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관음사에 복이 내리려나?
  
▲ 우담바라 대세지보살상 상호에 핀 세 송이의 우담바라.
우담바라

불가에서 전래돼 오는 이야기로 3천년에 한번씩 핀다는 우담바라(Udumbara, 優曇婆羅). 불교 경전에 나오는 꽃이다. 3천년 마다 한 번, 여래가 태어날 때나, 전륜성왕이 나타날 때만, 그 복덕으로 말미암아 피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꽃이 거제지역 작은 암자에 피어 있어 불자들 사이에 이야기꽃이 되고 있다. 

거제시 남부면 다포리에 소재한 관음사. 남부면사무소에서 해금강 방향으로 약 1㎞ 지점 도로변에 위치해 있는 작은 암자다. 지난 11월 15일, 관음사 개축 공사로 법당에 있는 대세지보살상을 임시 법당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 절 주지인 삼현스님이 발견한 것. 1㎝ 정도 길이에 3개가 보살님 상호 턱에 피어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소문을 들은 관심 있는 불자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는 탓에, 지금은 우담바라가 손상되지 않게 유리 상자에 씌워 관리 중이다. 

  
▲ 관음사 관음사 개축공사로 대세지보살상을 옮겨 놓은 임시법당.
관음사

선문에 '꽃을 집어 들고 미소 짓는다'라는 말이 있다.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법을 설할 때, 꽃 한그루를 집어 들고 있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많은 제자와 신도들이 첫 가르침 한 말씀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중 유일하게 수제자인 가섭만이 꽃을 집어 든 뜻을 알아차리고 미소 지었다. 이에 "그대만이 내 마음을 터득했노라. 나의 법문을 그대에게 물리겠노라"고 했다. 이 선문에서 나오는 꽃이 이심전심의 꽃인 연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불경에는 우담바라 꽃으로 돼 있다고 한다. 

불교 경전인 무량수경에, 우담바라가 사람 눈에 띄는 것은 상서로운 일이 생길 징조라고 한다. 우담바라는 부처님을 뜻하는 상상의 꽃이라 일컬어지며, 아주 드문 일이 생길 때를 비유한다고도 한다. 

  
▲ 우담바라 우담바라 세 송이가 피어있는 대세지보살상
대세지보살

그래서일까. 관음사에 드문 일이 생긴 것이다. 우담바라가 핀 이 암자는 1백 년 전, 지금의 터에서 산 위쪽 한참이나 높은데 있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 청룡사로 불렸던 이 암자는, 산 속 깊은 곳이라 도둑이 많이 들어서, 산 아래쪽으로 위치를 옮기게 되었단다. 이전하면서 영주암이라 불렸고, 약 25년 전부터는 관음사로 이름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다. 내년 2월 준공 예정으로, 현재 65㎡ 규모의 극락전을 새로 짓고 있다. 극락전에는 아미타부처님을 주 불전으로 대세지보살님과 관음보살님을 협시보살로 모실 것이라 한다. 

  
▲ 대세지보살 우담바라가 핀 대세지보살상.
대세지보살

"대세지보살님 상호에 핀 우담바라는 불교에서 말하는 불·법·승 삼보의 의미가 아닐까요? 관음사를 찾는 200여 신도님들에게도 상서로운 일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대세지보살님 상호에 핀 3개의 우담바라를 풀이하는 삼현스님. 극락전 신축 공사가 잘 될 것이라 기대하면서, 온 힘을 쏟고 있는 스님의 넉넉한 모습이, 곧, 부처님 자비라는 생각이다.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수덕사에 늦은 가을을 만나러 가다
  
▲ 단풍 가지 않으려 가을을 붙잡는 듯한 붉디 붉은 단풍. 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세상의 광명을 비추기를 희망해 본다.
붉은 단풍

11월 18일 아침. 벼를 걷어낸 빈 논은 서리가 내려 눈이 온 것처럼 새하얗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진주종합경기장에 도착한 시간은 채 여덟시도 되지 않은 시간. 업무 차 가는 출장이지만, 여행이라 생각하니 설렘이 드는 것은 당연한가 보다. 텅 빈 논만큼이나, 드넓은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고, 일행을 실은 버스는 가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늦가을을 맞으러 예천으로 향했다. 참으로 세상 좋아졌다는 게 실감난다. 지난해 5월 개통한 대전~당진 간 30번 고속국도는 일행을 더욱 빨리 수덕사에 내려놓았다. 

  
▲ 일주문 덕숭산 수덕사 일주문. 아름다리 고목이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일주문

평일이지만 수덕사 주차장은 대형버스와 승용차로 반 이상 차 있다. 때를 넘긴 점심, 허기진 배는 밥 한 그릇으로 채워졌다. 약간 쌀쌀한 기운을 느끼며 낙엽 떨어져 나뒹구는 오솔길을 걸어본다. 늦가을 진한 단풍은 사람 마음까지 붉게 물들인다. 단풍잎 등에 가을햇살을 인 것일까. 붉은 단풍은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다. 강렬한 햇빛이 잎사귀 사이로 비춘다. 

덕숭산덕숭총림수덕사. 묵직한 네 개의 배흘림기둥에 다포양식의 팔작지붕 아래 한글로 새겨진 현액이다. 사찰은 보통 일주문이라는 현액을 달지만, 이 절은 이 문이 일주문을 대행하는 것일까. 비교적 넓은 진입로에 가람의 시작을 알리는 문은 그렇게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몇 해 전부터 불법(佛法)에 빠져, 나름 공부를 하고 있다. 총림이란, 석가모니 부처를 비롯한 부처나 보살을 모신 대웅전만 있는 절이 아니라, 강원, 선원, 그리고 율원을 갖춘 사찰을 말한다. 강원이란 경전교육기관이요, 선원은 참선수행 전문도량이며, 율원은 계율전문 교육기관이다. 우리나라에는 다섯 군데 총림사찰이 있는데, 양산 통도사와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 장성 백양사, 그리고 오늘 찾는 예산 수덕사가 모두 총림사찰이다. 

단풍잎이 내려앉은 절터는 조용하다. 늦가을 정취에 푹 빠진 사람들이 삼삼오오 걸어가며 얘기를 나누지만, 고요함과 적막감에 묻힌 듯하다. 부처님 오신 날도 아닌데 연등이 빼곡히 걸려있다. 궁금해서 스님에게 물었더니 지난 달 행사가 있었단다. 연등 밑으로 나풀거리는 깃에 적힌 이름들, 무슨 소망을 빌었을까. 

  
▲ 수덕사 십 수년 전 찾았던 수덕사는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다.
수덕사

수덕사(修德寺), 충남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 아래 자리한 절로서, 백제 15대 침류왕 2년인 358년에 창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수덕사 홈페이지). 문헌에는 백제시대 사찰로는 12개 사찰이 있었다고 하는데, 유일하게 수덕사만이 지금껏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고 한다. 십수 년 전, 처음 이곳을 온 이후 두 번째 오는 셈이다. 높은 계단을 오르니 시야가 확 트인 절터 마당이 넓게 펼쳐진다. 옛 기억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대웅전(국보 제49호)과 삼층석탑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다. 절터에 오면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하고 가슴이 넓어지는지. 

  
▲ 중생 수덕사 마당에 쌓여 있는 낙엽. 어리석은 중생이 어리석음을 깨치기 위해 절에 와 있는 느낌이다.
중생

조인정사 앞마당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다. 중생 껍데기가 한데 무리지어 있는 모습이 연상되는 것은 왜일까. 나무는 때가 되면 잎을 떨어뜨리고, 새 잎으로 태어나,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을 반복한다. 사람도 흐트러진 마음에서,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새로움을 창조하려지만, 어리석음을 반복하고야 만다. 떨어지는 잎사귀는 낙엽이요, 떨어지는 마음은 낙심인가? 오늘 이 절터에서 낙심을 모아 불태워버리고, 새로운 마음의 잎을 태어나게 빌어본다. 절터에 떨어져 썩어 없어질 하찮은 나무 잎사귀에서 받는 교훈이 있다면 절에 온 가치가 충분히 있지 않겠는가. 

경내는 조용함속에서도 살아 움직인다. 닫힌 문, 대웅전에서는 목탁소리가 창살을 뚫고 중생에게로 이어진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쌨다가 약해지며, 약해졌다 쌔어지는 굵고 깔끔한 목탁소리. 이 소리만큼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 주는 소리가 또 있을까?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려 했지만, 안에는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어, 밖에서 한참을 목탁소리와 함께해야만 했다.

 

  
▲ 닫힌 문 닫힌 문 대웅전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 속세의 시끄러운 소리를 정화해 주는 것만 같다.
대웅전

  
▲ 기와불사 어리석은 중생이 세상광명이라고 쓴 기와불사. 외국 사람들의 기와불사도 많이 보인다. 국적이 달라도, 피부색이 달라도,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 같은 모양이다.
기와불사

대웅전 옆 측면 계단에서 바라보는 앞마당, 멀리 보이는 확 트인 공간은, 가람배치가 환상적이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느꼈던 시원함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만 같다. 기와에 가족의 건강이나 소망을 비는 글을 적어 보시하는 기와불사. 1만 원 보시로 기와 한 장에 소망을 적을 수 있었다. '세상광명, 2010. 11. 18. 어리석은 중생'이라고. 가족 구성원 그림과 소망을 적은, 재미있게 표현한 기와불사는 일본어로 표현된 것을 보니 일본사람인 모양이다. 한국어, 영어, 일어 그리고 한자 등 다양한 문자의 기와불사를 볼 수 있다. 국적이 다르고 피부색이 달라도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 같은 모양이다. 

  
▲ 묵언 말 많은 세상이다. 침묵은 금이라 했고, 남의 말을 경청하라 했던가? 이 절터에서 만큼이나 침묵하며 생각에 잠겨본다.
묵언

대나무로 만든 문에 달린 작은 검은 간판. 한자로 묵언이라 적혀있다. 옛말에 침묵은 금이라 했고, 남의 말을 많이 들으라고 했던가. 중생의 어리석음을 스님이 죽비로 내리치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말 많은 세상에서 뒤질세라 말을 안 하기란 어렵다. 말이 많으면 실수하게 마련인 법. 말 많은 중생의 어리석음을 이곳에서 또 깨치고 가는 행복이다. 

  
▲ 샘물 배 모양을 닮은 돌로 만든 식수통. 물컵 주변에 '손을 씻지 마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기본적인 예절이 없는 사람들이 절을 많이 찾아 오는 탓일까.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샘물

마당에 있는 약수터에 투박한 플라스틱 바가지가 네 개 걸려있다. 큰 돌을 깎아 만든 물통에는 맑고 깨끗한 자연수가 담겨 있다. 거울을 보는 느낌이다. 절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이 물을 마실게다. 그런데 바가지가 걸려있는 곳에 '손을 씻지 마세요'라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당연히 해야 하지 말아야 할 행위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알려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도 어리석음을 깨치는 절터에서. 이런 안내문을 걸어야만 하는 사찰 측 입장이 아쉽고, 예절 없이 절을 찾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 정혜사 수덕사 마당에서 바라본 정혜사. 한 시간 걸려 가는 곳이라고 한다. 다음에 수덕사를 찾는다면 꼭 가도록 해 봐야겠다.
수덕사

대웅전 뒤 멀리 산 정상아래 작은 암자가 보인다. 쉬엄쉬엄 걸어서 한 시간 걸리는 그곳에 정혜사가 있다. 발걸음 한 발짝 한 발짝 옮기면서 수행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발길을 돌려 절을 빠져 나왔다. 내려오는 길 중간쯤, 붉게 물든 단풍의 유혹에 빠져, 오른쪽으로 나 있는 숲길을 따라가 보았다. 숲속에 묻혀 있는 또 다른 산내암자인 원통보전이다. 화려한 단청, 길게 뺀 처마, 취두로 치장한 용마루 그리고 편액 양 옆으로 머리를 쭉 뺀 용 두 마리의 머리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원통보전은 석가모니 입적 이후 미륵이 나타 날 때까지 중생구제를 위한 보살로 대중에게 가장 친근한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다. 불상은 관세음보살 단독으로 모셔 진다. 협시보살로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을 모시기는 하나, 이 법당에는 불상 뒤 관음탱화에 나타나 있다.  

관세음보살 머리 위 벽면에 3층 규모 닫집이 붉은색으로 정교하게 지어져 있다. 궁전 안 옥좌 위나 법당 불좌 위에 만든 집이 닫집이다. 많은 절을 다녀 봐도 닫집을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다. 닫집 1층은 원통궁, 2층은 자비궁, 3층은 보광궁이라는 작은 편액이 걸려있다. 집안에 또 다른 집이라 일컫는 닫집을 법당 안에 설치하는 것은 불국정토의 궁전 모습을 법당 안에 재현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의미는, 부처님 머리 위에 설치한 장엄구로서, 보개로서의 상징성을 갖는다고 한다. 

  
▲ 기도 수덕사 산내암자인 원통보전 관세음보살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두 여인. 뒤로는 붉은 색의 닫집이 화려하다.
원통보전

관세음보살 앞에 두 여인이 바닥에 몸을 바짝 엎드려 기도한다. 무슨 사연이 있어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불심일까. 삼배하고 돌아서는 길에 보니 환희대라는 이정표가 있다. 이 길 끝에 수덕사 산내암자 원통보전이 나온다. 나오는 길에 수덕사선미술관에 들렀다. 어릴 때 살았던, 초가집도 넉넉해서 좋았고, 인생의 고통과 어리석음이 담겨 있는 스님의 작품도 좋았다. 수덕사 입구에서 한 마당을 즐겼다. 몸 어디어디에 좋다는 약초도 많다. 과일과 곡식도 널려있다. 만원어치 약초를 샀다. 행복 가득한 수덕사 여행길이었다.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도시인들 즐겨찾는 거제도 공곶마을... 동백꽃 터널은 가봤나요?
  
▲ 수선화 수선화 핀 뒤로 내도라는 섬이 보이고 그 뒤로는 해금강이 보인다.
수선화
별다른 약속이 없어도 해마다 봄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수선화가 피어나는 거제도 공곶(鞏串)마을. 가까이는 내도가, 멀리는 외도가 보이고 좀 더 먼 곳으로 시선을 옮기면 해금강 사자바위를 볼 수 있는 거제도의 명소다. 봄이면 거제도 사람보다, 서울을 비롯한 도시 사람들에게 인기가 더 많은 곳이다. 주말마다 바다를 찾는 강태공들에게는 낚싯대만 드리우면 놀래미와 술뱅이가 술술 낚이는 곳으로도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 수선화 2천여 평의 수선화밭 다음주면 밭 전체가 노란 물결로 춤출것만 같다.
수선화

거제시 일운면 예구마을에서 이십여 분, 숨을 몰아쉬며 산길을 오르면, 확 트인 바다가 보인다. 바다에서 파도를 타고 온 바람은 수선화 밭에 멈춘다. 바닷바람에 춤을 추는 노란 수선화. 춤추는 여인의 살랑거리는 주름치마가 이런 모습일까. 

  
▲ 수선화와 내도 수선화가 하나 둘 피어나고 있다. 다음주면 활짝 필 것이라고 한다.
수선화

17일 오후, 공곶마을 수선화 꽃밭을 찾았다. 수십 년의 세월을 수선화와 함께 한 강명식 할아버지. 여든에 가까운 나이에도 새벽부터 일어나 농사일에 바쁘다. 1만여 평의 농원은 할아버지의 삶 그 자체다. 수선화와 더불어 설유화, 조팝나무, 동백 그리고 명자꽃을 비롯한 수십 종의 꽃과 나무들이 봄철 내내 화려한 색으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타국에 온 느낌을 들게 하는 종려나무 숲은 할아버지의 주 소득원이다. 종려나무가 꽃꽂이 재료로 서울 등 전국 각지로 팔려나가기 때문이다. 

  
▲ 종려나무 숲 종려나무 숲속길을 거닐고 싶다. 가운데 보이는 것은 농작업에 필요한 모노레일이다.
종려나무

 

  
몽돌밭 담장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몽동담장길
 

  
▲ 포구나무 주름지고 움푹 패인 모습에서 해풍과 태풍을 견뎌내고 1백년을 살았음을 느낄 수 있다.
포구나무
이곳 농원에 숨어 있는 미로 같은 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길 옆 몽돌로 만든 담장에는 고향의 정취가 흠뻑 묻어난다. 조금은 걷기 불편한 돌멩이 길도 그리 힘들지는 않다. 담장 끝에 서 있는 억센 주름살을 가진 나무 한 그루. 주름지고 움푹 패인 껍질은 백년이 넘었다는 증거일까. 포구나무는 해풍과 태풍에도 끄떡없다는 듯 늠름하게 서있다. 
  
▲ 천국의 문 1백여 미터의 가파른 동백꽃 경사길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천국의 문
 

'동백꽃 터널'이 만들어진 1백여 미터의 가파른 경사길의 끝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양쪽으로 빽빽이 서 있는 동백나무 터널 내부는 햇볕이 들어오지 않아 깜깜할 정도다. 이런 경사에 넙적넙적한 돌을 누가, 어떻게 쌓아 계단을 만들었을까. 계단을 하나씩 오르는데 점점 숨이 차오른다.  

  
▲ 몽돌 담장길 몽돌 담장길 안쪽 모습이다.
몽돌 담장길
 

  
▲ 몽돌 담장길 몽돌 담장길은 어릴 때 추억사진집을 보는 것만 같다.
몽돌
깜깜한 동백꽃 터널 계단을 조용히 오르며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주교 마산교구에서도 올해부터 이 곳을 도보 순례코스로 지정했다고 하니, 비단 필자만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은 아닌듯 싶다. 순례코스는 공곶마을을 거치고 서이말등대를 지나 지세포성으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한다. 다음 기회에 한 번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 행복 수선화 꽃말이 자기사랑. 행복한 모습이다.
수선화

'자기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수선화. 외로운 한 송이 수선화보다는 두 송이가 어울리고, 두 송이 보다는, 세 송이가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준다. 6600㎡ 밭에 심겨진 수선화는 드문드문 꽃을 피우고 있다. 아마도 이번 주말이면 반 정도는 활짝 피어날 것 같고, 다음 주가 되면 밭 전체가 노란 물결로 춤을 출 것만 같다. 

봄날, 바닷바람과 함께 수선화가 춤추는 모습을 보고 싶은 이 있으면, 거제도 공곶마을로 가 보시기를.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거제도 구조라마을 언덕배기에 핀 꽃 매화
  
▲ 고결 고결함이 묻어나는 매화
매화

  
▲ 매화 봄 소식을 알려주는 전령사
매화

최근 십수 년 동안, 따뜻한 섬나라 거제도에 영하 7~8도를 넘나드는 겨울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난 12월과 올 초는 매서운 추위가 연일 계속됐다. 삼한사온이라는 것도 없었다. 강추위 탓이었을까. 매년 1월초 꽃을 피웠던 꽃 매실은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꽃을 피웠다. 29일,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마을. 폐교된 구조라초등학교 언덕배기에는 꽃 매실나무에서 매화가 하얀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 매화 구.구조라초등학교 언덕배기에 매화가 활짝 피었다.
매화

  
▲ 매화 수령 약 40년된 고목의 매화나무에서 꽃이 활짝 피었다.
매화

춥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피는 꽃 매화는 포근하고 사랑스럽다. 만물이 추위에 힘겨워 하고 있을 때, 꽃을 피워 봄이 왔음을 제일 먼저 알려 주는 전령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으로 사군자에 이름을 올려놓기도 했다. 그래서 매화를 볼 때면 보석과도 같아 고귀함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를까. 

  
▲ 매화 매화가 활짝 피었다
매화

  
▲ 구. 구조라초등학교 구.구조라초등학교에서 수령 약 40년 된 매화나무 세그루에 매화가 활짝 피었다.
매화

이 매화나무는 꽃만 피우고 열매를 가지지 못한다고 한다. 불타는 사랑은 연기가 없고, 슬피우는 새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치일까.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거제도 구조라에 있는 하얀색 매화. 유달리 추웠던 지난겨울, 누구보다도, 먼저 꽁꽁 언 마음을 녹이고, 따뜻한 봄을 맞이하고 싶은 사람들. 이번 주말, 쪽빛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핀 거제도 매화 향기를 맡으며 새 봄을 준비 해 보시기를 권해드린다.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거제기상관측소 생긴 이래 처음으로 빨리 내린 눈

 

  
▲ 첫사랑 거제도에서 기상관측 이후로 연중 제일 빠른 눈이 내렸다. 첫눈과 동백꽃이 첫사랑을 나누고 있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은 첫 눈을 내리게 했다.
사랑

겨울추위를 크게 느끼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는 따뜻한 섬나라, 거제도. 긴 코트에 가죽장갑을 장만할 필요가 별로 없다. 더더구나 그 비싸다고 하는 모피코트도 필요 없이 겨울을 지낼 만한 곳이다. 이렇게 따뜻한 곳에 거제사람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가 생겼다.  

한 겨울에나 볼 수 있는 눈이 내렸기 때문이다. 거제사람들은 눈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눈 구경을 하려면 눈이 많이 내리는 강원도나 전라지역으로 가야만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거제도에서 눈이 내리는 날이면 축복이라 부를까.  

  
나뭇가지에 축복이 내려 앉아 있다.
첫눈

  
▲ 흔적 축복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져 간다.
축복
통영기상대에 따르면, 오늘 내린 눈은 거제기상관측소가 생긴 이후 연중 제일 먼저 내린 것이라고 한다. 거제지역에서 연중 제일 먼저 내린 눈은 1972년 11월 27일이고, 그 다음으로 1996년 11월 30일로 기록하고 있다. 물론, 두 번 모두 적설량은 기록되지 않았다. 이번에 내린 눈도 적설량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11월에 내린 눈으로는 세 번째다. 적설량은 길바닥에 눈이 흩뿌려져 있는 상태로서 0.0㎜라고 하며, 그 이상 눈이 쌓일 때 측정기에 의해 측정되고, 단위는 ㎝로 기록된다.

거제지역에서 내린 눈으로 적설량이 많은 순서로 보면, 2001년 1월 13일 19.6㎝, 1996년 2월 17일 10.1㎝, 1982년 2월 4일 9.9㎝, 1994년 2월 11일 9.8㎝, 그리고  2006년 2월 6일 6.1㎝ 등이다.  
  
▲ 곁들인 사랑 힘이 없는 억새는 축복을 함께 이고 곁들인 사랑을 나누고 있다.
억새

  
▲ 축복의 길 축복을 내리는 길
축복의 길

  
▲ 솜사탕 사랑 동백꽃은 솜사탕 같은 사랑을 나누고 있다.
솜사탕 사랑

코흘리개 어릴 적, 눈 내리는 날이면 강아지 보다 더 즐겁게 들판을 헤집고 다녔다. 학창시절에도 마냥 조건 없이 기분이 좋았다. 눈 내리는 날이면 축복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런 기분도, 생각도, 바뀌었다. 군 입대하고 훈련병 시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리는 눈 때문에. 연병장 눈 치우는 작업, 지금 그 시절을 떠 올리며 생각만 하여도 온 몸이 찌뿌듯해오는 느낌이다. 그러나 지금은 눈이 좋다. 거제도에 흠뻑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축복이 내리니까.  

  
▲ 흔적 흔적만이 남았다.
흔적

  
▲ 설경 거제도에 많은 눈이 내린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설경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올 한 해 마무리는 무지개 뜨는 거제도 홍포마을에서

  
▲ 무제 거제도 홍포마을에서 본 일몰.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난 뒤 모습이다. 독자여러분께서 제목을 붙여 보시기 바랍니다.
홍포마을

"비온 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무지개처럼 소중한 친구들에게 우정의 무지개가 되고 싶네요. 요즘, 무척 힘들고 어렵네요. 그래도 저 멀리 밖은 미래의 희망이 있겠지요." 

출근하자마자, 평소 문자를 잘 주고받는 친구로부터 온 인사말이다. 남들은 50이 넘은 나이에 무슨 문자를 주고받느냐고 색다르게 보지만, 그이와 난 평소에도 문자를 받기도, 잘 주기도 한다. 

때마침, 정확히 한 달을 남겨 두고, 지난 11월 마지막 날(30일)에 찍은 무지개 뜨는 홍포마을의 일몰 사진을 정리하고 있던 터였다. 뜨거움 보다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붉게 물든 노을 사진을 보며 친구의 문자를 보니 삶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 자연의 신비 거제도 홍포마을에서 본 일몰, 2008년 11월 30일 17시 37분 모습이다.
홍포마을

  
▲ 자연의 신비 거제도 홍포마을에서 본 일몰, 2008년 11월 30일 16시 58분 모습이다.
홍포마을

  
▲ 자연의 신비 거제도 홍포마을에서 본 일몰, 2008년 11월 30일 17시 02분 모습이다

사무실 아침마당은 분주하다. 직원 모두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김장하기에 열중이다. 동네에 홀로 사는 노인들을 위한 추운 겨울을 지낼 음식이다. 이처럼, 분위기는 벌써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있다. 일부러라도 그런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으려 하지만, 세상사 어디 그렇게 되지를 않는 모양이다. 

새해 첫 날이 되면, 사람들은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소망을 빌고, 기도를 하며, 안녕을 빈다. 어떤 이는 감격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두 팔을 뻗쳐 만세와 함께 애국가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정성들인 음식을 차려 놓고 엎드려 절까지 하는 이도 있다. 

  
▲ 자연의 신비 거제도 홍포마을에서 본 일몰, 2008년 11월 30일 17시 38분 모습이다.
홍포마을

  
▲ 자연의 신비 거제도 홍포마을에서 본 일몰, 2008년 11월 30일 17시 00분 모습이다.
홍포마을

  
▲ 자연의 신비 거제도 홍포마을에서 본 일몰, 2008년 11월 30일 17시 03분 모습이다.
홍포마을

힘차게 솟구쳐 오르는, 첫 태양을 보기 위해 전국의 명소에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기를 쓰고 보려는 그 태양은 어제도, 그제도, 그 이전에도, 변함없이 인간에게 생명의 빛을 비쳐 주었던 그 태양인데도 말이다. 새로움도, 신비스러움도 없다. 그저, 사람들이 자신의 편의에 맞게 만들어 놓았을 뿐.  

그래도 어쩌겠는가? 자연과 사람, 동물과 식물도 제각각 의미를 가지고 있듯, 한 해 첫날과 마지막을 기념하는 것도 자연스러울 수도 있으리라. 

  
▲ 순간의 드라마 거제도 홍포마을에서 본 일몰. 2008년 11월 30일 17시 07분부터 17시 16분까지 10분간의 자연드라마.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 태양의 움직임을(?) 느낄수 있었던 찰라였고, 황홀감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홍포마을

용의 머리, 뱀의 꼬리가 돼서는 안 될, 벌써, 한 해 마지막 시점이다. 시작은 완벽한 사전(事前) 준비가 필요하다. 과정은 노력과 열정이 따라야 하고, 마지막은 아름답게 마무리를 해야 함은 물론이다. 올 한 해, 준비하여 출발하고, 열정을 받쳐 노력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해 떨어지는 명소를 귀띔해 드리고 싶다. 

무지개 뜨는 곳, 거제도 홍포마을. 도로변 바위에 올라서면 남해의 다도해가 압권이다. 전국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곳. 작은 섬 너머로 떨어지는 태양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오후 5시 7분부터 16분까지 10분간의 자연드라마(슬라이드 사진 참조).  

  
▲ 자연의 신비 거제도 홍포마을에서 본 일몰, 2008년 11월 30일 17시 02분 모습이다.
홍포마을

  
▲ 자연의 신비 거제도 홍포마을에서 본 일몰, 2008년 11월 30일 17시 58분 모습이다.
홍포마을

한 컷을 더 찍으려다 보니, 불안한 마음이 손에 전달돼 카메라가 떨린다. 망원렌즈라 움직이면 수평도 안 맞을뿐더러 흔들림으로 초점이 흐려 좋은 사진을 뽑을 수 없다. 삼각대를 준비해 가지 않은 자신이 원망스럽다. 

블랙홀에 빠져, 사라져 버린 태양. 단 10분 만에 바다가 삼켜버린 태양을 어떻게 설명할지 표현이 되질 않는다. 평소, 하늘에 고정돼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태양이다. 그런데, 태양의 움직임을 느낀 순간이 바로 이 시간이었다. 

  
▲ 귀가 거제도 홍포마을에서 본 일몰, 2008년 11월 30일 17시 22분 모습이다.
홍포마을

떨어지는 태양을 쫓아가는 한 척의 배. 어둠이 밀려오지만, 힘차게 뚫고 역주한다. 인생의 길이다. 연말연초에, 많은 사람들에 섞여 쫓기는 바쁨보다는, 조용한 시간 속에 올 한해 마무리를 원하는 이가 있다면, 거제도 홍포마을에서 보낼 것을 권하고 싶다. 

힘들고 어려웠던 올 한해. 내 가족과 형제, 특히, 전방 철책선에서 국방의무를 다하고 있는 아들 녀석, 친지, 지인 그리고 영원한 벗들에게 송년인사를 드립니다. 올 한 해 수고하셨습니다.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숨어있는 거제의 신비를 찾아 나서다

  
▲ 지심도와 대마도 지세포항에서 고기잡이 하는 배. 지심도와 멀리 대마도가 보인다
지심도

며칠째 계속된 희뿌연 날씨로 마음까지 움츠리게 한 지난 주였다. 마지막 가는 가을이다. 내년에 또 만날 것인데, 인사치레하곤 유별나다. 가려면 그냥 곱게 갈 것이지, 왜 이렇게 심술을 부릴까. 그래도 체면은 있는 모양이다. 11월 마지막 하루만큼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 거제의 섬 신비스런 거제의 섬
거제도

국도 14호선, 거제 남부면 다포마을 고개부터 포항까지 292㎞의 동서를 잇는 국도다. 쪽빛 바다며, 초겨울 채소밭이며, 하늘거리는 억새며, 모두 한 동무가 되어 나를 부르고 있다. 저 멀리 홀로 있는 섬도 외로운 듯 같이 손짓하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니 친구들이 그리운가 보다. 그래서 14호선 국도가 시작되는 지점까지 쪽빛바다와 함께 카메라만 든 채, 친구의 부름에 집을 나섰다. 

거제대교를 넘어서면 40여분 거리에 있는 거제문화예술회관. 이곳에서부터 친구들과 동행하기로 했다. 언덕배기에 있는 예술회관은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우러져 건축미가 예술이다. 장승포항은 작지만 국제항. 부산을 오가는 여객선은 하루에도 몇 차례 이곳을 드나들고 있다.  

쪽빛 바다와 섬은 친구가 되어 나를 부르고 있다 

출발하자마자, 도로변에서 내려다보는 지세포항은 큰 호수와 같이 잔잔하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이 지역 사람들은 동양의 소렌토라 부를까? 고기잡이 하는 두 척의 배가 평화롭다. 그 너머로, 봄이면 동백꽃이 섬 전체 수를 놓는 지심도가 보이고, 저 멀리 희미하게 대마도가 눈에 들어온다. 

  
▲ 거제의 비경 숨어 있는 거제의 비경을 찾아라
거제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곤 거의 대마도를 볼 수 있는 이 곳. 어릴 적, 한바다에 길게 늘어진 희미한 섬이 어딘가 궁금했었는데, 일본 땅 대마도였다는 것을 커서야 알았다. 어른들 말씀에 따르면, 일제 시대 대마도 사람들이 몰래 밤배를 타고 와서 고구마 등 식량을 훔쳐가곤 했다고 한다. 거제도까지 50여㎞로, 노략질하는 근성을 본다면 그럴 만도 했으리라. 

  
▲ 구조라해수욕장 여름철 달궈졌던 은빛 모래는 밀려오는 파도에 제몸을 식히고 있다
구조라해수욕장

차에서 내려 구조라 해수욕장을 걸었다. 한 여름 뜨거웠던 태양아래 물놀이를 즐겼던 그 많던 사람은 흔적도 없다. 고요함과 적막감만 가득할 뿐이다. 은빛 하얀 모래는 여름철 뜨겁게 달궈졌던 제 몸을 밀려오는 파도에 식히고 있다. 발자국을 남겨 보지만, 이내 파도에 지워지고 만다. 인생의 파도에 삶도 지워지리라. 

  
▲ 윤돌섬과 홍도 윤도령의 전설을 안고 있는 윤돌섬과 저멀리 갈매기 섬이라 불리는 홍도
윤돌섬

망양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는 '황제의 길'을 거쳐 내륙으로 향한다. 바로 직진하면 쪽빛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국도 14호선이 계속 이어지고. 여기서는 코앞으로 윤돌섬과 멀리 해금강, 더 멀리로는 갈매기 섬이라 불리는 홍도(전라도 지역의 홍도와 다른 섬)를 볼 수 있어 좋다. 그 옛날, 윤도령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귀양살이 했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윤돌섬. 전남 진도와 비교할 순 없지만, 영등사리를 하는 2월이면 바다 속을 볼 수 있어 자연의 신비함을 느낄 수 있다.

  
▲ 외도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는 외로운듯 외도를 바라보고 있다
외도

겨울철이면 더욱 더 진한 색을 띠는 쪽빛 바다. 여행객은 국도를 따라 도는 내내 쪽빛 보다 더 진한 느낌을 받는다. 국도는 지루할까봐 잠시 포근한 숲길과도 같은 도로로 안내한다. 굽이굽이 돌고 도는 국도는 해안선과 똑 같이 에스라인으로 춤추듯 휘저으며 돌아간다. 리아스식 해안이라 부르는 것처럼 리아스식 도로라 이름 붙여 주고 싶다. 

  
▲ 외도 외도 너머로 희미한 대마도가 길게 누워있다
외도

바다 한 가운데 두둥실 떠 있는 섬, 외도(밖 섬). 외로울 것 같지만 외롭지 않은 섬이다. 1년에 약 1백만 명이 친구 집 가듯 이 섬에 발을 디딘다. 안쪽으로는 형님 같은 내도(안 섬)가 지켜주고 있다. 유람선은 바삐 움직이며 사람들을 내려놓고 황급히 돌아선다. 초음속 비행기가 하늘을 지나갈 때 흰 선을 그리듯, 바다에는 작은 고깃배가 지나가며, 또 다른 흰 선을 그리고 있다. 배가 남긴 흔적, 인생의 항로라는 생각이다. 

  
▲ 연인 학동흑진주몽돌해변에서 연인이 외도를 앞에 두고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연인

학동흑진주몽돌해변에는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가족, 연인, 친구, 모두들 자신들만의 즐거움에 빠져있다. 파도에 떠밀리는, 몽돌 구르는 소리가 정겹다. 자연의 협주곡이 따로 없다. 쏴와~ 쏴와~.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에 뽑힌 몽돌 구르는 소리. 

사람소리, 바람소리, 몽돌소리를 듣고 다시 발길을 돌렸다. 해금강으로 향하는 길. 동백꽃이 벌써 피었다. 동백꽃은 이맘때부터 이듬해 5월까지 피고 진다. 학동마을은 몽돌해변 못지않게 동백꽃과 팔색조로 유명하다. 천연의 동백나무 숲은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어 숲속을 걸어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 홍도 2만마리의 갈매기가 사는 나라 홍도. 이제는 갈 수 없는 곳이다.
홍도

목적지를 5㎞ 앞두고 갈림길. 잠시 해금강 방면으로 무단외출을 했다. 도장포마을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바다가 시원하다. 2만 마리의 갈매기가 사는 나라, 외딴섬 홍도. 오래전, 사진촬영차 두 번이나 가 본 적이 있는데,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 돼 버렸다. 한 시간 전, 망양삼거리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홍도는 예까지 따라와 저 멀리 앞에 홀로 서 있다.  

  
▲ 섬 다포도와 병대도가 이웃하고 있다. 저 멀리 매물도가 손짓을 하고 있다
다포도

오후 햇살을 품에 안고 촘촘히 서 있는 다포도, 병대도가 이웃하고 있다. 그 뒤로는 통영시에 속한 매물도가 산머리에 안테나를 길게 빼고 나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육지에서 보는 해금강은 조금 밋밋하지만, 기암절벽의 반대편 모습과는 다른 중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다시, 차를 돌려 가는 길은 올망졸망한 동네가 같이하고 있다. 곧바로, 다포마을 고개에 다다랐다. 느릿느릿 29㎞를 국도 14호선을 따라 자연의 친구들과 함께한 길은 여기까지다. 

거제도의 숨은 비경을 찾아 나선곳, 무지개 떠는 마을 홍포 

많은 여행객이 거제도를 찾고 있지만, 정작 거제도의 숨어있는 신비스러움을 보지 못한 채 돌아가는 이들에게 귀한 선물을 드리고 싶다. 무지개 떠는 홍포 마을이 그곳으로, 남은 거리는 5㎞.  

  
▲ 병대도 해질녘 아름다운 병대도. 숨어있는 거제의 신비스런 곳이다.
병대도

홍포마을을 지나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숨이 막혀 버린다.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이리라. 30년 전, 처음 이 비경을 보고 숨이 멋은 적이 있으니까. 앞으로 펼쳐진 크고 작은 섬들, 해질녘에 보는 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답다. 

  
▲ 병대도 30년 전, 이곳을 처음 봤을때 숨이 막혀 버렸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다
병대도

거제문화예술회관, 장승포항, 지세포항, 구조라해수욕장, 윤돌섬, 내도, 외도, 억새, 동백, 다포도, 그리고 해금강 친구들은 다른 친구를 맞으러 먼저 길을 떠나고 없다.  

하지만, 검푸른 바다만큼은 홍도와 내내 나를 같이 하고 있어 기쁘기 그지없다. 쪽빛 바다를 친구삼아 국도 14호선을 따라 도는 하루였다. 차량 트렁크엔 즐거움과 행복이 가득했다.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앞만 보고 달려온 33년의 세월, 산행에서 배운 인생이야기
 
  
▲ 정열 붉게 타는 단풍잎이 정열을 뿜고 있다. 인생도 저렇게 정열을 뿜으며 살고 싶다.
정열

한 해로 친다면, 새해 초 꿈과 희망을 가득 실은 배는 항구에 정박할 시간이건만, 무슨 연유인지, 급하게 서두르는 마음 하나는 긴 항해를 위해 떠나는 마지막 배를 타려는 듯, 몹시 서두르고 있다.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긴 고동소리. 다급함은 몸과 마음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날 동창들을 보고 싶은 설렘 때문일까. 

고교시절. 그 당시는 우리나라 대부분이 시골이었지만, 시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창과 헤어진 지 33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이다. 얼굴엔 듬성듬성 여드름이 나 있었고, 세련미라고 볼 수 없었던 촌티 나는 모습이 내 머릿속에 추억으로 남은 동창들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껏 같은 동네에 살고, 그 동안 가끔 만나온 동창들은 정반대로 새로운 이미지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 가을단풍 떨어지는 가을단풍이 내 소매를 붙잡고 있다.
가을단풍

가을이 한창 떨어지고 있는 11월 셋째 주 일요일(16일). 마산 무학산 입구 서원곡 주차장은 마지막 가을 산행을 하기 위한 등산객들로 붐볐다. 대형버스를 타고 간 일행을 보태니 꽉 차는 분위기다. 시끌벅적한 시골장터가 따로 없다. 한 세월 보지 못한 여자 동창들은 끼리끼리 부둥켜안고, 발을 구르며 난리법석이다.  

남자들은 어깨를 가벼이 포옹하며 고교시절의 얼굴을 기억해 내려한다. 그런데 남자동창들은 그럭저럭 알 것만 같기도 한데, 여자동창 몇 명은 얼굴도, 이름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난감했지만, 여자동창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잠시나마 반가움은 식을 줄 몰랐고, 인사 나누는 데만 한참 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각자의 개성 있는 얼굴모습에서  그간 앞만 보고 최선을 다해 살아온 장편의 인생역정 드라마를 볼 수 있었고, 삶의 형체를 찾을 수 있었다. 

  
▲ 인생의 산행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여력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의 모습이다.
인생

그렇게 산행은 시작되었다. 십여 분 지났을까, 급경사의 시멘트 포장길을 오르는 데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여력도, 없었다. 힘에 부쳐 앞만 보고 걸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그야말로 진지한 삶의 모습과 똑 같다. 산을 오름에 있어, 그것도 정상에 이르기까지 한 순간도 힘들지 않는 시간은 없다. 그래서 산에서 삶을 알고 인생 공부를 한다고 했던가. 

힘든 시간이지만, 등산길 옆으로는 좋은 글귀의 팻말이 몇 개 서 있다. 꼭, 등산객들에게 교육 시킬 요량인 것만 같다. 좋은 말이다. 저렇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어디 그렇게 쉽게 될 일인가. 그래도 가슴에 새겨 어려울 때 한번쯤 자신을 뒤돌아보리라는 생각이다. 

자기를 이기는 것이 가장 어진 것

그러므로 그를 사람 중의 왕이라 하네

생각을 다스리고 몸을 길들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를 이루나니

(법구경에서)

 

  
▲ 동창 억새무리가 마산만을 내려다보며 제각각 하늘거리고 있다. 멀리 마창대교가 희미하게 보인다.
억새

육십여 명이 한꺼번에 출발했지만, 힘에 부쳐 간격도 멀어지고, 삼삼오오 짝을 이뤄 대오가 흩어진다. 산 중턱 하나에 올라서니, 멀리 꼭대기가 보인다. 저기가 정상이라면, 삼십여 분만에 오를 것만 같다. 하산하는 사람들에게 정상이 얼마치 남았냐고 묻지도 않았다.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있는 힘을 다해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상이라 생각했던 그곳에 올라서니, 저 멀리 학의 형상을 한 무학산 정상(해발 761.4m)이 보였다. 허탈했다. 절친한 친구에게 속은 느낌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것이 인생이며, 산행이다. 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산을 전문으로 다니는 사람들이야 별로 높지 않다고 하겠지만, 산의 높이로만 친다면, 해발의 시작점이 수면과 별 차이가 없는 터라, 내륙의 일천 미터 급의 산과 비슷하다 할 수 있으며, 그리 만만히 볼 산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산행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도 나눌 법도 한데, 힘이 드니 말할 기운도 없고, 조용히 사색하며 혼자 걷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  

  
▲ 인생역정 제몫을 다하고 떨어져 편안히 쉬고 있는 잎사귀.
인생역정

노랗게 물들어 아직도 떨어지지 않고, 힘겹게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잎사귀 하나는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떨어질 것만 같이 위태위태하다. 땅바닥에 벌써 떨어져 나뒹구는, 그래도 형체만이라도 원형대로 갖춘 낙엽은 편안하게 쉬고 있다. 사람들의 발에 밟혀 산산조각 부서져, 다른 나무의 밑거름이 될 낙엽 부스러기는 희생의 또 다른 모습이다. 계속되는 가뭄에도 소나무 밑동에 새파랗게 난 이끼와 갈바람에 이리저리 뒤척이는 억새에서 인생 산행을 경험하고 있다. 

  
▲ 무학산 멀리 철탑이 있는 곳이 해발 761.4미터의 무학산 정상이고, 365 건강계단이 보이며, 아래 평평한 곳은 서마지기터다.
무학산

이것저것 사색하며, 마침내 눈앞으로 정상이 보이는 중턱에 올라섰다. 아래로는 널따란 평지가 보인다. 농토 서마지기 크기의 서마지기 터다. 정상까지는 나무 계단이 설치돼 있고, 건강계단이라 이름 붙여 놓았다. 마음속으로 계단을 세어 봤으나, 이내 그만뒀다. 계단 사이에 숫자가 표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계단을 오르며 마음속으로 자신이 세어 보면 좋으련만, 내가 할 일을 남이 해 준 것만 같아 씁쓸한 기분이다. 꼭대기까지 365계단이다. 일 년 동안 내내 걷고 또 걸으며 건강하게 살라는 의미일까. 

  
▲ 365건강계단 서마지기에서 정상까지 이르는데 설치해 놓은 365개의 나무계단. 365일 내내 건강하게 살라는 의미일까.
365건강계단

먼저 도착한 동창 네 명이 충무김밥을 먹고 있다. 산행에 있어 충무김밥은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간편하기도 하지만, 맛도 일품이다. 귤도 마찬가지. 귤의 수분은 목마름을 채워주고 단맛은 피로감을 없애준다. 힘든 산행 끝에 먹는 김밥과 귤 맛은 산행에 있어 갖추어야 할 필수품. 시간이 제법 흘렀다. 정상의 넓은 터에는 하나 둘씩 동창들이 모여들었다. 산행 중 나누지 못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기념 촬영은 기본. 사람 스무 명이 모이면, 틔는 사람이 꼭 한 사람 있다고 했던가. 한 동창이 틔고 싶은 모양이다. 

  
▲ 정상탈환 거제 해성고등학교 23회 졸업생이 33년만에 정상을 탈환했다. 사람 스무명이 모이면 틔는 사람이 꼭 있다고 했던가. 앞자리에 앉은 그는 이날 반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정상탈환

마산만을 내려다보는 무학산은 태극기를 머리에 이고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전쟁터에서 꼭 진지를 탈환한 것만 같다. 무명용사들이 아니라 거제 해성고등학교 23회 졸업생들이다. 그런데 고지를 탈환한 동창은 출발할 때 인원의 반이 조금 넘을 뿐이다.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중에 연유를 물으니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정상을 올랐으니, 하산을 아니 할 수는 없다. 언제나, 정상에 머무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산 길은 쉬우리라 생각했건만, 오르는 것 못지않게 힘들다. 경사진 곳, 두 다리에 버티는 힘이 더욱 필요하다. 

  
▲ 행복 김해에서 왔다는 유진(10), 경진(6)과 아빠엄마. 아이들은 네살때부터 산을 올랐고, 매주 한번 정도 가족끼리 가까운 산을 찾는다는 이 가족은 행복을 가득안고 산을 내려오고 있다.
행복

예쁜 여자 아이와 남동생 그리고 아빠엄마 한 가족이 행복을 가득안고 산을 내려가고 있다. 김해에서 왔다는 이 가족은 매주 한번 정도 가까운 산을 다니며, 딸 아들 모두 네 살 때부터 산을 다녔다고 한다. 어릴 적, 힘들 때는 어깨에 태워 산행을 했지만, 이제는 제힘으로 다닌다고 하니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든단다. 세 살배기 아들을 목말 태워 산을 올랐던 추억이 순간 떠올라 잠시 머뭇거렸다. 지금, 그 녀석은 최전방에서 제대를 얼마 남겨 두고 있지 않은 군인으로 근무하고 있다. 

  
▲ 만추 하산길에 만난 만추.
만추

무학산, 두 시간을 올랐고, 한 시간을 내려왔다. 정상을 오르는 것은 두 배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이미, 정상을 밟은 동창도 있지만, 아직도 7~9부 능선을 오르는 동창들도 많다. 모두들 제자리에서 정상의 고지를 탈환하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정상이 꼭 인생의 목표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 실제 산행에 있어서도, 많은 동창들이 정상에 오르지 않았거나 못했다. 그들 나름의 이유와 사정은 있으리라.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도 산을 오르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다. 

앞만 보며 산을 오르고, 화려한 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단풍을 보며, 잎사귀 지는 가을에서, 33년 만에 만난 동창들과 함께 인생의 산행을 한 소중한 하루였다. 마지막 가는 가을. 다시, 인생의 험한 항로를 여행할 배는 긴 고동소리로 소매를 붙잡고 있는 나를 재촉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거제도에 있는 해성고등학교 23회 동창들을 33년 만에 만나게 해 준 회장단과 멀리 서울에서, 부산에서 온 동창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특히, 황성부 동창에게는 감사의 메시지를 별도로 전합니다. 그는 함안에서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화합의 한판인 뒤풀이도 깔끔하게 마무리한 신사랍니다. 동창들에게 해 온 그의 남다른 정을 본다면,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내내 건승하심을 빌어봅니다. 그리고 산행 중에 만난 예쁜 아이 아빠가 이 글을 보고 연락주시면 원본 사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굴 까는 삶의 현장에서 굴 요리도 함께 하는 특별한 여행

  
▲ 거제만의 굴양식장 겨울철 최고의 보양음식인 굴 양식장

생굴의 계절이 돌아왔다. 찬바람을 맞으며 갯가의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굴 맛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거리다. 날씨가 추울수록 알이 차고 맛도 풍부해지기 때문에 겨울철 최고 보양음식으로 꼽히는 굴은 사람들이 붙이는 별칭도 가지각색이다.  

바다의 우유라 불리고, 사랑의 묘약이자 먹는 화장품으로도 불린다. 나폴레옹 1세도 전쟁터에서 하루 세끼 굴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날것으로 먹지 않는 서양에서 거의 유일하게 먹는 수산물이 굴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겨울철 별미로 알려져 있는 음식, 비타민 A의 함량이 쇠고기의 8배가 넘는다는 굴, 제철을 만난 굴 맛을 보러 거제도로 떠나보자. 35번 고속국도의 남쪽 끝 톨게이트인 통영영업소를 지나 왼쪽 거제도 방향으로 차를 돌려 3분여 지나면, 거제대교를 만나게 된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 둔덕방향으로 가다보면 한려수도 청정 해역에 펼쳐진 굴 양식장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생굴 향기를 맡을 수 있다. 

  
▲ 굴요리 준비 거제도의 굴요리는 흰 장갑과 작은 손칼을 준비하면서 시작된다.
굴요리

둔덕면에서 거제면으로 이어지는 1018번 지방도 주변에는 굴을 전문으로 요리하는 식당이 즐비해 있다. 어느 집에 들르더라도 생굴의 특별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식탁 위에는 흰 목장갑과 작은 손칼 하나가 놓여진다.  

  
▲ 생굴 국화 꽃잎으로 치장한 생굴. 우유빛이 가득하다.
생굴

거제도의 굴 요리 방식을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투박하다는 생각과 함께 당황할 수도 있으리라. 커다란 양은솥에 한 솥 가득 굴이 담겨져 가스 불에 올려진다. 따로 물을 붓지 않아도 자체 수분 때문에 잠시 후 입을 벌리면서, 독특한 향기와 우유 빛을 띤 탱글탱글한 굴을 보게 된다. 

  
▲ 굴구이 한 솥 가득한 굴이 익혀지자 굴을 까 먹기에 여념이 없다.
굴요리

껍데기 속 굴을 젓가락으로 콕 집어 고추장에 찍어 한 입 가득 씹으면, 그 맛이 가히 일품이다. 더 좋은 굴 맛을 원한다면 너무 오래 열을 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중간 정도 익히는 것이 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창가로 펼쳐진 쪽빛의 거제도 바다는 추억을 함께 만들어 줄 것이다. 

  
▲ 굴 껍데기 술 굴을 까먹고 난 껍데기에 한잔 가득한 술. 술맛이 엷어져 한층 부드럽다.
굴껍데기술

이왕 맛을 즐기려면 빈 굴 껍데기에 소주를 따라 마셔보자. 굴 향기와 바다 향기가 그대로 스며들고 독한 소주 맛은 엷어져 부드럽기 그지없다. 거기다 동행한 사람과 건배를 곁들인다면 행복은 두 배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굴 따는 어부의 딸은 피부가 좋다는 우리네 말이 있다. 굴을 먹으면 더 오래도록 사랑한다는 유럽 사람들의 말도 있다. 굴에 들어있는 글리코겐은 에너지의 원천으로 남성들에게는 힘을 상징하는 식품으로, 여성들에게는 피부를 곱게 하는 훌륭한 건강 미용식품으로, 어린이들에게는 성장기 발육을 도와주는 영양식품으로 각광받는 굴.  

가족끼리, 연인끼리 거제도의 푸른바다를 배경삼아 식탁에 둘러 앉아, 조금은 투박하지만, 한 손에는 흰 목장갑을 끼고, 한 손에는 작은 손칼로 굴을 까는 즐거움을 만끽해보자. 

  
▲ 굴의 속살 탱글탱글한 굴의 속살, 맛이 일품이다.
생굴

생굴회, 굴 생채, 굴라면, 굴 삼겹살...입맛대로 골라드세요

굴을 재료로 하는 요리는 다양하다. 바다냄새와 굴 특유의 향기를 맡으려면 생굴을 초장에 찍어 먹거나, 버무려 먹는 생굴회가 좋고,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을 원한다면 굴 칼국수, 여러 사람이 함께 굴 까는 재미를 느끼겠다면 굴 껍데기채로 가스불이나 석쇠에 굽어 먹는 석화구이가 좋을 것이다.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겨울초를 넣고 버무린 굴 생채, 전을 좋아한다면 계란에 비벼 지지는 굴전, 바쁜 직장인이라면 굴라면, 삼겹살 구이로 동료끼리 파티를 원한다면 굴 삼겹살 요리가 분위기를 한층 더 돋우게 될 것이다.  

또한, 굴은 냉동시켜 먹어도 맛과 영양분이 훼손되지 않는다는 것이 굴을 전문으로 양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니 싱싱한 굴을 급랭시켜 두고두고 먹어도 좋을 것만 같다. 

이른 겨울의 거제도 바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기만 하다. 그러나 생명은 열심히 숨쉬고 생산 활동은 멈추지 않고 있다. 겨울 별미로 애용되는 굴도 이 시기에 제 몸을 살찌운다. 거제만에서 생산되는 굴은 전국의 가정으로, 식당으로 배달되어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 굴까기의 달인 평생을 굴까는 작업에 매달린 삶의 현장이다.
삶의 현장

 

  
▲ 삶의 현장 산더미 같이 쌓인 굴을 까는 삶의 현장이다. 굴까는 소리는 내 고향의 소리요, 내 삶의 소리임에 틀림이 없다.
삶의 현장

굴 식당 인근의 굴까는 작업장을 방문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굴까는 소리가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것만 같다. 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다. 열심히 작업하는 아주머니들의 손끝에서 울려 퍼지는 감동의 소리.  

굴까는 소리는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에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내 고향의 소리요, 내 삶의 소리임에 틀림없다. 자식들 키우고, 학교 보내며, 가족의 삶을 위해 평생을 굴 까는 작업에 매달렸기에, 어찌 그 소리가 싫을 수 있겠는가. 

  
▲ 삶의 현장 온 종일 서서 일하는 고된 굴까는 작업이지만, 얼굴에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삶의 현장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해가 질 무렵까지, 종일 서서 일을 해야 하는 굴까는 작업은 그야말로 중노동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손놀림은 쉴 틈 없이 부지런하다.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가까이 하니, 한 아주머니는 활짝 웃는 모습으로 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장난 끼를 발동한다. 작업에 방해가 될까 조심스러웠지만, 작업장에는 잠시 동안이나마 웃음이 넘쳐흘렀고 피로감도 풀어졌으리라. 

오랜 세월 연마된 숙련일까. 굴까는 손동작이 보통 아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개를 까고 또 한 개를 집어 잡는다. 플라스틱 대야 한 통 가득 채우는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는 솜씨로 하루에 4~50킬로 깐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생굴은 지금부터 출하를 하기 시작하여 내년 4월경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현지 시세로는 ㎏당 1만원 내외로 즉석에서 깐 싱싱한 생굴을 현장에서 사서 요리해 먹었으면 좋겠다. 거기다가 굴까는 작업도 구경할 겸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체험하는 것도 좋으리라. 

  
▲ 노을진 거제만 노을진 거제만은 평화롭다. 외롭고 쓸쓸하게 보이는 작은 배는 가을 한 모퉁이에서 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노을

노을이 지는 거제만의 바다는 옷깃을 세우게 할 정도로는 추운 느낌이다. 떨어지는 햇살과 바다에서 부는 갈바람 때문이런가. 달님은 일찍이도 나와 해맑게 웃으며 거제만을 내려다  보고 있다. 힘에 지친 모습일까, 늦가을 추위에 몸을 움츠린 탓일까. 쓸쓸하고 외롭게 보이는 작은 배는 가을 한 모퉁이에서 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출처 : 굴 삼겹살에 굴라면, 게다가 굴 생채까지... - 오마이뉴스(2008. 11. 11)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거제 바다와 진도 바다의 또 다른 가을 느낌

  
▲ 늦가을 진도의 바다 거제도에서 310km를 달려 도착한 진도. 안개에 휩싸인 진도대교가 늦가을을 품에 안고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다.
진도대교

바닷가에서 태어나 반세기 동안 바다를 보고 살아왔지만, 매일같이 바라보는 바다는 하루도 같은 느낌이 아닌, 볼 때마다 새로운 감정을 가지게 해줬다. 그래서 바다를 사랑하게 됐고, 앞으로도 영원히 변치 않게 사랑할 것만 같다.  

가을은 깊어 가는데, 화려하게 치장한 단풍이 물든 산보다는 비릿한 냄새가 나는 바다가 더 좋다. 내 삶의 터 거제의 바다가 아닌, 또 다른 삶이 묻어 있는 바다를 보러 자동차로 갈 수 있는 최남단의 섬인 진도로 향했다. 몇 달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진도였지만, 미루고 미루다 가는 여행길은 희뿌연 안개만이 안전운행을 일깨워 줄 뿐이다. 

  
▲ 쌍계사 국화축제 진도의 쌍계사에선 국화축제가 한창이다.
쌍계사

11월 첫 주 일요일(2일). 아침 일찍 거제에서 310㎞를 달렸고, 세 시간 반을 넘겨서야, 진도대교를 볼 수 있었다. 안개에 휩싸인 사장교의 진도대교는 휘황찬란한 야경사진에서 보는 아름다움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였다. 우뚝 솟은 주 탑은 웅장하였고, 언뜻, 거미줄 같아 보이는 로프는 육중한 상판 때문이었는지, 힘에 겨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마, 그런 느낌은 장시간의 운전으로 인한 피곤한 육신 때문이었을까. 동시에 느끼는 착시와 착각 현상의 탓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리 밑은 초속 11노트(6m)의 빠른 조수가 흐르고, 동양에서 바다 물살이 제일 세다고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해남과 진도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으로 이순신이 왜군을 상대로 맹활약을 펼친 명량대첩지라 불리는 유명한 울돌목이다. 

유람선터미널로 전화를 걸었다. 유람선은 오전·오후 각 한 차례 운항하고, 10명 이상 되어야만 출항한다는 안내원의 설명이다. 점심을 미루고 쉬미항에 도착했다. 자동차는 제법 많이 주차돼 있었지만, 관광객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주변은 한산했다. 현장 분위기로 봐서 배는 출항하지 않을 것만 같았고,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안개 낀 날씨로 차라리 유람선이 운항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시야가 흐려 사진촬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 강아지 삼형제 새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삼형제가 지친 탓일까 곤히 잠들어 있다.
진도

다시 돌아서 읍내로 나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듯, 운이 좋게도 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역시, 시골장터 만큼은 볼거리가 풍성하다. 풋풋한 정이 흐르고, 서로 싸우듯이 흥정하며, 왁자지껄한 장터의 모습에서 삶의 의미를 보고 느낀다.  

형제처럼 보이는, 새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세마리는 지친 탓일까,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 귀엽고 정겹기만 하다. 한 달여 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애견 선이의 모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며, 이별에 대한 슬픔과 애절함이 가슴을 죄어 오는 것만 같아 더 이상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 녹색의 땅 섬사람들의 부지런함을 느낄수 있는 들녘이다.
녹색의 땅

섬사람들은 근면성을 타고 난 것일까? 몇 해 전, 남해를 갔을 때도 겨울철에 노는 땅을 볼 수가 없었다. 마늘을 심은 들판은 녹색의 땅이었고, 근면과 성실의 현장이었다. 진도 역시 대파와 배추가 심겨진 들녘에서 섬사람 특유의 부지런함을 느낄 수 있었다. 

  
▲ 운림산방 허련선생의 화실
운림산방

예까지 왔으니 운림산방(雲林山房)을 아니 보고 갈 수는 없다. 깊어 가는 이 가을에 딱 어울리는 명소라는 생각이다.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인 허련선생(1809년~1892년)이 말년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리던 화실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이곳 작은 연못에는, 가을이 수면에 넉넉히 내려앉아 포근히 쉬고 있다. 수면 위에 자연이 그려낸 한 폭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일필휘지의 힘도 느껴지지만, 곡선의 부드러움은 그 시대 가을 놀이하는 여인의 하늘거리는 치맛자락 같은 느낌도 든다. 

  
▲ 자연산수화 진도의 대표적인 명소로 운림산방의 작은 연못. 수면은 화선지요, 물감은 자연이며, 붓은 하늘로 그린 연못위의 그림 한점. 허련선생은 이 연못에서 그림의 영감을 얻은 듯만 하다.
운림산방

연못 위 그림 한 장. 수면은 화선지요, 물감은 자연이며, 붓은 하늘이다. 연못 위 자연이 그린 그림을 본 때문일까. 소치기념관에서 감상하는 선생의 작품은 조금 전, 연못에서 본 잔영이 그대로 남아 실제 그림과 혼동을 일으키게 한다. 선생은 당시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겠지만, 영감(靈感)은 연못에서 느꼈으리라.  

매주 토요일 11시, 기념관 바로 옆에 있는 진도역사관에서는 유명작가들이 그린 한국화, 서예 그리고 문인화 등을 경매한다는 안내를 듣고서야, 차라리 토요일에 방문하였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 대웅전 진도 쌍계사 대웅전앞에 국화가 만발하다.
쌍계사

  
▲ 분재국 처음 보는 분재국. 엄지손가락 굵기 정도의 국화에서 핀 수 백 송이의 꽃은 지극정성의 결실이다.
국화분재

쌍계사는 하동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진도에는 또 다른 쌍계사가 있었고, 이곳에선 국화대축제가 한창이었다. 사찰은 규모면에서 하동보다 크지 않지만, 고풍스러움만큼은 못지 않아보였다.  

엄지손가락 굵기보다 더 큰 분재국의 가지에서 핀 수백 송이의 국화는 일 년 내내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는지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동물 모양의 소원등과 국화가 어우러진 쌍계사의 가을은 긴 겨울잠을 자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 신비의 바닷길 매년 4~5월이면 뽕할머니상에서 오른쪽 안개에 싸인 모도까지 신비의 바닷길이 열린다.
신비의 바닷길

상큼한 국화향기를 뒤로하고 신비의 바닷길에 도착한 시간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뽕할머니상에서 바닷길이 열리는 모도(茅島)를 바라보니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제법 멀어 보이기도 하지만, 들 물이라 수심도 꽤 깊어 보였는데, 바닷물이 갈라진다고 하니 신비스럽기만 하다. 바닷길은 매년 4~5월에 3~5회 정도 열리며, 길이 약 2.8㎞, 폭 약 40m라고 한다.  

잠시 후, 대형 관광버스 두 대가 부산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술시가 지나고 술 마신 기운 탓인지 여행객은 시끄럽기 짝이 없다. 아저씨부대는 포장마차로 향하고, 아줌마부대는 한 할머니가 작업하고 있는 김 건조장으로 향한다. 할머니가 파는 곱창김은 금세 동이 났다. 1미터가 넘는 곱창김은 곱창처럼 꼬불꼬불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진도에서 만난 할머니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곳에서 어미같은 할머니가 곱창김을 다듬고 있다.
신비의 바닷길

파도가 밀려간 듯 여행객들이 철수한 조용한 시간, 할머니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올 해 일흔 아홉이라는 할머니는 정정해 보였지만, 힘겨운 모습도 함께 보였다. 남편은 쉰셋에 세상을 떠났고, 아들 넷은 모두 잘 산다고 한다.  

아직 일을 할 수 있으니, 놀지 않는다면서, 오늘 하루 동안 한 봉지 만원하는 김을 스무 개 정도 팔았다고 한다. 어미 같은 생각에 기꺼이 한 봉지를 샀고, 집에 와서 무쳐먹었더니 맛이 기가 막힌다. 아마도 할머니가 힘들게 노력하고 정성을 들인 손맛과 신비의 바닷길이 만들어준 마력이 더해져 좋은 맛을 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진도의 바다는 그렇게 나의 머릿속에 저장되었다. 

여행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소개팅이라고 말하고 싶다. 청춘남녀가 소개팅을 하려면 키는 얼마이고, 몸매는 어떠며, 외모는 잘 생겼는지, 성격은 괜찮은지 등등, 먼저, 상대방에 대하여 궁금한 것을 대략 알아보고 만나듯, 여행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가고자 하는 곳, 가보고 싶어 하는 곳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이해가 있어야 만이 한층 더 품격 있는 여행이 되지 않겠는가. 

스스로 구세대라 생각하는 지금이다. 청춘시절, 소개팅을 해 본 경험이 없어 아쉽기도 하지만, 이제는 전국을 대상으로 여행 소개팅을 하러 떠나고 싶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 운림산방 쌍계사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