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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상지역

비바람 맞고 선 바닷가 노부부...언제 다시 볼는지


울산 울기등대와 대왕암에서 여유를 느끼다

  
▲ 파도 파도가 작은 바위를 몰아치고 있다.
파도

녹음으로 물든 숲은 맑은 공기를 내뿜으며 사람들에게 건강과 편안한 쉼터를 주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5월 하면 숲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성하의 계절로 접어드는 5월의 마지막 날(30일). 바다는 쪽빛을 뿜으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남해바다와 동해바다가 무슨 차이가 있으랴만, 느낌마저 같을 리는 없을 터. 거가대교를 건너 부산 기장까지 한걸음에 내달렸다. 31번 국도에 접어드는 시점부터 동해바다는 나그네를 반겨주었다. 

역시나 차를 몰고 드라이브하는 느낌은 차창 밖 풍경이 아름다워야 제 맛이 나는 법. 그것도 시원한 강줄기나 푸른 바다가 보인다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 동해바다는 그래서 좋다. 오래전, 7번 국도를 따라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가는 내내 바다를 거의 볼 수 있었기에. 

  
▲ 대왕암 대왕암
대왕암

울산의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울기등대와 대왕암은 멀리 동해바다로 이어진다. 대왕암공원은 휴일을 맞아 많은 여행객들로 혼잡하다. 무성한 잎을 가진 큰 나무는 축 늘어진 모습으로 그늘을 만들고, 푹신한 산책로는 걷기에 편해 좋다. 

입구 안내판에는 4개의 산책코스가 있는데 거리와 소요시간(30~55분)을 알려주고 있다. 45분이 걸리는 A코스를 따라 가 보기로 했다. 이 코스는 울기등대를 지나 대왕암전망대, 탕건암, 할미바위, 용굴을 경유하는 코스다. 

  
▲ 울기등대 앞쪽이 구 등대이고, 뒤쪽이 신 등대이다.
울기등대

울기등대는 방어진항을 유도하는 항로표지로, 일본이 1905년 2월 목재로 등간을 설치하면서, '울산의 끝'이라는 뜻으로 울기등간(蔚崎燈干)이라 하였다. 이후 1906년 3월 현재의 장소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설치, 1987년까지 80여 년간 사용되었다고 한다. 

신 등탑은 주변 소나무 성장으로 해상에서 식별이 어려워 1987년 12월 12일 설치하였으며, 높이는 24.79m로 등명기는 프리즘 렌즈를 사용, 국내 최초로 대형급으로 설치하였다고 한다. 구 등탑은 등대라기보다는 아담한 모양의 집을 연상시켜 주는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구한말 시대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한 건축물로, 신 등대와 비교를 통해 당시 건축술과 기법 등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한다. 

  
▲ 대왕암바위 대왕암바위
대왕암바위

탁 트인 광장에 이르니 세찬 바람이 분다. 먼 바다에서 밀려온 파도는 한숨을 삼키며 바위를 몰아치고 흰 거품을 내뱉는다. 흐린 날씨 탓인지 바다는 쪽빛으로 보이지 않는다. 큰 바위가 깨져 작은 바위를 이루는지, 작은 바위 군상이 모여 큰 바위처럼 보이는지 알 수가 없다. 

바위 모양도 제각각 천상의 얼굴로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만 같다. 바위색깔은 녹슨 것처럼 보이고, 황금빛으로도 보인다. 대왕암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황금빛을 하고 있는 것일까. 

  
▲ 남측해안 대왕암에서 바라 본 남측해안
남측해안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 30대 문무왕은 지의법사에게 "나는 죽은 후에 호국대룡이 되어 불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려고 한다"라고 하였다. 대왕이 재위 21년 만에 승하하자 유언에 따라 동해구의 대왕석에 장사를 지내니 마침내 용으로 승화하여 동해를 지키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가 경주 양북면에 있는 해중릉인 문무대왕릉인 것. 

이후 왕비도 세상을 떠나게 되고 한 마리의 큰 호국룡이 되어 하늘을 날아 울산바다 대암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고 전한다. 사람들은 이곳을 대왕바위(대왕암)라 불렀으며, 용이 잠겼다는 바위 밑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고 전해오고 있다. 

  
▲ 대왕암 대왕암에서 바라 본 울기등대.
대왕암

전망대에 올라서니 저 멀리 상선 한 척만 외로이 떠 있고 망망대해가 끝이 안 보인다. 바닷물 속에 잠겨 있는 작은 바위 위로 세찬 물살이 앞뒤로 출렁인다. 물질하는 해녀가 수면으로 올라 숨을 몰아쉬듯, 작은 바위는 파도가 넘은 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만 같다. 강한 바람과 거친 파도에도 강태공은 고정된 자세로 한 동안 꿈쩍도 하지 않고 바다만 응시하고 있다. 몇 마리의 고기를 낚아 올렸을까 궁금해진다. 

돌아 나오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바람과 파도를 피하지 못한 인고의 세월을 거쳐서일까, 소나무 두 그루가 같은 방향으로 드러눕다시피 하고 있다. 키는 작지만, 나이는 고희를 넘어 보인다. 나이 들어 휘어질 대로 휘어지고, 꼬부라진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이다. 

북측해안 산책로에 부부송이라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데, 여기 두 그루의 소나무는 '노부부송'이라 이름을 붙여본다. 강한 비바람과 폭풍에도 꺾일지언정 뿌리째 뽑히지 않는, 언제까지 푸름을 잃지 않는, 저 늙은 두 그루의 소나무가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 

  
▲ 노부부송 대왕암공원 홍보책자에는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늙은 소나무 두 그루. 나그네가 노부부송이라 이름 지어 주었다.
노부부송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반복하고, 꼬불꼬불한 길을 돌고 돌아도 해안가 절벽은 아름답다. 흙이라곤 별로 없는 바위 틈새에서 소나무는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어나 있다. 그 강한 생명력이야말로 진정 자연에서 배워야 할 태도가 아닌가 싶다. 

해안가에서 가장 높은 곳을 '고이'라 하며, 이곳 전망대에선 미포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넙디기'는 해안 바위 중 가장 넓은 곳을 말하며, 넙덕바위가 변한 말이다. 탕건암은 넙디기 앞 바다에 있는 바윗돌로 마치 갓 속에 쓰는 탕건 같이 생겼다 하여 이름 붙인 것.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형상으로 우뚝 솟은 할미바위도 보인다. 

사람도 제각각 자기만의 이름을 가졌듯이 바위도, 나무도 이름을 가지지 못할 것은 없는 법. 앞서 본 늙은 소나무 두 그루에 '노부부송'이라 이름 지어주었는데,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을는지. 

  
▲ 탕건암 탕건암은 넙디기 앞 바다에 있는 바윗돌로 마치 갓 속에 쓰는 탕건 같이 생겼다 하여 이름 붙인 것.
탕건암

  
▲ 할미바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형상으로 우뚝 솟은 할미바위.
할미바위

그래서 대왕암 공원에는 이름 붙인 바위와 나무가 수도 없이 많다. 북측 해안에는 바깥 막구지기, 햇개비, 민섬, 수루방, 용굴, 부부송, 넙디기, 할미바위(남근암), 탕건암이 있다. 북동 해안에는 고이와 사근방(사금을 채취했다고 붙여진 이름)이 있고, 남측 해안에는 용디이목, 샛구직, 과개안(너븐개), 고동섬, 중점·노애개안, 배미돌이 있다. 

  
▲ 소나무숲 대왕암공원에는 1만 5천여 그루의 소나무가 하늘을 덮고 빽빽히 서 있다.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 참으로 행복하다.
소나무숲

해안가를 돌아 언덕길로 오르니 울창한 송림이다. 하늘을 향해 날씬하게 쭉쭉 뻗은 소나무는 20m가 족히 넘을 것만 같다. 대왕암 공원은 울산 12경중의 하나로 이곳에는 1만 5천여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평평한 숲 속, 오솔길을 걷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 천천히 걷는 시간만큼 여유로움을 얻을 수 있어 좋다. 

45분이면 된다던 거리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나그네에겐 가진 것은 시간뿐인데, 두 시간이면 어쩌랴. 시간에 쫓겨 박물관을 휑하니 둘러보는 것이나, 여행지 안내판만 읽어보고 오는 여행에서 얻는 것이 무얼까. 여유로움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싶다. 

  
▲ 대왕암 대왕암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