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처님] 마음의 병 치료하면 내가 변하고세상도 바꾼다, 법륜스님/오늘의 법문
하동 쌍계사 매표소 입구 작은 폭포.
[나의 부처님] 마음의 병 치료하면 내가 변하고세상도 바꾼다, 법륜스님/오늘의 법문
마음의 병 치료하면 내가 변하고세상도 바꾼다(1)/ 법륜스님
불교에서 가장 핵심적인 목표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삼보에 귀의한 가장 핵심적인 목표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니르바나, 열반이지요.
다른 말로 하면 해탈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불교인들이 열반이나 해탈을 생의 목표로 살고 있습니까.
열반이란 괴로움이 없다는 말입니다.
괴로움이 사라졌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알고 있는 질병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괴로움입니다.
마음의 병을 한 마디로 하자면 고입니다.
괴로움은 미움, 슬픔, 분노 등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요.
열반이란 이런 괴로움들이 모두 없어진 상태입니다.
마음이 아주 맑고 건강한 상태입니다.
슬픔도 외로움도 괴로움도 없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귀찮지도 않아요.
그러나 우리는 혼자 살면 외롭고 같이 살면 귀찮으며 같이 살다 헤어지면 또 외롭다고 합니다.
이래도 고이며 저래도 고입니다.
왜 그럴까요.
환자이기 때문입니다.
마음병을 갖고 있는 환자, 그 환자가 바로 중생이지요.
중생이라는 것은 곧 환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건강할 수 있습니다.
본래 건강했기 때문입니다.
본래 건강했는데 몸을 잘못 써서 결국은 병이 나지요.
그럼 치유라는 것이 무엇이냐.
본래 자리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의 상태도 본래 병이 없습니다.
본래 병이 없는데 마음을 잘 못 써서 결국 병이 난 것입니다.
그러니 본래 상태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본래 있었던 자리이니까 돌아가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됩니다.
우선 현재 내가 아픈 상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프다는 것이 바로 고(苦)입니다.
이것을 알려면 먼저 진찰을 해봐야 합니다.
병의 근본을 아는 것이 집(集)입니다.
그리고 이 병은 치료가 될 수 있는 병이라는 사실은 멸(滅)이지요.
어떻게 치료하느냐가 바로 도(道)입니다.
고집멸도(苦集滅道), 이것이 불교의 핵심사상입니다.
열반을 목표로 열반에 이르기 위해 고집멸도라고 하는 순서를 밟아서 사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마음의 병을 치료해 나가면 누구나 다 열반에 이를 수 있습니다.
괴롭다고 하는 이들의 병은 거의 치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등의식이나 피해의식 등은 깨쳐도 이미 그것이 몸과 마음에 습관이 돼 있어 계속 돌아갑니다.
지속적으로 치료를 하지 않으면 반복되지요.
그래서 몰라서 괴로운 게 있고, 알아도 치료가 안 돼 괴로운 게 있습니다.
알긴 아는데 뜻대로 잘 안 되는 경우이지요.
이것이 바로 무의식의 세계이며 불교적으로 말하면 업식입니다.
이런 경우 노력이 필요합니다.
순간 놓쳤지만 곧 업식이 작용한 것을 깨닫고 다시 돌이키면서 본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동 쌍계사 가는 길.
반면 치료가 절반도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은 말하자면 정신 자체가 약한 사례입니다.
깨우친다고 해도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굉장히 보살펴야 하지요.
부처님은 스스로 자신의 병을 치료하신 분입니다.
병의 유형이 어떤 것들인지 아주 잘 아십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병에 대해서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온갖 경험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전에서 병, 즉 번뇌는 주로 마왕의 유혹으로 등장합니다.
가만히 읽어보면 수행할 때 내면에서 어떤 번뇌가 일어나는 잘 알 수 있습니다.
제일 절망적일 때가 있지요.
마왕이 열반이란 없다고 계속해서 속삭이는 순간입니다.
깨달음은 없다는 것입니다.
몸만 상하고 힘드니 왕궁으로 돌아가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축복을 받으면 황제가 될 수 있다고 부처님을 유혹합니다.
수행의 마지막 순간에 곳곳에서 번뇌가 나타나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에게 세 가지 시련이 보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시험하지 말라는 말로 속삭임을 한 마디로 잘라 버립니다.
이게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대결정심입니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닫기 전까지 자리에서 일어나 않겠다고 결심했던 것처럼 죽기를 각오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참 어려움을 많이 느끼셨습니다.
처음 길을 나선 사람은 길의 끝을 잘 몰라 어려움을 겪습니다.
허나 뒤 따라가는 사람은 쉽지요.
이미 누군가가 가 본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남을 치료한다는 교화라는 측면에서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부처님이 길 끝에 서서 깨닫고 보니 시행착오를 겪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부처님이 그 사람에게 맞게 가르침을 전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동 쌍계사 가는 길.
[나의 부처님] 마음의 병 치료하면 내가 변하고세상도 바꾼다, 법륜스님/오늘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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