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인의 미소보다 더 아름다운 꽃살창
▲ 진한 향을 맡으며 천천히 걷고 싶은 전나무 숲길
일상에서 잡념을 버리고 오직 하나의 마음으로 진리를 깨닫게 하는,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는 곳, 일주문(一柱門). 산사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다. 5월 11일 전북 부안땅을 밟고, 내소사를 찾았다.

절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매번 느끼는 감정이지만, 전북 부안 내소사에 들어가는 느낌은 그 어느 절과는 다르다. 푹신한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나뭇잎사귀가 걸음걸이를 한층 편하게 해 준다.

▲ 보종각
키가 큰 전나무 숲을 보니 밀림지대를 온 것 같은 기분이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포근하게 느껴지고, 나무 잎에서 뿜어내는 향기는 아름다운 여인의 내음보다도 진하다. 맑은 공기에 취해 크게 심호흡을 하니 정신이 맑아진다. 다른 사람들과 일주문으로 같이 들어갔건만, 그 사람들은 저 멀리 앞서가고 있다.

▲ 내소사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앞서가는 사람의 빠른 발걸음을 따라갈 필요가 전혀 없다. 여기에서 만큼은 느릴수록 좋다.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약 5백 미터의 전나무 숲길을 만끽하고 싶기 때문이다. 전나무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단풍나무와 벚나무길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 하늘과 맞닿아 있는 대웅보전
사천왕문을 지나니 대웅전 앞에 뚝하니 버티고 서 있는, 천년이 되었다는, 아주 큰 당나무가 호령이라도 하는 듯하다.

대웅전 뒤쪽으로는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 처져 절을 감싸 안고 있어 포근한 느낌이 두 배로 드는 기분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경내를 한 바퀴 둘렀다.

절의 규모는 대사찰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절의 중심이 되는 대웅전을 한 품격 높여 부르는 대웅보전이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짐작이 간다. 스님의 독경소리와 목탁소리가 화음을 이루면서 중생을 구제하는 노스님의 모습이 존경스럽다.

내소사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제291호).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끼워 맞춰 지은 건물로서, 화려한 다포양식으로 조선 인조11년(1633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배흘림 양식의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형태다. 정사각형 격자 문양으로 마감한 천장의 꽃무늬 단청은 법당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 불심
대웅전 감상의 최고는 정문의 꽃살 창문이다. 연꽃, 국화꽃, 해바라기꽃으로 장식한 문살의 문양이 하나의 꽃밭을 이루고 있는 느낌이다.

수 백년 간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은 탓인지, 지금은 화려한 색깔의 채색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생각할 수 있으련만, 오히려 채색 없는 나무의 결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좋다는 느낌이다. 살며시 만져보니 촉감이 참 좋다.

부처님 공양 중 가장 으뜸이 등(燈) 공양이고, 다음으로 꽃 공양이라고 한다. 새삼 수 백년 전의 그 목수가 생각난다. 얼마나 엄청난 공을 들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꽃문양 하나하나를 새겨 넣을 때마다 부처님을 생각한 그 불심(佛心)의 깊이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마, 지금은 또 다른 부처가 되어 이 절을 지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차장 주변으로 몇 그루의 단풍나무가 있다. 그런데 붉은 나팔 모양을 한 꽃잎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처음으로 보는 꽃잎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채 채석강을 만나러 떠나야만 했다.

들녘에는 마늘밭과 보리밭이 풍요로움을 더해준다. 저 멀리 희미한 운무 속에서 불어오는 갯내음을 맡으면서 고향 바닷가의 그리운 모습이 오버랩 된다.

▲ 수 백년 동안 떨어지지 않는 꽃잎(좌)/꽃살창 만큼이나 아름다운 여인의 포근한 미소(우)
내소사에서 약 삼십분을 달리면 채석강을 만날 수 있다. 채석강(彩石江, 전라북도 기념물 제 28호, 면적:12만 7372㎡)은 부안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소로서 격포항 옆에 우뚝 솟은 해안가 닭이봉(달기봉) 아래에 약 1km 정도 펼쳐져 있다.

홍보용 안내판의 유래를 보니,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며 노닐다가 물에 비친 달빛에 반하여 그 달을 잡으려고 물에 뛰어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하다하여 '채석강'이라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격포항 방파제에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방파제 높이도 만만찮아 높은 산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끝까지 걸으면서 바닷바람을 즐겼다. 제법 길다. 방파제 한쪽으로 상인들이 비닐천막을 치고 멍게, 해삼, 낙지, 키조개, 피조개, 개불 등 각종 해산물을 팔고 있다.

▲ 붉은 꽃주머니를 달고 있는 단풍나무
한 접시에 2만원이면 충분하다. 멍게 한 점 초고추장에 찍어 소주 한 잔 들이키는 맛이 일품이다. 살아가는 인생 하루하루가 이런 맛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과욕이리라.

방파제 멀리 희미한 안개 속으로 섬이 하나 보여 옆 사람에게 물으니 위도(蝟島)란다. 한때 이슈가 됐던 핵 방폐장 시설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던 그 섬이 위도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희미한 안 개 속 그 섬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떤 섬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갑자기 그 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 채석강
채석강의 넓적한 바위바닥을 걷고 싶다면, 하루 두 차례 물이 빠지면 들어갈 수 있는데, 이 날 다행히도 물이 빠져 있어, 유람선이 있는 방파제에서 격포해수욕장까지 걸어서 갔다. 수 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한 절벽을 감상하면서, 자연의 신비로움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계속 이어 북쪽 용두산을 돌아 약 2㎞의 해안절벽이 있는데, 그 곳이 적벽강(赤壁江, 전라북도기념물 제29호, 291,042㎡)이다.

물이 빠질 때 시간이 넉넉하다면, 천천히 걸으면서 넓고 평평한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바다 생물들의 움직임을 감상하고, 해식동굴에 들어가 억겁의 세월을 느끼는 재미가 좋은 추억거리로 남을 것이 분명하리라. 특히,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어린 아이들은 조개도 줍고 고동도 주우면서 바닷길을 걷는 기쁨은 그 기억이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 채석강의 파도소리
층층이 쌓인 검은 빛깔의 바위절벽 위에 뿌리를 어떻게 내렸는지 장엄하게 서 있는 소나무 몇 그루. 언제나 푸른 바다를 보며, 때로는 태풍과 억센 해풍을 이겨내며, 꿋꿋하게 서 있는 저 소나무야말로 절개의 상징이 아닐까?

검푸른 바다에서 밀려와 바위를 때리며 부서지는 하얀 물보라는 흰색과 검은색의 색깔 대비가 너무도 선명한 모습으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자랑이다. 특히, 간조 때 해식동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채석강의 낙조와 노을은 어떤 말과 행동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이나 환상적이라는 것이 안내원의 설명이다.

거제도에서 멀리 이곳, 두 번을 방문했지만, 낙조를 보지 못한 탓에 다음에는 꼭 하룻밤을 지내면서 낙조와 노을과 밤바다를 구경할까 하는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o. 내소사, 채석강 찾아가는 길
. 내소사
- 서해안고속도로->부안나들목->고창방면 23번국도->15.2km -> 보안사거리(우회전)
->30번국도(10km)->석포리 내소사입구(우회전)->2km->내소사일주문
- 부안읍->30번국도로 직진->변산->격포->진서면 석포리 내소사 입구(좌회전)
->2km->내소사 일주문
- 태인IC -> 30번국도(20.5km) -> 신태인 -> 부안읍

. 채석강
- 서해안고속도로 부안IC(30번 국도)→부안→변산해수욕장→격포항
- 서해안고속도로 줄포IC→영전(30번 국도)→곰소→격포항
- 호남고속도로 태인IC(30번 국도)→부안→격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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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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