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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소바다 곰소만 앞바다. 적막감이 들고, 쓸쓸한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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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산 자리에 터 잡은 수덕사는 늦가을 진한 향과 깊은 맛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집을 떠나 타지에서 느끼는 늦가을 밤은 조용히 깊어만 간다. 10월 19일 아침, 약간 을씨년스러운 기운은 황량한 들판에 내려놓고 가벼운 몸만 버스에 태웠다.
전날, 온천에서 몸을 뜨겁게 달구었던 탓일까. 머리도 맑고 몸도 가볍다. 온천에서 목욕 한 게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마음만 먹으면 온천 가기란 별 것 아니지만, 그리 쉽게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단체여행 덕분에 온천에도 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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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창밖풍경 버스로 달리면서 바라본 차창밖 풍경. 버스가 달리듯 세월도 가을을 지나 겨울을 향해 달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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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보다 그다지 속도를 내지 않는 버스는 차창 밖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승용차는 운전에만 몰두하다 보니 주변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차체도 낮기 때문에 시야의 폭도 좁아 많은 풍경을 담지도 못한다.
높은 위치에서 넓은 시야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데서는 버스여행이 좋다. 그래서 가끔 버스여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두세 배의 시간을 요구하지만, 불편함을 이겨내 보는 것, 버스여행에서 얻는 소중한 체험이 아닐까.
40번 국도를 벗어난 버스는 15번 고속국도로 접어들자 앞만 보고 내달린다. 덩달아 차창 밖 풍경도 쏜살같이 사라진다. 멀리 있는 풍경은 그래도 잠시 머물다 간다. 몇 시간을 달려 일행을 내려놓은 곳은 새만금방조제. 말로만 들어왔던 그곳에 처음으로 왔기에 어떤 곳일까 궁금하다.
바다 위 만리장성, 단군 이래 최대 역사, 대한민국 경제고속도로 등 각종 수식어가 나붙는 새만금방조제. 전라북도 군산, 김제, 부안 앞바다를 연결하는 방조제다. 기존 세계에서 가장 긴 네덜란드 자위더르 방조제보다 500m 더 긴 33.9㎞다. 1991년 11월 16일 첫 삽을 뜨고, 2010년 4월 27일 삽질을 내려놓음으로써 19년 세월이 걸렸다.
사업면적은 4만100㏊(토지 2만8300㏊, 담수호 1만1800㏊)로서, 서울의 2/3에 해당하고, 여의도의 140배에 이르는 땅이 새로 생긴 것. 우여곡절도 많았다. 개발로 인한 방대한 영역의 갯벌과 해양 생태계가 파괴될 우려가 있다는 반대 목소리도 높았다. 환경단체와 전북주민들이 낸 새만금 사업계획 취소 소송에서 패하는 일을 겪기도 했다. 그런 새만금방조제에 왔다.
끝이 안 보일 정도 곧게 뻗은 방조제 위로 버스는 천천히 달린다. 왼쪽으로는 일부 육지가 될 땅이요, 오른쪽으로는 바다다. 왼쪽은 아직 바다 그대로 모습이다. 오른쪽은 배가 다니고, 고기잡이가 한창이다. 호수 같은 잔잔한 바다지만, 큰 파도가 칠 때가 있는 모양이다. 방조제 사면에는 큰 바위와 작은 돌들이 흩어져 있다.
큰 바위는 파도로 인하여 사면에서 빠져 나온 것이고, 작은 돌은 바다에서 떠밀려 올라 온 것이라는 생각이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버스에서 바라보이는 가드레일은 곡선으로 만들어져 있어 꼭 파도가 치는 것만 같다. 버스 속도에 따라 큰 파도와 작은 파도가 울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흥미롭다.
제법 달리자 작은 섬이 나온다. 군산시 옥도면 야미도와 신시도로 이어지는 길은 계속되고, 주변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많다. 고군산군도라고 한다. 경치가 빼어나고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선유도가 옆에 있다. 군산에서 뱃길이 있다지만, 신시도에서 어선으로 가면 금방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 언젠가 꼭 한번 가고 싶은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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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게소 공원 새만금방조제 갑문 휴게소에 쌀쌀한 가을이 내려 앉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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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갑문 휴게소에 내려 한 숨 돌리며, 사진도 찍었다. 뿌연 날씨로 먼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몸이 움츠려 든다. 찬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커피 한잔, 여행의 여유로움이다. 방조제는 준공되었지만, 중간 중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흙탕길을 잠시 지나 변산반도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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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석강 채석강 퇴적암층. 수천, 수만 년의 세월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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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괴석과 수 만권의 책을 포개 놓은 듯한 퇴적암으로 된 절벽 모습을 한 채석강은 변산반도 볼거리중 하나다. 짠물 냄새를 맡으며 썰물 때 드러나는 퇴적암층을 걷는 기분도 상쾌하다. 사이사이 고인 바닷물에 자신의 얼굴과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좋다. 흙 두께가 그리 깊어 보이지 않는, 퇴적암층 땅위에 선 소나무는, 고고함과 자존심을 표현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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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석강 거울 채석강에서 볼 수 있는 바다거울. 한번 쯤, 짠물 바다에 뜬 자신의 얼굴과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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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소란 심마니들이 쓰는 은어로, 소금이라는 뜻이란다. 청정해수 천일염으로 숙성시킨 자연의 맛이라 자랑하는 젓갈로 유명한 곰소마을에서 먹는 점심은 푸짐했다. 깨끗하고 깔끔하게 차려진 젓갈은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을 땅기게 한다. 탕이 보글거리는 소리, 잡담소리, 음식 먹는 소리, 그릇 부딪히는 소리, 온갖 소리들로 식당 안은 시장 통이 따로 없다. 한바탕 소란에 배는 채워지고, 이쑤시개 집어 들며, 느긋해 하는 사람들.
갯가에 산다는 징표일까, 촌놈이라 그럴까. 젓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예까지 와서 그냥 갈 수 없어, 젓갈 파는 집에 들렀다. 다른 단체도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환한 조명 아래 진열된 젓갈. 보는 것만으로도 먹고 싶다. 굴 향이 그대로 배어있는 어리굴젓, 쫄깃쫄깃한 낙지젓, 달콤한 창란젓과 명란젓, 짭짤한 바지락젓과 밴댕이젓, 씹는 맛으로 먹는 아가미젓, 배추 속잎에 찍어 먹어야 제 맛이 나는 갈치속젓, 이 모두가 입맛을 자극한다.
이 밖에도 토하젓, 골뚜기젓, 꽃게장젓, 순태젓, 전어밤젓, 청어알젓, 그리고 가리비젓 종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짭짤함으로 혀를 자극하여 맛을 느끼게 하는 젓갈이지만, 각기 다른 맛을 내는 곰소만의 젓갈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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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우젓 김장할때 넣으면 한층 맛이 나는 연분홍색 새우젓. 보는 것만으로도 먹음직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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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창 김장철. 진분홍색을 띠는 몇 종류의 새우젓에 눈길이 간다. 추젓(9월 전후로 잡은 새우로 담간 젓)은 주로 김장에 많이 쓴다. 한달 정도 지나면 김장 속에 삭아 유산 화 되어 버리기 때문. 오젓(오월 경에 잡는 새우)은 그냥 먹기에 편하다. 살이 통통 오른 육젓(유월경에 잡는 새우)은 무침으로 제격이다. 김장할 때 사용하는 젓은 지역마다 다른 모양. 새우젓을 넣는 지역도 있고, 그렇지 않은 지역도 있다. 멸치액젓과 까나리액젓은 크기가 다른 용기에 종류별로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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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침젓갈 종류도 다양한 무침젓갈이 전시돼 있고, 보는 것만으로도 먹음직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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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종류 젓갈을 사고 싶었지만, 어리굴젓과 아가미젓만 낙점이다. 몇 종류 더 사고 싶었고,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푸짐하다. 주문하면 택배로도 보내준다 하니 다음에는 다른 젓갈로 맛을 봐야겠다. 곰소만 칠산젓갈 백영식 대표는 무침젓갈을 먹는 주의사항을 단단히 알려준다. 무침젓갈은 냉동실에 보관하여 먹어야 한다고. 양념으로 만든 무침젓갈은 실온(3~5도)에서 보관할 경우 유산균이 많아져 쉽게 시어 버리기 때문에 냉동보관 해야 한다는 것. 냉동보관을 한다 해도 소금기가 있어 아주 세게 얼지 않기에 먹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곰소만의 가을 풍경과 젓갈 맛을 담은 버스는 달린다. 두 서넛 마주 앉아 조용히 정담을 나누기도 하고, 큰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는 사람도 있다. 귤도 과자도 음료수도 나누어준다. 피곤한 탓일까, 한 사람은 고개가 앞으로, 뒤로, 운동 중이다. 몰래 사진을 찍어 나중에 같이 보면서, 한 바탕 웃었다. 버스 안 각가지 모습을 몰래 감상(?)하는 기분이 묘하다. 넓은 들녘과 멀리 보이는 산을 뒤로한 채 버스는 전날 아침 모였던 장소에 일행을 내려놓았다.
버스를 이용하여 단체여행을 떠나 본 적도, 족히, 십년도 넘은 것만 같다. 차 안에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막춤 추며, 놀았던 추억은 아득하기만 하다. 1박 2일 워크숍을 겸한 버스를 이용한 단체여행. 차 안에서 술 한 잔 마시지 못한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는 버스여행. 그래도 의미 깊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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