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로 북적대는 가을보다는 자신의 향기를 찾아서
 
  
▲ 가을향기 성불사 계곡에 찾아온 가을
 
 

깊어가는 가을날, 집 밖으로 한 걸음만 내밀면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도 완연한 가을을 느낀다. 더군다나 차를 타고 한적한 농촌 길을 달리다 보면 가을은 더욱 내 가슴 가까이에 와 닿아 있다. 오후 두 시의 가을 햇살을 등에 이고 산야에 흐드러지게 핀 억새. 역광을 받은 하얀 피사체는 사람의 혼을 빼앗아버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빛의 하늘거림은 붉게 물든 내 가슴을 파고 들어와 정신을 잃게 만든다.

 

  
▲ 화려함 붉게 물든 내 가슴속의 가을
 

전국에 이름 나 있는 억새 평원에 주말과 휴일에 수만 명의 등산객이 붐빈다는 뉴스는 깊어가는 이 가을의 소식을 그대로 전해준다. 어떤 이는 자연경관을 즐기기보다는 북적대는 사람 속에서 가을과 사람의 향기를 맡으려고, 또 어떤 이는 자연과 사람 속에서 자신의 향기를 맡으려는 이도 있다.

 

  
▲ 가을의 소리 쓸쓸함과 외로움으로
 

시월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 주 일요일(28일), 전남 광양시 봉강면 백운산 아래에 위치한 성불사(成佛寺)로 자신의 향기를 찾아 나섰다. 오후의 한적한 시간인데, 시골길이 너무나도 조용하다. 벼농사 가을걷이는 대부분 마쳤는지, 들녘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붉게 물든 경치를 감상하며, 사랑하는 이와 얘기를 나누면서 달리는 기분이야말로, 힘든 등반 끝에 시원히 맞이하는 바람의 상쾌함보다 더 좋은 느낌이리라.

 

  
▲ 포근함 하늘을 덮어버린 가을
 

산사로 들어가는 오솔길.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는 조용히 걷고 싶은 길이다. 차에서 내려 계곡으로 내려갔다. 바위를 돌고 돌아 흐르는 물소리가 영혼을 깨운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은 어느새 잔잔한 고요의 바다에 안착하고,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잎은 물에 비친 모습으로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 반가움 형형색색의 가을
 

가을 행락철치고는 너무나 고요하다. 적막감이 감도는 산에는 형형색색 물든 나뭇잎만 일행을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이름이 잘 알려진 산보다는, 적막감이 감돌고 외로움을 한번쯤 느끼고 싶다면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별로 커 보이지 않는 사찰입구의 주차장에는 승용차만 대여섯 대 있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 고요함 나의 향기를 찾아서
 

사찰로 들어서는 입구. 많은 산사를 돌아 다녀봤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고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기 전 입구 좌측에는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입석 앞으로 코끼리 상이 있고, 우측에는 ‘나무관세음보살’이라고 새겨진 입석 앞으로 역시 코끼리상이 있다.

 

코끼리는 불가에서 무슨 상징일까? 석가모니 탄생은 어머니 마야 부인이 석가모니를 낳기 전 아름답고 은처럼 하얀 코끼리가 옆구리를 통해서 자궁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게 되고, 룸비니 동산에서 석가모니를 낳게 된다. 전설에 의하면 부인이 살라나무에 오른쪽 팔을 올려 가지를 붙잡았을 때, 그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석가모니가 탄생했다고 한다.

 

  
▲ 고독 고요한 산사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 나뭇잎 떨어져 땅바닥에 뒹구는 소리, 다람쥐가 도토리를 먹이 삼아 장난치면서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이외는 그 어떤 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산사에서, 가을 향기를 맡고 자신의 향기에 취해 본다.

 

대웅보전 앞마당은 고요하다. 물결의 출렁임 하나 볼 수 없는 고요한 호수와도 같다. 백운산 도솔봉 아래 화려한 색채로 수놓은 단풍을 홀로 감상하는 맛은 일품이다.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이름난 산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 단청 단청 사이로 보이는 가을
 

단청(丹靑), 그 모습은 아름다움의 극치다. 인간의 열정과 혼이 서려 있는 전통예술의 최고의 가치이기도 하다. 단청 사이로 보이는 가을의 아름다움은 두 배의 느낌을 더해 준다. 특히, 조용한 산사에서 혼자만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때 느끼는 그 감정은 자신이 예술가가 된 듯하다.

 

  
▲ 동반자 외로움을 느끼며
 

길가에 아름답게 피었던 코스모스의 흔적은 없어진 지 오래 된 듯하다. 아름다움의 상징인 가을을 배신이라도 하듯 씨앗만 매단 채 바람에 흔들거린다. 오랜만에 찾아간 친구를 온 동네 수소문하였지만, 찾을 길 없는 것과 마찬가지 느낌이다. 다시, 돌아서는 발길의 무거움도 꼭 이런 감정일까?

 

두 그루의 늙고 늙은 소나무가 형제처럼, 친구처럼, 다정하게 보이지만, 아무래도 그 속사정은 나만이 알 것만 같다. 어젯밤, 별일 아닌 일을 가지고 싸운 부부처럼, 어느 정도 이해해 줄 수 있으련만, 그렇게 묵묵히 혼자인 듯, 두 나무가 둘로 있지만 혼자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역시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내 마음의 일일까?

 

멋진 공연이나 예술작품 전시회를 보고 집으로 돌아 갈 때의 느낌은 어떠할까? 충만한 마음에 그 기쁨이나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그 여흥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하는 것도 의문이다. 여행으로 인하여 느끼게 해 주는 만족감과 기쁨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아쉬운 마음으로 조용한 산사의 느낌을 뒤로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자신을 찾아 떠나는 또다른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물밀 듯 밀려온다.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면서 각오를 다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 감향 자연과 인생의 가을을 느낀다
 

정겨운 시골집 텃밭에 주렁주렁 열린 노란 감을 따는 할머니의 모습이 가을 향기 그 자체다. 감을 손질하는 할머니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을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할머니 일생의 가을도, 자연의 가을도, 가을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고집스런 어미 생각이 났다. 평소에 티격태격 다투는 어미와 아들 사이다. 달콤한 감을 사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어미 같은 할머니한테 한 상자의 감을 샀다. 어미로부터 분명코 비싼 돈 주고 뭐 하러 이런 걸 사왔냐고 따져 물을 게 뻔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 가지 않을 수 없다. 농사짓는 아는 형님한테 얻어 왔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지만, 어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지난해처럼, 똑같은 거짓말을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야만 어미의 마음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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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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