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해서 자신이 세웠던 목표를 달성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데도, 처음에 마음먹었던 것과는 달리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 중단하는 경우도 있을 터이다. 똑 같은 일을 반복하는 피로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중단하는 경우도 있을 테고, 건강 문제 등 피치 못할 특별한 사정에 의해서 그만 두는 사례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내게 있어 후자의 사례로 끝까지 달성하지 못한 꿈이 있다. 불자로서 <108산사 순례 기도여행>이 그것이다. 그 꿈을 중단하게 된 사정은 건강문제였고,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 꿈을 완성하고 싶다.

<108산사 순례기>는 2015년 11월 10일, 양양 낙산사 순례기도를 끝으로 중단되었다.(관련기사, 수많은 돌탑의 행렬, 이곳은 ‘꿈이 이루어지길’)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고, 오직 건강을 되찾기 위한 일에만 전념해야 했다. 왜 처절하게 살아야만 하는지 물었고, 불자로서 답을 찾으려 했지만 모든 것은 허상에 가깝다는 것만 울림으로 돌아오곤 했다.
포기할 수 없는 끈질긴 저력과 정신력으로 이제는 예전만큼 건강을 회복했고, 더 이상 나쁘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다하고 있는 지금이다. 그래서 이제 다시 시작해 볼 요량이다. <108산사 순례기> 남은 이야기를.

한 여름 끝자락인, 지난 8월 24일 안동 봉정사을 찾았다. 봉정사는 경북 안동 천등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이다. 신라시대인 672년(문무왕 12년) 능인대사가 창건했다. 능인대사는 절을 지을 곳을 찾다가 종이로 봉황을 접어 날리니 지금의 봉정사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봉황이 머물렀다 하여 봉정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봉정사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국보 제15호 ‘안동 봉정사 극락전’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국보 제311호 ‘안동 봉정사 대웅전’도 건축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봉정사 매표소 입구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가는 것이 좋다.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약 250미터 길은 양쪽으로 하늘 높이 쭉쭉 뻗은 적송 군락지다. 이런 길을 걸으면 신선한 공기로 정신이 맑아지고, 고즈넉한 산사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는 청량제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이다.
사찰을 찾는 여행자라면 차를 두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천천히 걸으며, 상념에 빠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맞배지붕 형태의 일주문 앞에서 두 손 모아 합장기도를 올렸다. 세속의 번뇌에서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아, 부처님의 가르침인 깨달음과 진리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걸음으로 문턱을 넘었다.

봉정사 극락전으로 가는 길...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걸으며
길가에 핀 노랑상사화가 여행자를 환하게 반긴다. 상사화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이는 꽃이 필 때 잎이 없고, 잎이 필 때 꽃은 피지 않는다는 뜻이다. 꽃무릇을 비롯한 이런 상사화 종류는 유독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고 만세루를 지나니 대웅전이다.
봉정사 주 법당은 대웅전으로 제일 먼저 들러 예를 올려야 하는 곳이 주불을 모신 전각이다. 손님으로 다른 집을 방문했을 때 주인에게 제일 먼저 인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봉정사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팔작지붕 형태의 건물이다. 공포(처마 끝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는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형식으로 조선 초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는 안정적인 건축물이다. 눈여겨 볼 대목은 앞쪽에 쪽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인 법당 건축에서는 드물게 나타나는 독특한 형식으로, 일반 사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건축구조라 할 수 있다. 법당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관음보살상이 우측에는 지장보살이 협시불로 자리하고 있다. 불보살에게서 느껴지는 온화한 미소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불단에 공양미을 올렸다. 삼배기도를 시작으로 108배가 시작됐다. 젊었을 때는 12~13분이면 마치는 108배 기도가 25분이나 걸렸다. 숨도 가쁘고, 다리도 허리도, 온 몸이 쑤시고 아프다. 적당히 삼배만 하면서 형식적인 기도로 그칠 수 있지만, 왜 이런 힘든 것을 감내하려는 것일까. 나는 복을 바라는 구복기도는 하지 않는다.
그저 나의 어리석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을 뿐이다. 기도를 마치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어지러운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온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Ⅱ세가 남긴 메시지... 한국의 조용한 산사
법당 측면에는 1999년 4월 21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Ⅱ세가 봉정사를 방문하여 방명록에 기록을 남긴 내용과 자필서명 그리고 사진이 함께 있었다. 27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녀가 남긴 “조용한 산사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라는 메시지는 봉정사를 찾는 이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듯하다. 아래는 그녀가 남긴 친필 원문이다.
"As I visit the Pongjong temple in the peaceful mountains, I feel the beauty of a Korean spring day. April 21, 1999 Her Majesty Queen Elizabeth Ⅱ"

봉정사 극락전 앞에 섰다. 이 법당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국보 제15호로 지정돼 있다. 1972년 보수공사 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년)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상량문 기록으로 증명되었다. 앞면 3칸 옆면 4칸 단층으로, 정면에 비해 측면이 긴 독특한 비례를 지니고 있다. 맞배지붕에 공포는 주심포로 배흘림기둥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정면 출입문의 형태가 일반적인 법당의 어간문 형태가 아닌, 전면 중앙에는 판문을 달고 양쪽에는 살창을 내었다. 1972년 보수공사 때 고증을 통하여 옛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봉정사 동쪽 약 100미터 떨어진 곳에 영산암이 자리하고 있다. 영산암 주불전은 나한전으로, 현판이 오래돼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띠지도 않는다. 이 외 염화실, 송암당, 삼성각, 우화루, 관심당 등 5개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산암은 ‘ㅁ’자 형태의 전통적인 사찰 형식을 띠고 있다.
삼성각 앞 바위에서 자란, 하늘을 덮을 정도로 무성한 소나무는 자연미를 더해 고건축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루에 걸터앉으니, 방문에 잠긴 열쇠가 눈에 들어온다. 그 동안 내 맘의 열쇠를 닫고 살지는 않았는지 상념에 잠겨본다.

봉정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정원’에 등재된 사찰이다. 봉정사 입구에는 안내판이 서 있다. 산사는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그리고 대흥사 등 7개 산지정원을 일컫는 것이라고 설명돼 있다. 7세기에서 9세기까지 창건된 이 사찰들은 신앙과 수행 그리고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한국 불교의 발전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할 것 것이다.
봉정사에서 108배 기도로 30번째 염주 알을 꿰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가을바람은 가슴으로 파고든다. 이 좋은 가을 날 봉정사에서 뜻 깊은 여정을 느껴보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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