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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라지역

어떻게 아세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



설원의 개그 콘서트, 난 그렇게 들었는데, 아이고 내가 잘못 들었네~~~

  
▲ 덕유산 향적봉에서 바라본 남덕유산(오른쪽 높은 봉우리). 중간 왼쪽 멀리 진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지리산 반야봉이다.
향적봉

소풍가는 날 새벽녘. 신발장 제일 아래 칸 구석진 곳, 21년 동안이나 나의 애마 역할을 한 비브람 등산화.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주지 않았던지 먼지가 소복이 쌓였다. 그 당시 거금(?)이라 할 수 있는 십 만 원 넘게 주고 산 등산화였다. 정확히 89년부터 산에 홀려 주말마다 산을 찾았다. 그 땐 자가용도 없었기에 버스로 지리산, 덕유산으로 가야만 했다. 시간이 많이 걸렸고, 불편함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랬지만 산을 찾아 나서는 길은 기대감으로 찼고, 돌아오는 길은 배낭에 기쁨 가득한 즐거움이 있었다. 

  
▲ 남덕유산 하얀 설원의 남덕유산. 왼쪽 뒤로 지리산 반야봉이 선명하다.
남덕유산

처음엔 여럿이 좋아 단체산행을 했지만, 고독을 즐기기 위해 혼자 다니기로 했다. 야간 산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초저녁, 산에 올라 텐트를 쳤다. 겁도 많이 났던 것은 당연한 일. 술병을 나발 채 마시며 잠을 청했지만, 새벽 두세 시경이면 충혈 된 눈은 자동으로 떠지곤 했다. 날짐승 울음소리,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 윙윙거리는 바람소리, 모두가 머리털을 곤두서게 했다. 이렇게 겁을 먹으면서, 혼자서 왜 산행을 할까 했지만, 주말만 돌아오면 또 다시 배낭을 챙기곤 했던 기억. 먼지 쌓인 비브람 등산화를 꺼내는 새벽아침, 90년대 산행에 대한 기억을 내 뱉어 놓았다. 

마지막 겨울을 알리는 2월의 끝자락인 26일. 직원끼리 산행이지만, 친목도모와 화합을 위한 자리. 그래서 먹을거리가 푸짐해야 제 맛이 나지 않을까 싶어 싱싱한 횟감을 찾아 여명 길을 나섰다. 평소에 횟감을 직접 손질하는 취미가 있어, 직접 고기를 골라 회를 만들었다. 가끔 회를 직접 떠 회식을 할 때면, 주위에서 횟집 차려도 되겠다고 하지만, 글쎄, 딱 한 달을 못 넘겨 문 닫지 않을까 하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 가야산 중간 멀리 희미하게 높게 보이는 봉우리가 가야산이다.
가야산

지난 해 말 거제와 부산을 잇는 아름다운 다리가 놓인 두 번째 큰 섬, 거제도. 다리를 지나야만 왠지, 어디로 떠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섬사람들만의 생각인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거제대교를 지날 때, 비로소 소풍을 간다는 기분이 든다. 차창 밖, 물살을 가르며 지나가는 배가 힘이 넘친다. 푸른 쪽빛 겨울바다는 소풍객들을 환영해 주는 것만 같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달리고 달려서, 경상도를 벗어나 전라도로 접어든다. 산자락 군데군데 하얀 눈 두둑이 있다. 벌거벗은 나무 숲 사이에 녹지 않은 잔설. 봄을 기다리는 나뭇가지와 제 몸을 완전히 녹여버리고 싶지 않은 하얀 눈은 자연과 생명을 느끼게 해 준다. 목적지인 무주가 가까워오자 높은 산꼭대기는 하얀 눈 세상이다. 어서라도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다. 

  
▲ 대덕산 멀리 뾰족히 하늘에 닿아 있는 봉우리가 무풍면에 소재한 대덕산이다.
대덕산

한참 열을 내어 달린 버스가 지칠 쯤, 일행은 무주스키장에 도착했다. 화려한 복장을 하고 색안경을 낀 스키어들이 눈밭을 이리저리 누빈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빠른 속도로 하강하는 모습은 프로 선수 못지않다. 스키를 배워 머리카락 흩날리며 한번 타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역시, 생각에 머문다. 지나가는 세월이 아쉬울 뿐, 머릿속 꿈만 가득한데 어쩌랴. 이런 산행이라도 계속할 수 있음에 행복으로 받아들여야지. 

곤돌라를 탄 직원들은 어린아이 얼굴이다. 소리 지르며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이 영판 아이가 뛰노는 것과 같다. 집 마당에 늘 묶여 있던 강아지, 눈 오는 날 풀어 놓으면 눈밭에 깡충깡충 뛰노는 모습과 똑 같다. 강아지랑 비교한다고 뭐라고 나무랄까? 기분 나쁘게는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게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나로서, 보기 좋아서 하는 말이니라. 

  
▲ 설원 향적봉으로 오르내리는 등산객들. 왼쪽 끝이 향적봉이다.
향적봉

곤돌라는 일행을 설천봉에 내려 주었다. 하얀 설원의 세상. 많은 등산객들이 향적봉을 오르내린다. 눈이 얼어 등산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나뭇가지를 붙잡고 겨우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는다. 두 발을 땅에 버티기가 힘겹다. 작은 나무 가지에 넘어지지 않으려 의지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고, 눈밭 등산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 나약한 나뭇가지에 버티는 모습이 우습다. 강하다는 인간의 역설적인 모습이다. 

  
▲ 오뚜기 산악회원 어떻게 아세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난 그렇게 들었는데... 아이고, 내가 잘못들었네,,, 짧은 시간 즐거움을 주게 한 안양에서 왔다는 오뚜기 산악회원들.
오뚜기산악회

넓적한 바위에서 사진을 찍는 단체 등산객에게 사진을 찍어 주자, 간단한 인사와 대화가 오갔다. 

"겨울 산이 좋죠. 저쪽 끝이 남덕유산입니다. 어디서 왔어요. 어느 산악회세요?"
"안양요. 어떻게 아세요?"
"예~? (한참 망설이다)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러자 일행으로 보이는 또 다른 남자가 끼어들며 내게 묻는다. 

"어떻게 모르세요? (그것도 모르느냐는 뜻으로)어디 외국에서 (살다)왔어요?"
"예? ... 무슨 회산가요, 무엇을 만드는 곳인데요?"
"아니, 어떻게를 진짜 모르세요? 케첩이랑 식품 만드는 회산데..."
"(그래도 몰라서) ...(멍한 내 모습)" 

대화는 여기서 끝을 맺었고, 모두 발걸음을 옮겼다. 설천봉에서 20여 분 지나니, 향적봉이 눈앞에 있었다. 겨울바람답지 않은, 차지 않은 시원한 바람이 얼굴과 가슴을 때린다. 환희와 함께하는 벅찬 가슴이다. 정말 오랜만에 오른 향적봉 정상. 몇 년 만에 올랐는지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백련사를 거쳐 힘들게 걸어서 올랐는데, 이번에는 곤돌라의 힘을 빌렸다. 그런데 어쩌랴, 힘에 부치는 것을. 

  
▲ 지리산 향적봉에서 바라본 장엄한 지리산. 멀리 진하게 일자로 길게 늘어서 있는 부분이 지리산 종주코스. 왼쪽 끝이 천왕봉, 그 좌측으로 중봉, 오른쪽 끝이 반야봉이다.
지리산댐

주말 비 예보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날씨만 청량하다. 날씨 예보 믿고 나서지 않았다면, 후회만 가득 했을 법. 하늘은 파랗고, 산은 하얗다. 첩첩한 산맥이 겹겹이 드러누워 어깨동무하고 있다. 백두대간의 장엄한 모습이다. 멀리 지리산맥이 찐한 모습으로 길게 뻗어있다. 좌측으로 천왕봉이고, 조금 좌측이 중봉이다. 오른쪽 끝으로는 반야봉이 선하다. 그 사이로 제석봉~장터목산장~연하봉~삼신봉~촛대봉~세석산장~영신봉~칠선봉~덕평봉~벽소령~형제봉~명선봉~토끼봉~삼도봉~임걸령~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종주코스. 지리산만을 고집하고 산행했을 때, 종주코스를 다녔을 때, 숲속의 돌멩이 하나, 풀 한포기, 고목 한 그루가 주마등처럼 기억으로 스쳐 지나간다. 지금 이 순간, 머리 속은 지리산 종주를 하고 있다. 

  
▲ 적상산 하산하는 등산객 앞쪽 중간에 적상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양수댐 중 하나인 하부댐이 보인다.
적상산

푸르고 맑은 날씨는 멀리 가야산을 눈앞에 데려 놓았다. 가야산 줄기도 가는 실처럼 길게 늘어서 있다. 무풍면 대덕산 꼭대기도 하늘에 닿아 있다. 산맥이 겹겹이 쳐져 있어 파도가 물결을 치는 모습이다. 파노라마 사진을 찍듯, 우에서 좌로 방향을 트니 명산들이 즐비하다. 양수댐이 있는 적상산도 야트막히 코앞에 버티고 있다. 그 옆으로 하부 댐이 선명하게 푸른빛을 비추고 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니 남덕유산이 양쪽봉우리로 다정히 서 있다. 향적봉에서 동엽령을 지나 남덕유산으로 가는 길. 겨울산행을 해 보지 않은 등산객이라면, 진정 그 맛을 모를 것이니라. 세 번의 덕유산 종주코스 산행, 향적봉에 선 이 시간, 옛 추억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산행 중에 먹는 음식이야말로 맛을 치자면, 고급 호텔 메뉴가 부럽지 않다. 반찬 종류가 중요하지 않다. 소주에 먹을 만한 안주 하나 있으면 최고. 그런데 오늘은 특별히 횟감을 준비했으니, 기대는 가득 채움이다. 바람이 불어 동료끼리 서로 의지하며, 둘러앉았다. 소속감이요, 화합이다. 그래서 나선 오늘 소풍 아니겠는가? 소주와 회가 기가 차도록 맛이 있다. 산 정상에서 회를 쳐 먹는 이 맛, 누가 알까? 한 잔 술을 따라 '위하여'를 외치니, 내일부터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다. 

  
▲ 직원끼리 무주스키장에서 마지막 가는 겨울을 아쉬워하며 직원끼리 한 컷.
무주스키장

하산하는 길, 직원 여러 명이 탄 곤돌라 안에서 등산 때 겪은 얘기를 전했다. 안양에 '어떻게'를 아냐고? 내가 처음 들었을 때처럼,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 하는 눈치다. 눈치 빠른 한 직원이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한다. 직원이 뭔가 알아차렸다는 묘한 웃음을 보인다. 

"혹시, 오뚜기라고 하지 않던가요?"
"아닌데, '어떻게'라고 하던데. 내가 몇 번이나 물어도 '어떻게' 아냐고 하던데. 그래서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다시 물었지."
"잘못 들었을 겁니다. 안양에 오뚜기라는 회사가 있는 걸로 봐서, 아마 그 회사에서 단체 산행을 하지 않았나 싶네요." 

가만 생각해 보니, 그럴 듯 했다. 내가 잘못 들었던 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말이 툭 튀어 나온다. 어느 방송사 개그 프로, 인기 있는 대사 한 마디. 

"난 그렇게 들었는데... 아이고, 내가 잘못 들었네~~~" 

곤돌라에서 내렸다. 주차장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 든 버스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주차장으로 가니, 산행 중에 만났던 그 '어떻게' 팀원들이 모여 있다. 우리 일행이 타고 갈 버스 바로 옆, 안양에서 왔다는 산행 안내문이 붙은 '어떻게' 산행단체 버스가 떡하니 서 있다. 헤어짐 인사도 나눴다. 그제야 '어떻게'라는 말이 '오뚜기'라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 근데 '오뚜기'가 어떻게 '어떻게'로 들렸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 기도 설천봉에 있는 돌탑에 동료 직원이 돌을 쌓으며 소원을 빌고 있다.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기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향적봉 설원 개그콘서트 재방송이 열렸다. 

"어떻게 아세요?"
"어떻게→어떠케→어떠게→오떠게→오뚜게→오뚜기"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난 그렇게 들었는데... 내가 잘못 들었네~~~" 

한바탕 웃음이 쏟아졌다. 산속 메아리가 아닌 마이크 에코소리로. 

  
▲ 향적봉 산행 향적봉 산행
향적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