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득순 선생님께 드립니다.

고1때 미술을 가르치셨던, 박득순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을 전하면서...


선생님께서 주신 선물

선생니~임~. 건강하시죠?

먼저, 지난달 선생님께서 초대한 미술전시회에 참석하지 못한데 대해 죄송스럽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전시회를 잘 치르셨는지 궁금하고요. 물론, 빈틈없는 선생님의 평소 생활 모습을 보면, 당연히 잘 마무리하였을 것으로 믿습니다.

며칠 전, 권수 친구가 사무실로 왔더군요. 가끔씩 들르는 친구라 그냥 지나가다 차나 한 잔 하러 온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림 하나를 꺼내놓더군요. 심상찮은 분위기에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주신 작품이라는 것을.

친구로부터 '전시회를 잘 마쳤다는 것과 얼마 전 거제를 한번 다녀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참으로 미안하고 민망함이 교차하더군요. 변명이지만, 선생님께서 보내 주신 초대장을 항상 책상 위에 얹어 놓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들이 가지 않더라도 혼자라도 가봐야지' 하고 말입니다. 바쁜 직장생활에 특히, 연말 업무를 정리하는 마당이라도 꼭 가 보리라 다짐했는데도,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거제와 서울이 멀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 하면서 말입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흔히,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합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만 흐릅니다. 낮은 곳을 향한다는 의미겠지요. 여러 군데서 흐른 물은 거대한 바다에 함께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고요. 그리고 인간을 비롯한 뭇 생명에게 이로움을 주는 위대한 자연 자산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흘러,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삶의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꼭 30년이 되는 지난 2007년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 선생님과의 특별한 만남의 기회를 저 손으로 뿌리쳤다는 것을 자책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 해가 또 다시 저물어 갑니다. 사람들은 '세월 참... 벌써, 12월이야' 라고 합니다. 세월과 도둑은 소문내지 않고 다녀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맞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엊그제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고, 해돋이를 보겠다며 차가 밀린다는 소식을 들은 것만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또 다시 한 해를 정리하겠다고 부산을 떨겠지요. 따지고 보면, 지나가는 올해라는 것도, 다가오는 새해라는 것도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인데, 그 속에 빠져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사람 사는 세상, 그렇고 그렇게, 두리 뭉실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고 싶은 선생님!
아름다운 추억과 슬펐던 사연은 많고 많은 삶의 기억 중 조각 하나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 선생님의 인생전반을 기리는 지난 번 미술작품 전시회 때, 참석하지 못한 가슴 아픈 조각 하나. 다시 한번 죄송스러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제자를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 감히 말씀드립니다. 선생님께 편지를 쓰면서, 지난 2007년 선생님을 초대했던 글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 당시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기사도 다시 찾아보게 되네요.

사랑하는 선생님!
지인이 그러더군요. '사람은 외롭다'고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연말이 다가올수록 왠지 쓸쓸함이 드는 느낌입니다. 날씨도 계속 추울 것이라는 소식입니다. 겉옷 하나도 따뜻하게 입으시고,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라면서, 이 편지로 선생님께 죄스러움을 대신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따뜻한 섬나라, 거제도에서
제자 정도길 올림



2007년 1월 4일 <오마이뉴스> 기사, <스승과 제자 30년 만의 특별한 초대전>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84082&PAGE_CD=



30년 세월을 기리며 선생님을 모십니다


삼십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여름, 좁은 이 땅에 살면서도 선생님과 헤어진 지 꼭 삼십년 만에 동기생들과 함께 만났습니다. 해성고등학교가 있는 아름다운 언덕배기는 그 옛날의 모습을 간직하지 아니 하였어도, 은사님의 얼굴은 옛 모습 그대로 우리의 기억을 살려 주었고 모두를 반겨 주었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던 그 때, 미치도록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거제의 곳곳을 둘러보시면서 스케치하시던 그 모습. 살며시 눈 감으면 떠오르곤 합니다. 처음 만나는 날, 오랜만에 보는 제자들에게 주고자 하얀 백지 위에 정성과 사랑과 예술의 혼을 그려 넣었습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붓을 든 은사님의 손을 훔쳐보았습니다. 그 손은 사랑스런 어미니의 손이었습니다.

평생, 예술에 열정을 쏟아 온 선생님께서는 학도들에게 예술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간직한 예술의 혼을 제자들이 다시 보기를 갈망합니다. 삼십년 만에 만나는 두 번째 만남에서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과 예술에 대한 혼을 보고 싶어 합니다.

거제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하얀 백지위에 그려내는 선생님만이 간직한 예술세계의 혼. 그 세계를 다시 보고 싶어 합니다. 정열에 불탔던 선생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해성고등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수많은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간직한 장승포항을 내려다보며 위치한 곳에 세워진 거제도를 상징하는 건물, 예술의 전당인 거제문화예술회관. 이 곳,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선생님을 모시고자 합니다.
 
2007. 1. 10

선생님을 모시는 제자 일동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