국화

  
▲ 진실 순수함에서 진실을 볼 수 있다
국화

하지만, 또 다른 가을의 느낌은 포근한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길목마다 환하게 웃는 가을은 내 사랑스런 아들의 세살 적 웃는 모습 그대로였다. 갓 태어난 아기를 돌이 지날 때 까지 키운 부모라면 다 경험한 일이겠지만, 한 시라도 눈을 뗄 수 없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 아닐까. 한 시간을 넘게 백 만 송이가 넘는 넓은 국화재배지를 둘러보면서, 들녘에서 아침저녁으로 비바람 맞아가며 제힘으로 아름다움을 승화시킨 야생국화가 아닌, 아기를 키우듯 사람의 정성에 의해 키워진 국화 옆에서 서정주님의 시가 문득 생각난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우는 이유를 알 수 있는 것만 같았다. 

  
▲ 색깔바람 색깔바람을 보셨나요? 형형색색의 색깔바람이 가을을 한층 더 느끼게 해 주고 있다
색깔바람

국화축제장 한 편에는 무색투명한 바람이 아닌, 화려한 색깔의 가을바람이 불고 있다. 울긋불긋한 바람개비에서 부는 색깔바람은 깊어가는 이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또 다른 한 마당에는 아직까지 수확을 하지 않은 벼 시험장의 허수아비가 해탈한 웃음을 선사하고, 작은 분수는 하늘을 찌를 듯 용솟음쳐 오르지만 제 몸에 겨워 이내 떨어지고 만다. 

  
▲ 허수아비 거제시농업개발원에서 시험중인 벼 묘포장의 허수아비가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가을을 그리는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섬나라 거제도 농업개발원에서는 3만여 평의 넓은 들녘에서 오십 만여 뿌리의 국화를 재배하여 가을 축제를 연다고 한다. 미래 지향적인 농업 방향 제시와 난지농업의 활로 개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축제를 연다고 하지만, 그래도 보고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주제와는 상관없이 즐거움 가득한 가을의 한 때를 보내는 것은 틀림없는 것만 같다. 

  
▲ 작은 분수 작은 연못의 분수는 하늘을 찌를듯 오르지만 제 몸에 겨워 이내 떨어지고 만다
분수

10월 31일부터 11월 10일까지 열리는 ‘거제가을꽃한마당축제’는 수 백여 종의 국화를 비롯한 초화류와 난 종류 등 약 5십만 본의 꽃이 전시되며, 국화분재전시관, 곤충관, 야생화전시관, 사진전, 한국화전, 전통규방공예전, 천연염색전시관전, 수공예전시관전을 비롯한 소달구지체험, 재래농기구체험 등 7개 분야의 체험행사와 과수, 원예, 특용작물 등 거제도 농특산물 홍보관을 비롯하여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소공연 등 풍부한 볼거리로 이 가을을 수놓을 것이다. 

이 밖에도 무공해 농산물을 이용한 다양하고 특별한 먹을거리로 시골 장터를 운영하고 농산물 직거래 판매장에서는 관광객과의 직접 참여로 우수식품을 전시 판매할 예정이다. 

  
▲ 달아나는 가을 아무도 쫓지 않았는데도 가을은 줄달음을 쳐 멀리 달아나고 있다
가을

가을은 자꾸만 멀어져 가고 있다. 엊그제만 하여도, 환한 모습으로 길가를 수놓은 코스모스는 며칠 사이 꽃과 잎이 다 떨어지고, 새까만 씨앗만 늙어버린 꽃대에 힘없이 매달려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살아 있음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일까. 다시 내년에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 하는 기약을 하는지는 몰라도, 늦가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시들어 가는 코스모스에서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옴은 나만이 느끼는 것일까. 

국화향기 그윽한 이 가을에 헌신과 사랑, 절망과 집착, 진실함과 굳은 절개를 상징하는 한 송이의 국화가 만발하는 과정을 느끼고 싶다면, 거제도 농업개발원에서 열리는 작은 가을 전시회에 초대장을 보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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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을 따라 도는 황포돛배야 어디로 가는지 말해다오

며칠째 몸은 무겁고 팔다리가 쑤시면서 정신은 혼미한 상태가 이어진다. 당연히, 병원을 찾아야겠지만 병원에서 치료할 병이 아니라는 이유로 집에서 버티고 있다. 가을향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특히, 가을에만 걸리는 이름도 모를 몹쓸 병이라는 진단이다. 물론, 의사의 진단이 아니라 자가 진단이다. 푸른 가을하늘을 보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경쾌한 음악을 듣고, 신나게 달려야만 낫는다는 처방이 떨어졌다. 이것 역시도, 의사의 처방이 아니라 자가 처방임은 물론이다. 

  
▲ 가을을 달리는 기차 구 영산포역에는 가을을 달리는 기차가 있다
영산포

이름 모를 몹쓸 병을 치료하기 위해 무작정 집을 나와 차를 몰았다. 평소, 여행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면서 공부한다는 나만의 여행철학을 가지고 있던 터라, 출발하기에 앞서 여행지에 대한 정보와 코스 등 여행계획을 꼼꼼히 세우는 편이라 자부했건만, 이날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떠났고, 한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겨우 목적지를 정할 수 있었다. 

며칠 전, 티브이에서 홍탁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거제에서 나주까지 짧은 거리가 아니다. 모두들 가을맞이 하러 가는 걸까. 고속도로는 많은 차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 다투어 달린다. 집에서 230㎞를 달려 동광주 IC를 빠져나와 목포방향 1호선 국도를 달리다 보니, 드넓은 나주평야는 황금물결로 출렁이고 있다. 사전 정보도 계획도 없는 여행이었던지라, 시청에 들러 안내책자를 받고 홍어전문집을 찾아 나섰다. 

  
▲ 홍어의 거리 영산교 주변 홍어의 거리에 접어들면 홍어의 특유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홍어의 거리

영산교를 건너 좁은 도로로 접어드니 찐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찌른다. 차창을 닫았는데도, 찐한 향이 코를 자극하고도 남는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자동차는 즐비하게 주차돼 있고, 다리 입구에는 ‘홍어의 거리’라는 관광지를 상징하는 갈색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갑작스레, 홍어에 대한 십수 년 전의 웃지 못 할 추억이 떠올랐다. 전라도 최고음식으로 호평 받으며, 잔칫상에 없어서는 안 될 홍어는 경상도 사람한테는 즐겨 먹는 음식이 아닌 시절이었다. 아는 형을 만나러 전라도 지역을 가게 되었고 음식을 시켰는데, 홍어 몇 점을 내 놓았다. 고깃살이 생가오리 같아 한 점을 덥석 집어 고추장에 찍어 먹었는데, 썩은 것 같은 역한 냄새에 씹지도 못하고 뱉어버리면서 큰 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아줌마, 머시(무엇이) 이런 썩은 고기를 내 놓는교(주는가요)?

...

아이, 진짜 무슨 식당이 이렇게 상한 음식을 가지고 장사를 하능교(합니까)?

...

주인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대꾸도 하지 못하고, 큰소리로 항의하는 공격적인(?) 태도에 할 말을 잃었는지 멍한 모습으로 서 있었고, 형님은 옆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어색한 드라마가 한동안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꼈고, 나중에서야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홍어회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데, 같이 동석했던 그 형님도 홍어라는 걸 알면서도 내게 말하지 않았고, 신경질 부리는 모습을 보고 즐겼다고 하니, 혼자서 잠시 동안 바보가 된 것은 시간 문제였던 셈이다. 그 당시 멋쩍었던 기억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홍어만 보면 기억이 떠올라 혼자 웃음을 삼키기도 하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깊이 새겨져 있다. 

  
▲ 홍어회 한 접시 3만원짜리의 홍어회. 배가 고파 홍어 두점을 먹고 찍은 사진이다. 홍어가 영산포로 오게된 것은 고려시대 왜구가 극성을 부리자 흑산도에 사는 어민들을 영산포로 강제 이주시키고 흑산도를 비워두는 공도정책을 취하면서, 홍어가 함께 들어왔으며, 돛단배를 타고 오가던 당시 며칠씩 걸리기도 했는데 냉장설비가 없었던 시절이라 어시장에 도착하기 전에 상해버렸으며, 그런데도 배탈이 나지 않은 생선이 홍어였으며, 그 후로 홍어를 별미로 삭혀 먹었다고 한다.
홍어의 거리

코끝을 찡하게 하고, 가끔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냄새가 나는 홍어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다 어떻게 홍어와의 친숙한 만남으로, 지금은 택배를 시켜 가면서까지도 먹는 홍어 마니아가 되었을까. 

그 당시 거제도에는 홍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런데 점심 때 자주 가는 식당이 있었다. 전라도 사람인 식당 주인은 맛보기로 손님들에게 홍어 몇 점을 내 놓곤 했다. 그때 한번 먹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겨 한 점씩 먹어보았더니, 처음 맛보았을 때와 다른 느낌이었다. 두 번째 갈 때는 두 점, 세 번째 갈 때는 세 점씩, 식당을 찾을 때마다 차츰 먹는 양을 늘려 나갔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홍어의 진미를 알게 되었다. 지금은 홍어 홍보대사(?)로 활약할 만큼 홍어회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 영산포등대 일제 강점기인 1915년 설치된 등대로 수위측정과 등대기능을 겸했다. 우리나라 내륙하천가에 있는 유일한 등대로 1989년까지 수위관측 시설로 사용했으며, 지금도 수위를 표시하는 숫자표시와 등대안에는 낡은 장비가 있다.
영산포등대

홍어의 거리에 있는 소박한 어느 식당에 들렀다. 3만원 하는 홍어회가 깔끔하고 맛깔스럽다. 김 한 조각에 돼지고기와 홍어 각 한 조각씩, 그리고 묵은지를 싸서 큰 입을 벌리고 한 점 넘기고 있는데, 푸짐한 주인아주머니와 서울에서 왔다는 손님의 인사말이 웃음을 더해준다. 

어솨요.(어서 와요.)

어이서(어디서) 오기는 서울에서 왔제(왔지). 

인사말로 알아듣지 못한 서울손님은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경상도 사람보다 더 무뚝뚝하게 인사를 받는다. 그래도 주인아주머니는 깔끔한 음식 맛처럼 더 깔끔하게 인사를 받아 기분이 좋다. 홍어 맛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고민이다. 지금도 그 맛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느낌이다. 

식당 2층에서 바라보는 영산강은 호남 들녘을 휘감아 돌아 예로부터 풍요의 땅을 일구었던 소중한 자연자산이다. 삼한시대부터 조선조까지 호남내륙의 거점으로 전라도의 상징이었던 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영산포는 1977년 영산강 하구둑이 건설되기 전까지 소금, 쌀, 홍어 등 물류의 중심지로 유명하였고, 지금도 그 당시 배가 정박하였던 자리에는 예전의 모습을 간직한 하얀 등대가 역사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벽에는 당시 물건을 싣고 내리는 모습의 벽화가 그려져 있어 여행객의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 영산포벽화 영산포등대 주변 벽체에 그려져 있는 옛 시절의 상인들과 배가 정박해 있는 그림
영산포등대

멀리까지 왔는데 드라마 ‘주몽’의 촬영지를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시청에서 얻은 관광지도에는 삼한지 테마파크라고 안내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나주영상테마파크로 명칭을 변경한지라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 

  
▲ 동부여성 2천평의 실내 공간과 7미터 높이의 웅장한 스케일의 궁전
동부여성

BC 37년, 첫 민족국가 고구려 탄생의 역사를 재현해 놓은 곳. 2천년이란 긴 시간의 벽을 넘어 그 당시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성곽을 따라 돌면서 바라보는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 물줄기는 평화로웠고, 물길에 몸을 맡긴 황포돛대는 한 폭의 동양화보다도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 나주영상테마파크 성곽 위에서 내려다 본 영산강과 나주들녘
영산강

삼삼오오 다정스레 나들이를 즐기는 나주영상테마파크의 안마당은 고요하다. 2천 평의 실내 공간과 7미터 높이의 웅장한 스케일의 동부여성, 영산강 물줄기와 나주 들녘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명당에 위치한 신단, 철이 절대유일의 힘을 상징하던 시절 철을 만들었던 철기제작소, 유럽영화 ‘트로이’에서나 볼 수 있는 성벽 밖 수로가 있고 올리고 내릴 수 있는 육중한 문을 가진 해자성문, 기와거리, 저잣거리, 초가거리 그리고 졸본부여성 등 역사적 고증을 거쳐 만든 세트장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둘러본다면, 잠시마나 고구려 시대로 돌아가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 기와집 기와거리의 모습이다
기와집

  
▲ 신전 영산강 물줄기와 나주 들녘 경관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명당에 위치한 신전
신전

영산강의 옛 정취와 남도의 향수를 느끼고자 황포돛배 선착장에 이르렀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지라 두 척 중 한 척만 운행하였고, 배를 타려면 거의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원의 설명에 아쉽다는 생각뿐이다.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비단물결 따라 몸을 맡긴 황포돛배를 사진만 찍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섯 시가 넘은 시간이라 집까지 가야 할 길이 멀었기 때문이니라. 

  
▲ 황포돛배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의 비단물결을 따라 여행객을 싣고 나르는 황포돛배
황포돛배

풍요로운 것은 가을만이 아닐 것이다. 여행도 풍요로워야 하건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 있던가. 빈 곳이 있어 그곳을 가득 채워 버린다면, 더 이상 채울 욕심이 없기에, 의욕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적당히 빈 곳을 비워두어야 다음을 기약하리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금 빈 내 마음은 신의 목소리를 가진 가수 이미자의 ‘황포돛배’를 들으며, 나의 애마인 자동차의 핸들이 부드러워졌음을 느꼈을 때 빈 마음도 조금 채워짐을 느꼈다.

황포돛배 - 노래 이미자 -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느냐

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

파도 소리 구슬프면 이 마음도 구슬퍼

아~~~ 어디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오 돛배야


순풍에 돛을 달고 황혼 바람에

떠나가는 저 사공 고향이 어디냐

사공아 말해다오 떠나는 뱃길

갈매기야 울지 마라 이마음도 서럽다

아~~~ 어디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오 돛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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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나주시 영산동 | 영산포홍어의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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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전설을 간직한 채 피는 선운사의 꽃무릇

  
▲ 백양꽃 백양사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화려하다.
백양사

누가 그랬을까, 누가 말했을까,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살아있는 생명이 잠시 쉬어야 할 시간인 겨울로 가는 긴 여정 앞에 잠시 들르는 가을. 그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는 9월의 마지막 날, 전북 고창으로의 가을 여행길에 올랐다.  

높고 푸른 하늘과 새털 같은 하얀 구름은 정처 없이 어디론가 홀로 떠돌아다니는 방랑시인 김삿갓 같기도 하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바퀴의 시끄러운 소음도 가을 분위기 탓인지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무척 쾌청한 날씨라 농부의 가을걷이 모습도 눈에 띌 법도 하지만, 들녘은 적막감이 감돌 정도로 고요하다. 

  
▲ 읍성내 소나무 읍성내에는 하늘을 찌를듯이 높이 솟은 소나무가 가을하늘을 덮고 있다.
소나무

몇 해 전, 먼 길을 빙 둘러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고창담양선 고속도로 개통으로 훨씬 수월하게 도착할 수 있었고, 그만큼 시간도 늘어나 마음의 여유도 넉넉하다. 고창읍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세월의 흐름을 같이하며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읍성 입구에 들어서니 10월 3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모양성축제 준비가 한창이다.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왜침을 막기 위해 전라도민들이 축성한 자연석 성곽인 모양성(牟陽城)은 고창읍성의 다름 이름이다. 

  
▲ 고창읍성 읍성에 오르면 고창읍내를 환히 내려다 볼 수 있다.
고창읍

평일임에도 사람들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답성놀이를 하고 있다. 안내 간판에는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리 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 한다고 적혀있다. 성 밟기는 저승 문이 열리는 윤달에 밟아야 좋고, 같은 윤달이라도 3월 윤달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왁자지껄한 단체 여행객 한 팀을 따라 성을 돌았다.  

  
▲ 고창읍성 성곽 성곽에는 강아지밥풀이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고창읍성

  
▲ 가을향기 성내에는 가을향기가 널려 퍼져 있다. 뒤로 보이는 작청이라는 건물은 조선시대때 이방과 아전들이 소관 업무를 처리하던 청사이다.
고창읍성

그 누군들 무병장수하고 극락승천하고 싶은 욕심이 없을까. 다리도 아프고 시간도 아낄 겸, 성곽은 한 바퀴만 돌고 성내를 둘러보았다. 성안에는 동헌, 작청, 옥(獄), 풍화루, 지석묘, 고창객사, 척화비 그리고 공북루 등 성 안 곳곳에는 지방문화재가 많이 있어 역사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만 같다. 야생화와 억새가 함께 어우러져 핀 성내에는 가을향기가 널리 퍼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선운사로 가는 도로변의 황금들녘 선운사로 가는 길에 가을이 무르있었다. 보는 것만 하여도 행복으로 충만하는 느낌이다.
황금들녘

선운사로 향하는 도로변은 가을이 한층 더 여물었다. 하늬바람 덕분일까. 여름을 보내고 서풍을 맞이하면 곡식이 여물고 대가 세어진다는 '하늬바람에 곡식이 모질어진다'라는 속담이 실감난다. 황금빛 들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 그 자체다. 근심·걱정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잠시만이라도 아무런 조건 없이 마음을 비우고 일상을 떠나 자연을 즐기는 편안함이 이래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하늬바람에 출렁이는 억새는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시다. 황금들판 너머 큰 바위산이 풍요로움을 즐기는 듯 내게 손짓을 하고 있다.  

길 옆 작은 마을의 오래된 상점 간판이 정겹다. 추억을 되돌려 놓는다. 잠시 내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그냥 통과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다시 돌아가 추억을 담아 가고 싶었는데, 일행이 있어 끝내 말을 못하고 말았다. 먼길이지만, 언젠가 다시 와서 찍어야 되겠다는 나와의 약속만을 머릿속에 남겨둔 채 가던 길을 재촉했다. 

  
▲ 선운사 꽃무릇 선운사 입구에는 슬픈 전설을 간직한 꽃무릇이 붉게 피어있다.
꽃무릇

사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석산(石蒜)이라는 가을을 대표하는 꽃의 종자구입이었다. 다른 말로 꽃무릇이라고 부르는 이 꽃은 명품이라고 이름을 붙여주고 싶을 정도로 곱디고운 꽃이다. 고창 선운사의 가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꽃무릇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때쯤이면 전국의 사진작가와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   

꽃무릇은 9월 중순경부터 꽃을 피우고 10월 중순 무서리가 내리면 새파란 잎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 겨울을 나게 하는 특별한 꽃이다. 고고히 홀로 피는 자태는 양귀비의 고귀함보다 아름답고, 무리지어 피는 화려함은 환장하리만큼 황홀하다. 

응달진 곳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꽃을 피우는 꽃무릇은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는 오후쯤이면 그 화려함은 절정을 발하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듬뿍 안겨주는, 가을을 대표하는 사랑받는 꽃으로 유명하다.  

몸은 하나지만 꽃과 잎이 같이 피지 않아 서로 영원토록 만나지 못하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의 꽃. 상상화라고도 불리는 꽃무릇은 아주 먼 옛날, 절에 기도하러 온 예쁜 처녀가 스님을 사모하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뒤 절터 곳곳에 붉게 피어났다는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기다림은 영원히 만남으로 이루지 못하고, 그리움만으로 남는 것 같아 슬프기만 하다. 스님을 얼마나 그리워하였으면, 부도 옆에서도 활짝 피어 웃고 있을까. 

  
▲ 산신당 지킴이 꽃무릇 슬픈 전설을 간직한 채 핀 꽃무릇은 오늘도 그리움을 듬뿍 안고 있다.
산신당

살짝 건드리기만 하여도 꺾일 듯 한 연약한 꽃대는 가냘픈 처녀의 몸이고, 꽃잎은 스님을 애타게 그리는 간절한 사랑의 눈빛이런가. 그래서일까, 선운사 산신당 문지방에 꽃무릇 다섯 송이가 애타는 모습으로 피어있다. 아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걸 알면서도 매년 같은 시기에 저렇게 스님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화의 슬픈 전설을 알아버린 연유일까, 문지방에 핀 꽃무릇이 더욱 애처롭게 느껴진다. 

  
▲ 만세루 천왕문과 대웅보전 사이로 만세루를 배치한 점이 특이하다.
만세루

선운사 마당은 다른 절보다 더 넓은 것 같다. 절 마당에 긴 장방형의 누(樓)라는 이름을 붙인 만세루가 있는데, 실제로는 2층의 누각이 아닌 낮은 단층 건물로서 천왕문과 대웅보전을 연결하는 선상에 배치한 것도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만세루가 절 마당 중간에 있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 궁금해서 스님에게 물었는데, 대웅보전 쪽으로는 벽체를 두지 않고 개방하여 대웅보전과 밀접한 관계를 갖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법회가 있을 때 큰 스님의 법어를 듣는 강당으로 사용된다고. 

  
▲ 목어 물속에 사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목어
목어

범종, 법고, 운판, 목어 등을 범종각 한 곳에 같이 모셔 놓은 것도 다른 많은 사찰과는 달리 눈에 띄는 점이다. 천상과 지옥중생을 제도하고, 짐승을 비롯한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며, 공중을 날아다니고 허공을 떠도는 영혼과 물속에 사는 중생까지도 제도하기 위한 불전사물을 보면서 깨달음이란 무엇일까란 마음으로 한 동안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겨울에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길목인 가을. 늦은 오후의 산사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불전에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 때문에 외롭지가 않다. 가을을 느끼고 싶어 산사를 찾았건만, 가을의 그리움만 가득 안고 또 다시 속세로 돌아가야 하는 것, 이것이 일상의 삶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깊이 드는 까닭이다. 누가 말했을까, 누가 그랬을까,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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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 선운산도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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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 거제시 칠천도에서 거북선 찾기 시도

“모두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에디슨도 수천 번의 실패 끝에 기적을 만들었다. 해야 할 일이고, 옳은 일이라면, 그리고 단 1%의 가능성이 있다면 끝까지 도전하겠다.”

2일 오후, 거제시 칠천도에서 경남도가 추진하는 이순신 프로젝트 사업의 하나인 ‘거북선을 찾아라’ 행사에서 김태호 지사가 야심찬 의지를 나타냄으로서 향후 거북선 찾기에 도민의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 거북선 모형 2일 '거북선을 찾아라' 행사에서 새로 공개된 3층 모형의 거북선
거북선

칠천량해전(현, 거제시 하청면 칠천도 영구리 옥계마을 해안), 4백여 년 전 임란 당시 원 균이 지휘한 해전으로 조선수군의 전력 손실이 가장 많았으며, 140~160여 척의 거북선, 판옥선 등이 파손되고 1만여 명의 수군이 전사한 해전으로 경남발전연구원의 연구용역 결과 당시 거북선, 판옥선 등의 전선 및 관련 유물의 해저 매몰 가능성이 가장 높은 수역으로 진단돼 경남도가 향후 1년 동안 이 지역을 중심으로 거북선 찾기 사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 김태호 경남지시 2일 거제도 칠천도에서 시작된 '거북선을 찾아라' 행사에서 김태호 경남지사가 거북선을 찾는 기원의 북을 치고 있다.
거북선

지난 80년 중반 해군에서 거북선 찾기 사업을 추진하다 실패한 이후, 거의 20년 만에 다시 재개하는 이 탐사 사업은 8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거북선, 판옥선, 기타 조선군선, 천자총통 등 무기류,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모든 군수품 등을 탐사할 대상으로, 전국 공개입찰로 선정된 (주)한국해양과학기술, (주)한국수중공사, (주)빌리언21 등 세 전문 업체가 맡았으며,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의 탐사 기술보다는 현저히 나아진 기술의 발달로 그 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관심이 주목된다. 

이날 ‘거북선을 찾아라’ 출항식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2층 구조의 거북선 모양과는 달리 3층으로 된 거북선이 공개돼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는데, 경남발전연구원에서 발표한 1592년 거북선 연구용역 결과 자료에 따르면, 1층은 선실과 무기창고, 2층은 활 쏘는 공간, 3층은 포를 쏘는 공간으로 구성되었으며, 향후 17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거북선 등 군선 7척을 건조할 예정이라고 한다. 

  
▲ 거북선 모형 관람 김태호 경남지사(오른쪽에서 두번째)와 김한겸 거제시장(왼쪽에서 두번째)이 3층 구조의 거북선 모형을 둘러보고 있다.
거북선

거제시 칠천도 중동부에 위치한 어온 포구와 그 일대 1천 5백만㎡ 해저에서 탐사작업이 벌어지는 4백여 년 전의 거북선 찾기 사업과 관련하여 이 지역에서 나고 살아 온 김성조(65세, 옥계마을)씨에 따르면, “칠천도 해저 지층은 개흙(뻘)층이 두텁고 유속이 그다지 세지 않아 바닷물에도 잘 썩지 않은 소나무로 건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당시 거북선의 실체를 찾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안다.”면서 “김태호 지사의 말처럼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이는지의 여부에 따라 성공 여부가 판명날 것이다. 당시 거북선 선체 조각을 하나라도 찾는다면 그야말로 대박감이다.”라면서 기대감을 나타내었다. 

과연 김지사가 4백여 년 전의 거북선을 찾아 대박을 터뜨릴 것인가? 지난 해 6월 노르웨이를 여행했을 때, 바이킹 선박 박물관에 전시해 놓은 서기 8백 년대부터 50년간 여왕의 배로 사용하다 여왕이 사망하자 유해와 함께 수장된 배를 1904년 발굴하여 전시해 놓은 것처럼, 4백 년 전의 거북선을 발굴하여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들일지는 대박의 꿈을 찾는 김지사에게 현실로 나타날지는 그야말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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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일 학동 흑진주몽돌해변에서 봄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져
  
▲ 학동 벚꽃길 학동으로 넘어가는 굽이굽이 고갯길에는 화사한 벚꽃이 여행객들을 환히 맞이하고 있다
학동

산야와 도로변에 핀 봄꽃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나들이 계절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온갖 축제가 펼쳐지고 여행객들을 불러 모은다. 굽이쳐 돌아가는 길목에는 유채꽃이 만발하고 화사한 벚꽃이 여행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 수선화 거제도 도로변에는 노란 수선화가 아이의 웃음처럼 활짝 웃고 있다
수선화
  
▲ 수선화 드라이브하는 도로변에는 수선화가 만발해 있다
수선화

벚꽃의 화사함이 그다지 오래 가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일까. 차를 타고 휑하니 그냥 지나치며 감상하는 기분 역시 아쉬울 뿐이다.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부끄럽게 핀 노란 수선화는 세 살배기 아이보다 더 예쁜 모습으로 봄바람에 살랑거리며 웃고 있다.

 

  
▲ 유채꽃 해안선을 돌고도는 도로변에 유채꽃이 만발하여 푸른 해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유채꽃
  
▲ 유채꽃과 봄바다 차창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해금강 바다와 유채꽃
해금강
 
남도의 끝자락에 있는 큰 섬 거제도의 도로변 곳곳에는 봄꽃이 단아하고 화사한 모습으로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주말과 휴일이면 봄 향기를 맡으러 오는 차량과 여행객들로 도시 전체가 시끌시끌하다. 낮에는 드라이브하며 봄꽃 향기에 취하고 밤에는 황홀한 밤바닷바람을 맞으며 가슴을 연다.  

이번 주말과 휴일(4월 5~6일)에는 봄꽃 숭어축제가 거제도 학동 흑진주몽돌해변 봄 바다를 배경으로 이틀간 열릴 예정이다. 행사내용도 33개 종목으로 다양하며, 관광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도 마련했다. 공식행사는 4월 5일 저녁 7시 메인무대에서 시작되며 이어 학동 벚꽃 길에 설치한 소망등과 포구나무, 소나무에 트리 점등식을 시작으로 축제의 열기는 더욱 고조될 것이다.  

  
▲ 봄꽃 숭어축제 밤무대 지난해 봄꽃 숭어축제 밤무대 행사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다
숭어축제

공연행사로는 길놀이, 비나리 공연, 봄바람 순풍에 돛달기, 봄의 태동, 초청가수 축하공연과 가요콘서트, 댄스페스티벌, 그리고 봄의 마술사 등이 준비돼 있으며 참여행사로는 용왕제, 몽돌 높이 쌓기, 맨손으로 숭어잡기, 봄꽃 가요제 등이 펼쳐진다. 특히, 흑진주 몽돌해변에 숨겨진 보물찾기는 초등학교 시절 소풍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 것이다. 또 몽돌해변 맨발로 달리기는 지압효과도 있어 건강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 숭어잡이 행사 지난해 축제 때 숭어잡이 모습이다
숭어잡이

 

이런 놀이의 즐거움도 좋지만 그래도 여행의 멋은 먹는 즐거움 아닐까. 부대행사로 펼쳐지는 숭어잡기에선 큰 수조를 만들어 힘차게 펄떡거리는 숭어를 맨손으로 잡아 즉석에서 회를 떠서 초장에 찍어 먹을 수 있다. 봄꽃거리 승마체험, 연 만들기, 요술풍선 만들기, 페이스 페인팅, 봄꽃 전시 및 거제 특산품 판매 행사 등이 이틀 동안 펼쳐지는 봄꽃 숭어축제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행사다.

열십자 모양의 거제도는 해안선의 길이만 하여도 칠백리가 넘는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굴곡진 길은 드라이브 길로써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시원한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외로운 모습으로 또는 다정한 형제처럼 떠 있는 크고 작은 섬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 벚꽃길 거제시 아주동 국도 14호선 주변의 벚꽃길
벚꽃길

봄꽃 숭어축제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백꽃 핀 지심도와 부산이 보이는 해안도로를 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학동에서 국도 14호선을 따라 장승포동을 경유하여 장승포해안일주도로에 서면 지심도가 말없이 반겨 줄 것이고, 날씨가 좋다면 멀리 부산과 대마도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 설유화 장승포해안일주도로에 백설같이 핀 설유화
설유화

도로변에 핀 동백꽃은 꼭 나를 보고 웃는 것만 같고 눈처럼 하얀 설유화는 백옥보다 더 깨끗함으로 내게 다가 온다. 대우 옥포조선소 주변으로 곧게 뻗은 국도변에 핀 벚꽃은 봄을 새롭게 느끼게 해 준다. 1박 2일 여정의 거제도 봄꽃 숭어축제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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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의장군 곽재우의 발자취를 찾아서

방랑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혼자서 여행을 떠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머리가 복잡하고 골치가 아플 때 주변의 명소로 떠나는 짧은 시간의 드라이브가 아닌, 집으로부터 약간 멀리 떨어진 지역을 혼자서 여행하기란 분명 어려울 것이 틀림없다.

새해가 시작되고 벌써 한 달이 지나가는 일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참으로 세월이 유수 같다는 느낌을 가지고 혼자만의 역사기행에 발길을 옮겨 놓았다. 차를 몰고 어디를 갈까 망설이다 의령으로 향했다. 무작정 떠난 여행이라 여행정보는 더더욱 알 리가 없다. 군청에 전화로 물어 가 볼 만한 곳이 어디냐고 물었고, 몇 군데 관광안내 정보를 듣고서야 읍내에 있는 충익사에 가 보기로 했다. 

  
▲ 의령관문 야경 야간에 이곳을 통과하는 운전자들에게 또 다른 감흥을 주고 있다
의령관문

남해고속도로 군북 IC를 빠져 나와 의령읍 방향으로 십 여분 지나니 전통 한옥양식으로 된 기와지붕 모습의 의령관문이 쓸쓸히 방랑객을 맞이한다. 의령관문, 서부경남과 북부호남을 연결하여 주는 위치에 있는 문으로, 남강변에 우뚝 서 있어 자연경관과도 조화로움을 이룬다.

밤이면 화려한 조명 불빛으로 자태가 더욱 아름답게 빛나면서, 이 곳을 지나는 운전자에게 또 다른 감흥을 준다. 이 관문은 임진란 때 정암진 전투로 유명한 전적지에 세워져 있어 그 역사적 의미도 다시 한번 되새겨볼 만한 곳이기도 하다. 남강은 겨울의 외로움을 몽땅 안고 흘러가고 있다. 흐르는 저 강물이 어찌 홀로 떠나는 이내 마음과도 같을까 하는 심정이다.

사람들은 의령을 일컬어 충의의 고장 또는 충절의 고장이라 부른다. 임진왜란 시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 불렸던 망우당 곽재우가 태어난 곳인 데다가 당시, 전국 최초로 의병들의 봉기에 불씨를 붙여 왜적을 막아내고 나라를 구한 인물의 고장이라는 의미에서 의령을 그렇게 부른다. 선조 25년(1592년) 4월, 섬나라 왜군이 조선을 침략하자 곽재우는 임란 발발일로부터 아홉째 되는 날 전국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모집하고 왜놈과 맞서 싸운다.

왜군이 조선을 침략해 오자 평민들 위에 군림하던, 소위 양반이라고 행세한 사대부 기득권 세력들은 임금과 나라를 버리고 도망치고 만다. 이 때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세력은 국록을 먹던 조정의 신하와 관군이나 지배계층이 아닌 그저 땅을 갈고 열심히 조세를 바치던 평범한 백성이었던 것이다. 그 선봉에 홍의장군이 있었고, 지금까지 의령을 상징하는 인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 의병탑 충익사 입구에 있는 탑이다. 곽재우 장군과 17명의 의병장의 혼을 기리고 있다.
충익사탑

의령천 다리를 건너니 정면으로 보이는 탑 중간에 열여덟 개의 둥근 고리를 한 의병탑이 읍내를 내려다보며 침묵한 채 서 있다. 이 열여덟 개의 둥근 고리는 곽재우 장군과 장수 17명의 혼을 기린다는 뜻이다. 충익사의 정문인 충의문을 들어서니 공원보다 더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마당에 겨울 오후의 햇살이 내려앉아 조용히 쉬고 있다.

  
▲ 겨울연못 충익사내 있는 작은 연못으로 겨울하늘과 겨울바람을 안고 조용히 침묵하고 있다
겨울연못
  
▲ 모감주나무 충익사내 정원에 심겨져 있는 수령 280년이 된 모감주나무
충익사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충익사의 모과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83호)는 높이 12m이고, 수령이 약 280년 된 것으로 지금까지 조사된 모과나무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는 수관이 옆으로 퍼져 절이나 연못가에 심으면 운치가 더욱 살아나는 나무로 충익사 내에 있는 작은 연못과도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중년의 두 남녀가 손을 꼭 잡은 채 속삭이며 호숫가를 거닐고 있다.

  
▲ 충의각 의병장들의 시호가 새겨진 명패를 보관하고 있는 건물이다.
충의각
의병장들의 시호가 새겨진 명판을 보관하고 있는 충의각, 화려한 단청이 아름다우며, 건물의 지붕만 들어낸다면 옛 전통 상여의 모습 그대로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의도를 잘 읽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홍의장군 이름을 딴 솟을대문의 홍의문을 들어서면 야트막한 산기슭에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열일곱 명의 의병장과 의병 용사들의 위패를 모신 충익사당이 있다.
  
▲ 홍의문과 충익사 솟을대문의 홍의문과 충익사당
홍의문

거금(?) 일만 원의 성금을 내고 경건한 마음으로 향을 사른 후 묵념을 올렸다. 찡한 기운이 감돌며, 임란 당시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임전무퇴 정신이 느껴져 오는 것만 같다. 기념관에는 망우당의 전투 장면을 그린 다섯 폭의 그림과 말안장 장검 화살촉 등이 보물 제671호로 보존되고 있으며, 학생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근심을 잊는다는 망우당, 곽재우의 호다. 망우당은 아버지 정암 곽월과 어머니 진양 강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나 영남 유학의 최고봉인 퇴계와 쌍벽을 이루는 남명 조식의 제자가 돼 학문에 심취하여 남명의 외손녀 상산 김씨와 혼인하게 된다. 도학에 빠진 망우당은 자굴산 중턱에 위치한 백련암에서 일천여 권의 책을 읽으며 은둔을 원한다. 그러나 국란은 그를 전장터로 내 보내고 만다.

곽재우는 붉은 색의 옷을 입고 대외적으로 자신의 강한 존재를 나타낸다. 붉은 색은 적을 흥분시켜 이성을 마비시키고 유인하는데 적격인 셈. 이름 그대로 홍의장군이 입었던 붉은 비단 옷은 27세 때 부친을 따라 명나라로 갔을 때 조정으로부터 받았던 것으로 붉은 색은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

  
▲ 정암교와 솥바위 의령으로 들어가는 정암교 너머 솥바위가 보인다. 임란당시 정암진 전투로 유명한 곳이다.
정암교

곽재우가 용맹을 떨쳤던 곳은 정암진 전투로서, 정암진 나루는 왜군이 군량을 확보하기 위해 부산이나 마산에서 전라도 곡창지대로 가기 위해 건너야 했던 중요한 요충지였다. 왜군의 장수는 초병을 보내 강물 깊이를 재 얕은 곳에 말뚝을 쳐 표시를 해 놓았는데, 곽재우는 이 말뚝을 몰래 빼 진흙 밭으로 옮겨 박아 놓았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왜군은 강을 건너기 위해 말뚝을 따라 들어가다 진흙에 빠졌다. 곽장군이 배치한 의병들이 왜군을 향해 활을 쏘자 허둥대는 왜군은 도망을 치려했지만 진흙에 빠져 나오지 못해 거의 전멸한다. 이로 인하여 전라도 곡창지대를 손에 넣지 못한 왜군은 군량미 부족으로 전술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전쟁은 끝났어도 백성을 돌보지 않는 무능한 정치와 변하지 않는 세상은 그대로였다. 한때 모함과 역적에도 몰렸지만, 나라를 지켜낸 망우정. 전쟁이 끝난 뒤 24년간 29번의 관직을 제수 받았지만, 거부하였거나 바로 사직하였다.

망우정이라는 호와는 달리 세상을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곽재우. 두 아들과 패랭이를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가야만 했고, 세상과 단절하고자 속세의 음식도 먹지 않았다. 솔잎만 먹고 사는 벽곡(辟穀)을 해야만 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 의령 소싸움 벽화 의령공설운동장 벽면에 의령을 상징하는 민속놀이 소싸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의령소싸움

의령을 상징하는 또 하나는 민속놀이로 지정된 소싸움이다. 의령천 모래사장에서 매년 열리는 소싸움 대회그림이 실제모습보다 더 실감나게 의령공설운동장 벽면에 그려져 있어 잠시 발길을 머물게 한다.  

 
  
▲ 기지개 펴는 목련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목련이 봄을 알리고 있다
목련

겨울은 변하지 않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현재의 자리에 안주하려고 하건만, 봄은 그렇게 순순히 겨울을 그냥 놔두지 않을 모양이다. 겨울의 무게를 느끼는 얼어붙은 땅 속에서 밖으로 치솟아 오르는 강렬한 봄의 기운은 추웠던 지나간 겨울을 잊도록 하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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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초 생산과 최고의 맛, 거제도 약수 고로쇠
  
▲ 꿈을 안고 달리는 마라토너 지난해 마라톤대회 모습이다
마라톤대회

매년 이맘때가 되면 전국의 산자락에는 고로쇠를 찾는 여행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전국 최초로 생산되는 고로쇠는 남해안 해풍을 이겨낸 거제도 동부지역 일대에서 나는 고로쇠가 단연 으뜸이다. 

  
▲ 고로쇠 마시기 지난해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아빠와 아이가 고로쇠를 마시고 있다
마라톤대회
거제지역에서 나는 고로쇠는 특유의 단맛을 내는 자당을 비롯한 칼슘과 마그네슘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뼈에 이롭다는 단풍나무과의 고로쇠, 한자로 골리수(骨利樹)로 불리는 이 나무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우수 무렵부터 경칩 전후 2주일까지 절정을 이루면서 봄의 소식을 알리는 대표적인 나무로 알려져 있다. 
  
▲ 길놀이 모습 지난해 거제고로쇠약수축제마라톤대회 길놀이 공연 모습이다
길놀이

고로쇠를 마시고 뼈를 튼튼히 하여 한 겨울날 굽이굽이 고개를 돌며 쪽빛 겨울바다를 바라보며 달리는 기분은 어떨까? 차가운 바닷바람이 코에 닿을라치면 뜀걸음으로 뜨거워졌던 몸의 열기는 식혀질 것이고, 푸른바다를 보는 기분은 과히 환상적일 것이 틀림이 없다. 

  
▲ 마라톤 하프코스 출발 지난해 마라톤대회 모습이다
마라톤대회
  
▲ 꿈을 안고 달리는 마라토너 하얀 파도가 밀려드는 학동 흑진주 몽돌해변을 바라보며 꿈을 안고 달리고 있는 마라토너들
마라톤대회

자가 운전자라면 한번쯤 드라이브를 해 보았을, 우리나라 최고의 베스트 드라이브코스로 알려진 거제도 학동 흑진주 몽돌해변에서 구조라해수욕장까지 바다를 끼고 도는 환상의 코스. 이 코스에서 하루 동안 차량을 통제하고 마라톤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환상의 꿈을 심어 줄 것이라는 소식이다. 거제시가 2월 17일 개최하는 ‘거제고로쇠약수축제마라톤대회’는 고로쇠를 좋아하는 여행객과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에게는 더없는 추억거리를 만들어 줄 것이다.

 

  
▲ 아빠와 아이가 손잡고 힘차게 겨울을 가른다 지난해 마라톤대회 모습이다
마라톤대회

우리나라 명승 2호 해금강이 바라다 보이는 한려해상국립공원 학동마을 넓은 주차장에서 하늘을 여는 징소리를 시작으로 축제의 마당을 펼치면서 겨울추위는 녹아 열기로 변할 것이다. 고로쇠약수제를 비롯하여 고로쇠약수 시음회, 고로쇠약수 다과회, 농악놀이, 고로쇠 직판장 운영과 함께 흑진주 몽돌해변을 바라보며 수려한 자연경관인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끼고 도는 마라톤대회는 행사의 절정을 이루면서 마라토너와 관광객 모두에게 또 하나의 선물을 선사할 것이 틀림이 없다.

 

  
▲ 쪽빛 겨울바다 그리고 외도와 대마도 거제도의 겨울바다는 빛이 더욱 푸른 쪽빛이다. 달리기를 하면서 오른쪽으로 보는 겨울바다는 시원함을 달래주고 외도와 멀리 대마도를 볼 수 있다.
외도

마라톤대회는 2월 17일 오전 10시 학동 흑진주 몽돌해변에서 출발하며, 학동과 구조라를 반환하는 코스로서, 대회에 참가를 희망하는 사람은 1월 31일까지 인터넷으로 접수하여야 하며(www.geojemarathon.co.kr ), 하프와 10㎞는 3만원, 5㎞는 2만원의 참가비를 내어야 하고, 참가자에 대하여는 고급 아웃도어 가방을 증정한다.

 

  
▲ 최연소 참가자 기념품 전달 지난해 대회 5㎞코스를 완주한 최연소 참가자인 이다은(8세)에게 기념품을 전달하고 있다
마라톤대회

이날 판매될 고로쇠 약수는 네 종류로서, 1.5리터 5천원, 4.3리터 1만 5천원, 9리터 2만 5천원, 18리터 4만 5천원이며, 실제 이달 말부터 시판에 들어간다고 한다. 국립보건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고로쇠 수액에는 자당을 포함해 건위, 이뇨와 체력증진에 매우 효능이 높은 나트륨, 마그네슘, 칼슘, 아연, 가리 등 무기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혈당 조절 및 피로회복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마라톤 코스도 다음달 벌어질 마라톤대회 코스
마라톤대회

달콤한 고로쇠 한 사발을 마시고, 뼈를 튼튼하게 하여, 아름다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쪽빛 겨울바다를 감상하는 달리는 기분을 만끽해 봄이 어떨까? 올 한해 내내 활력이 넘쳐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기고, 마라톤처럼 거침없이 앞만 보고 달려 결승점에 무사히 도달하리라.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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