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맞이하는 '거제도국제펭귄수영축제' 현장을 가다

겨울바다의 낭만과 추억이 가득한 섬 거제도. 이 섬마을의 동쪽 끝에 있는 덕포해수욕장 앞 바다에는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했다. 남극의 황제펭귄이 되어 겨울바다를 헤엄치는 펭귄의 모습은 약 8천여명 관광객의 함성이 하나로 모아져 하늘을 울렸고, 그 열기는 추위를 잊기에 충분했다.

1월 19일 아침, 시민과 관광객은 일찍부터 덕포해수욕장으로 모여들었고, 38개 단체 5백여 명의 자원봉사자는 한결같은 친절한 마음으로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넸다. 축제 개막식 선포와 축포 발사를 시작으로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올랐다.
  
▲ 한 마리 펭귄이 되어 겨울바다를 유영하다
황금펭귄
  
▲ 황금펭귄 한 외국인이 겨울바다를 힘차게 유영하고 있다
황금펭귄
  
▲ 황금펭귄 30m 반환점에서 기념메달을 주고 있다
황금펭귄

개막식에 이어 축제의 최대 하이라이트인 펭귄수영의 시작을 알리면서, 백사장에는 겨울바다에 뛰어 들어갈 일천여 마리의 펭귄이 몸을 풀었다. 하얀 상의와 푸른 바다가 어우러져 겨울바다를 화려한 색감으로 수를 놓았다. 입수 신호와 함께 천여 마리의 펭귄은 앞 다투어 겨울바다를 가르며 30m의 반환점을 돌아 힘차게 유영하였다. 모두가 자신감이 넘쳤으며 활력에 찬 모습이다. 황금광어 잡기 행사는 1천여 마리의 광어를 미리 바다에 풀어 놓았고, 이 중 열 마리는 꼬리에 황금 댕기를 붙여 놓은 것으로 이 광어를 잡은 열 사람에게는 황금 한 돈을 차지하는 행운이 돌아갔다.

 

  
▲ 황금광어 잡기 황금광어를 잡아라
황금광어
  
▲ 기쁨 대형 민어를 잡고 기뻐하고 있는 모습이다
민어

해수욕장 한 곳에는 오리발 달리기, 맨발로 얼음판 위 오래 버티기 행사가 벌어지면서 참가자와 관광객 모두가 한 몸이 돼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이어서 축제 사이사이에는 페이스페인팅, 아트풍선 만들기, 밸리 댄스를 선보이며 열기를 드높였고, 참가자에 대하여는 경품권을 추첨하여 푸짐한 선물을 안겨 주었다.

 

  
▲ 외국인 장기자랑 깜찍 발랄한 그녀의 모습
외국인 장기자랑

특히, 외국인 장기자랑과 함께 축제에 참가한 외국인에 대하여는 경품권을 별도로 추첨하여 타국에서의 추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거제도 특산품인 굴로 만든 한국 고유의 음식인 떡국은 그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국제축제라는 이름에도 걸맞게 외국인 참여인원도 행사의 직접 참가자를 포함하여 3백 명을 넘었다.

 

  
▲ 얼음위 오래버티기 누가 누가 얼음위에 오래 버티나
ⓒ 거제시청
얼음위 오래버티기
  
▲ 오리발 신고 달리기 뒤뚱뒤뚱 오리가 되어 힘차게 달리다
ⓒ 거제시청
오리발

올해로 네 번째 맞이하는 이 겨울축제는 첫 회부터 힘을 아끼지 않은 숨은 주인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민주노동당 소속 김해연 경상남도의원(거제시 2선거구)이 그다. 이 축제의 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대회사를 통하여 “국내 최대 겨울축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행사후원자와 자원봉사자 모두 거제를 사랑하는 노력에 힘입었으며, 앞으로는 전국 최고의 축제를 넘어서서 세계에서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최고의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해 많은 격려를 받기도 했다.

겨울바다의 감동과 추억, 희망과 즐거움이 있는 거제도국제펭귄수영축제, 그 대단원의 막은 내렸지만 내년에는 어떤 모습으로 시민과 관광객에게 선을 보여줄지 기대를 해 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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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맞이하는 '거제도국제펭귄수영축제'

'겨울바다'는 그 단어만 들어도 낭만이 가득하고 마음이 설레는 것은 왜일까?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를 보고 살지만 겨울바다는 기다림과 그리움의 대상이요, 낭만의 상징이며, 추억을 만들고 회상시켜 주는 곳이기도 하다.
 
겨울바다는 사람들을 로맨틱하게 만들고, 젊은이들에게는 진한 감동을 선사하여 사랑의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낭만을 가득 품은 쪽빛 겨울바다는 오후의 햇살을 받으면서 은빛 보석의 물결로 출렁이며 온 바다에 수를 놓고 있다.
  
▲ 펭귄수영축제 지난해 펭귄수영축제 모습
펭귄수영축제

날개는 있지만 날지 못하는 새, 바다 속 헤엄은 치지만 물고기는 아닌 새, 펭귄. 남극지방에 사는 황제펭귄이 되어 얼음같이 차디 찬 겨울바다를 헤엄치며 맨손으로 광어를 잡아 즉석에서 회를 쳐 매운 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은 평생 좋은 추억으로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하다.

  
▲ 한 마리 펭귄이 되어 지난해 펭귄수영축제 모습
펭귄수영축제

이런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겨울바다가 있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남도의 끝자락에 있는 거제도가 아닐까? 임진왜란 시 충무공이 첫 승첩을 올렸던 옥포 해전의 현장이기도 한 덕포해수욕장 앞바다에서 올해로 네 번째 맞이하는 ‘새해맞이 거제도 국제펭귄 수영축제’가 1월 19일 하루 동안 열린다. 이곳 겨울바다에서 낭만을 즐기고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추억 쌓기를 하는 것도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다.

작은 마을 해수욕장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펭귄상 제막식을 시작으로 여는 마당인 겨울바다로의 초대, 풍물가락, 락키즈 밴드 공연, 비보이 댄스, 에어로빅 댄스공연이 계속되며, 이어서 개막식과 함께 펭귄수영대회 팡파르가 울린다. 이 팡파르에 맞춰 참가자들은 바다 속으로 뛰어 들어 30m를 왕복하는 것. 반환점을 통과한 참가자에게는 기념메달을 수여한다.

  
▲ 황금광어 잡이 체험 지난해 펭귄수영축제 시 광어잡이 체험행사
광어잡이
펭귄수영에 이어 축제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황금광어 잡기다.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바다 속에 풀어 놓은 40㎝급 1천여 마리의 광어를 맨손으로 잡아 가져 갈 수 있는 체험행사다. 어린이에게는 최고의 이벤트이자 즐거움도 2배다. 이 중 10마리는 꼬리에 금빛 댕기를 부착한 황금광어로 이 광어를 잡게 되면 1일년 내내 행운이 들어온단다. 잡은 사람에게는 황금 1돈의 펭귄상을 차지할 행운이 주어진다.

 

  
▲ 겨울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 지난해 펭귄수영축제 모습
펭귄수영축제

오리발 달리기, 맨발로 얼음판 위 오래 버티기 행사는 선착순으로 20명에게 한정하고, 참가자에게는 기념품을 증정한다. 또 축제 사이사이에는 페이스페인팅, 아트풍선 만들기, 밸리 댄스, 외국인 민속춤 공연, 노래자랑 그리고 참가자 경품권 추첨을 통한 푸짐한 상품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이 참가하는 장기자랑은 웃음거리를 선사할 풍만한 볼거리가 될 것으로, 시상도 내외국인을 나누어서 하고 참가자 전원에게도 기념품도 줄 예정이다.

 

  
▲ 한 마리 펭귄이 되어 지난해 펭귄수영축제 모습
펭귄수영축제

거제도에서 겨울바다의 추억을 만드는 이들이 오래도록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거제도의 특산품인 굴로 겨울의 진미인 굴 떡국을 만들어 무료로 시식케 하고, 진한 향기의 유자차를 따뜻하게 끓여 훈훈한 거제도의 인심도 전할 것이다. 또 외국인들을 배려해 외국인 전용 스낵코너도 운영할 계획이며, 우리 고유의 전통 연을 바다위에 날려 축제의 분위기를 한층 돋울 예정이다.

해마다 이맘 때쯤 여는 이 행사는 거제도국제펭귄수영축제 추진위원회를 비롯한 38개 단체 3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참가자의 불편을 덜어주고, 성공적인 축제 만들기에 한 마음으로 뭉쳐 준비한다. 지난해에는 5천여 명이 참가하여 겨울바다의 낭만을 즐겼으며, 올 해는 7천여 명 이상이 황금펭귄이 되어 또 하나의 겨울바다 추억을 새로이 만들 것이다.

2005년 프랑스 뤽 자케 감독이 1년 넘게 남극의 추위와 싸워가며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다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펭귄 - 위대한 모험>은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혹독한 눈보라 속에서 전해오는 마음 속 깊은 곳을 자극하는 감동의 드라마로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한 배경에는 3~4개월 동안 굶주리며 알을 품는 아비의 지극한 사랑과 어미의 먹이사냥을 위한 희생이 있었다.  

거제도의 펭귄수영축제에 참가하여 황제펭귄의 위대한 모험을 한번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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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서 날개 달아 금강산에서 활짝 펴다 - 5


아! 그리운 금강산이여, 언제 다시 볼 수 있으려나? 금강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이틀 동안의 여행으로 글을 짓고, 사진으로 표현하겠는가? 그것은 강한 아쉬움으로 또는, 절망감으로 다가오지만, 희망도 가져 본다.

왜? 다시 금강을 찾을 것이라는 기약 때문에. 금강산이 왜 아름다운지 이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계절마다 아름다움을 달리하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봄에는 빛나는 보석 같다 하여 금강산(金剛山),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우거졌다 하여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든다 하여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눈 덮인 바위가 뼈 같다 하여 개골산(皆骨山)이라고 한다.

그래서 금강산의 사계를 보고 노래하고 싶다. 금강산은 엄하고 포효하는 모습으로, 때론 인자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모든 이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아무나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희고 보드랍고 아름다운 여인의 속살을 아무나 보고, 만지고, 느낄 수는 없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다.

여자는 진정으로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남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 금강은 내게 있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여인과도 같다. 힘들도록 고생하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에게, 느낌이 없는 사람에게, 여인의 속살처럼 신이 빚은 자연의 조각품인 금강의 아름다움을 아무한테나 보여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중 에드 해리스가 주연한 ‘카핑 베토벤’에서 베토벤은 여주인공 홀츠(다이엔 크루거)에게 이렇게 말한다.

“공기의 떨림은 인간의 영혼에게 얘기를 하는 신의 숨결이야. 음악은 신의 언어지. 우리 음악가들은 인간들 중에서 신과 가까운 사람이지. 우린 신의 목소리를 들어. 신의 입술을 읽고, 우린 신의 자식들을 태어나게 하지. 그게 음악가야.”

베토벤은 신과의 대화로 신의 언어로 만든 신의 자식을 천상의 소리로서 태어나게 했지만,  금강은 자연에서 신의 존재를 믿게 하는 거대한 조각품이지. 금강을 통해서 신과의 대화로 영혼을 느끼고 진정한 자연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느껴지리라.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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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서 날개 달고 금강산에서 활짝 펴다 - 4

금강산을 여행함에 있어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머리를 맴돈다. 천하절경 금강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무슨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천하제일 명필 가인들은 금강을 실제 모습으로 읽을 수 있도록 글로써 표현하겠는가, 그 어느 화가가 금강의 갖가지 형상의 기암괴석과 수 천 년 버텨 온 나무를 화폭에 담아낼까, 그 어느 음악가가 바람이 우는 소리, 바위에 부딪히는 구름소리, 담소에서 목욕하기 위해 선녀가 옷을 벗는 소리, 물소리와 새소리의 화음은 어떤 장르의 음악으로 청중에게 들려주겠는가, 그 어느 사진작가가 금강의 빛과 색채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필름에 담아낼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금강에서 온몸으로 보고 느끼면서 시인이면서 화가가 되고, 음악가이면서 사진작가가 되는 것뿐, 금강은 그 어떤 이도 실제의 모습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이 빚은 종합 예술작품이기에.

  
▲ 금강의 기암 저 멀리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이 보인다.
금강산

구룡연 코스의 산행 탓인지 다리가 뻐근하고 걸음이 무겁다. 만물상 관광도 일천 명이 넘는 관광객이 한꺼번에 이동을 해야만 했다. 온정각에서 버스를 타고 넓은 계곡을 따라 돌고 돌아 휘감아 젓는다. 아흔아홉 개 대관령 구비보다 일곱 개 더 많은 백여섯 개의 구비를 도는 버스는 산 속의 자동차 레이스코스를 달리는 속도로 경주를 하는 것만 같다.

버스 노폭보다 약간 큰 도로인데도 코너를 도는 운전 솜씨는 기가 막힐 정도다. 구룡연 코스에서 사람에 밀려 앞서가지 못한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나자, 오늘은 선두에 서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앞장서 달렸다. 아침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도, 숨도 가쁘고 힘도 든다.

  
▲ 삼선암 만물상 입구에 서 있는 삼선암
삼선암

만물상으로 오르는 좁은 계곡에는 물이 말랐다. 비가 내리는 장마철에는 심하게 경사진 계곡을 흘러넘치는 계곡물이 예사롭지가 않을 것만 같다. 사람에 밀려 시간에 쫓기어 금강의 아름다움을 세세하게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카메라에 담지 못하고 바삐 움직여야 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얼마를 지났을까? 까마득한 높이의 뾰족한 바위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삼선암(三仙岩)이다. 옛날 네 신선이 장기를 두러 금강산에 내려왔다가, 한 신선은 훈수를 너무 많이 한다고 쫓겨 삼선암 너머에 떨어져 독선암이 되고, 나머지 셋도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 천선대를 오르는 길 천선대를 가기 위해서는 이 같은 철 계단을 올라야 한다. 아래를 내려다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천길 낭떨어지다.
천선대

두 다리를 비탈진 돌계단에 하나하나를 힘들게 얹어 놓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사오십 분을 올랐을까, 갈림길이 나오고 표지판에는 천선대 15분, 망양대 30분이다. 준비를 하고 올라왔건만 힘이 들었는지 서서 보는 볼일이 급하다. 급히 화장실로 들어서니 화장실 안에서 북측의 남녀 안내원이 화장실 안에 서 있고, 1달러를 달라고 한다. 달러가 없어 한국 돈을 주니 안 받는다고 손 사레를 친다.

겨우 사정사정해서 볼일을 보니 안심이다. 내가 사는 땅이었다면 몰래 실례를 했겠지만(물론,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럴 수도 없는 형편이다. 실례를 하다 적발되면 벌금은 물론이고, 망신도 당할 뿐더러, 긴 일행 때문에도 중간에 실례하기가 어려운 형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삼선암 저 멀리에는 둥근 요강을 머리에 얹어 벌을 받고 있는 듯 귀면암이 보인다.

  
▲ 만물상 신이 빚은 최고의 예술 조각품이다.
만물상

천선대가 가까이 오자 경사는 더욱 가파르고 설치한 철 계단은 오금을 저릴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 카메라는 목에 걸고 두 손은 양쪽 철 손잡이를 잡고 엉금엉금 기듯이 오른다. 앞사람에 막혀 제대로 나아갈 수 없다.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 신의 작품인 금강의 파노라마를 카메라에 담는다. 선녀들이 내려와 춤추고 놀았다는 곳, 천선대(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216호)를 힘겹게 올라 양 사방으로 펼쳐진 금강을 보았다.

  
▲ 만물상 천의 얼굴 만의 형상을 하고 있는 만물상은 드없이 높은 푸른 하늘을 향해 있다.
만물상

드디어 천의 얼굴을 하고, 만의 형태를 하고 있는 만물상(萬物相)이 그 모습을 드러내 나를 맞이하고 있다. 한동안 만물상의 기기묘묘한 바위 하나하나를 감상했다.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후 다시 고개를 돌려 만물상을 보니 또 다른 모습을 하며 나를 반기고 있지 않은가?

내 생애 이런 느낌의 환상은 없었다. 십수 년 전, 스위스 알프스산맥을 보았을 때도, 지난 6월 노르웨이의 피오르드와 눈 덮인 협곡을 보았을 때도 이런 감정도 없었고, 느낌도 아니었다.

  
▲ 금강의 기암 온갖 동물 모양을 한 형상의 바위가 금강산을 에워싸고 있다.
금강산

망장천에서 물 한 모금을 떠 목을 축였다. 한 잔 마시면 기운이 넘쳐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내 버리고 간다는 물이 샘솟는 망장천의 물은 가슴 속 깊이 금강의 기운을 불어 넣어 주는 것만 같다. 정말로 힘이 솟는다. 조금 내려가니 다시 망양대와 천선대 그리고 하산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일행 몇몇은 힘이 들어 곧바로 하산한다.

  
▲ 망양대 온갖 동물 모양을 한 바위들이 금강산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
망양대

힘이 들지만, 망양대의 절경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예까지 왔는데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아름다운 여인이 미소 지으며 유혹하는 것보다 더 뿌리치기 힘들다. 돌계단을 오르고, 철 계단을 오르니 훤하게 트인 푸른 시야가 펼쳐진다. 동해의 하늘과 바다가 내 눈을 덮친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사실, 망양대를 오를 때 동해의 바다를 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잡목과 고사목 사이로 펼쳐진 바다는 산을 오를수록 선명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 망양대에서 바라 본동해바다 망양대에 오르면 동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왼쪽 끝 흰 부분이 금강산 관광 뱃길을 처음으로 열었던 고성항(장전항)이다.
망양대

고성항을 품에 안은 동해의 바다는 포근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현대의 창업자인 정주영 명예회장은 일천 마리의 소 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었고, 그때부터 우리의 발길은 금강산에 닿을 수 있었다. 휴전선을 통과하는 육로 관광길이 열리기 전까지는 뱃길로 금강산에 다녀야 했고, 고성항은 금강산 관광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망양대에서 내려다보는 고성항은 조용한 모습으로 있다. 2007년 9월 말 통계에 의하면 금강산을 찾은 관광객은 160만을 넘어섰고, 지금도 하루에 2천여 명이 금강산을 오가고 있다고 한다.

  
▲ 절부암 도끼로 찍어 갈라져 결이 고운 모양을 하고 있는 절부암. 바위의 끝은 날카로운 도끼모양을 하고 있다.
절부암

금강에 오르면서 언제 정상에 다다를까, 몇 시간을 더 가야만 할까 하는 궁금증도 없고, 힘겨움도 필요 없는, 이제는 더 오르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내리막길이다.

마음도 여유롭다. 금강으로 비치는 포근한 가을 햇살, 구름을 안고 돌아가며 바위에 부딪히는 바람소리, 옥빛보다도 더 휘황찬란한 금강의 물을 뒤로 하고 하산 길로 접어든다. 오를 때 촬영하지 못한 금강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쉬엄쉬엄 쉬어가며 카메라에 담는다.

다시 보는 만물상, 천선대, 상등봉, 칠층암, 귀면암, 절부암, 하늘문, 삼선암 등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반가운 모습으로 반겨준다. 그러나 곧 헤어지는 아쉬움이다.

주차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북측의 안내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친절했고 남한에 대해 아는 것도 많았다. 남한의 관광객들이 전해 준 정보를 들어서일까? 북한의 유명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판매하는 곳에서 잠시 구경을 했다. 화려한 색채로 금강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한 점 살려니 제일 작은 그림도 십만 원이라고 한다. 끝내 한 점 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 칠층암 높이 30미터가 넘는 거대한 바위로, 일곱개의 큰 바위가 층층히 쌓여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칠층암

2박 3일의 금강산 여행이었지만, 실제로는 1박 2일 코스였다. 짧지만, 여행을 마친 뒤라 그런지 피로감이 밀려온다.

온정리 금강산 온천, 세조 왕이 이곳 온천에서 목욕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대자봉의 미인송에 둘러싸여 있는 이 온천에서는 일천 명이 한꺼번에 목욕을 할 수 있다. 따뜻한 라돈 온천수로 마음과 육체에 묻은 때를 씻고, 야외온천에서 홀딱 벌거벗은 몸으로 세상과의 대화하는 느낌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11월 2일 오후 네 시. 일행을 태운 버스는 남으로, 남으로 향하고 있다. 역시, 창 밖으로 보이는 북녘의 땅은 왠지 암울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금강산의 깊은 골짜기에 있을 때는 남인지 북인지 알 수 없는, 그저 내가 살고 있는 땅인가 싶었는데, 막상 길 옆에 서 있는 병사를 보노라니 여기가 북한 땅인가 느껴질 따름이다.

금강산을 여행하며 남북 출입소를 지나는데 네 번이나 짐을 내리고 싣고 해야만 했다. 귀찮고 어쩔 수가 없지만, 금강의 아름다움으로 대신하고 싶다. 우리네 땅을 밟으니 땅거미가 지고 있다. 온정각에서 아홉 시간을 달린 끝에 창원에 도착했다. 밤은 깊게 잠들었는데, 가방 끄는 바퀴소리는 귓가를 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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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서 날개 달아 금강산에서 활짝 펴다 - 3
  
▲ 수정봉과 옥류관 햇살을 받은 수정봉은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고, 옅은 안개는 붓칠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수정봉

아침의 온정리는 고요하고 침묵이 흐른다. 길고 얕게 드리운 안개는 살아 있는 자연을 배경으로 흰색 붓 칠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멀리 보이는 수정봉(해발 773m)은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도록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어 금방이라도 올라 가 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 매바위 금강산 온천으로 가는 길에 바위 덩어리의 두 봉우리가 형님 동생하고 있는 듯하다
매바위

금강의 맑은 물소리는 먼지 쌓인 귀를 씻어주고, 금강의 바람소리는 세속에 물든 내 마음을 씻겨 주었다. 힘들었던 서너 시간의 구룡연 산행을 마치고 영동 여섯 호수 중 하나인 삼일포로 향했다.

온정리에서 바다 쪽으로 12km가량 떨어진 곳으로 버스를 타고 십 분을 달렸을까,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걸어서 이동했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백 년도 더 된 울창한 송림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잘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 소풍 떠나는 기분으로 걸었다. 얼마 지나니 소나무 가지 사이로 호수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백조가 사는 호수가 이렇게 아름다울까, 어머니 품과도 같이 따뜻한 호수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 단풍관과 와우도 삼일포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있는 흰 색의 단풍관. 앞으로는 와우도가 있다.
단풍관

금강산이 외로워할까봐 금강산을 빚은 조물주는 또 다른 친구 하나를 만들어 외로움을 달랜다. 바다의 금강이라고 불리는 해금강이 그다. 그래서 산과 바다는 영겁의 세월을 함께 하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해금강은 삼일포를 안고 있다.

삼일포는 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이라는 신라시대의 네 신선이 관동팔경을 돌아보면서 하루씩 머물기로 했는데, 그 아름다움에 빠져 사흘간 머물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네 신선은 어디로 갔을까? 실제로 보는 삼일포는 사흘이 아니라 평생토록 머물고 싶은 유혹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 무선대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고 놀았다던 무선대
무선대

 

삼일포는 원래 동해에 접한 만이었는데 남강에서 밀려온 흙과 모래에 의해서 만의 입구가 막혀 호수가 되었고, 그 안에 고여 있던 바닷물은 숱한 세월 속에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민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호수는 금강산 자락의 산봉우리들이 잔잔한 수면에 비치는 모습이 절경이다. 또 봉래 양사언 선생이 그 풍경을 보고 찬탄했다는 봉래대와 장군대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삼일포의 모습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 삼일포를 도는 허궁다리 허궁다리를 건너는 기분이 아찔하다
허궁다리

하얀 석조건물인 단풍관을 돌아 호숫가 산책로를 편안한 걸음으로 걸었다. 맑은 물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수초 사이로 헤엄쳐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평균 수심 9~13m, 둘레 8km의 호숫가를 전체 둘러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봉래대로 가기 위해 비탈진 언덕길로 들어섰고, 길이 56m의 줄다리로 만들어진 '허궁다리'를 건너야 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호수에는 금강산의 절경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만 같다. 한 아주머니가 다리를 건너면서 아래를 내려 보고 백 미터는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겁이 났는지 높이의 감각이 없는 듯하다. 실제 높이는 이삼십 미터 남짓 될까?

 

  
▲ 삼일포를 돌아가는 전망대 삼일포의 둘레는 8킬로미터로 이 같은 전망대서 잠시 휴식에 취하며 감상을 즐길 수 있다.
삼일포

봉래대에 올라서니 북한 안내원으로부터 특유한 억양의 말솜씨로 삼일포의 자랑을 늘어놓고 있다. 호수 한가운데는 작은 섬 하나가 있는데, 처음에는 소나무가 많다고 하여 송도라고 했으나, 지금은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여 와우도라 부른다고 한다.

 

  
▲ 와우도 처음에는 송도라 불렀으나, 지금은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을 있다고 해서 와우도라 부른다고 한다.
삼일포

그동안 사진으로 많이 보아 왔던 작은 바위(단서암이라고 함) 위의 정자 이름이 궁금했는데, 옛날 네 신선이 놀다 간 것을 기념하여 세운 사선정(四仙亭)이라고 한다. 삼일포는 주변에 크고 작은 36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시사철 외로움을 모른 채 세월을 보내고 있다.

멀지 않은 거리에 동해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 바다도 하나의 바다이고, 서 있는 이 땅도 하나의 땅인데, 반세기가 넘는 동안 왜 우리는 둘로 갈라져 있어 마음대로 오고 가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솟구친다.

눈물 흘리며 두 손을 꼭 쥐고 서로 부둥켜안은 채 떨어지지 않는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장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통일은 꼭 되어야 하지만, 남북 상호 간 조건이 맞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금강산과 동해바다는 이런 사정도 모른 채 남북의 사람들을 편안하게 맞이하며 바라보고 있다.

 

  
▲ 삼일포 삼일포는 크고 작은 36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호수다.
삼일포

삼일포 코스는 짧은 시간에 걸으면서 힁허케 둘러보는 것으로 끝이 났다. 개별 여행이라면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자연을 즐길 수 있으련만 하는 생각이다.

온정각 주변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산행을 마친 관광객들은 북한의 상품을 파는 동관과 서관을 오가며 기념품을 사고 아이 쇼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상품의 종류가 다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교하고 예술성이 있는 기념품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북한의 술과 고사리를 비롯한 산나물, 그리고 몇 종류의 기념품 외는 북한에서 직접 만들거나 생산한 것은 없고, 양주, 화장품 등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제품으로만 채워져 있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행을 하면서 특색 있는 기념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행 당시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생활상을 되새겨 볼 수 있다는 뜻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 동해바다 삼일포 너머 동해바다가 보인다. 땅도 하나, 바다도 하나인데, 왜 우리는 반세기가 넘도록 둘로 나뉘어져 있어 마음대로 오가고 있지 못할까?
삼일포

밤에는 북한 최고의 공연을 관람했다. 금강산에서 살았던 선녀의 몸짓인가, 아니면 신의 손놀림인가? 금강산을 신이 만들었다면, 평양모란봉 교예공연단의 종합교예 공연은 사람이 만든 최고의 예술이자 아름다움의 극치다.

어둠을 가르고 조명을 받은 하얀 천은 선녀가 입은 옷으로 날갯짓하며 하늘에서 내려온다. 아무리 반복되는 훈련 끝에 이루어낸 하나의 작품이라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몸짓과 영점 일초의 오차도 없어야 가능할 것만 같은 줄타기 공연은 보는 내내 손을 쥐게 하고, 아슬아슬한 장면은 쉬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된다. 차라리 눈을 감아버려 가슴 떨림을 억지로라도 중단시켰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 단서암의 사선정 신라시대 때 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이 놀다 간 것을 기념하여 세웠다는 정자다.
삼일포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실제로 약 십 미터의 높이에서 빠른 속도로 네 번 회전을 하면서 그만 상대의 손을 잡지 못하고 떨어지고 만 것이다. 공연장은 한동안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잠시 침묵으로 공중에 있는 그들만 바라볼 뿐이다. 다시, 힘차게 줄을 젓는다. 이를 악문 모습이 역력하고 자신감에 차 있는 것만 같다. 숨을 죽이고 그들의 몸짓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잠시 후, 똑같은 반복동작으로 세계기예공연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던 그 실력이 이제야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객석에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우레 같은 박수소리는 공연장 천장을 뚫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다. 만약에 또다시 실패했더라면, 그들도, 공연을 보는 관객도 모두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짓누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공연 도중 가끔 실수를 하는데, 어떤 이는 공연의 극치감을 살리기 위해서 일부러 연출한다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실제는 일부러 실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쨌든, 금강산의 밤은 낮에 본 금강의 아름다움을 다시 본 것만 같았고, 그 짜릿한 기억은 오래도록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공연은 끝이 났다. 환한 모습으로 서로가 인사하고 격려하며 박수를 주고받는다. 인체를 그토록 아름답게 표현하고, 기묘한 모습으로 연출하는, 그 몸짓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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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서 날개를 달아 금강산에서 펴다-2

17년의 잊힌 계절을 다시 찾은 감정을 뒤로 한 채, 11월의 첫날 새벽은 부산한 모습으로 움직여야 했다. 단체여행이라는 것이 시간에 맞춰야 하고,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 참으로 불편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강원도 최전방 민통선을 통과하고 동해의 푸른 바다를 보며 금강산으로 향하는 발길은 긴장감과 설렘이 한꺼번에 혼재해 있다.

동해선도로 남북출입사무소를 조금 지나니 비무장지대다. 사십여 대의 버스는 휴전선을 통과하면서 북한 땅을 지나고 있다. 휴전선, 한국동란의 휴전협정으로 당시 그어 놓은 남북의 경계선으로서, 동서 155마일의 길이에, 50㎝ 높이의 노란색을 칠한 시멘트 말뚝을 200m 간격으로 땅에 박아 놓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다.

일행이 지나면서 본 말뚝은 동서 간 총 1292개 중 1290번째라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다.

 

  
▲ 금강의 단풍 11월의 첫날, 금강의 단풍은 나를 찾아주는 이를 위해 애설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금강산

처음, 두 눈을 통하여 보는 북녘의 땅은 서글픈 모습으로 다가왔다. 산야에는 푸름도 없고, 삭막하다. 눈에 들어오는 야트막한 산은 온통 바위뿐이고, 나무도 없는 민둥산이다. 도로변 중간 중간에 서 있는 북한 초병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지나가는 버스를 응시하고 있다.

천막으로 설치된 북측출입사무소에서 검사를 마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여행 단체별로 검사를 맡았다고 해도 바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객 전체가 한꺼번에 움직이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온정리, 일박이일 머무를 숙소가 있는 곳이다. 금강산은 크게 내금강, 구룡연, 삼일포, 만물상 등 네 개의 여행 코스가 있다.

여장을 풀고 먼저 구룡연으로 향했다. 경쾌하고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와 사시사철 푸른 담(潭)과 소(沼)를 감상할 수 있는 외금강을 대표하는 코스다. 목란관, 수림대, 앙지대, 상록수, 금강문, 옥류동, 연주담, 비봉폭포, 구룡폭포, 상팔담으로 이어지는 약 4.3㎞의 코스에 4시간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는 설명에 조금 긴장되는 느낌이다.

금강산 산행 시에는 주의 사항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산행 시작 전에는 반드시 볼일을 보고 산행을 하라는 점이다. 산행 시 위생실(화장실)을 갈 때 서서 보는 일은 1달러, 앉아서 보는 일은 4달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만물상 산행 시 너무나 급해서 1달러를 내고 볼일을 봐야만 했다.

 

  
▲ 목란관 구룡연 코스 초입에 있는 북한이 운영하는 식당 겸 휴게소다. 멀리 금강의 아름다움을 훔쳐 볼 수 있다
목란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본격 산행이 시작됐다. 1200여 명이 한꺼번에 오르는 탓에 비교적 넓은 길인데도 불구하고 밀려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목란관, 구룡연코스 초입에 있는 북한 측에서 운영하는 식당 겸 휴게소다. 입구 다리에서 올려다본 금강산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약 삼십 분을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걸었다. 햇살을 품은 단풍잎이 하늘거린다. 구룡폭포에 이르기 위해서는 총 8개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화려한 단풍잎과 여행객의 등산복은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 구룡연코스의 두번째 다리 구룡연 코스에는 총 여덟개의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는 두번째 다리로서 자연과 사람의 단풍색으로 물들여 놓고 있다.
금강산

 

금강산은 둥글고 뾰족한 바위와 바위로 둘러싸여 있는 산이다. 천태만상의 바위는 제각각 모습을 달리하고, 사이사이에 난 잡목은 분칠을 하듯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다.

암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은빛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비봉폭포다. 봉황새가 날개를 펴고 꼬리를 휘저으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폭포로, 금강산 4대 명폭 중 하나이며, 139m의 높이다. 오른쪽에 있는 무봉폭포와 짝을 이룬다고 해서 둘을 부부폭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같이 가는 하얀 은빛의 물줄기가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음달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떨어지고, 바람에 흩어져 날리며 물안개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 금강의 암벽 금강산은 암벽으로 둘러쳐진 아름다운 산이다.
금강암벽

 

이곳저곳을 보고 감상하느라 눈이 피곤하다. 금강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다. 카메라에 들어오는 빛의 양에 따라 사진의 선명도가 달라진다. 실물보다 더는 아름답지는 않을지라도, 아름답게 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뒤처진다. 일행은 저 멀리 앞서가고 있다. 한참을 걸었을까, 산골짝 모퉁이를 도는 순간 하늘이 열리듯 앞이 확 트이면서, 눈앞으로 펼쳐지는 자연경관이 장관을 이루고 현기증이 날 정도다.

 

  
▲ 비봉폭포 은실이 휘날리는 듯한 비봉폭포
비봉폭포

 

넓디넓은 바위 폭포를 하고 있는 옥류동 계곡이다. 수정 같은 맑은 물이 누운 폭포를 이루며 구슬처럼 흘러내린다고 하여 붙여진 옥류동은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418호로서, 담소의 넓이는 630㎡, 깊이 6m, 길이 58m의 옥수를 담고 있다. 일필휘지 붓의 돌림일까, 절세미인의 치맛자락일까, 옥을 담아 놓은 보석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은 욕망이 인다.

금강산의 물은 흐르면 비단길이요, 모이면 담소요, 흩어지면 계곡이요, 떨어지면 폭포수요, 마시면 몸에 좋은 약수라 했다고 누가 말했던가? 계곡에 내려 두 손으로 물을 떠서 마셨다. 옥수의 맛은 가슴 속 깊이 짜릿한 여운으로 오래 남는다.

 

  
▲ 옥류동 옥을 풀어 깔아 놓은 듯한 옥류동 계곡. 말로써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자연경관이다.
옥류동

 

구룡폭포(九龍瀑布)까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궁금하다. 힘도 많이 든다. 지나온 다리를 세어보니 여덟 번째 다리를 지난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이정표가 5분 남았음을 표시한다. 은실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일까, 학의 날개가 구름 위로 나르는 모습일까? 한 장의 큰 바위 덩어리에 옥수가 흘러내리는 구룡폭포. 북한의 명승지 제225호. 외금강 구룡동 골짜기에 있으며, 중향폭포(衆香瀑布)라고도 한다. 높이 74m, 너비 4m이다.

설악산의 대승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폭포 중의 하나이며, 십이폭포, 비봉폭포, 옥영폭포 등과 금강산 4대 폭포를 이룬다. 폭포의 벽과 바닥이 하나의 화강암석으로 되어 있으며, 옥녀봉의 아름다운 연봉을 배경으로 화강암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웅장하고 기세가 있다. 폭포 아래로 금강산을 지키던 9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13m 깊이의 구룡연이 있다.

 

  
▲ 구룡폭포 상팔담을 흘러 내린 옥수는 구룡폭포를 만들고 그 아래 아홉마리 용이 살았다는 구룡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구룡폭포

구룡폭포 옆에는 김규진이 썼다는 '미륵불(彌勒佛)'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불(佛)자의 획 길이만도 30m가 된다고 한다.

최치원의 여덟 글자의 시가 구룡폭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일까?

천장백련 만휘진주(天丈白練 萬斛眞珠)
천 길 하얀 비단이 드리운 듯하고, 만 섬의 진주알을 뿌려 놓은 듯하구나!

아니면, 막걸리에 취한 김삿갓이 이 폭포를 보고 부른 노래일까?

수작은간춘절벽 운위옥척도청산(水作銀杆春絶壁 雲爲玉尺度靑山)
월백운백천지백 산심수심객수심(月白雪白天地白 山深水深客愁深)

폭포수는 은으로 만든 절구가 돼 절벽을 내리찧고
구름은 옥으로 만든 자가 돼 청산을 재면서 흘러간다
달도 눈도 희니 온 천지가 모두 희고
산도 물도 깊으니 나그네 수심도 깊구나

구룡폭포가 정면으로 보이는 관폭정(북한의 보존유적 제1691호)에 홀로 앉아 술 한 잔 취하면서, 김삿갓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어설픈 시라도 한 수 읊조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술 한 잔 마시지 못하고, 시 한 수도 노래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구룡연 마지막 다리를 건너 상팔담(上八潭)으로 가는 데는 아주 험난한 길로서, 평탄길이 없고,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는 느낌이다. 실제로 철 계단은 거의 90도에 가까울 정도로 절벽에 붙어 있다.

할머니 한 분이 일행의 부축을 받으며 먼저 내려오고 있다. 부산에서 왔다는 그 할머니는 81세라고 하는데, 정말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코스는 17개의 철 계단에 312개의 계단 수가 말해 주듯, 젊은 사람도 힘든 코스로서, 특히, 직각에 가까운 철 계단을 오르내렸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 상팔담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의 이야기인 상팔담. 상팔담을 흘러 내린 옥수는 구룡폭포에서 흩어져 하늘로 흩어진다.
상팔담
  
▲ 상팔담 햇살을 받은 옥빛의 담소는 그 휘황찬란한 보석빛을 반짝거리고 있다.
상팔담

숨을 몰아치며 힘들게 구룡대에 올랐다. 구룡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바위와 계곡과 물줄기와 담소들은 기이한 장관을 이룬다. 옥을 꿰어 만든 아름다운 여인의 목걸이가 연상되지만, 여인의 목걸이보다 더 아름답다. 옥이 있는 소에 햇살이 비치고 하얀 은빛이 영롱한 모습으로 보석보다 더 반짝거리고 있다.

태고의 신비스러움이 지금도 그대로 있는 이 계곡에는 열 몇 개의 소가 있고 그중에서도 빼어난 여덟 개를 골라 팔담이라 하였으며, 구룡동 위쪽에 있다 하여 상팔담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구룡폭포가 떨어져 만든 구룡연과 상팔담을 합쳐 구담이라 하고, 이 아홉 개의 못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한다.

 

  
▲ 천화대와 세존봉의 암석들 구룡대에서 바라본 천화대와 금강의 암봉들. 금강산의 비경을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이던가?
천화대

 

어릴 적에 들은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은 서로 같이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지만, 북한의 상팔담에 얽힌 전설은 우리의 것과는 정반대이다. 옛날 금강산에 마음씨 착한 총각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살려주었다. 사슴은 은혜를 갚기 위하여 팔담에 목욕하러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날개옷을 감추었다가 그에게 주었다.

팔선녀 중 옷을 잃어버린 선녀는 하늘로 올라갈 수 없게 되고, 총각은 선녀와 인연을 맺었다. 총각은 사슴의 뜻대로 아들딸 3형제를 본 다음에 선녀의 날개옷을 주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선녀는 두 아이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나 선녀는 금강산이 그리워 다시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 후 부부는 아들딸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상팔담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푸른 옥색의 담소에 선녀가 목욕을 하고 있다. 나무꾼이 되어 아름다운 저 선녀와 하늘나라로 가서 영원의 삶을 살고 싶다.

출처 : 아홉 마리 용과 선녀와 나무꾼의 사랑 이야기 - 오마이뉴스(2007. 1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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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서 날개를 달아 금강산에서 활짝펴다
  
▲ 설악산 소공원 기개 높은 소나무와 단풍이 조화롭다
가을여행

 

사람들은 그 어떤 무엇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조촐한 이벤트를 벌이며, 각별히 마음속에 새기기도 한다. 한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노래,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잊혀 진 계절’이라는 노래다.

 

직장 동료 육십 명이 북한의 금강산을 가려고 속초를 찾았고, 시월의 마지막 날을 단풍이 깊게 물든 설악에서 보내는 의미가 남다르다. 17년 전인 1990년 오늘, 시월의 마지막 날을 설악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요일도 똑같은 수요일이다. 당시 산에 미쳐 전국의 이름 난 산을 많이 다니던 때였고, 설악산 정상을 처음으로 올랐기에 그 경험은 가슴 속 깊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지금껏 남아 있다.

 

  
▲ 통일대불 청동좌상 통일의 염원을 빌까, 가족의 안녕을 빌까?
 통일대불

 

단풍으로 물들어 있는 것은 산뿐이 아니다. 사람들의 옷도 붉게 물든 단풍보다 화려하다.  그래서 가을은 단풍의 계절일까. 신흥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크고 웅장하지만, 자비롭고 온화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통일대불(統一大佛) 청동좌상. 반세기 동안 겨레를 갈라놓은 분단의 시대를 마감하는 민족의 비원인 국토통일을 이루고자 설악산보다 더 크고, 동해보다도 더 오랜 대불의 광명에 통일염원을 이루고자 만들어진 청동좌상. 이 석가모니불은 1987년 8월에 착공하였고, 14.6m의 높이에 108t의 청동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한 아주머니가 신발을 곱게 벗어놓고 정성이 가득 담긴 모습으로 절을 하고 있다. 통일을 염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가족의 안녕을 비는 것일까? 뒤 이어 절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되지만 불상은 표정도 말도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따뜻한 표정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미운 모습으로 다가서지 않는다. 고운자식 떡 하나 더 주고, 미운자식 매 하나 더 들지 않는, 그저 모든 중생들에게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이 맞이하며 내 보낸다. 사람들은 그런 속 깊은 부처의 자비를 알까?

 

  
▲ 신흥사 극락보전 고즈넉한 산사에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흥사

 

신흥사(神興寺), 653년(신라 진덕여왕 7년) 자장이 창건하고 석가의 사리를 봉안한 9층 사리탑을 세워 향성사라고 불렀으며, 화재로 소실된 후 선정사라는 절을 다시 짓고, 그 후 수만 년이 가도 삼재가 범하지 못할 것이라는 신의 계시로 신흥사를 창건하게 되었으며, 당시 지은 법당, 대웅전, 명부전, 보제루, 칠성각 등의 건물이 현존하고 있다.

 

어느 불자가 극락보전 앞 중앙계단으로 법당에 오르는 것을 보고, 또 다른 불자가 급히 달려가 옆 계단으로 동행하며 이유를 설명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크지 않은 고찰이지만 포근함만큼은 그 어느 사찰과 다를 바 없이 아늑하다. 외로움과 쓸쓸함이 밀려 올 때면, 조용한 절집 마당은 늙으신 어머니의 넓은 가슴과 같이 아늑하기만 하다.

 

  
▲ 권금성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 신흥사 절 마당에서 기와지붕 사이로 바라다 본 케이블카
신흥사
  
▲ 단풍 절집 지붕이 화려한 단풍을 머리에 이고 있다
 단풍

 

가을 산을 즐기려는 사람을 실은 케이블카는 포근한 햇살을 받으며 권금성으로 쉼 없이 오르내린다. 절집 기와지붕에도 노란 단풍이 머리를 이고 있다. 붉게 물든 담쟁이넝쿨은 토담 위 기왓장을 감고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고 있다.

 

  
▲ 울산바위 신흥사 입구에서 바라다 본 울산바위
울산바위

 

저 멀리 울산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산행 시간도 넉넉하지 않을 뿐더러, 예전에 가 본적이 있기에 울산바위 산행을 포기하고 조금 더 가까운 비선대로 향했다. 비선대로 가는 약 2km의 거리는 걷기가 아주 편한 길이다.

 

  
▲ 단풍나무 숲속 길 낙옆이 떨어진 숲속 길은 푹신한 양탄자 길을 걷는 기분이다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파고들며 화려한 색깔로 나뭇잎을 채색하고, 세찬 바람은 눈에 시릴 정도의 아름다움을 가진 단풍잎을 매몰차게 내팽개쳐 버린다. 우수수 떨어지는 단풍잎 하나가 얼굴에 떨어진다. 한꺼번에 떨어진 나뭇잎은 그대로 쌓여 푹신한 길을 만들고 편하게 걷도록 해 준다. 같이 온 일행은 삼삼오오 뿔뿔이 흩어지고, 혼자서 묵묵히 산길을 걸으며 인생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 절개 수십 년이 될 듯한 푸른 소나무가 흙도 없는 바위에서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절개

 

몇 년을 자랐는지 크기로 봐서 수십 년은 된 듯, 큰 소나무 한 그루가 흙도 없는 바위 틈에서 강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비바람과 추위와 싸워 이겨내고 푸름을 유지하는 소나무야말로 절개의 상징이라고 부르는 이유일까. 모든 사물은 제각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단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읽지 못할 뿐. 그래서 여행은 가끔 혼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해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다.

 

  
▲ 장군봉과 적벽 비선대에서 바라 본 장군봉과 적벽
 비선대

 

한 시간 정도를 걸었을까 옛날 마고선인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는 비선대에 도착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찌를 듯 두 세 개의 암벽이 절경을 이루고, 용틀임하듯 하늘을 날아가지 못해 아쉬움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왼쪽의 장군봉 중간 허리에는 금강굴이 있다. 굴 안의 넓이는 약 일곱 평 정도로 그 안에는 자비스러운 관세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어, 믿음이 돈독한 불자들에게는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기도의 장이기도 하다. 천불동 계곡의 맑은 물은 거울이 되어 하늘을 비추고, 흐르는 물소리는 노래가 되어 귀를 즐겁게 해 주고 있다.

 

  
▲ 천불동 계곡의 맑은 물 맑은 물은 거울이 되어 하늘을 비추고, 맑은 소리는 노래가 되어 귀를 즐겁게 해 주고 있다
천불동계곡

 

가을은 꼭 산에서만 느껴야 할까? 저녁식사 후 가을 바다를 느끼고 싶어 해안가를 찾았다. 겨울바다의 이미지는 어떤 것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어쩐지 가을바다의 느낌은 겨울바다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인식이 되지 않는 듯하다.

 

동해의 밤바다는 남해바다와 다른 것만 같다. 파도치는 모양과 크기도 다르고 파도소리도 다르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그 느낌은 나 자신만의 생각이리라. 끝이 보이지 않는 백사장은 너무나도 깔끔하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아래서 푹신한 모래사장을 걷는 기분은 붉은 양탄자를 걷는 느낌이다.

 

바닷가 의자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하며 다음 일정인 북한 금강산으로의 여행에 대한 상념에 잠겨 본다. 설악에서 날개를 달고 금강에서 날개를 펴고 싶다. 말로만 듣던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금강산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이할까 궁금하다. 17년 전, 똑 같은 날짜와 똑 같은 요일에 다시 찾은 설악산은 내게 있어 잊혀 진 계절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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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로 북적대는 가을보다는 자신의 향기를 찾아서
 
  
▲ 가을향기 성불사 계곡에 찾아온 가을
 
 

깊어가는 가을날, 집 밖으로 한 걸음만 내밀면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도 완연한 가을을 느낀다. 더군다나 차를 타고 한적한 농촌 길을 달리다 보면 가을은 더욱 내 가슴 가까이에 와 닿아 있다. 오후 두 시의 가을 햇살을 등에 이고 산야에 흐드러지게 핀 억새. 역광을 받은 하얀 피사체는 사람의 혼을 빼앗아버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빛의 하늘거림은 붉게 물든 내 가슴을 파고 들어와 정신을 잃게 만든다.

 

  
▲ 화려함 붉게 물든 내 가슴속의 가을
 

전국에 이름 나 있는 억새 평원에 주말과 휴일에 수만 명의 등산객이 붐빈다는 뉴스는 깊어가는 이 가을의 소식을 그대로 전해준다. 어떤 이는 자연경관을 즐기기보다는 북적대는 사람 속에서 가을과 사람의 향기를 맡으려고, 또 어떤 이는 자연과 사람 속에서 자신의 향기를 맡으려는 이도 있다.

 

  
▲ 가을의 소리 쓸쓸함과 외로움으로
 

시월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 주 일요일(28일), 전남 광양시 봉강면 백운산 아래에 위치한 성불사(成佛寺)로 자신의 향기를 찾아 나섰다. 오후의 한적한 시간인데, 시골길이 너무나도 조용하다. 벼농사 가을걷이는 대부분 마쳤는지, 들녘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붉게 물든 경치를 감상하며, 사랑하는 이와 얘기를 나누면서 달리는 기분이야말로, 힘든 등반 끝에 시원히 맞이하는 바람의 상쾌함보다 더 좋은 느낌이리라.

 

  
▲ 포근함 하늘을 덮어버린 가을
 

산사로 들어가는 오솔길.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는 조용히 걷고 싶은 길이다. 차에서 내려 계곡으로 내려갔다. 바위를 돌고 돌아 흐르는 물소리가 영혼을 깨운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은 어느새 잔잔한 고요의 바다에 안착하고,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잎은 물에 비친 모습으로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 반가움 형형색색의 가을
 

가을 행락철치고는 너무나 고요하다. 적막감이 감도는 산에는 형형색색 물든 나뭇잎만 일행을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이름이 잘 알려진 산보다는, 적막감이 감돌고 외로움을 한번쯤 느끼고 싶다면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별로 커 보이지 않는 사찰입구의 주차장에는 승용차만 대여섯 대 있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 고요함 나의 향기를 찾아서
 

사찰로 들어서는 입구. 많은 산사를 돌아 다녀봤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고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기 전 입구 좌측에는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입석 앞으로 코끼리 상이 있고, 우측에는 ‘나무관세음보살’이라고 새겨진 입석 앞으로 역시 코끼리상이 있다.

 

코끼리는 불가에서 무슨 상징일까? 석가모니 탄생은 어머니 마야 부인이 석가모니를 낳기 전 아름답고 은처럼 하얀 코끼리가 옆구리를 통해서 자궁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게 되고, 룸비니 동산에서 석가모니를 낳게 된다. 전설에 의하면 부인이 살라나무에 오른쪽 팔을 올려 가지를 붙잡았을 때, 그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석가모니가 탄생했다고 한다.

 

  
▲ 고독 고요한 산사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 나뭇잎 떨어져 땅바닥에 뒹구는 소리, 다람쥐가 도토리를 먹이 삼아 장난치면서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이외는 그 어떤 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산사에서, 가을 향기를 맡고 자신의 향기에 취해 본다.

 

대웅보전 앞마당은 고요하다. 물결의 출렁임 하나 볼 수 없는 고요한 호수와도 같다. 백운산 도솔봉 아래 화려한 색채로 수놓은 단풍을 홀로 감상하는 맛은 일품이다.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이름난 산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 단청 단청 사이로 보이는 가을
 

단청(丹靑), 그 모습은 아름다움의 극치다. 인간의 열정과 혼이 서려 있는 전통예술의 최고의 가치이기도 하다. 단청 사이로 보이는 가을의 아름다움은 두 배의 느낌을 더해 준다. 특히, 조용한 산사에서 혼자만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때 느끼는 그 감정은 자신이 예술가가 된 듯하다.

 

  
▲ 동반자 외로움을 느끼며
 

길가에 아름답게 피었던 코스모스의 흔적은 없어진 지 오래 된 듯하다. 아름다움의 상징인 가을을 배신이라도 하듯 씨앗만 매단 채 바람에 흔들거린다. 오랜만에 찾아간 친구를 온 동네 수소문하였지만, 찾을 길 없는 것과 마찬가지 느낌이다. 다시, 돌아서는 발길의 무거움도 꼭 이런 감정일까?

 

두 그루의 늙고 늙은 소나무가 형제처럼, 친구처럼, 다정하게 보이지만, 아무래도 그 속사정은 나만이 알 것만 같다. 어젯밤, 별일 아닌 일을 가지고 싸운 부부처럼, 어느 정도 이해해 줄 수 있으련만, 그렇게 묵묵히 혼자인 듯, 두 나무가 둘로 있지만 혼자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역시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내 마음의 일일까?

 

멋진 공연이나 예술작품 전시회를 보고 집으로 돌아 갈 때의 느낌은 어떠할까? 충만한 마음에 그 기쁨이나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그 여흥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하는 것도 의문이다. 여행으로 인하여 느끼게 해 주는 만족감과 기쁨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아쉬운 마음으로 조용한 산사의 느낌을 뒤로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자신을 찾아 떠나는 또다른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물밀 듯 밀려온다.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면서 각오를 다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 감향 자연과 인생의 가을을 느낀다
 

정겨운 시골집 텃밭에 주렁주렁 열린 노란 감을 따는 할머니의 모습이 가을 향기 그 자체다. 감을 손질하는 할머니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을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할머니 일생의 가을도, 자연의 가을도, 가을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고집스런 어미 생각이 났다. 평소에 티격태격 다투는 어미와 아들 사이다. 달콤한 감을 사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어미 같은 할머니한테 한 상자의 감을 샀다. 어미로부터 분명코 비싼 돈 주고 뭐 하러 이런 걸 사왔냐고 따져 물을 게 뻔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 가지 않을 수 없다. 농사짓는 아는 형님한테 얻어 왔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지만, 어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지난해처럼, 똑같은 거짓말을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야만 어미의 마음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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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양시 봉강면 | 성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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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아이 면회 가는 길, 국가안보를 느낀 소중한 시간
▲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부르고 싶은 한탄강
새로운 것을 만나거나 체험한다는 것은 삶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면서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설고 미지의 땅을 찾아 떠난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 그래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으리라.

5월 26일, 지난 3월에 입대한 아들을 만나러 강원도 철원으로 떠난 여행은, 68일만에, 아들과 만나는 기쁨과 설레임의 동시작용으로 기분은 평소보다 두 배가 넘쳐흘렀다.

▲ 90년대 많은 비로 인하여 뒤로 보이는 정자까지 물이 차 오른 적이 있다고 한다.
숙박지를 예약하지 않은 탓에 오후 늦게까지 읍내를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역시, 여행은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오후 늦게 고석정 관광단지내에 있는 모텔에 여장을 풀 수 있었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Grand Canyon)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북한에서 강원도와 경기도를 관통하여 흐르는 한탄강을 보고서, 곧바로, 느낌으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 미국 애리조나 북부지역에 있는 거대한 협곡인 그랜드캐니언이었다.

▲ 철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철새조각상
며칠 전, 비가 내린 탓에 강물은 석회석을 풀어 놓은 듯 희뿌옇다. 강 아래쪽을 보니 조그만 배가 사람을 싣고 강을 오르내린다. 구명조끼를 입고 배에 몸을 실었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상류 쪽으로 오르니 물살이 제법 세다. 강에서 위쪽으로 바라보는 기암괴석의 절벽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배는 상류로 올랐다가 하류로 내려갔다. 얼마 내려가지 않아 하얀 물보라가 이는 아주 작은 높이의 폭포가 보인다. 옆으로 지천이 흐르는데, 이곳이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라고 한다.

▲ 정자에 오르면 한탄강의 비경에 빠질지 모를 일이다
래프팅으로도 유명한 한탄강은 깊은 곳의 수심이 5m나 된다고 한다. 강 양쪽 절벽의 제일 높은 곳은 대략 40m 정도가 된다고 하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 있다는 것이 자랑이 아닐 수 없다. 한탄강을 말없이 내려다보는 고석정(孤石亭)은 최근에 건축한 듯, 고풍미를 느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뚝배기 그릇에 구수한 된장국 맛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정자에 멋들어지게 쓴 편액도 없다. 그냥 수수하다. 정자 옆으로 잔디밭이 잘 조성돼 있다.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

▲ 석탑의 층사이에 금개구리가 살았다는 보물 제223호 도피안사삼층석탑
다음날 이른 아침, 다시 강으로 갔다. 북에서 남으로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는 어제와 변함이 없다. 인생사, 말없이 흐르는 저 물줄기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자동차는 최전방으로 향했다. 아들 면회를 왔건만, 이곳 멀리까지 와서 명소를 둘러보고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동송읍에 있는 도피안사에 도착했다.

조용한 산사의 아침이 평화롭다. 맑은 샘물을 한 바가지 떠 마셨다. 상쾌하다. 샘터 옆 안내판에는 몇 년 전, 모 방송국에서 방영했다는 도피안사삼층석탑(보물 제223호)의 금개구리 모습의 사진과 설명이 보인다. 절 마당으로 나아가 금개구리가 살고 있었다던 석탑의 틈새를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불심이 없어서일까?

▲ 북한노동당 철원군당사
아침 햇살은 한국전쟁 당시 악명 높았던 북한노동당 철원군 당사의 창틀 사이로 비추고 지나간다. 수리를 하는지 비계를 설치하고 공사가 한창이다. 당사 입구 왼쪽 기둥은 총탄의 흔적이 지금도 선명한 모습으로 그 당시의 뼈아픈 기억을 회상해 준다. 천정과 벽면에는 작은 구멍이 많이 뚫려 있다.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증거다. 노동당사에서 잠시나마 전쟁의 아픈 기억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민통선 제한구역에서 신분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화물차 몇 대만 오갈 뿐, 한창 모내기가 진행 중인 평화로운 농촌마을의 모습이다. 여기서는 북한과 인접한 민통선 지역이지만 긴장감은 별로 들지 않는다.

▲ 월정리역
머리에 짐을 인 아낙네와 멋진 중절모를 쓰고 지팡이를 든 제법 멋진 노신사들이 오고가며, 사람들로 북적대야 할 기차역이 너무나 조용하다. 서울에서 원산까지 달리는 철마가 잠시 쉬었다 가는 월정리역.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월정리역은 수줍은 새색시처럼 말없이 나를 맞이하고 있다. 아파트 한 채 크기도 되지 않을 역사(驛舍)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오가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수십 년 동안을 이렇게 버려져 있는지 모를 일이다.

▲ 녹슨 열차는 앙상한 몰골을 한 채 수 십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녹슨 철로에는 이름 모를 잡초만이 무성하다. 외로움의 깊이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폭격을 맞은 객차는 찌그러지고 녹슨 채 한국전쟁을 대변하고 있다. 철의 삼각 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는 북녘의 땅도 평화로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사상과 정치를 떠나 여기에서만큼은 철책이 남과 북을 오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만 같다. 저 철조망만 없다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155마일의 철책선을 따라 우리나라의 동서를 횡단하면서, 국토의 소중함을 느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 철마는 달리고 싶다
비무장지대에 고라니 한 마리가 평화로이 풀을 뜯고 물을 마시고 있다. 철책 사이에 난 구멍 사이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노닐고 있다. 아들 같아 보이는 한 병사가 소총을 든 채 초소를 지키고 있다. 저 병사는 몇 시간을 근무하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아들도 내년 삼월에는 저 병사처럼, 민간인의 모습을 자유로이 볼 수 없는, 이곳에서(GOP) 일 년을 근무할 것이라고 한다. 제대하면 그때 한 번 물어볼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이곳은 평화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데, 현실은 아직도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다니 참으로 모순이라는 생각이다.

전망대에서 약 15㎞ 떨어져 있는 제2땅굴 견학은 내게 있어 참으로 충격이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선언문이 있은 후 평화무드가 한창일 때 대남 적화야욕에 눈이 먼 북한이 단단한 화강석으로 된, 깊이 50~160m의 지하에 높이 2m, 총연장 3.5㎞의 땅굴을 팠으며, 군사분계선 남쪽 지점으로 1.1㎞나 더 파 내려왔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 땅굴은 유사시 한 시간 동안 무장병력 1만 6천여 명이 침투가 가능한 엄청난 도발현장으로, 1973년 11월 20일 최전방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초병 2명에 의해서 인지되어, 1975년 3월 25일 발견되었다. 수색작업에 참여했던 사병 8명은 북한이 설치해 놓은 지뢰와 부비트랩에 의해 순화하기도 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잠시 안내판 앞에서 그들의 영혼에 묵념을 올렸다.

헬멧을 쓰고 땅굴로 들어갔다. 물방울이 떨어져 물을 이루고 흘러간다. 북으로 흐르는 것일까? 우리 군이 땅굴을 찾기 위해 시추한 흔적이 보인다. 땅굴 중간에는 작업을 하던 북한군이 먹고 잤다던 넓은 광장도 있다. 허리를 굽혀 십여 분을 걸었을까. 600미터의 땅굴 마지막 지점에 도착했다. 더는 갈 수 없는 곳이다. 소총을 든 북한군 형상이 노려보는 모습으로 서 있다. 가슴이 섬뜩하다. 땅굴 벽면에는 '자기의 조국을 모르는 것보다 더한 수치는 없다'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 끝이 보이지 않는 철원평야를 관통하는 도로
철의 삼각전망대에서 읍내로 향했다. 차량의 거리계기판을 영으로 돌리고 드넓은 철원평야의 직선도로를 달렸다. 일렬로 선 전봇대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길까?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들녘은 중학교 때 배운 산촌 강원도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강원도 하면 떠오르는 게, 높은 산을 개간하여 옥수수와 감자를 재배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4.3㎞를 달려서야 평야를 가로지르는 도로는 끝을 맺는다. 하지만, 도로의 끝이 아니라, 약간 굽어진 형태로 국도 3번 도로는 계속 이어지고, 넓은 평야는 길 양쪽으로 펼쳐져 있다. 이렇게 넓은 평야를 본 적이 없다.

일곱 시간 반을 차를 몰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멀고 멀다. 피곤하지만, 이번 여행의 의미가 가슴 진한 감동으로 영원토록 내 머릿속에 남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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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 즈음 깨달음의 종소리를 들으며
▲ 성문
2005년 여름휴가 때, 우리나라 지도를 펼쳐 동서남북 사각형의 꼭짓점을 찍고 찾은 곳이 우리나라 역사의 숨결이 가장 많이 서려있는 강화도였다.

그런데 여행 정보 부족으로 많은 역사를 품고 있는 전등사를 관람하지 못하고 귀가한 것이 늘 마음에 빗장이 되었던 터라, 지난 5월 10일 강화도 여행은 내게 있어, 그래서 그 의미가 깊었고 남달랐지 않나 싶다.

전등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여섯 시가 넘어 땅거미가 내릴 때쯤이다. 길고 긴 하루를 끝마칠 무렵에야 도착하여 피로를 좀 풀까 싶었는데, 또 다시 걸음걸이를 재촉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는 전등사를 관람하고 남도에 있는 부안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 전등사로 들어가는 숲길
그런데 특이하게도 사찰로 들어가는 일주문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절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성벽으로 둘러쌓여 있고, 반원형 모양의 성문이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

알고 보니, 전등사는 단군왕검의 세 왕자가 쌓았다는 정족산 삼랑성(사적 제130호) 내에 있는 사찰로,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서기 381년)에 진나라에서 온 아도화상이 지었다고 하며,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최고(最古)의 도량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불교가 들어 온 것이 서기 372년이라고 하니, 채 십 년도 안돼 전등사를 창건한 것만 보더라도, 불교의 역사와 도량의 깊이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삼랑성의 남문을 지나니 소나무 숲길이 양옆으로 펼쳐진다. 우거진 숲으로 사방은 어둠이 짙게 내려앉고, 중요한 사진이라도 몇 장 찍고 싶은 급한 마음에 바쁜 발걸음을 재촉해야만 했다.

반듯반듯한 길은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길 양쪽으로 화려하게 치장하여 길게 달아 놓은 등에서 부처님 오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다. 낮과 밤을 오가고, 때로는 비를 맞으며 매달려 있는 저 등은 수 만 가지 유형의 속세 인간의 어떤 모습을 담고 있을까?

며칠 전, 나이 든 어머니는 절에서 보내 온 시주하는 종이 한 장에 아들과 손자의 이름과 나이를 쓰고 절에 갈 채비를 한다. 그런데, 이름을 쓰는 순서가 큰 아들, 큰 손자 둘, 아들, 그리고 손자들의 순서로 써 내려간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장손이 중요한가 보다.

▲ 윤장대
불당을 향하여 얼마나 걸었을까, 왼쪽으로 화려한 색칠을 한 윤장대(輪藏臺 : 불교 경전을 넣은 책장에 회전축을 달아 돌리도록 만든 것으로, 이것을 돌리기만 해도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가 보인다.

"저거 한 번 돌리면 로또 걸린데…."
"야, 그러면 네가 한 번 돌리고 와."

지나가는 몇 명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이 씁쓸하기만 하다. 물론, 농담이리라 생각하지만, 절에서 만큼은 말과 행동이 물질문명의 편리함과 이기심을 버릴 수 없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 무엇을 지키고 있을까?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방문객이 많지 않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이 감돈다. 절 안에도 수많은 등이 걸려 있다. 날은 차츰 어두워져 오는데 한 바퀴 둘러 볼 시간이 촉박하다.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구석구석 훑어보면서, 전각, 탑, 범종, 건축물의 구조, 그리고 단청 등 사찰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도 해야 하련만, 그렇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관람객들이 전등사의 대표적인 보물인 대웅보전(보물 제178호)에서 고개를 젖히고 위로 향한 채 뭔가 열심히 쳐다보고 있다. 자세히 보니 대웅전 네 모서리 기둥 윗부분에 벌거벗은 여인상을 조각해 놓은 나부상이 보인다. 이 나부상은 전설이 하나 전해진다고 한다.

▲ 극락왕생

▲ 소원성취
당시 나라에서 이름난 도편수가 대웅보전을 짓고 있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온 그는 아랫마을 주막의 주모와 눈이 맞아 사랑을 하게 되고, 불사를 다 지은 후에는 같이 오순도순 살기로 약조를 한다.

하지만, 공사가 마무리 되어 갈 무렵, 어느 날 주막을 찾아가 보니 여인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췄고, 주모를 찾을 생각은 하지 말라는 이웃 여자의 말을 듣고는 상심에 빠진다. 도편수는 배반감과 분노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스리고 대웅전 공사를 마무리한다.

▲ 명부전
공사가 끝날 무렵 대웅전의 처마 네 군데에는 벌거벗은 여인이 지붕을 떠받치는 조각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네 가지 조각이 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잠시, 도편수는 왜 이 나부상을 조각하였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본다.

사랑을 배신하고 욕심에 눈 먼 여인을 징계한 것일까, 아니면 도망간 여인이 잘못을 참회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염원이 깃든 것일까. 후세의 사람들이 이 조각상을 보고 잠시나마 생각을 해 보라는 깊은 의미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 불심
사찰의 역사가 곧 우리의 선조들이 살아 온 역사가 아닐까? 학창 시절, 이름난 사찰로 수학여행을 가 본 적이 있다면, 그냥 겉모습만 보면서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 아니었던가?

이런 기억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사찰에 갈 때는 사찰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역시 이번 여행도 시간 탓으로 그냥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온 점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화도 전등사에서 호국불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 지킴이
▲ 범종각
전등사에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가 많이 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역사공부를 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보물 제393호로 지정돼 있는 중국에서 만들었다는 범종 안내판에 새겨진 종소리의 의미를 내 가슴에 새겨본다.

깨달음의 종소리

종소리 울리면 번뇌는 사라지고
깨달음 하나 둘 허공을 메운다
욕심을 벗고 고집을 떠나서
부처님 마음에 오가라
너와 나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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