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 붉은 단풍 뒤로 덕유산 향적봉이 보인다.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었으면,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너를 만나러 1760Km를 달린 끝에 어제서야(3일) 네 몸을 보여줬던 너. 지난해 12월 엄동설한 눈길에도 너를 만나러 갔다가 허탕 쳐야만 했고, 눈 녹은 봄날 새싹 나는 3월에도 발길을 돌려야만 했지.
여인의 치맛자락 속이 궁금한 음흉한 사내의 탐욕이 아닌, 너에 대한 궁금증이 날 이토록 애타게 만들었던 것이었지. 어제가 아닌 오늘, 너의 비밀을 알고 나서는 오히려 내 맘이 홀가분해 졌다네.(안국사에 보내는 편지)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극락전
안국사. 왠지 나라를 평안하게 해 줄 것 같은 이미지가 풍기는 이름. 1277년(고려 충렬왕 3년) 월인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전북 무주 적상산에 있는 호국사찰이다. 1614년(광해군 6년) 조선왕조실록 봉안을 위한 적상산사고를 지키는 수직승의 기도처로 삼았다.
1771년(영조 47년) 법당을 다시 지었고, 안국사로 부르기 시작했다. 1910년 적상산사고가 폐지될 때 까지 호국의 도량 역할을 담당하였던 절. 당초 이 절은 현재 적상산 양수발전소 상부 댐 수몰부지에 있었으나, 댐 건설로 현재의 자리로 옮기게 된 것이다.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 지장전과 극락전
지난해 겨울 아무런 정보도 없이 안국사를 찾았다. 거제에서 안국사까지 정확히 220Km, 왕복으로 440Km다. 눈이 많은 무주 땅의 정보도 없이 안국사를 찾은 것이 불찰이었을까. 그 뒤로도 설마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찾아 간 것도 역시 겨울철. 3월말까지 눈길 빙판으로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알고, 4월 초순 다시 찾았지만 역시 문은 굳게 닫혀 있었던 것이 세 번째. 그리고 이번 여행으로 10개월 만에 안국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네 번째 방문이요, 이동거리는 경유지를 포함하면 거의 2000Km다.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구절양장, '아홉 번이나 꼬인 양의 창자'처럼 어떤 일이나, 도로가 매우 꼬불꼬불하고 험한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안국사로 가는 길이 꼭 구절양장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만큼 굴곡이 심하고, 자칫 한눈팔면 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한 길이다. 눈이 많은 겨울철에 도로를 왜 묶어놓는지, 직접 알수 있었다. 굽이져 오르는 경사에 다가오는 경치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운전자 시야에 들어오는 직선구간이 짧다보니, 길가에 차를 세워 놓고 사진 촬영도 쉽지가 않다. 그저 눈으로만 즐겨야 하는 구간이다. 머루와인동굴에서 안국사까지 7.1Km 굽이굽이 진 커브만 해도 30여 개가 넘는다.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정상부에 다다르자 돌로 쌓은 철옹성이 보여 뭔가 궁금했는데, 적상산 양수발전소 상부 댐 모습이다. 그리 크지도 않은 호수는 잔잔하다. 옛 절터가 않아 있던 지역이라 물도 선정에 든 것일까? 사진 촬영을 하고 싶었지만, 보안 때문인지 사진촬영금지란다. 겁 많은 중생이 붉게 쓴 경고문에 주눅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2000Km를 달린 끝에 보는 호국사찰 안국사
폼 나게 우뚝 솟은 일주문. 햇살이 비춘 역광으로 '적상산안국사'라는 현액이 희미하게 보인다. 일주문은 속세에서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여는 절과 달리 일주문을 들어서자 내리막길이다. 정화수 한 잔에 목을 적시니 정신이 맑아온다. 절터에 오면 맘이 편해지는 것은 왜일까. 나 자신이 부처인 것을, 부처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나와 부처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아직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중생일까?
적상산일주문 - 저 세계로 들어가면 부처의 세계다.
가파른 경사진 계단에 청하루가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청하루 내부에는 수몰되기 전, 석실비장, 청하루, 극락전, 산신각 등 안국사 현판이 있다고 하는데, 직접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접어야만 했다. 깊은 계곡과 높은 산을 뒤로 하는 대형 사찰과는 달리 산 정상부에 자리를 잡아서일까, 아늑함은 그 어는 절과는 다른 느낌이다. 절터 마당은 평온하고, 가람배치도 오밀조밀한 형태가 정겹다.
청하루
청하루 처마 끝 밑으로 멀리 향적봉 정상이 보인다. 눈앞으로 펼쳐지는 광활함은 전쟁터에 나선 군사를 호령하는 용맹 있는 장군의 무대처럼 느껴진다. 밝은 햇살에 비추는 황금색의 '극락전' 현액. 절을 찾을 때 마다, 꼭 하는 일은 주 법당을 한 바퀴 돌아보는 일이다. 백팔번뇌를 깨우쳐 보겠다는 나만의 보시법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천정을 보니 이상하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게 단청이 돼 있는데, 유독 포 사이 한 군데만 채색이 돼 있지 않다. 그 이유는 학대사에 관한 전설.
멀리 향적봉이 보인다.
당시 조정에서는 경복궁 중건사업으로 단청공을 구할 수 없어 단청을 하지 못한 상태로 안국사의 불자들과 스님은 보수공사 축성식과 백일기도를 마쳤습니다. 며칠 뒤 남루한 차림의 한 노승이 찾아와 단청을 하지 않은 연유를 묻자 사정을 이야기하니, '내가 단청공이나 한번 해 보겠소'하더니 며칠 뒤 흰 광목천 100여장을 가져와 '석 달 열흘을 일을 할 것이니, 그 안에 절대 휘장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하였고, 스님은 기꺼이 약조를 하였습니다.
노승은 휘장 안으로 사라지고 기이하게 생각한 인아스님은 99일째 되는 날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찢어진 휘장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니 극락전 끝에서 학이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다가 놀라서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약조를 어긴 대가로 완성되지 못한 마지막 부분이 그대로 남아있어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딱 하루거리에 해당하는 량의 목재가 단청이 되지 않은 채 나뭇결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무주군청 홈페이지 문화해설에서)
학대사 이야기에 얽힌 전설의 단청
예전에는 학이 온통 노닐었다 할 만큼 많은 학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는 극락전. 절터 한 마당을 한바퀴 노닐었다. 국화향기 가득한 절터는 학이 단청을 그리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삼성각을 지나 천불전을 한 바퀴 도니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처마 끝 풍경은 슬픈 울음을 울어댄다. 어떤 때는 그리도 맑은 풍경소리가 오늘은 왜 그렇게 슬프게 들리는지. 가을 타는 내 마음이 슬퍼서일까.
풍경소리
천불전 아래쪽에 있는 성보박물관. 세계 각국 부처님과 불교유물을 전시한 곳이다. 한국, 중국, 일본, 티베트, 태국 그리고 미얀마를 비롯한 20여 불교나라의 불상, 탱화, 불교유물 그리고 도자기 등을 볼 수 있어 불교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절터를 아무리 둘러봐도 정작 보고 가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예전부터 익히 들었던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해 왔던 전각으로 불리는 적상산사고.
성보박물관
안국사 풍경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물어도 모른다는 대답에 다시 스님한테 가서 물으니 아래쪽 댐 주변에 있다는 것. 멀리까지 와서 하마터면 그 중요한 전각을 구경도 못하고 갈 뻔 했다가,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쉴 수가 있었다. 적상산사고는 오후 햇살 아래 제 몸만 덩그러니 내 놓고 여행자를 맞이한다. 알아서 보고 가라는 듯, 조용함을 넘어 적막감이 감돈다. 안내판에는 내가 알고 있는 정보보다 더 적은 량의 글자만 있을 뿐, 더 이상 공부 차원의 내용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을 뿐이다.
옛 적상산성의 흔적들.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이날 여행도 카메라 배터리가 없는 탓에 전체 사진을 폰 카메라로 대신 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은 준비가 철저해야 된다는 것을 네 번의 도전 끝에 알았지만, 새로운 실수는 계속되고 있었다.
안국사에는 주요 문화재가 많다. 보물로는 안국사 영산회 괘불탱(보물 제1267호), 유형문화재로는 안국사 극락전(유형문화재 제42호), 적상산성 호국사비(유형문화재 제85호), 안국사 목조아미타 삼존불상(유형문화재 제201호), 문화재자료로는 안국사 범종(유형문화재 제188호) 등이 있다.
무주여행, 범종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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