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인의 미소보다 더 아름다운 꽃살창
▲ 진한 향을 맡으며 천천히 걷고 싶은 전나무 숲길
일상에서 잡념을 버리고 오직 하나의 마음으로 진리를 깨닫게 하는,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는 곳, 일주문(一柱門). 산사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다. 5월 11일 전북 부안땅을 밟고, 내소사를 찾았다.

절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매번 느끼는 감정이지만, 전북 부안 내소사에 들어가는 느낌은 그 어느 절과는 다르다. 푹신한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나뭇잎사귀가 걸음걸이를 한층 편하게 해 준다.

▲ 보종각
키가 큰 전나무 숲을 보니 밀림지대를 온 것 같은 기분이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포근하게 느껴지고, 나무 잎에서 뿜어내는 향기는 아름다운 여인의 내음보다도 진하다. 맑은 공기에 취해 크게 심호흡을 하니 정신이 맑아진다. 다른 사람들과 일주문으로 같이 들어갔건만, 그 사람들은 저 멀리 앞서가고 있다.

▲ 내소사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앞서가는 사람의 빠른 발걸음을 따라갈 필요가 전혀 없다. 여기에서 만큼은 느릴수록 좋다.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약 5백 미터의 전나무 숲길을 만끽하고 싶기 때문이다. 전나무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단풍나무와 벚나무길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 하늘과 맞닿아 있는 대웅보전
사천왕문을 지나니 대웅전 앞에 뚝하니 버티고 서 있는, 천년이 되었다는, 아주 큰 당나무가 호령이라도 하는 듯하다.

대웅전 뒤쪽으로는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 처져 절을 감싸 안고 있어 포근한 느낌이 두 배로 드는 기분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경내를 한 바퀴 둘렀다.

절의 규모는 대사찰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절의 중심이 되는 대웅전을 한 품격 높여 부르는 대웅보전이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짐작이 간다. 스님의 독경소리와 목탁소리가 화음을 이루면서 중생을 구제하는 노스님의 모습이 존경스럽다.

내소사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제291호).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끼워 맞춰 지은 건물로서, 화려한 다포양식으로 조선 인조11년(1633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배흘림 양식의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형태다. 정사각형 격자 문양으로 마감한 천장의 꽃무늬 단청은 법당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 불심
대웅전 감상의 최고는 정문의 꽃살 창문이다. 연꽃, 국화꽃, 해바라기꽃으로 장식한 문살의 문양이 하나의 꽃밭을 이루고 있는 느낌이다.

수 백년 간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은 탓인지, 지금은 화려한 색깔의 채색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생각할 수 있으련만, 오히려 채색 없는 나무의 결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좋다는 느낌이다. 살며시 만져보니 촉감이 참 좋다.

부처님 공양 중 가장 으뜸이 등(燈) 공양이고, 다음으로 꽃 공양이라고 한다. 새삼 수 백년 전의 그 목수가 생각난다. 얼마나 엄청난 공을 들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꽃문양 하나하나를 새겨 넣을 때마다 부처님을 생각한 그 불심(佛心)의 깊이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마, 지금은 또 다른 부처가 되어 이 절을 지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차장 주변으로 몇 그루의 단풍나무가 있다. 그런데 붉은 나팔 모양을 한 꽃잎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처음으로 보는 꽃잎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채 채석강을 만나러 떠나야만 했다.

들녘에는 마늘밭과 보리밭이 풍요로움을 더해준다. 저 멀리 희미한 운무 속에서 불어오는 갯내음을 맡으면서 고향 바닷가의 그리운 모습이 오버랩 된다.

▲ 수 백년 동안 떨어지지 않는 꽃잎(좌)/꽃살창 만큼이나 아름다운 여인의 포근한 미소(우)
내소사에서 약 삼십분을 달리면 채석강을 만날 수 있다. 채석강(彩石江, 전라북도 기념물 제 28호, 면적:12만 7372㎡)은 부안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소로서 격포항 옆에 우뚝 솟은 해안가 닭이봉(달기봉) 아래에 약 1km 정도 펼쳐져 있다.

홍보용 안내판의 유래를 보니,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며 노닐다가 물에 비친 달빛에 반하여 그 달을 잡으려고 물에 뛰어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하다하여 '채석강'이라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격포항 방파제에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방파제 높이도 만만찮아 높은 산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끝까지 걸으면서 바닷바람을 즐겼다. 제법 길다. 방파제 한쪽으로 상인들이 비닐천막을 치고 멍게, 해삼, 낙지, 키조개, 피조개, 개불 등 각종 해산물을 팔고 있다.

▲ 붉은 꽃주머니를 달고 있는 단풍나무
한 접시에 2만원이면 충분하다. 멍게 한 점 초고추장에 찍어 소주 한 잔 들이키는 맛이 일품이다. 살아가는 인생 하루하루가 이런 맛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과욕이리라.

방파제 멀리 희미한 안개 속으로 섬이 하나 보여 옆 사람에게 물으니 위도(蝟島)란다. 한때 이슈가 됐던 핵 방폐장 시설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던 그 섬이 위도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희미한 안 개 속 그 섬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떤 섬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갑자기 그 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 채석강
채석강의 넓적한 바위바닥을 걷고 싶다면, 하루 두 차례 물이 빠지면 들어갈 수 있는데, 이 날 다행히도 물이 빠져 있어, 유람선이 있는 방파제에서 격포해수욕장까지 걸어서 갔다. 수 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한 절벽을 감상하면서, 자연의 신비로움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계속 이어 북쪽 용두산을 돌아 약 2㎞의 해안절벽이 있는데, 그 곳이 적벽강(赤壁江, 전라북도기념물 제29호, 291,042㎡)이다.

물이 빠질 때 시간이 넉넉하다면, 천천히 걸으면서 넓고 평평한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바다 생물들의 움직임을 감상하고, 해식동굴에 들어가 억겁의 세월을 느끼는 재미가 좋은 추억거리로 남을 것이 분명하리라. 특히,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어린 아이들은 조개도 줍고 고동도 주우면서 바닷길을 걷는 기쁨은 그 기억이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 채석강의 파도소리
층층이 쌓인 검은 빛깔의 바위절벽 위에 뿌리를 어떻게 내렸는지 장엄하게 서 있는 소나무 몇 그루. 언제나 푸른 바다를 보며, 때로는 태풍과 억센 해풍을 이겨내며, 꿋꿋하게 서 있는 저 소나무야말로 절개의 상징이 아닐까?

검푸른 바다에서 밀려와 바위를 때리며 부서지는 하얀 물보라는 흰색과 검은색의 색깔 대비가 너무도 선명한 모습으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자랑이다. 특히, 간조 때 해식동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채석강의 낙조와 노을은 어떤 말과 행동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이나 환상적이라는 것이 안내원의 설명이다.

거제도에서 멀리 이곳, 두 번을 방문했지만, 낙조를 보지 못한 탓에 다음에는 꼭 하룻밤을 지내면서 낙조와 노을과 밤바다를 구경할까 하는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o. 내소사, 채석강 찾아가는 길
. 내소사
- 서해안고속도로->부안나들목->고창방면 23번국도->15.2km -> 보안사거리(우회전)
->30번국도(10km)->석포리 내소사입구(우회전)->2km->내소사일주문
- 부안읍->30번국도로 직진->변산->격포->진서면 석포리 내소사 입구(좌회전)
->2km->내소사 일주문
- 태인IC -> 30번국도(20.5km) -> 신태인 -> 부안읍

. 채석강
- 서해안고속도로 부안IC(30번 국도)→부안→변산해수욕장→격포항
- 서해안고속도로 줄포IC→영전(30번 국도)→곰소→격포항
- 호남고속도로 태인IC(30번 국도)→부안→격포항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 내소사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고립과 해방을 동시에 품고 있는 섬으로 떠난 여행

▲ 형제바위
섬[島], 제주도나 거제도처럼 너무 커서 섬의 내륙에 들어서면 바다가 보이지 않을 만큼이나, 섬인지 육지인지 분간이 안가는 아주 큰 섬이 있는가 하면, 몇몇 주민들이 밭뙈기 몇 평에 채소 가꾸고, 비탈진 산 속에서 염소 몇 마리 키우며, 작은 어선 한 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그런 작은 섬이 있는 반면, 해외여행의 대명사처럼 야자수 잎이 출렁거리고 에메랄드빛 바다 속이 훤히 다 보이는 맑은 바닷물이 있는 파라다이스가 떠오르는 아름다운 섬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섬, 백령도. 삼 년 전 계획을 잡았다가 개인 사정으로 포기해야만 했던, 내게 있어서는 미지의 섬. 창원에서 네 시간 반을 달려 인천에 도착했다. 멀고 먼 길이고 지루한 시간이다. 국토의 끝에서 또 다른 끝으로의 여행이라 차편도 배편도 내게 편하게, 그리고 맘대로 짜여져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의 욕심을 버리고 배편에 시간을 맞추어야만 하는 것이 백령도 배편이다. 어차피 떠난 여행이라면 즐거움을 더해야 하지 않을까. 여행 첫날, 인천항 유람선을 타고 영종대교의 야경을 감상하면서, 쇼 관람과 선상 불꽃놀이를 즐겼다. 많은 여행객들의 즐거운 비명소리가 서라운드로 들려온다. 아마도 다음날 백령도를 찾아갈 사람들인 모양이다.

▲ 인천대교 건설현장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백령도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면, 해병대가 아닐까? 해병대 하면 귀신 잡는 무적의 용사. 해병이 잡는다는 그 귀신을 잡으러 백령도로 향했다. 기적을 울리며 인천항을 떠난 쾌속선은 빠른 속도로 나아가면서 하얀 포말을 내뿜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다 위에 말뚝 같은 것이 여러 개 서 있다. 알고 보니 인천대교 건설현장이다.

한국도로공사의 홍보자료에 따르면, 하늘과 바다와 땅을 연결하는 세계의 관문으로, 세계 5대 장대 해상 사장교로서, 동측으로 경제자유구역인 송도국제도시와 서측으로 동북아의 허브 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을 연결하는 대한민국을 대표할 세계적인 교량이라고 한다.

그 규모로는 국내 최장대 교량(18.2㎞, 세계 6위 규모), 사장교 주경간장 국내 최대(800m, 세계 5위 규모), 주탑 높이는 230.5m 63빌딩 규모로서, 2009년 10월 준공 예정으로, 본 공사가 완료되면 인천국제공항과 수도권 남부의 제2, 제3경인고속도로를 연결하여 기존 인천공항고속도로에 비해 주행시간을 40분 단축하고, 송도 국제 업무시설단지와 영종 물류관광단지의 건설 촉진 및 가치를 극대화하여 외국자본 투자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 한다.

육지의 고속도로라면 휴게소에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으련만, 휴게소 없는 해상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지루한 시간이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고스톱을 치는 사람, 잠자는 사람, 술 마시는 사람, 선 내외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소설책이나 만화책을 가져와서 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섬 내에 있는 넓은 평야지대
네 시간을 달려 소청도에 도착했고, 삼십 분을 더 달려 백령도 용기포항에 도착했다. 인천항에서 백령도까지 뱃길로 228㎞의 먼 거리다. 출발할 때 화창한 날씨라 너무나도 좋아했는데, 섬에 도착하니 반겨주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였다.

우의도 준비하지 않은 탓에 비를 맞으며 걸었다. 설마 뼛속에 물이 들어갈까 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곳에서의 여행수단은 섬 내에 있는 관광버스를 이용하든지, 택시나 렌트카를 이용해야만 한다. 시내버스가 있기는 하지만, 관광명소를 다 경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 백령도에서 제일 큰 다리로 유명한 백령대교
섬이라고 하지만, 섬인지 육지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로 넓은 평야가 보인다. 제주도, 거제도, 진도, 강화도, 남해도, 안면도, 완도, 그리고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여덟 번째 큰 섬인 백령도. 십수 년 전, 바다를 매립하여 수십만 평의 농토를 만들었다고 한다. 매립하기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스물다섯 번째 크기의 섬이었지만, 매립 후에는 여덟 번째 크기의 섬이 됐다.

구수한 토박이 말씨가 정겨운 관광버스 기사님이 쉼 없이 섬 자랑을 늘어놓는다. 백령도에도 서해대교나 영종대교처럼 크지는 않지만, 40t의 하중을 견디는 길이 30m의 백령대교(?)가 있다고 한다.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여행객 모두 의아한 모습으로 기사님을 쳐다봤지만, 기사님은 살며시 미소 지을 뿐이다. 백령대교는 다름 아닌 제방을 쌓으면서 만들어진 조그만 다리다. 입구에는 진짜 대교에서나 있을 법한 백령대교라는 명패가 보인다.

▲ 콩돌해변의 형형색색의 콩돌

▲ 콩돌해변
섬 내 잘 닦여진 도로를 따라 콩돌해변(천연기념물 제392호)에 도착했다. 오금포 해안을 따라 1㎞ 정도 형성되어 있는 콩돌해변은 백색, 갈색, 회색, 적갈색, 청회색 등 콩알만한 크기의 형형색색 그 모양이 너무나 아름답고, 파리 한 마리 앉지 못할 정도로 반들반들하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보니 그 촉감이 너무 좋고 지압 효과도 있어 머리도 맑아지는 느낌이다.

푸른 바다와 조화를 이룬 이렇게 멋진 해변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은 행복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곳은 어찌 보면 사람 발길 닿기 힘든 백령도에 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지 모른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에 와서 콩돌을 주워가기 때문에 감시초소까지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 대형버스가 지나가도 웬만한 바퀴자국이 남지 않는 사곶해수욕장
백령도 동남쪽 진촌리 사곶마을 해변에 위치한 사곶해수욕장(천연기념물 제391호)은 길이 3㎞, 폭 300m의 천연비행장 역할을 하는 곳으로, 전 세계에서 이곳과 이탈리아 나폴리 두 곳밖에 없다고 한다. 모랫바닥이 얼마나 단단한지 대형버스가 지나가도 바퀴자국만 남을 뿐, 자동차 운행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이런 특수성으로 6.25전쟁 때는 천연비행장과 유엔군 작전 전초기지로 활용했다고 한다. 물이 빠진 모래밭에는 조개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입을 벌리고 숨을 쉬고 있는 조개 한 개가 역동적인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 두무진
백령도 여행 둘째 날은 그렇게 훌쩍 지나갔다. 다음날, 유람선을 타고 긴장의 바다로 나아갔다. 유람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어선을 개조한 중간 크기의 배다. 두무진(頭武津, 명승지8호), 선대바위, 형제바위, 장군바위, 코끼리바위 등이 마치 투구를 쓴 장군들이 회의를 하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령도의 북서쪽지역에 있는 최고의 비경으로 서해의 '해금강'이라고 부를 정도로 장관이며, 4㎞의 해안선을 따라 수천 년 풍상에 다듬어진 기암절벽이 늘어선 해안은 그야말로 예술 그 자체다.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수식어가 부족할 정도니 말이다.

▲ 코끼리바위
유람선에 몸을 맡겼다. 나가는 뱃길은 파도에 밀려 배의 요동을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돌아오는 뱃길은 장난이 아니다. 피칭(배가 앞뒤로 흔들리는 것)과 롤링(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반복하면서, 곧 바다로 가라앉을 것만 같다. 배 앞 선두가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 친다. 여행객들 모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몇몇 파도를 즐기는 이도 있다. 물범 서식지라고 알려진 백령도 앞바다에서 물범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곳 물범은 5월 말에서 12월 초까지 서식하다 중국쪽으로 이동한다는 선장의 설명이다.

귀신은 어디에 있을까? 다음날, 해병부대를 방문했다. 군 관계자로부터 홍보 영상물을 통하여 해병대의 힘든 훈련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찡해옴을 느낀다.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멘트가 더욱 가슴을 울리게 한다. 국가 방호시설을 견학하면서 국가안보의 현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이 소중한 시간이었고, 경험이었다.

지금, 북녘의 바다는 너무나도 평온한데 왜 이런 긴장상태가 계속되어야만 할까?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 벌어진 서해교전이 기억에 떠올랐다. 젊은 장병들의 목숨을 버린 숭고한 정신을 기리지 않을 수 없어 잠시 묵념을 올렸다.

북한의 용연군 월래도와 직선거리는 11㎞. 통일이 되면 작은 통통배로서도 몇 십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지금으로서는 갈 수 없는 땅. 안갯속 희미하게 보이는 북녘의 땅을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잠겨 본다. 귀신 잡는 해병, 그 '귀신'은 아마도 북녘 땅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많은 인민들의 꿈을 좌절시키는 그 세력들이 아닐까? 통일이 되는 날, 귀신은 잡히리라.

▲ 멀어지는 섬, 백령도
2박 3일의 백령도 여행. 쉽지 않은 마음을 먹어야만 갈 수 있는 땅이다. 섬이란 고독과 해방을 동시에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홀로 외롭게 서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함께 받기도 하는 곳. 수많은 사람과 관계하고, 편한 물질문명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라면, 외로움의 세계에 발을 한번 들여 놓기를 권한다. 외롭고 두려운 만큼이나, 매력이 있는 공간, 바로 그것이 섬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 아닐까?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거제도 망산에서 봄을 출산하는 소리를 듣다

▲ 푸른 바다를 힘차게 나아가는 봄을 싣고 달리는 배
봄은 벌써 우리들 곁을 찾아 왔건만, 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 같다. 이상 기온 탓인지 지난 겨울 얼어붙어 있는 마음이 녹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봄이 출산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 무수한 자연의 무리들도 잉태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인간들에게 다가 간다.

▲ 저수지 같은 바다
지난 2월 말,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같이 할 육십 명의 낯선 사람들이 함께 모였다. 직장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몇 주나 몇 개월 동안의 교육훈련은 받아 본 경험이 있겠지만,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의 교육훈련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의 직장이 있고, 쉼터가 있는 거제도를 떠나 창원에서 합숙교육을 한지 보름여 기간 만에 낯선 사람들과 거제도로 여행. 망산에서 봄이 출산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 동행하는 감회가 남다르다.

▲ 거제도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 병대도
언제나 푸른 바다와 섬 그리고 통통배가 하얀 포말을 만들며 지나가는 아름다운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섬 거제도. 거제도의 산은 내륙의 그 어느 산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것은 아주 특별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거제도의 산은 거의 바다의 해수면에서 등산이 시작된다. 비교적 내륙의 산은 해발 몇 백 미터부터 시작되는 반면, 거제도의 산은 등산 시작점이 거의 해수면 가까이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해발 오백 미터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팔구백 정도의 높이가 된다. 또 하나의 매력은 산을 오를수록 푸른 바다를 조망하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내륙의 산과 다르다.

▲ 힘들게 동료를 따라가며,,,
거제도 남부면에 있는 망산, 해발 397미터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칠년 만에 산을 오르는 탓인지 숨이 가쁘고 다리에 힘이 빠져 더 오를 수가 없다. 동료들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숨은 헐떡거리면서 마음은 조급해진다. 칠년 전, 내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에 자괴감마저 든다. 왜? 삼십 후반부터 전국의 명산을 두루 섭렵할 정도로 산에 미쳐 있었고, 지리산은 집과 가까워 이웃집처럼 다녔으며, 천왕봉만 백회나 넘게 올랐던 터라 그런 마음은 더욱 더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제 체력이 다 했나, 건강에 문제가 있냐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외로움
숨은 차오르고 마음은 바쁜데 갈 길은 멀다. 동료들과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발길은 천금만금이다. 몇 번이나 헛발을 짚는다. 두 다리는 힘이 빠져 굳어지는데 여기서 멈출 수가 없다. 잠시, 내 등치보다 작은 나뭇가지에 등을 기대고 섰다. 내 자신이 한스럽다는 생각이 머리끝에 미치자 갑자기 눈물샘이 솟는다. 축축해 지는 눈가. 그리고 흐르는 물기. 갑자기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단편의 가슴 아픈 기억 하나. 지난 이십대 초반, 어린나이에 몸과 마음이 지치던 군 훈련병 시절, 훈련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쉴 때 흘렸던 그 눈물이 생각났다. 그러나 두 눈물의 느낌은 다르다. 군 시절 그때의 눈물은 부모님을 그리면서 흐르는 눈물이었고, 지금의 눈물은 내 자신의 나약한 모습이 짓누른 것이다.

▲ 오른쪽 중간에 길다랗게 보이는 섬, 장사도. 뱀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칠 부 능선에 오르니 쪽빛 바다색이 너무 찐하다. 그러나 하늘은 정반대로 희뿌옇다. 언제나 두 사물(事物)이 서로 마주하며 영겁의 세월을 같이 해야만 하는 존재인 하늘과 바다. 똑 같이 푸른색이지만 오늘 만큼은 하늘이 창백해 보인다.

▲ 거제의 바다
하얀 물살을 가르며 푸른 바다를 헤쳐 나가는 작은 배가 한 폭의 그림이다. 망산(望山)에는 그림 그릴 소재가 수두룩하다. 절벽을 이루는 큰 바위, 종말종말한 작은 섬, 호수같이 고요한 바다, 힘차게 오가는 어선 등 자연과 인간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 미련
지난 해 가을, 화려하게 치장하여 수많은 등산객들을 맞이했던 단풍나무는 내 어릴 적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처럼 힘이 없는 모습으로 외롭게 서 있다. 다른 나무들은 두터운 겨울 외투를 벗어 버리고 싱그러운 봄옷을 갈아입으려고 준비를 다한 상태지만, 단풍나무는 그렇지 못하다. 자신의 화려함에 취해 아직도 꿈을 못 깨고 있는지, 아니면 계절 감각을 잃어 버렸는지?

▲ 봄이 출산하는 소리
봄은 지난 해 잉태하여 막 출산준비를 다 마친 모양이다. 바위에 귀를 가까이 대어 본다. 물 흐르는 소리도 들리고 무언가 꿈틀거리는 소리도 사방에서 들려온다. 봄이 출산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벌써 와서 곁에 머물고 있었지만 내 자신만 몰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 봄의 하모니
봄은 내 마음속에 있었다. 이제는 내 마음속의 봄을 끄집어내 그 진한 향기를 느끼면서 취하고 싶다.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우리나라 최남단에서 최북단으로의 여행

삼년 전 여름휴가 때, 우리나라 지도를 펼쳐 놓고 동서남북 네 개의 꼭짓점을 연결하는 여행을 하고 싶어 집을 훌쩍 떠난 적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거제도를 출발하여 목포, 강화도, 고성군 통일전망대, 부산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전국일주 코스였다. 그런데 목포를 지나 강화도에서 서울을 거쳐 강원도로 향하는데 광복절 연휴를 맞아 피서 나온 차량으로 인하여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부득이 다른 길을 택하여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운무에 휩싸인 거제도 해금강(海金剛)
지난 5월말, 업무 차 강원도 고성으로의 긴 여행길에 올랐다. 문득, 3년 전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그 때의 아쉬움이 그렇도록 크게 남아서일까? 새벽 네 시, 밤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설 잠을 자고서 출장 가방을 들고 차에 올랐다. 주행거리를 알아보고자 거리 적산계를 제로에 맞추고 출발했다. 희뿌연 안개가 새벽마당에 내려앉고 도로는 축축하다. 먼 길을 가야한다는 생각에 조금 긴장된 기분이다. 마산에서 동료 세 명을 더 태우고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역시 여행길은 뽕짝음악이 최고인 것 같다. 혹시나 동승한 동료가 좋아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워 물어 보았으나, 속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다들 좋다고 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차도 덩달아 춤을 추는 것만 같다. 55번 고속국도변에 위치한 치악휴게소를 지나 오른쪽으로 치악산 주능선이 보인다.

젊은 나이, 힘들게 군 생활을 했던 수많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65번 고속국도 종점인 현남요금소를 나와 7번 국도로 접어드니 동해안의 푸른 바다가 반갑게 맞이한다. 장시간 운전으로 쌓인 피로가 풀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두 번의 휴식으로 일차 목적지인 속초에 도착했다. 600㎞에 여섯 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에는 주황색 지붕의 아름다운 집들이 그림처럼 보인다.
고성으로 향하는 길은 분위기부터 사뭇 달랐다. 26년 전 군 생활을 원주에서 근무했고, 당시 강원도 전역을 돌아다녀야만 하는 보직을 맡았기에, 동해안 바닷가로 펼쳐지는 풍광은 현대식 건물만 몇 개 달라 보였을 뿐, 그 옛날이나 별반 다름이 없어 보였다. 아직도 바닷가에 쳐져 있는 철조망은 그 옛날 그 모습 그대로 아무런 변화도 없이 동해안 바다를 감시하는 듯 하다.

동해안 해수욕장은 모래만 있는 게 아니다. 언제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했는지, 잘 생긴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풍치를 한층 더하고 있다. 아마도 몇 십 년이 지나면 아름드리 큰 소나무와 깨끗한 모래와 푸른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되어 동해안을 널리 알릴 것이 틀림없을 것만 같다. 분재로만 보아 오던 소나무의 고고함과 잘 생긴 모습은 동해안 도로변 산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 동해안 바닷가에 조성된 소나무 숲이 모내기 한 논 뒤쪽으로 보인다.

▲ 최북단 대진항.
통일전망대를 가기 위해 출입신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몇 분 지나자 ‘여기서부터 민통선입니다’라는 아치형 간판이 보인다. 헌병들이 검문하는 모습을 보니 느낌이 다르다. 신분을 확인하고 민통선을 통과하니 적막한 느낌과 함께 긴장감이 감도는 것 같다. 저 멀리 해안선 철책으로 군인들이 순찰을 돌고 있지만 바다는 평온한 모습이다. 민통선 안에서도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의 모습이 한가롭고 평화로워 보인다. 나만 긴장한 탓일까? 조금 더 지나니 남북교류사업의 일환인 철도건설 작업이 한창이다.

▲ 통일전망대로 향하는 도로에는 아직도 보안시설이 자리하고 있어 조국 분단의 아픔을 인식시켜주고 있다.
부산시 중구에서 함경북도 온성군 유덕면까지 이르는 7번국도. 남한의 길이만 하여도 505.9㎞로서, 북한까지 합치면 1200㎞가 넘는 우리나라에서 몇 번째 안에 드는 긴 도로이다. 도로의 약 90%를 동해안 바닷가를 조망하며 우리나라 최북단까지 이어지는 7번 국도의 마지막 지점. 차는 더 이상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갈 수 없다. 달리는 차도 없다. 더 이상 길 안내가 필요 없는 도로변에 홀로 서 있는 녹색표지판.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통일전망대의 낮과는 달리 밤새 북녘을 바라보며 홀로 서 있을 그 모습이 외로워 보인다.

▲ 7번국도 남한지역의 마지막 지점. 자동차는 언제쯤 북한의 종점까지 갈 수 있을까?
통일전망대, 조국 단절의 아픔을 기억하고 통일염원을 담은 곳으로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 해발 70미터 고지위에 있다. 일반여행객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대부분으로 대형버스가 주차장을 거의 차지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녘의 하늘과 땅과 바다. 모두 고요하다. 남한의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도 왜 다르게 보였고, 보일까? 자연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달라서일까? 혼란스런 마음으로 한 동안 북녘의 곳곳을 침묵으로 응시한 채 바라본다.

▲ 통일전망대. 오유월은 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북적인다.
해금강(海金剛), 바다의 금강산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 남해바다에 떠 있는 명승 2호 해금강과 북녘의 땅 동해바다 떠 있는 해금강.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불과 5㎞ 앞으로 펼쳐진 바다가 북한의 해금강이다. 푸른 바다가 닮았고,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모습이 흡사하다. 형제라고 이름을 붙여 줄까? 유람선을 타고 이름 모를 작은 섬을 돌며 해금강의 바닷물에 손을 적시면서, 바다 속을 구경하고 싶다.

▲ 북한의 해금강. 깨끗한 모래사장, 바다에서 수영을 할 수 있는 날이 언제나 올지?

▲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남한의 바다.
금강산을 육안으로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날은 1년에 고작 백일에 불과하다는 안내원의 설명이다. 행운인지, 금강산의 신선대와 옥녀봉 등 바다의 만물상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고 그 아래로는 조국분단의 아픔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철책선과 비무장지대, 금강산으로 가는 육로관광의 길을 볼 수 있어서 통일의 염원을 다시 한 번 새기게 한다. 아! 그리운 금강산이여! 언제쯤이나 아름다운 해금강과 금강산을 내 집 드나 들 듯 구경할 수 있을는지?

▲ 낮과 밤이 없이 북녘을 바라보며 무슨 염원을 빌고 있을까?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고현성 북문루 상량식 현장을 찾아서

급속하게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가 아쉬운 이 때, 고현성(경남 거제시 소재)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북문루’ 중수공사에 따른 상량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 현장을 찾았다. 대청마루에는 상량에 쓰일 목재와 간단한 제례음식이 차려져 있고, 흰색의 깨끗한 광목이 상량을 들어 올리도록 깔끔하게 묶여 있다.

▲ 마룻대에 쓰는 첫 글자, 용(龍)자.
상량식은 집을 지을 때 기둥위에 보를 얹고 마룻대를 올리는 것이다. 집을 다 짓고 난 다음 축연을 베푸는 준공식 이상의 의미를 가진 중요한 의식으로, 이날은 술, 떡, 돼지머리, 북어, 백지 그리고 실 등을 준비하여 주인과 목수 일꾼 등이 새로 짓는 집에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신(地神)과 택신(宅神)에게 제사지내고, 지나가는 행인을 초청하여 축연을 베푼다.

▲ 마룻대에 글씨를 새기고 있다(왼쪽), 교육청 공무원으로 퇴직한 윤종인 선생(84세).
상량기문은 정성스레 갈은 먹물을 듬뿍 묻혀 붓으로 쓰는데, 쓰기에 앞서 백묵으로 마룻대에 칠을 한 다음 쓰면, 먹물이 퍼지지 않아 선명한 글체를 볼 수 있다. 보통은 용(龍)자와 구(龜)자 사이에 모년 모월 모일 모시 입주상량(立柱上樑)이라고 쓰는데, 용자는 거꾸로 쓰서 구자와 마주보게 하며, 이때, ‘입주’를 빼고 쓰는 경우도 많다.

용(龍)자와 구(龜)자를 쓰는 것은 용과 거북이가 수신(水神)이므로 화재를 예방해 주리라는 속신에서 비롯된다. 그 다음 밑으로 두 줄로 '응천상지오광(應天上之五光), 비지상지오복(備地上之五福)'이란 글귀를 넣어 축원의 뜻을 담기도 한다. ‘오색 하늘빛이 감응하고, 오복을 땅이 준비하다’라는 뜻이다.

마룻대에 글씨를 다 쓰고 나면, 마룻대 앞으로 제상을 차리고 주인이 엎드려 제를 지내는데 이때 상량문을 크게 낭독한다. 상량문이 장문일수록 주인이 엎드려 있는 시간도 그 만큼 길어 벌(?) 아닌 벌을 받기도 한다.

▲ 거제향토사연구소 박병희 소장(81세)이 상량문을 낭독하고 있다.
상량문 낭독이 끝나면 주인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술을 따르고 절을 하면서 부귀공명을 기원하고, 술을 집 네 귀퉁이에 조금씩 부어 축원한다. 마룻대에는 실로서 북어와 떡을 묶어 놓는데, 이것은 나중에 목수와 인부들이 떼어 먹는다. 이어서 흰 광목으로 묶은 마룻대를 올리는데, 이때 목수나 주변의 사람들이 “잘 올라가지 않는다”라고 하면, 주인이 돈을 내 놓기도 한다. 이렇게 모인 돈은 공사인부들이 술 한 잔 하면서 이날 하루 쉬기도 한다.

▲ 주인이 술을 따르고 절을 한다.
▲ 마룻대를 올린 후 정리하고 있다.
상량문(上樑文)은 집을 짓게 된 경위나 사유 등을 기록한 문서로서, 한지에 한자를 많이 섞어 쓰는데, 흰 봉투나 대나무 통에 넣어 종도리에 홈을 파 따로 넣어 밀봉하고, 밀봉 후 ‘상량문재중’이라는 글씨를 써서 표시를 해 놓아둔다. 몇 백 년이 지나고 건물이 노후하여 중수 할 때 건축을 하게 된 역사를 알 수가 있다. 상량문이 명문이라면 나무판에 새겨서 대청 한쪽에 자랑스럽게 걸어 두기도 한다. 누구나 그 명문을 읽게 하려는 마음이 아닐까?

▲ 상량문(上樑文)을 봉함한 표시.
▲ 상량문(上樑文).
상량식을 다 마치고 나면 음복하고 떡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차츰 전통양식을 잃어가고 있는 요즘, 전통적 의식을 갖춘 상량식을 구경하는 것도 그리 쉽지 않다. 구세대라고 지칭 받는 나이지만, 관심이 없어서일까, 집안 제사상 차릴 때도 매번 책을 펴 놓고 볼 정도로 익숙하지 않을 정도다.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 배우기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고현성 북문루 상량문 전문이다.

고현성 북문루 상량문(古縣城 北門樓 上樑文)

고현성(古縣城)

경남 거제시 신현읍 고현리 951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 818m, 높이 2m, 폭 5.5m로서 면적은 10,971㎡이다. 1979년 5월 2일 경상남도기념물 제46호로 경상남도지정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고현성은 문종원년(1451년)에서 단종원년(1453년) 사이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며, 성곽의 형태와 구조는 계룡산 기슭의 동쪽으로 뻗은 설장대지 위에 평면의 선형으로 축조된 석축성으로 삼운옹성과 치·해자를 구비한 전형적인 조선전기 읍성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근역(槿域)의 사천여년(四千余年) 역사(歷史)와 더불어 우리시가 오늘에 이르기 까지 장구(長久)한 세월 역사(歲月 歷史)의 변천(變遷)과 변화무쌍(變化無雙)한 시대(時代)의 변화(變化)로 고을의 읍중(邑中)이었던 고현(古縣)은 근대사(近代史)에서 지방(地方)의 면소(面所)로 출장소(出張所)로 퇴락(頹落)하게 되었으나 광음여류(光陰如流)는 드디어 암흑(暗黑)의 시대(時代)는 가고 광명(光明)의 시대(時代)가 도래(到來) 민족(民族)의 염원(念願)인 해방(解放)의 환희(歡喜)를 맞이하였고 그리하여 통영군(統營郡)에 병합(倂合)되었던 군(郡)이 복군(復郡) 됨으로써 면(面)에서 읍(邑)으로 군청소재지(郡廳所在地)로 바뀌고 행정제도 개혁(行政制度 改革)에 의(依)하여 시(市)로 승격(昇格)함에 따라 급속(急速)한 발전(發展)으로 고을 중심도시(中心都市)의 면모(面貌)를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과정(過程)에서 고현성(古縣城) 역시(亦是) 온전(穩全)할 수가 없었다.

상고(詳考)해 보면 고현성(古縣城)은 조선왕조 문종 원년, 신미(朝鮮王朝 文宗 元年, 辛未)부터 단종 원년, 계유(端宗 元年, 癸酉)사이에 축조(築造) 되었고 둘레가 3038척 높이 13척의 석축성(石築城)이었다. 그 이래로 임진(壬辰)의 병화(兵禍)와 변전(變轉)하는 풍상(風霜)을 견디며 성곽(城郭)은 유지(維持)되어 왔으나, 1950년 6·25 사변(事變) 때 고현리(古縣里)를 비롯하여 문동리·상동리·장평리·양정리·수월리·연초면 임전지역(門東里·上東里·長坪里·良井里·水月里·延草面 荏田地域)의 전주민(全住民)을 미군(美軍)이 강제(强制)로 철거이주(撤去移住 )시키고 그곳에 유엔군 포로수용소(捕虜收容所)가 설치(設置)됨으로서, 현대식 중장비(現代式 重裝備)에 의(依)하여 향사(鄕史)에 빛나는 성곽(城郭)은 극심(極甚)하게 파괴(破壞)되었고 성지(城址)조차 찾아 볼 길이 없게 되었다.

1953년 휴전협정(休戰協定)으로 포로수용소(捕虜收容所)를 철수(撤收)함으로써 이주민(移住民)들이 속속복귀(續續復歸)하였고 토지구획정리(土地區劃整理)를 실시(實施) 농지기반조성 (農地基盤造成)과 아울러 도시계획(都市計劃)으로 시가지(市街地)를 정비(整備)하니 시(市)의 중심도시(中心都市)로 발전(發展)하였으나 많은 시민(市民)들은 고현성(古縣城)이 형지(形址)도 없이 살아지게 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며 그 일부(一部)나마 복원(復元)을 갈망(渴望)하는 시민(市民)의 여론(與論)이 날로 비등(沸騰)하는 실정(實情)이다.
문화유산(文化遺産)은 인류(人類)의 보편적 가치(普遍的 價値)로서 옛 선철(先哲)은 문화유산(文化遺産)이 없는 고을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沙漠)과 같다고 하였다.

우리 고을은 지리적(地理的)으로 해중(海中)의 도서(島嶼)로서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문화(文化)가 매우 낙후(落後)되어 후진(後進)을 면(免)치 못하였다. 그러나 양대조선소(兩大造船所)의 성업(盛業)으로 근대산업(近代産業)의 발달(發達)로 인구(人口)의 증가(增加)와 육지(陸地)와의 교통망(交通網)은 도서(島嶼)라는 편견(偏見)을 불식(拂拭)하게 되었고, 나아가 문화(文化)에 대한 시민(市民)의 정서(情緖)가 새롭게 일어나고 누문(樓門)을 복원(復元)하자는 공론(公論)의 일치(一致)로 김한겸 시장(金汗謙 市長)은 도비지원(道費支援)과 시비(市費)를 확보 길일양신(確保 吉日良辰)에 새 터에다 누각(樓閣)을 세우니 신명(神明)의 보우(保佑)련가 어느 듯 모든 공역(工役)이 끝나 윤환(輪奐)이 빛나며 뜻이 있는 이는 마침내 일이 이루어진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유산(文化遺産)이 점차(漸次)로 많이 보존(保存)되어 있어야 유서(由緖) 깊은 고읍(古邑)으로서 명승지(名勝地)가 될 것이다.

이제 긴 대들보를 들어 감(敢)히 칭송(稱頌)하는 글을 올리고자 한다.
어기여차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
대명의리(大明義理) 붉은 해가 동방(東方)에 떠오르니 소소(昭昭)한 이 속에 천기(天機)가 있으니 그 뜨고 잠김에 일리(一理)가 같다.

어기여차 들보를 서(西)쪽으로 던지니
회진(灰塵) 옛 마을 하늘의 문성(文星)과 응(應)했도다. 때를 위(爲)해 문명(文明)의 상징(象 徵) 나타났으니 많은 현인(賢人) 일어 나 시민대중 계발(市民大衆 啓發)하리

어기여차 들보를 남(南)쪽으로 던지니
가라산(加羅山)에 상서(祥瑞)로운 운하(雲霞)가 끼었다 바라보니 뭇 봉우리가 그림같이 아 름답고 하늘빛 구름 빛이 이 속에 잠겨있다.

어기여차 대들보를 북(北)쪽으로 던져보니
계룡산(鷄龍山)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여맥(餘脈)인 우리고을 진산(鎭山)이라 상운(詳雲) 이 창망(滄茫)한 빛을 가리었네.
칠요(七曜)가 분명(分明) 그 사이에 개재하고 뭇 별이 낱낱이 북극(北極)에 귀향(歸向)하리.

어기여차 대들보를 위로 던져보니
넓고 큰 하늘에 삼광(三光)이 밝았구나. 찌꺼기 모두 씻고 서로가 융화(融和)하면 이 고장 의 시민(市民)들 마음도 저와 같이 높고 밝으리라.

어기여차 대들보를 아래로 던져보니
저 아래 고현천(古縣川) 흐른 물 쉬지 않고 줄줄 근원(根源)이 있어 끝없이 이어가니 쉴 새 없이 순화(醇化)를 일으킨다.

엎드려 원하노니 상량(上樑)한 뒤에 산수(山水)는 맑은 기운(氣運)을 도와주고 음침(陰沈)한 음기(陰氣) 사라지고 완고(頑固)한 사람 청렴(淸廉)해지게 하소서 삼가 의리(義理)와 이익 (利益)에는 취(取)하고 버리는 것을 반드시 밝게 살피며 부정(不正)과 정의(正義)는 옳고 그 름으로 밝히게 하소서

西紀 二千六年 五月 十八日

晩仁 朴丙熙 撰
素庭 尹鍾潾 書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8일까지 열린 지리산 한방 약초축제

여행을 하면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꼭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이 한 군데 있다. 야생화를 볼 수 있는 곳.

야생화를 볼 수 있다면 널찍한 공원이든, 아담하게 꾸민 도로변 화원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저 야생화 향기가 좋아서, 앙증맞은 모습으로 폼을 내는 자태가 좋아서, 좁은 공간이지만 하나 구입하여 키우면서 꽃을 피우는 동안 즐거움을 맛볼 수 있어서이다.

▲ 나이 든 할미꽃. 어버이날을 맞아 일흔네 살 어머니 모습처럼 보인다.
7일, 야생화를 좋아하는 내게 기쁜 소식이 하나 있어 집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야생화와 한방 약재와의 만남, 건강을 위한 한약재도 사고 야생화도 구경할 겸 산청으로의 여행길에 올랐다. '지리산 한방 약초축제'에 가기 위해서다.

35번 고속국도를 타고 산청 IC를 빠져 나오면, 왼쪽 방향으로 약 5백 미터 지점에 산청군 종합운동장이 나온다. 휴일이자 3일간의 연휴 마지막 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축제장까지는 차량 진입이 어려울 정도여서 군청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10분 거리를 걸어서 가기로 했다.

▲ 경호교 난간위로 조성된 꽃밭 아래로 엊그제 내린 비로 흙탕물이 경호강을 따라 흐른다.
군청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좌측으로 경호강이 흐른다. 제법 높이가 만만찮은 강 언덕에 나무로 만든 산책로가 나온다. 봄기운에 딱 맞아떨어지는 색칠을 한 나무다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있어 걷는 기분이 최고다.

주변으로는 형형색색 봄에 피는 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강물은 어제(6일) 내린 비로 인하여 아직도 흙탕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보러 왔지만, 이 좋은 산책로를 걸어보지도, 구경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고야 말 것이다. 너무나도 운치 있게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걸어가 보면 마음이 행복한 것을, 왜 많은 사람들은 행사장 입구까지 차를 타고 가야만 할까. 이런 생각을 하니 절로 행복이 찾아오는 것만 같다.

▲ 봄기운에 알맞게 색칠한 나무로 된 산책로. 오른쪽으로 경호강을 보면서 걷는 기분이 최고다. 발이 참으로 편하다.
축제장 입구부터 수많은 인파가 붐볐다. 야생화와 한약재를 홍보하고 판매하는 각 코너에는 발을 들여놓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귀가 시끄러울 정도로 크게 틀어놓은, 축제장에 빼 놓을 수 없는 뽕짝음악이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든다.

▲ 들꽃과 약초가 함께한 축제장에 모인 사람들.
약초골 산청(山淸)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높이를 가진 지리산(智異山, 해발 1915.4m)이 소재하는 곳이다. 최고봉인 천왕봉은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산 208번지로서 산청군에 소속되어 있으며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지리산은 반달곰을 방사할 정도로 산림이 울창하고 다양한 식물의 종이 분포하며 특히 수 백여 가지의 약초가 자생하는 지역이다. 이곳에서 나는 한약재는 전국 최고로 손꼽힐 정도다.

‘불노장생(不老長生) 꿈을 여는 산청’이라는 슬로건으로 올 해 여섯 번째 개최하는 '지리산 한방 약초축제'는 류의태, 허준 상(常) 시상을 시작으로 약초 화분 체험, 한방 무료진료, 한방약 처방, 수지침 강좌와 무료체험 등 총 50여개의 체험 및 단위행사가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5일간 군 일원에서 열려 관광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 산청종합운동장 축제행사장의 불로장생문(不老長生門).
이 축제의 최고 정점은 ‘한방약초 웰빙요리 경연대회’. 지난해에 이어 올 해 두 번째로 열리는 이 대회는 학생부와 일반부로 나누어 총 57개 팀이 참가하여 경연을 펼쳤다.

산청군 금서면 매촌 마을(면소재지)에서 삼거리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권일점 여사. 지난해 일반부에 참가하여 동상을 받았고, 올 해 다시 금상에 도전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면서 ‘다슬기 약수탕수’라는 요리를 만드는데 손놀림이 분주하다.

다슬기나 재첩 등 푸른 국물을 내는 패류는 간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이 고향인 권 여사는 지난 1988년부터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웰빙 다슬기 정식, 다슬기 회 무침, 다슬기 탕, 메기 찜, 피리 조림 등 주로 한약재를 이용한 건강음식을 만들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서울 등 도심에서도 고정 손님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 지난해 요리경연대회에서 동상을 받은 권일점 여사. 올 해는 금상을 목표로 요리를 하는 중 심사관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산청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전시행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몰려 웅성거린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사람들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고 보니 ‘장뇌삼’이 전시돼 있다. 토종옹기에 심겨 있는 장뇌삼은 난생 처음 보는 것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 뿌리 사서 집에서 키우면서 매일아침 잎사귀에 물 뿌림 하면서 감상하면 산삼 한 뿌리 사서 먹는 것 보다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쉽게도 판매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파트에서는 키우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 장뇌삼. 한 뿌리 집에서 키우면서 매일 감상하고 싶은 욕심이다.
구경도 맘껏 하고, 약재도 몇 종류 샀다. 한약재 끓여 먹고 얼마나 더 건강해 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건강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산청군 약초 연구회가 제공한 자료에 의하여 약초탕 몇 가지를 소개한다.

사물탕은 혈허증과 혈병에 두루 사용하며 월경불순, 갱년기장애, 임신중독, 산후증, 빈혈 등에 두루 쓰이며 당귀, 숙지황, 천궁, 작약을 4g씩 16g을 400㏄ 정도 다려서 아침저녁으로 100㏄ 복용한다. 총명탕은 원활한 혈액순환과 기의 흐름을 돕고, 머리를 맑게 하는 것으로 백복신, 석창포, 원지를 각 20g씩 물 600㏄에 넣고 물이 반으로 줄 때까지 약 1시간 달인 후 찌꺼기는 걸러내고 하루 세 번씩 나누어 복용한다.

당귀차는 부인의 냉증, 혈색불량, 산후회복, 월경불순에 좋으며 오랫동안 먹으면 손발이 찬 증상이 개선된다. 당귀 10g을 물 300~500㎖에 넣어 끓이는데, 끓기 시작하면 은근한 불로 낮추어 오랫동안 달인다.

▲ 재래식 아궁이에 한약을 달이는 여인들.
같은 사물을 놓고도 보는 이들의 평가가 제각각 다르다. 축제장을 둘러보고 사진 찍는 데만 세 시간이 훨씬 넘었다. 야생화에 관심이 많은 터라 내게는 대단한 볼거리로 기억에 남았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라면 재미도 있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를 것이리라. 군(郡)에서는 이 축제를 문화관광부 선정축제로 지정받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한다.

▲ 야생화 은방울꽃. 사랑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여행에 있어 먹을거리는 필수. 구경을 하다 보니 점심시간을 넘겨 오후 두시가 훌쩍 넘었다. 시계를 보니 배고픔이 갑자기 더욱 심하게 느껴진다. 축제장을 빠져 나와 은어회를 맛보기로 하고 35번 국도를 따라 진주방향으로 신안면 원지마을로 이동했다.

▲ 적지 않게 내린 봄비로 강물은 불어 남강으로 흐르고 있다.
지리산 계곡 각 지선에서 흘러내린 물은 경호강을 거쳐 남강으로 이어진다. 경호강 맑은 물에서 자란 은어는 7~8월이면 수박 향기를 내뿜으며 식도락가들에게 최고의 맛을 제공한다.

아직 수박향기는 나지 않았지만, 시장기가 곧 맛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순식간에 회 한 접시를 비웠다. 배가 부르니 몸은 무거운데 마음만은 가볍다.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거제 '도장포 마을' 바람의 언덕을 찾아서

바람의 언덕, 영국의 여류작가 ‘에밀리 브론테’가 지은 ‘폭풍의 언덕’을 연상케 하지만 소설속의 배경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소설에서는 숨 막히게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하늘과 땅이 맞닿는 음산하고도 추운 겨울 폭풍의 언덕을 배경으로, 복수와 증오로 변하는 인간의 사랑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거제 도장포마을 ‘바람의 언덕’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야트막하게 생긴 작은 언덕에 봄기운이 잔디밭에 가득 내려앉고, 물안개 피어나는 모습에서 바람의 형체를 볼 수 있는 순수한 인간적 사랑을 만드는 장소로 그 느낌부터가 다르다.

▲ 바람의 언덕을 오르는 나무로 된 계단이 운치를 더한다.
거제대교를 넘어 국도 14호선을 따라가다 거제시 사등면 사곡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거제면과 동부면을 지나면 학동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를 감상하면서, 해금강 입구 도장포마을에 도착하면, 푸른 잔디가 있는 작은 언덕이 보인다. 이 곳이 여행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바람의 언덕’이다.

▲ 도장포마을. 주인을 떠나보낸 의자가 외로워 보인다.
바람의 형체는 어떤 모습일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바람의 모습을 찾아 ‘바람의 언덕’을 찾아 나섰다. 나처럼 바람의 모습을 찾아 왔는지는 몰라도 언덕배기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있다. 이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언덕을 지키고 서 있던, 고고한 자태를 한 소나무는 바다에서 불어 닥치는 바람의 힘에 못 이겨 가지가 잘려 나가고 뿌리도 파 헤쳐져 이제는 그 흔적을 볼 수가 없다. 이만여 평의 잔디밭은 여행객들에게 편안한 자리가 되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 바람의 언덕. 그림 같은 풍경이다.
예전에는 이 곳을 잔디가 많이 심겨져 있는 밭이라는 뜻으로 ‘띠밭늘’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1년경부터 누군가에 의해 ‘바람의 언덕’이라 명명되어, 지금은 이름에 걸맞는 모습으로 많은 여행객들로부터 한번쯤 찾아보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거제도에 있어 또 하나의 명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 바람의 언덕 아래쪽에 있는 등대. 하얀색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다.
푸른 잔디가 있는 바람의 언덕에 오르면 시원하게 펼쳐진 쪽빛 바다와 하얀 파도를 가르며 지나가는 작은 어선을 보노라면 여행의 참 맛을 느끼게 한다. 지난 2003년도, 모 방송사의 아침드라마 <이브의 화원>과 수목드라마 <회전목마>를 촬영했던 곳으로, 언덕을 배경으로 누구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좋다. 실제로 많은 여행객들이 추억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고, 결혼식을 마친 젊은 한 쌍의 부부는 인생의 설계도를 그리며 멋진 포즈로 사진 담기에 황홀한 모습이다.

▲ 드라마의 한 장면이 아닌, 바람의 언덕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실제 웨딩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도장포마을은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여인의 잘록한 허리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바람의 언덕 반대 방향으로는 신선대가 있다. 신선대 바로 옆으로는 선비의 기풍을 상징하는 갓 모양을 한 갓 바위가 천년 세월에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3백여 평의 넓적한 바위의 바닥에는 신선이 내려 앉아 유흥을 즐겼을 것 같아 보인다. 일찍이 이태백이 갓바위의 모습을 보았더라면 갓을 벗어 놓고 신선대에 앉아 불로주에 흠뻑 취해 자연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가 선유별곡에 발길을 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신선대. 3백여 평의 넓적한 바위다.
저 멀리 먼 바다에서 선들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이 눈에 보인다. 드디어 하얀색 바람의 형체를 보았다. 손에 잡아 보기도 했다. 피부에 닿는 감촉이 거칠다. 염분이 섞인 바닷바람이라서 그럴까? 그래도 좋다. 많은 사람들이 바람을 즐기고 있다. 바람은 언덕을 타고 넘는다. 언덕을 넘자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여름철에 부는 태풍과 겨울철에 부는 거친 바람과는 질이 다르다. 태풍처럼 거칠게 부는 바람을 그 누가 좋아하겠는가? 5월과 6월사이 도장포마을에 부는 바람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바람이다. 하얀 바람 속에 희미하게 나타나는 바위의 모습이 경이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 신선대. 우뚝 솟은 봉오리가 갓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갓 바위이라 부른다.
신선대 옆 바닷가, 몽돌 구르는 소리가 발걸음을 돌려 해안가로 내려가게 한다. 활시위처럼 곡선이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무수히 많은 작은 몽돌이 파도에 밀려왔다 밀려가면서 내는 아름다운 소리다. 몽돌 구르는 소리는 문화관광부에서 ‘한국의 소리’ 100선에 선정된 자연의 소리다. 녹음 기술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직접 듣는 자연의 소리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세월을 그렇게 비비면서 닳고 닳아 왔으면 흑진주보다도 더 아름다울까?

▲ 바람의 모습. 몽돌 구르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바람의 모습도 보고 몽돌 구르는 소리도 들은 하루였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해금강 입구 도장포마을. 알짜배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면, 나름의 여행철학이 있다는 점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유명한 곳보다는 이름은 덜 알려졌지만, 오랜 시간 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여행지를 선택하여 시간적 여유를 즐기는 그런 여행이 아닐까?

▲ 박윤주(7세), 영주(6세) 자매의 해맑은 모습. 천안에서 아빠 엄마랑 거제도에 살고 계시는 외할머니댁에 왔다가 바람의 언덕을 찾았다고 한다.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만개한 튤립, 시원한 바다... 하룻밤 민박 인연이 만든 아름다운 섬
▲ 분홍색 튤립.
"언니야, 여~어가(여기가) 천국 맞제(맞지)?"
"그래, 진짜로 천국이네."

붉게 핀 튤립 사진을 찍느라 허리를 숙인 채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등 뒤에서 할머니들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뒤돌아보고 나서 60대로 보이는 자매의 대화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할머니의 대화처럼 지금 외도는 꽃이 핀 천국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4월부터 6월까지 외도는 꽃이 만발한 천국입니다. 천국이 어떤 모습인지 직접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천국이 있다면 지금 외도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 오렌지색 후리텔라리오.
유람선에서 내려 스페인풍 건물인 정문이자 매표소를 지나면, 고목으로 만든 외도(外島)라는 표지판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양쪽에 아름다운 모양으로 조성된 수목을 보면 여기에 얼마나 많은 열정이 들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짐작이 가고 남을 정도입니다. 금빛보다도 더 진한 황금색의 황금사철나무를 지나면 작은 분수대에서 솟아오르는 물줄기가 시원한 모습으로 더위를 식혀줍니다. 이 분수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무척이나 많습니다. 역시, 여행은 사진밖에 남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생각이 들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 황금사철나무와 분수대. 많은 사람들이 추억의 장소로 기억하고 싶어 합니다.
비너스 가든에 올라서면 거제도의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하얀 유럽풍의 조각상에 시선이 이끌리고 사이사이로 심겨진 형형색색의 튤립에 정신을 잃고 맙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어떤 여행객은 비명을 지르기도 합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인간이 제 아무리 색을 재현한다고 해도 자연색만큼 색상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 붉은색 튤립.
튤립은 그 종류도 다양해 60가지가 넘습니다. 수십 종의 튤립과 봄꽃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봄철에 이 꽃을 보기 위해 얼마나 많이 모여드는지, 사람들에 떠밀려 갈 지경입니다. 꽃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가볍게 산책하듯 무작정 걸어가노라면 자연의 향기에 취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반해 시 한 수 읊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 튤립이 하늘을 향해 잎을 벌리고 있다.
천국의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저 멀리 구름 속에 노니는 것 같은 명승 2호 해금강이 보입니다. 신선이 구름을 타고 유람하는 모습입니다. 열대식물이 많은 외도, 쭉쭉 뻗은 선인장의 끝이 하늘을 찌르는 것만 같습니다.

▲ 다양한 종류의 튤립이 외도에 피어 있다.
섬을 한 바퀴 돌며 식물원을 관람하는 데 한 시간 반 정도면 충분합니다. 유람선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목 벼랑에는 외관이 아주 좋은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1층은 기념관으로 외도 개발 과정에 관한 여러 가지 자료들을 전시해 놓아 외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입니다. 2층은 거제도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돌아가는 유람선을 타기 전 잠시 시간을 내어 이곳에서 여행에 대한 명상에 잠기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섬, 바다, 그리고 꽃
외도의 남쪽은 대한해협을 지나 망망대해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여름철이면 무서운 태풍이 거제도를 강타하며 사람과 자연에 큰 피해를 주곤 합니다. 외도도 태풍의 예외일 수는 없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큰 피해도 여러 번 입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방관만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인간승리를 보여준 설립자의 정신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겉모습의 외도도 아름답지만, 설립자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외도의 내적인 모습도 배울 게 많기에 여행객들이 외도를 더욱 사랑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 비너스 가든의 조각상과 튤립.
외도는 8백여 종의 꽃과 2백여 종의 나무가 잘 어우러진 식물원으로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규모가 큽니다. 지난 2003년 타계한 고 이창호(李昌浩) 회장이 1969년 낚시하러 왔다가 태풍을 만나 우연히 이 섬에서 하룻밤 민박한 것이 인연이 되어, 전기와 전화는 물론 선착장 하나 없던 섬에서 30여년에 걸쳐 삽과 괭이로 땅을 갈아 만든 인간승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꽃이 만발한 외도 공원.
외도를 만들고 사랑한 사람, 고 이창호 회장, 그리고 그 영혼을 이어받은 아내인 최호숙씨. 아름다운 여인 최호숙씨가 고 이 회장 타계 3주기를 맞아 남편을 추모하며 쓴 글이 그가 아끼고 사랑했던 외도 한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많은 여행객들이 발길을 잠시 멈추고 숙연한 모습으로 비에 새겨진 추모의 글을 읽어봅니다.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그리워하는 우리를 여기에 남겨 두시고
그리움의 저편으로 가신 당신이지만
우리는 당신을 임이라 부르렵니다.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이지만
나와 함께 가자는 말씀도 없이 왜 그리도 급히 떠나셨습니까.

임께서는 가파른 외도에 땀을 쏟아 거름이 되게 하시었고
애정을 심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지게 하시었으며
거칠은 숨결을 바람에 섞으시며 풀잎에도 꽃잎에도 기도하셨습니다.

더 하고픈 말씀은 침묵 속에 남겨두시고 주님의 품으로 가시었으니
임은 울지 않는데도 우리는 울고 있고
임은 아파하지 않는데도 우리는 아파하며
임의 뒷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임이시여. 이창호 씨여
임께서 못 다하신 일들은 우리들이 할 것으로 믿으시고
주님의 품에 고이 잠드소서.

이제 모든 걱정을 뒤로 하신 임이시여.
임은 내 곁에 오실 수 없어도
내가 그대 곁으로 가는 일이 남아 있으니
나와 함께 쉬게 될 그날까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주안에서 편히 쉬세요.

2003년 3월 1일. 하늘나라에 가시다.
부인 최호숙 드림


▲ 외도(外島)의 설립자 고 이창호(李昌浩) 전 회장 추모비.
거제도에는 장승포·와현·구조라·학동·도장포·해금강 등 6개의 유람선사가 있습니다. 이달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 동안 거제도 일원에서 제45회 경상남도 도민 체육대회가 열립니다. 거제시는 이 기간에 거제도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더 친절한 모습을 보이고자, 외도·해금강을 관광하는 유람선 요금을 평소보다 3천원 내리기로 결정하고, 손님을 맞이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또한 외도(외도 보타니아)에서도 입장료를 1천원 내려 외도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합니다.

꽃이 만발한 이 계절, 한 번 짬을 내어 거제도를 여행하면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당신은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름에서 정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름은 불러만 봐도 목이 메이는 것만 같고, 어떤 이름은 들어만 봐도 눈물이 왈칵 쏟아 질 것만 같은 정겨운 이름이 있습니다. ‘하동(河東)’이라는 이름이 그런 느낌을 줍니다. 자신이 태어난 고장이 아름답고 자랑스럽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다마는 내게 있어서 경남 하동은 어머니 품 같이 포근하고 사랑스런 고장입니다. 군 근무시절 첫 휴가 나와 힘차게 거수경례를 하며 어머니를 보았을 때, 가슴 찡하고 눈물이 날 것만 같은데도 억지로 참았던 기억과도 같은 그런 느낌이기도 합니다.

▲ 어머니 젖줄 같고, 어머니 품 같이 포근한 섬진강.
그저 하동이 좋아 일년에도 몇 번을 갑니다. 하동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하동에 살고 있는 사람보다 하동을 더 많이 안다고 자랑을 하다 '구살머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만큼 자랑스럽고 좋다는 말입니다. 남해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읍내로 가는 길목 삼거리 공한지에는 하동을 대표하는 관광안내 표지판이 몇 개가 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제 눈을 사로잡고야 맙니다. ‘당신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에서)’라는 표지판입니다. 차량이 신호등에 의해 정지된 경우가 아니라면 많은 운전자들이 그냥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 당신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에서)
전국에는 아름다운 드라이브코스가 많이 있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하동포구에서 섬진강을 따라 구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19번 국도, 천혜의 자연절경과 쪽빛바다,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굽이굽이 도는 칠백리 해안선을 자랑하는, 거제도 장승포에서 해금강까지 이어지는 14번 국도, 북한강 푸른 강줄기를 옆에 두고 46번 국도를 따라가다 의암댐에서 다시 403번 지방도로 이어지는 강변도로가 제일 아름답다는 생각입니다. 이 세 군데 드라이브코스 중 어느 곳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혹여, 이 기사를 접하고 필자가 언급한 곳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고도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구례까지 43㎞가 남았습니다.
삼거리를 지나니 구례까지 43k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옵니다. 길옆으로는 하동의 자랑인 배 밭이 보입니다. 배꽃이 흰눈처럼 쌓여 있습니다. 바람이 부니 배꽃 잎이 날려 갑니다. 올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 줄 것만 같습니다.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국도 주변으로 식재된 벚꽃나무 터널입니다. 운전자에게 즐거움을 더해 주기 때문입니다. 4월초, 잎보다 먼저 활짝 폈던 벚꽃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는 푸른 녹음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 시원한 모습이다. 강과 도로가 나란히 어깨동무하며 구례 쪽으로 가고 있다.
하동은 영화, 드라마, CF 촬영지로 유명합니다. 영화로는 피아골(1995), 역마(1967), 청춘(2000), 취화선(2002) 등이 있고, 드라마는 허준(1999∼2000), 토지(2003∼2005), 태양은 가득히(2000) 등이 있어 여행객들의 발길을 잠시 머물게 합니다.

▲ 섬진강 둑에 지천으로 피어 난 제비꽃. 너무나도 아름답다.
악양면 평사리는 들판 가득 녹색 보리밭의 푸른 물결이 출렁거립니다. 동학혁명에서 해방에 이르기까지 이 곳을 무대로 한 한민족의 대서사시, 박경리 원작의 ‘토지’의 주무대입니다. 차에서 내려 소설속의 무대로 잠시 빨려 들어 가 봅니다.

“길상아, 난 다 버릴 것이다. 양반으로서의 체면도 여자로서 굴레도, 그리고 반드시 돌아와 저 땅을 다시 찾고 말 것이다.” 한 여인의 한 맺힌 집념과 한을 엿 볼 수 있는 드라마 ‘토지’ 대사의 일부분입니다.

겨우내 추위로 땅에 짝 달라붙어 있던 보리는 어느새 작은아이의 키만큼 훌쩍 자라 버렸습니다. 오월이 되면 그 싱그러운 푸르름은 절정에 이를 것입니다. 넓은 들판 뒤로는 ‘최 참판댁’이 보입니다.

▲ 악양면 평사리 들판. 좌측으로 보이는 마을이 드라마 ‘토지’의 주무대인 최참판댁이 있는 곳이다.
지리산 자락의 수많은 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은 어머니 품으로 모여듭니다. 명절마다 형제들이 큰집으로 모이는 것과 같다는 느낌입니다. 오후의 햇살을 받은 강물은 은색으로 빛이 반짝거립니다. 강가에서 두 남자가 낚시를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브래드 피트가 열연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가 오버랩 됩니다.

무릎까지 찬 강물에 중심을 잡기도 어려운 자세로 플라이 낚싯줄을 던지는 모습과 햇살을 받은 낚싯줄이 춤을 추듯 날아가는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숨 가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잠시 동안이나마 자연을 벗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복되고 풍요로운 생활인지 일깨워 주는 영화라서 그런지 더욱 그런 생각이 사무칩니다. 참으로 서정적인 모습입니다.

▲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낚시장면과 서정적인 모습이 너무나 흡사하다.
자동차는 경상도를 넘어 전라도 땅에 접어듭니다. 구례읍으로 가다 토지면 구례동중학교 입구 도로 이정표에 표시된 사성암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간전교를 지나 섬진강을 건넜습니다. 다시 우회전하여 충실하게도 도로표지판의 지시에 따라 갔는데 안내표지판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한참이나 갔던 길을 되돌아와 다시 찾아갔건만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 4월의 섬진강은 푸르름을 더해만 가고 있다. 이쪽은 경상도요, 저쪽은 전라도라.
아쉬운 마음으로 광양방향으로 차를 돌려야만 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섬진강 반대편 전라도 땅입니다. 섬진강 좌우의 도로에는 ‘전망 좋은 곳’이라는 표지판이 여러 군데 서 있습니다. 작은 주차장도 있어 잠시 차에서 내려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강물 속에 빠져버린 자신의 모습도 감상할 수 있어 좋습니다. 여름철이었다면 강물에 발을 담그고 물놀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 벚꽃나무 가로수 길. 4월초에 핀 벚꽃은 사라져 버렸다.
광양 매화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작지만 한국의 미가 흠뻑 넘치는 정자에 올라 푸른 강줄기를 내려다봅니다. 모래사장에는 주인을 어디로 보냈는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어선 몇 척이 있습니다. 조금 외로워 보입니다.

▲ 休息(휴식).
섬진강 다리를 건너 다시 하동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재첩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고전면 선소리 신방촌마을 식당이 즐비한 주변 공터에는 섬진강에서 잡은 재첩과 가리맛조개를 파는 할머니들의 부산함이 즐거워 보입니다. 2만원을 주고 재첩과 조개를 샀습니다.

한 대야가 훌쩍 넘는 엄청 많은 양입니다. 중국산 아니냐고 슬쩍 농담조로 물으니 아니라고 손사래를 칩니다. 저녁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와 함께 재첩국은 끓이고 조개는 숯불에 구워 먹었습니다. 4월의 셋째 주 일요일(4월 16일)은 섬진강 물줄기와 며칠만에 보는 어머니와 시원한 국물 맛에 흠뻑 취하고 빠졌습니다.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4월 27일 ~ 30일까지 유람선 3천원, 외도입장료 1천원 인하

거제시는 오는 4월 27일부터 30일까지 4일간 시 일원에서 열리는 제45회 경상남도민체육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단, 가족, 관광객 그리고 시민을 대상으로 '관광거제'의 이미지를 바꾸는데 주력하고 있다.

시는 외도·해금강을 운항하는 6개 관광 유람선사들이 도민체전 기간 중에 거제를 찾는 외래객과 시민들에게 유람선요금 3천원을 인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외도입장료는 어른 5천원에서 4천원으로, 청소년(중·고생·정복군인)은 4천원에서 3천원으로 1천원씩, 어린이는 2천5백 원에서 2천원으로 5백 원 각각 인하 하기로 했다.

또한 지난 4월초에는 유흥업소, 일반음식점, 숙박업소, 유람선업소 대표 및 종사자 2천3백여 명을 대상으로 위생 및 친절교육 실시를 통해 관광객들에게 보다 친절한 모습을 보여 주도록 당부한 바 있다. 이와 함께 고성 공룡엑스포 행사장에서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